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류지남 선생님을 그리며
선생님께.
마지막 가시는 길 인사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가신 길 그 길가에 눈꽃송이들이 하늘을 뒤덮고, 저는 그저 멍하니 넋을 놓은 채 창밖만 바라보았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 삶이 허망하고 하늘이 원망스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께 따지고 싶었습니다. 왜 그렇게 일찍 데려가시느냐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울고불고 떼를 써서라도 조금만이라도 더 이 땅에 머무르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싶었습니다.
그곳은 어떠신가요? 평안하신가요?
선생님의 막걸리 같은 걸쭉한 목소리와 어떤 것이든 다 받아 안아 녹여낼 것 같은 풋풋한 웃음이 그립습니다.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저에게 선생님은 영원한 인생 멘토였습니다. 2012년 연구소에서 선생님을 뵙고 나서, 1년 만에 연구소를 떠나고 그 후로는 아무 인연이 없는 그저 그런 나를 예전과 다름없이 알뜰살뜰 대해주시던 선생님의 따뜻한 친절을 잊을 수 없습니다.
생전에 다하지 못한 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여름에서 2013년 여름까지 연구소에서 보낸 1년의 시간, 제게는 아픔과 상처의 기억들이 많습니다. 연구소에서의 상처들은 마치 버리지 못한 채 고이 접어 옷장 속에 묻어둔 낡은 옷가지 같습니다. 이제 그 옷가지들을 정리하려 합니다. 고인을 떠나보낸 후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듯이 연구소에서의 흔적들을 정리합니다. 많은 사진과 동영상 자료들, 주고받은 메일 속에 남아있는 것들을 다시 읽어보다 선생님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교사 연수를 준비하면서 선생님과 메일을 주고받고, 그것을 핑계로 선생님 근무하시던 학교 근처까지 찾아가 낮술을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했던, 그때부터였습니다. 공적인 업무상의 대화는 짧게 끝났고, 이후의 사적인 고민 상담이 길게 이어졌었죠. 미주알고주알 사람들 뒷담도 많이 했고, 연구소에 대한 실망과 회의감을 실컷 털어놓고, 집 떠나 한옥 목수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 이야기며 제 딸 리나와 안나, 시댁과 친정 상황이며 저의 가정사에 얽힌 사연들까지. 그 많은 이야기들을 다 들어주시고 어깨 한번 톡톡 쳐주시며 말없이 도닥여주시던 선생님의 손길과 그윽한 눈빛이 생각납니다. 연구소에서 유일한 내 편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선생님과 깊은 인연의 시작이었죠.
연구소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아이들 학교 때문에 먼 곳으로 이사하지 못하고 연구소 근처에 집을 얻어 지내면서도 연구소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연구소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나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초라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연민이나 동정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이었겠죠. 그렇다고 잘 지내는 척 가식을 떨고 싶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선생님에게만은 있는 그대로 초라함이 드러나도 괜찮았습니다. 선생님은 초라함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윽한 눈길로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분이셨으니까요. 어느 해 가을, 우연히 동네 마트에서 부딪쳤을 때 선생님은 저를 반기시며 악수를 하시고는 곧장 차 트렁크로 가셔서 시집 한 권을 꺼내셨지요. 정성스레 첫 장에 저자 사인을 하시던 모습이 한 장의 사진처럼 남아있습니다. 15년 만에 출간한 두 번째 시집 <밥꽃>을 건네주시던 그 손길은 참 따뜻했습니다.
작은딸 안나의 고등학교 진로상담을 하면서 학교 독서실로 찾아갔던 마지막 만남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시집 <마실 가는 길>을 건네주실 때 제가 그랬었죠. "저도 시를 배워보려고요." 삶의 희로애락을 압축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시라고 하셨지요. 저도 시를 쓰고 싶습니다. 선생님처럼요. 시간 여유가 생기면 아이들처럼 저도 선생님께 시를 배우러 가겠다고, 다시 찾아뵙겠다고 그리 다짐하고 고대했건만.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이야......
"세상에 쓸모가 있는 것들은 어디론가 살짝 구부러져 있다"라고 하셨지요. "누군가를 사랑하다는 것도 실은 누군가를 향해 나를 하염없이 구부리는 일일 것이다"라고. 선생님의 시 <구부러진다는 것>을 좋아합니다.
구부린다는 건 굴복하는 게 아니다
뭔가를 품는 것이다 숟가락의 구부러진 힘이
사람의 목숨을 품는다 뻣뻣한 젓가락으로 뭘 품으려면
대신 구부러진 손가락이 있어야 한다 - 류지남의 <마실 가는 길> p.14
연구소에서 지낸 날들은 뻣뻣한 젓가락으로 뭘 품으려다 자꾸만 흘리고 놓치고 떨어뜨리고 실수가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얼마 전 지나던 길에 연구소에 들러보니 코로나로 문을 닫았고 제가 살던 사택 작은 집에는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능소화만 피어 있더군요. 연구소에서의 1년은 어린아이 첫 젓가락질 배우듯 그런 시간이었네요, 제게는. 굽이굽이 돌고 돌아 뒤엉켜 있으면서도 그 자리에 남아 꽃 한 송이 피워낸 능소화를 보다가 "아하!" 깨닫습니다. 구부린다는 것이 굴복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염없이 구부리는 일이라는 것을. 사람은 가고 빈 집을 지키는 것은 잡초 덩굴들 뿐이건만, "뿌리가 흙을 품고 나아가는 동안" 꽃을 피우고 품 안에 열매를 기르고, 그 안에 슬쩍 거미가 집을 짓고 곤충들도 깃들어 살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 버린 걸까요?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장에는 잡초만이 무성한 소리로 눈에 보이지 않는 축구공을 굴리는 듯합니다. 축구공을 차며 뛰놀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어느덧 어른으로 자라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오롯이 잘 살아내고 있겠지요.
리나와 안나 소식 전합니다. 선생님의 지지와 응원으로 리나는 대학 입학하고 당당하게 독립하여 멋진 청춘을 살아가고 있고요, 안나는 무용을 열심히 잘하고 있습니다. "그것(무용)도 참 쉽지 않은 길인데..." 하시면서도 그 자리에서 곧바로 학교 무용교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무용을 하려는 학생의 고교 진학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상의해봐 주시고,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마치 당신 자식처럼 내 아이들도 함께 걱정해주고 쉽지 않은 길을 가려는 아이에게 지지와 격려의 마음을 보태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로 안나는 쉽지 않은 길, 무용가의 삶을 꿈꾸며 한걸음 한걸음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안나가 그러더라고요. "무용이 내게로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무용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라고요.
선생님은 아직 연구소에서 만난 어린 꼬마 리나와 안나 모습을 기억하시겠죠. 늦은 밤, 산골학교의 까만 어둠 속을 손전등 불빛 밝히고 총총걸음으로 연구소 사무실로 들어오던 초등 2학년 안나, 산골 동네 아이들과 마을 곳곳을 싸돌아다니고 운동장에서 자전거 타고 놀던 초등 5학년 리나, 아이들은 이제 엄마보다 더 키 큰 사람으로 자라 자신의 삶을 설계하며 푸르른 청춘의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등 - 시인 류 지남
아무리 애를 써 봐도
혼자서는
끝내 닿을 수 없는 곳
슬픔은 쉬이 깃들지만
마주대면
아랫목처럼 따뜻해지는 곳
다가올 땐 잘 모르다가도
멀어질 땐
파도처럼 들썩이는 곳
늘 어둑어둑해지기 쉬워서
오 촉 등 하나쯤
걸어두어야 할
내 몸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 - 류지남의 <밥 꽃> p.12
선생님의 시집을 다시 읽으며 옛 기억을 떠올립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깊고 어두운 곳에 숨겨진 기억의 창고에 오 촉 등 하나 걸어두고 기억해야 할 것, 남겨야 할 것들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아픈 기억만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아름다운 추억도 많네요. 연구소에서의 1년은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였습니다. 슬픔이 깃들어 있던 기억 안에 따뜻한 친절로 다정한 가르침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상에서 선생님이 베푸신 그 크신 사랑 잊지 않고 나누겠습니다.
천상에서도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하늘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2021년 6월 21일 새벽에.
류 지 남: 학생들과 같이 시를 쓰던 시인, 국어 교사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나왔다. 공주 신풍 갓골이라는 시골 고향집에서 소를 키우는 형과 한집에서 어우렁더우렁 살며 가끔씩 소똥을 치우기도 하다가, 35년간 중고등학교에서 푸르른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며 삶을 위한 글쓰기를 하다가, <내 몸의 봄(2001)> <밥꽃(2016)> <마실 가는 길(2019)> 세 권의 시집을 남기고 2021년 1월 17일 일요일 오후 심장마비로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시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야기라 말하겠습니다. 누구든 삶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는데 그 가운데 비교적 절실했던 이야기를 압축적인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뉴스 앤 북의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