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사로운 5월, 더위가 시작되기 전이다. 봄 햇살이 밝고 화창한 오후, 바깥나들이 갔다 오시는 아빠의 손에 무언가 들려있었다. '저건 뭘까? 아빠가 무얼 사 갖고 오신 걸까?' 궁금해하며 아빠를 따라갔다. 아빠는 부엌 뒤 밖에 있는 수돗가로 가셨다. 부엌에서 도마와 칼과 양푼을 가지고 나가서 바깥 수돗가 시멘트 바닥에 깔개를 깔고 앉으셨다. '스슥삭삭' 숫돌에 칼을 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릴 적 우리 집 수돗가 한편에는 늘 숫돌이 놓여있었다.
"아버지, 그거 뭐우꽝? 뭐허젠 마씸?(아빠, 그게 뭐예요? 뭐하려고요?)"
내가 묻자, 아버지는 말없이 돌아보고 웃으셨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자리돔을 손질하고 계셨다. 숫돌에 갈아서 날카로워진 칼날로 머리와 내장을 떼어내고 곱게 손질된 자리돔이 양푼 안에 한가득 담겼다. 아빠는 뒷마당 텃밭으로 가셔서 깻잎, 파, 오이, 고추, 새우리, 등등의 채소들을 소쿠리 한가득 따오셨다.
"아아 맞다, 저기강 제피 몇 개만 뜯엉오라(저기 가서 제피 몇 개 뜯어서 가지고 와라)."
나에게 앞마당 한편에 있는 제피나무에서 잎을 따오라고 시키고 당신은 흐르는 물에 채소들을 씻어내고, 손질한 자리돔이랑 같이 부엌으로 가지고 왔다. 자리돔을 어슷 채 썰고, 채소들도 채 썰어 넣고, 된장은 숟가락으로 퍼서 커다란 양푼 위에 툭 털어놓고, 설탕, 마늘, 고춧가루 등등의 양념을 뿌리고는 한데 비비기 시작했다. 자리물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리물회에는 특히 식초가 들어가야 한다 했다. 그때에는 지금처럼 플라스틱에 포장된 현미식초, 사과식초가 아니라 작은 술병 모양의 병에 담겨 있는 빙초산이었다. 병 뚜껑을 열면 싸아한 냄새가 지독히 코를 찌르던 기억이 있다. 수돗물을 양푼 한가득 담아와서 천천히 부으면서 숟가락으로 휘휘 내저으며 물의 양을 조절하고 그 위에 빙초산을 떨어뜨리면 자리물회가 만들어졌다. 아빠는 수저로 국물을 한 입 떠서 맛을 보고는 빙초산 한 방울을 더 떨어뜨렸다. 이제 맛있는 자리물회가 완성된 것이다.
식구들 한 명 한 명 국그릇에 물회를 담아주고, 밥공기에 한가득 밥을 담아 밥상이 차려졌다. 아마 식구들 모두가 자리물회를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어린 나와, 남동생, 작은언니, 둘째언니, 오빠, 우리 가족 모두는 아빠가 만들어주신 자리물회를 좋아했다. 식구들이 다 같이 앉아서 밥을 먹던 밥상의 기억은 희미한데, 수돗가에서 자리돔을 손질하시던 아빠의 뒷모습은 선명한 그림으로 남아있다. 가족들이 다 같이 한 자리에 앉아서 물회를 먹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아빠가 물회를 해두면 한 명 한 명 들어와서 따로 각자 밥을 먹었을 수도 있다. 엄마는 집에 안 계셨을까. 엄마의 기억은 없다.
봄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늦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 한여름이 시작되기 전. 그때가 자리돔이 많이 나는 철이다. 아빠는 시장에서 갓 잡아 올린 자리돔을 사 가지고 오셔서 손수 자리물회를 만드셨다. 자리물회 만드는 것은 항상 아빠가 하셨다, 자리돔을 손질하고 양념을 넣어서 물을 부어 숟가락으로 휘휘 젓고 맛을 보아 간을 맞추시는 것까지. 그리고 나면 나랑 언니가 밥상을 차리며 아빠가 만드신 자리물회를 그릇에 담았다. 아빠가 해주신 자리물회는 우리 집 별미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제주에는 내가 어릴 적에는 없었던 물회를 파는 식당들이 많이 생겼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이제는 고향 제주에 가면 향토음식점에 가서 자리물회를 먹는다. 갖은양념으로 맛을 낸 식당 자리물회는 새콤 달콤 매콤 맛있지만 아빠가 만들어주셨던 것과는 맛이 다르다. 아빠의 자리물회 맛은 아련히 잊혀지는데, 자리돔을 손질하시던 아빠 뒷모습은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아빠는 말없이 조용하고 무뚝뚝한 분이셨다. 어렸을 적, 나는 아빠에게 그다지 살갑게 다가가진 못했던 것 같다. 자리물회를 만들어주신 아빠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 한마디라도 했다면 좋았을걸. 아빠가 만들어준 자리물회가 정말 맛있다고, 우리 아빠 최고라고, 엄지 척 한번 해줄걸. 아쉬운 맘이 든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빠 옆에 다가가 앉아서 궁금한 거 꼬치꼬치 물어보면서 재잘재잘 떠들고 재미나게 이야기하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아, 그리워라. 다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아빠와 함께 웃고 떠들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잊혔던 아빠 뒷모습을 떠올리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아빠에게 참 무심했구나. 아빠가 엄청 사랑하고 이뻐했던 막내딸이었는데. 아빠의 사랑을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한 채 아주 오랫동안 아빠를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