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게도 좋은 사람, 아빠를 그리며

자전거는 달린다

by 이글라라

4월 22일 지구의 날 아침. '출발 FM과 함께' 라디오를 듣다가 "나는 지구에게도 좋은가?"라는 예기치 않은 질문을 받았다. 지구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하는 사이, 라디오에서는 지구를 위하여 저녁 시간 전체 소등하기를 한다고 안내해 주었다. 그 시간에는 상담 중이어서 소등하기에는 참여할 수가 없겠다. 나는 소등 대신에 자가용 놓고 출근하기를 결심한다.


이른 점심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다. 방축천을 따라 산책로를 자전거로 달려서 어진동 갈림길. 표지판 옆으로 자전거를 세우고 돌다리를 건너 시내 도로로 올라간다. 도로변을 따라 1킬로 정도를 걸어서 S 빌딩 3층으로. 놀이실 문을 열어 공간을 정돈하고 내담 아동 상담 파일을 꺼내며 하루가 시작된다.

저녁 9시, 세션을 끝내고 빌딩 밖으로 나오니 거리는 밝고 조용하다. 이미 소등한 상가들도 있고 아직 불을 밝히고 영업을 하는 상가들도 있다. 빵집에 들러 딸이 좋아하는 호두 피칸파이와 에그타르트를 사서 작은 가방 안에 쏘옥 집어넣고 거리를 걷는다. 어둔 거리에 가로등 불빛, 하늘에는 달이 차오르고 있다.
교차로에 도착하여 오른쪽 공원 산책로로 내려가 내천을 건너는 돌다리를 지나 자전거가 있는 곳에 도착. 사방이 캄캄하니 가방에서 램프를 꺼내 바퀴 아래쪽을 비춘다. 잠금장치를 풀고, 램프를 장착하여 자전거는 출발한다. 램프 불빛과 가로등 불빛만이 길을 밝히고 자전거는 달린다.

어두운 밤, 사방이 고요하니 졸졸 시냇물 소리, 찌르르르 풀벌레 소리가 귓가에 와닿는다. 산책하는 사람들 걸음 소리, 자전거 탄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스걱스걱스걱 삭삭삭'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천천히 달리다가 내리막 길에서 '스르르르르르.' 얼굴에 스치는 바람은 시원하고, 자전거 바퀴 돌아가는 소리는 지금 여기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듯. 마치 자전거가 "나 여기 있어"라고 내게 속삭이는 듯하다.

반대편 쪽에서 현란한 불빛이 빙그그르 반짝반짝. '어 저게 뭐지?'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섰다. 예닐곱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킥보드 씽씽카를 타고 달리는데, 바퀴에 반짝이는 불빛이 네온사인 같다. 그 뒤로 작은 배낭을 메고 뜀박질하며 뒤따라가는 젊은 아빠가 보인다. 방축천 산책길을 딸은 씽씽카 위에서, 아빠는 딸을 에스코트하며 등 뒤에서. 아빠와 어린 딸의 동행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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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시계를 돌려 아주 오래전 옛날, 아빠와 함께 돌담길을 걷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몇 살이었는지 기억은 흐릿하지만, 아마 초등 입학하기 전이었으니 저 아이와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다. 어릴 적 아빠와 함께 했던 유일한 기억의 한 장면, 호롱불 밝히고 어둠을 지새웠던 한겨울밤의 추억을 되돌려본다.



아빠는 농부셨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귤밭이 있었다. 1930년에 태어나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에는 진학하지 못하셨지만 한자와 한글을 통달하시고 동네에서는 그래도 글을 아는 학식 있는 분이어서 해마다 정초에는 토정비결을 본다고 동네분들이 찾아오곤 했다. 아빠는 여러 책들을 시렁 위에 두고서 아침마다 꺼내보곤 하셨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귤밭에 갔다 오는 것은 식전에 아빠가 하는 주요 일과 중의 하나였다. 귤밭은 아빠가 생전에 일구신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출발하여 손수 집을 지으시고, 밭도 샀다고 하니 자수성가했다 할 수 있겠지. 그 밭에는 창고가 없어서 겨울에 귤을 수확하고서 저장해둘 공간이 없었기에 땅바닥에 짚을 깔고 귤을 두고 그 위에 다시 짚을 덮어서 보관하곤 했다. 눈이나 비라도 오면 귤이 상하니 단도리를 잘해야 한다고 아빠는 말했다. 밭에 커다란 창고를 지어서 창고에 귤을 저장 보관할 수 있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작은 움막 같은 오두막 집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농막으로 간단하게 지은 흙집 같은 게 아니었을까. 밤에 귤을 훔치러 다니는 도둑들이 있다고 해서 아빠는 밤마다 귤을 지키려 호롱불을 들고서 밭으로 갔었다. 겨울에 호롱불 밝히고 밤을 지새웠던 아빠와의 첫 기억, 그 하룻밤이 기억난다. 그날은 내가 아빠를 따라갔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아빠 옆에서 잠들었을까, 아빠랑 같이 밤을 지새웠을까. 어린 나는 전등이 아닌 호롱불로 어둠을 밝히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하고 좋았다. 아빠와의 아름다운 추억.



지금 나는 그때 젊은 아빠의 나이를 훌쩍 지났다. 그 시절 아빠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이제 와 생각하니 아빠는 당시 자신의 처지가 초라하고 비참했을지도 모르겠다. 번듯하니 창고를 지을 형편이 되지 않아 노지에 귤을 놔두고 노심초사했을 아빠의 마음이 짠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얼마 전, 열여덟 작은딸은 말했다. "지금은 예전에 아빠가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싶은데, 내가 어렸을 때는 아빠가 힘든 줄을 전혀 몰랐어. 우리 집이 가난한 줄도 전혀 몰랐어.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늘 행복했거든. 집에 들어올 때 늘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으니까. 난 아빠도 행복하다고 생각했어. 아빠가 옆에 있으면 아무 걱정 없고 든든하고 좋았어. 어릴 때 아빠는 내게 세상 전부였던 거 같아."


작은딸처럼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아빠가 세상 전부이지 않았을까. 나는 아빠랑 함께 했던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어린 딸과 함께 호롱불 밝히고 추운 겨울밤을 지새며 물질적 가난이 비참하고 초라해도 아빠도 나와 함께 했던 그때 그 순간이 기쁘고 행복했기를.

문득 생각하니 아빠는 지구에게도 좋은 사람이었다. 지구에게도 좋은 삶, 농부로서 자연에 거스르지 않는, 자연을 닮은 삶을 살다 가셨다.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젊은 아빠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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