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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규승 Feb 21. 2024

사랑도 배울 수 있다던데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한다. 사랑함으로써 저 사람과 내가 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그 감각을 한번 느끼게 되면 그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사랑을 하면서 상대와 나는 하나가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내가 없어지기도 한다. 사랑하여 함께인 존재로도 있고 싶고, 나라는 개인로서도 있고 싶다. 딜렌마의 시작이다. 과연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과 합일된 상태로서 존재하는 것이 공존할 수 있을까?


애플은 Think Different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획일화되어 가는 시대에 용기 내어 misfits가 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금 길에 나가면 셋 중 하나는 애플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일체성을 원하면서도 동일성을 원하는 인간의 이 미묘한 밸런스 게임은 평생을 걸쳐 이뤄진다.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부모의 품에서 떠난다. 그리고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또래집단을 찾고 그 안에서 개성을 발현하려 힘쓴다. 밖에서 보기에는 거의 비슷해 보이는데 그 조그마한 0.1%의 다름으로 자신과 집단은 분리되어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기도 하다.




개인으로서 혼자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을까? 개인주의자가 늘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에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집단주의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잃은 상태로 표류하게 될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지만 혼자서도 온전히 존재하기를 꿈꾼다. 이 미묘한 줄다리기 사이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모 아니면 도’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는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서 균형이 미세 조정되는 것 같다.


결국 우리가 하나의 존재로도, 그리고 사회적 존재로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아닌 타인과의 결합이 필수적이다. 마치 달과 지구의 관계처럼, 분명 떨어져 있지만 서로는 중력이라는 끈으로 연결된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처음 달과 지구가 만났을 때 어떤 우연의 결과로 서로의 중력 범위 안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를 관찰하며 서로는 닮아가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지구의 조석력이 달의 회전을 늦추고 달과 지구는 같은  자전 주기를 가지게 된다. 지구는 매일 바뀌는 물의 흐름을 견뎌야 하고, 달은 자신의 자전 속도를 변화하였다. 서로가 서로 영향을 주었고, 시간과 노력의 결과, 둘은 따로인 동시에 하나인 유기체로서 작동하고 있다.


사람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영향은 분명 존재한다. 누군가는 이를 중력이라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이를 인연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인연은 우연에 의해 시작될 수는 있을지언정 이를 지키고 나가는 것은 기술의 영역이다. 바로 사랑의 기술.




사랑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선 어떻게 할까?


훈련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부과된 규칙처럼 실행되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의지 표현이 되어야 한다. 훈련 자체를 즐겁게 생각하고 훈련을 그만두면 결국 실패하게 될 행동에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이 본질적인 일이다.


정신 집중

정신 집중을 위해 홀로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호흡을 따라가라고 한다. 호흡 외에도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 전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정신 집중이 되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인내

처음에는 정신 집중이 어렵지만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인내하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최고의 관심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사랑할 것을 선택하였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에센스에 닿을 수 있도록 최고의 관심을 기울인다. 그때 상대의 에센스로부터 출발하는 세상이 새롭게 펼쳐진다.




사랑을 하기로 한 것이 자발적인 선택의 문제여야 사랑의 기술을 온전히 익힐 수 있다. 그래야 힘든 순간이 와도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느 때보다 풍족하지만, 어느 때보다 사랑의 결핍을 느끼는 시대이다. 누구나 자신을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도처에 널려있다. 이런 시대에 역행하여 내가 어떻게 사랑을 받을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사랑을 먼저 줄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Reference.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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