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그리며
그 한 장의 사진은 잊고 지내던 당시의 태산같은 고통과 함께 온갖 자질구레한 기쁨과 슬픔을 불러내어 나를 부끄럽게도, 하염없게도 한다.
- 박완서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175
박완서에게 그 한 장의 사진처럼, 내게 아빠의 편지 한 통은 당시의 태산 같은 슬픔과 함께 지난 날 아빠와의 추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다시 되돌이킬 수 없는 지나가버린 시간들은 나를 하염없이 부끄럽게 한다.
1987년 대학 입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와서 작은언니랑 나는 신림동에서 자취생활을 했다. 당시 대학 3학년이던 언니랑 둘이서 학교 앞 복덕방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가장 싼 방을 찾아 헤매다가 학교 근처에 보증금 30만 원에 월세 5만 원 하는 2층 단독주택 반지하 단칸방을 구했다. 밖에 석유곤로를 놓아 부엌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방으로 통하는 반지하 너른 방이었다. 그 방 한편에 조립식 옷장과 넓은 교자상 하나가 살림살이의 전부였는데, 교자상은 책상도 되었다가 밥상도 되었다가 책과 물건들을 올려두는 선반 역할까지 하면서 꽤 유용하게 쓰였다. 그 교자상에서 나는 많은 편지들을 썼다. 쓰다 만 편지도 많았고, 부치지 않은 편지들도 있었다.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부산으로 이사를 하면서 20대 서울생활에서의 많은 흔적들 - 밤마다 끄적였던 일기, 낙서, 부치지 않는 편지들을 한데 모아 불태워 버렸다.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하던 즈음, 과거를 떠나보내고 새 출발을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치른 나만의 의식이었다.
그때 사라지지 않고 남은 것들은 상자 하나에 모아두었다. 상자가 낡고 헤져서 다시 새로운 선물상자로 바뀌면서도 버려지지 않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편지들은 대부분 내가 받은 편지들이었다. 여러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내 기억의 창고로 소중히 간직해온 것들. 친구들에게서 받은 편지, 성탄카드와 연하장들, 학보를 보내며 주소가 적힌 종이 안쪽에 쓰인 편지 글들 ... 그 사이에서 아빠의 편지를 찾았다. 아빠가 보낸 편지는 단 한 통이 아니었다.
대학시절 전화도 없이 서울에서 작은언니랑 자취하던 때, 아빠는 종종 서울 자취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고향 집을 떠나 서울 유학중인 딸들이 전화 한 통, 편지 한 장 없이 감감무소식이라 안부가 궁금했던 아빠는 잘 알아보지 못하겠는 글씨와 문체로 편지를 썼다. 편지 마지막에는 늘 답장을 기다리는 아빠의 마음을 담아서. 그때 나는 아빠의 편지에 답장을 보냈을까. 기억이 흐릿하다. 답장을 했는지, 답장 없이 달랑 편지 받았다는 전화 한 통으로 때우고 말았는지, 내 기억 상자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아빠는 모든 게 불안만 하는구나. 너희들은 공부하러 간 학생이 부모에게 1년 내내 편지 한 장 던져주지 아니하고 이게 어디 될뻔한 짓인가. "
"아버지와 어머니는 60 평생을 지나게 되어 일하기도 틀리고 돈 벌기도 틀리고 하여 자식들이나 바라볼 따름이다. 그러니 여하건 공부도 공부거니와 조심조심 몸조심 몸 건강히 생을 보내거라."
아빠의 편지에서 딸들을 걱정 염려하는 아빠의 마음을 읽는다. 아빠는 데모하는 대학생들 소식을 TV 뉴스에서 보면서 서울서 지내는 딸들에게 무슨 일이나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편지를 썼지만, 당시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답장도 잊고 지냈을 것이다. 아빠의 편지를 다시 읽으며 하염없이 부끄럽고 죄송하다. 후회의 눈물이 편지를 적신다. 이것이 마지막 편지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 다음 해 겨울, 첫 눈 내리던 날에 아빠는 홀연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떠났다.
'이미 지나간 영상을 불러내서 상상력의 입김을 불어넣고 남의 관심까지 끌고 싶은 기억에의 애착이야말로 글쓰기의 원동력'이라는 박완서의 말을 생각한다. 나는 과거에서 어떤 기억을 떠올려 상상력의 입김을 불어넣을 것인가. 기억에의 애착을 가지고 아빠와의 추억을 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