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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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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라라 Mar 21. 2022

아무것, 아무것도 아닌 것 5.

제5화 행복한 사람도 우울할 때 있다.

아무것, 아무것도 아닌 것(something&nothingness)

제5화. 행복한 사람도 우울할 때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다. 별거 아닌, 사소해 보이는 것조차도 그럴 만한 이유와 까닭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 충격적이고 깜짝 놀랄 만한 일들도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듯이 그저 그럴 수 있어진다. 지난 2주간 보미의 자가격리로 불안한 동거를 하면서 미숙은 아무것,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묵묵히 견뎌냈다. 온갖 감정의 쓰나미들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가고, 그 자리에는 다시 우울 손님이 찾아왔다.   


"나랑 정말 똑같아요. 하나도 다르지 않고 어쩜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소름 돋아요. 너무 힘들어요. 해도 해도 끝이 없어요. 그냥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어요.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나. 나는 정말 받아주려 노력하고 애쓰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내 맘 몰라줘서 속상하다고 눈물을 쏟을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만큼 미안하다 하고 네 맘 몰라줘서 미안했다. 위로가 필요했는데, 위로 먼저, 공감 먼저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엄마가 나무라는 듯한 말을 내뱉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또 그 얘기를 하니까 정말 무너지는 거 같더라고요."

이혼하고서도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이 있는 남편의 집을 드나들며 아이들을 돌봐주는 한 엄마의 하소연이다. 엄마는 나름 할 만큼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집을 나간 그동안에 아이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느낌으로 외로움에 시달리다가 소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모든 것이 엄마 잘못인 양 엄마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혼으로 인한 상처는 아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혼 후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엄마의 일상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느낌을 잊지 못하고, 자기 맘 몰라준다고 눈물을 흘리고, 엄마는 수없이 아이에게 미안하다 사과하지만 한번 상처 입은 마음은 쉬이 달래지지 않는다.

이혼 후 신경증적인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며 상담에 온 내담자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미숙의 허무한 가슴에는 구멍이 뻥 뚫린 것 같다. '내가 상담자가 맞나? 나는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하였나? 나는 그 자리에 어떤 사람으로 앉아 있었던 거지?' 두 시간 동안 기력을 다해서 내담자의 호소를 듣고 공감하려 하였지만 빈껍데기로 앉아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녀는 자기실현의 욕구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남들은 취미로만 하라고, 애들 다 키우고 나서 그때 하면 되지 않느냐고, 자기 계발의 욕구를 양보하도록 충고하는데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단호한 결단으로 이혼까지 감행하였으나 이혼 후에도 아이들 족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괴로운 현실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었다. 엄마가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 암담하다. 우울한 현실, 당신만이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당신 탓이 아니라고, 사회가 그렇고, 세상이 그렇고, 사회적 인식이 그렇고,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 그렇다고, 그녀의 마음을 공감하고 수용하면서 위로하고 지지하고자 하는 말이 텅 빈 공간에 소리 없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상담자로서 여성의 자기실현 욕구를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했지만 미숙은 이게 공감이 맞나, 이게 위로가 될까, 의심하고 반문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허탈 웃음을 짓는다. 자기 계발은 정당하고 건강한 것이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어쩔수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고,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다고, 말 하고 싶은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담에서 돌아오는 길 미숙은 우울하다. 뻥 뚫린 구멍을 솜뭉치를 뭉쳐 꽉 막아놓은 듯이 가슴이 답답하다. 상담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녀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이게 무슨 상담이야? 진정 그녀를 위로하고 싶은데, 그녀는 위로받았을까. 감정을 충분히 토로하고 나서 답답한 마음은 좀 풀렸을까, 넋두리 한풀이로 마음이 정화될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이 좀 나아졌다고   한들 현실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넋두리 하소연을 한들, 상담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허무한 생각들이 가슴에서 튀어나와 하늘로 치솟는다.

그녀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미숙이 제안한 것들은 어쩜 지금 현실에의 순응, 적절한 타협안으로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에 만족하도록 한 것뿐이지 않은가. 보미가 무용을 하고 싶은 것은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공을 하고 싶은 거라고 외쳤을 때처럼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은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가 되고 싶은 것인데, 지금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으니 당분간은 취미로만이라도 만족하라는 말로 들리지는 않았을까? 미숙은 온갖 생각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음을 보고있다. '현실적인 게 뭐지? 현실에 따르는 것이 현실적인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수용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현실적인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비현실적인 소망을 꿈꾸지 못하는 것이 우울이지 않을까?'

소아 우울을 겪고 있는 아이의 엄마는 더 큰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우울증 내담자와 접촉한 상담자 미숙도 그 우울을 고스란히 건네받았다. 미숙은 자신에게 전이된 우울이 그녀에게서 온 것인지, 자신의 우울을 그녀에게 투사한 것인지를 생각하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의 먼저냐, 논쟁이 떠올라 생각을 멈춘다.


늦은 밤, 보미를 픽업하고 돌아오는 길. 보미는 휴, 한숨을 내쉰다.

"왜 무슨 일 있니?"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도 힘들 텐데, 데리러 와 줘서 고마워. 그래도 난 무용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야."

"나도 행복한 사람이지만, 행복한 사람도 우울할 때 있어. 엄마는 오늘이 그렇네."

"엄마도 행복한 사람이야?"

"그럼, 보미가 같이 있으니 (나도) 행복한 사람이지. 그런데 행복하다고 늘 행복하기만 한 게 아니잖아. 가끔 슬프고 속상하고 우울할 때도 있지. 행복한 사람도 우울할 때 있다. 오늘이 그런 듯하네."

"어, 오늘 나도 그런데."

"내가 상담자 맞나? 상담을 잘하고 있나? 이게 무슨 상담이야? 오늘은 그런 회의와 의문이 들더라. 오늘 상담하고 나서 우울하고 힘들었거든."

"어, 오늘 나도 그런데. 내가 무용을 한다고 하는 사람이, 무용을 전공하겠다면서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무용으로 대학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내가 재능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내가 한다고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잘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히히히 오늘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우울했거든."

"오늘은 우리 둘 다 우울 손님이 찾아왔나 보다. 그럼, 행복한 사람도 우울할 때 있지."

"그래, 어떻게 행복하기만 하겠어. 그래도 난 행복한 사람이야. 엄마랑 이런 얘기 할 수 있으니까."

"그래, 엄마도 행복한 사람이네. 딸이랑 이런 얘기도 할 수 있어서."

"엄마, 우리 주말에 놀러 갈까? 가을 여행 어때?"

우울을 호소하는 엄마에게 보미는 생글생글 웃으며 어린아이 달래듯이 엄마를 도닥인다.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생글거리며 엄마를 달래고 얼르고 마치 우는 아기 달래는 엄마 같다.

"가을 여행? 네가 엄마 위로해주려고 그러는구나. 엄마가 딸인지, 딸이 엄마인지, 엄마와 딸이 뒤바뀐 것 같네. 하하하. 그래, 요즈음 왠지 내 모습이 궁색하고 초라하고 찌질 해 보이기도 하고, 우울의 늪에 빠진 듯 일상도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었는데.  이 가을이 쓸쓸하고 외로웠나보다. 가을여행, 좋다. 이 쓸쓸함 이제 그만 떠나보내야겠다. 언제까지 우울의 코트를 입고 있을 것이냐. 이제 외투를 바꿔야겠다. 쓸쓸한 가을을 보내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털외투를 입고서 기쁨과 따뜻함을 선사해야지."


미숙은 보미와 함께하는 가을 여행이 설레인다. 인근 도시에서 하는 뮤지컬 공연을 예매했다. 자가용으로 1시간 거리이니 운전하기에도 부담이 없고, 보미와는 처음이니 가을 나들이 드라이브 코스로 나쁘지 않다. 출발은 순조로웠으나 시내에 들어가서 소극장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낯선 골목길을 돌아 나와 유턴하니 구도심 뒷골목에 김장배추김치들이 널려 있다. 쓰러져가는 판잣집들, 허름한 대문과 대문 앞 골목길 평상에 절임 배추를 내놓아 물기를 빼고 있는 정경이 눈에 들어온다. 흑백사진처럼 펼쳐진 풍경들은 마치 30년 전 미숙이 처음 상경하였을 때 판자촌 골목길에서 마주한 그 장면들처럼 몇 장의 흑백사진이 펼쳐진다. 골목이 마당이 되고, 좁은 골목길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아슬아슬 좁은 사이 길을 겨우 빠져나오며 미숙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좁은 길, 운전이 서툰 미숙은 온몸이 긴장하여 뻣뻣하게 굳어있다. 빠져나오기는 했으나, 좁은 골목길 어디에다 주차를 해야 할지 다시 막막하다. 영업하지 않는 미용실 가게 앞에 잠시 차를 세워놓고, 여기에 주차를 해도 괜찮을지 망설이다가 공연 중에 괜히 차 빼 달라 하면 난처하겠지, 00 병원 공영주차장이 있다고 했으니 공영주차장에 주차하는 게 낫겠다, 생각을 바꿔 차를 움직인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가 공영주차장인지, 입구를 찾지 못해 또 헤맨다. 낯선 곳에 가면 운전이 서툴고 온 몸이 얼어붙어 어리바리 해지는 미숙은 운전이 힘들 때마다 베스트 드라이버인 그가 그립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무얼 하고 있을까.



다행히 공연 시간에는 늦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서인지 공연장은 고요하고 한적하다. 띄엄띄엄 거리두기를 하고 앉아 있는 객석의 관객들은 배우와 스텝진들 수보다 적을 듯하다. 한가로이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배우들에게는 아쉬움이 클 것 같다. 작품 제목은 빌의 구두방. 수제화를 만드는 구두가게의 빌은 임대료를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서 마지막 남은 가죽으로 정성스레 구두 한 켤레를 만든다. 그 구두가 빌에게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는 이야기로 절름발이 여인 길버타와 빌의 아내 안네의 사연이 드러나면서 상호 연대와 공감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공연이 끝나면서 다시 부르는 노래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에서 미숙은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시울이 뜨겁다.


보미와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 보미는 해피앤딩으로 끝나서 기분이 좋다 했다.

"아무리 연극이어도 암울한 현실이 나오면 무섭잖아. 나도 그렇게 될 거 같아서. 나의 미래도 저렇겠지 생각하면 무섭거든. 어쩜, 극 속의 현실이 나의 현실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나는 그래. 엄마, 나는 열일곱 해밖에 살아보지 않아서 희망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듯해. 그래서 희망을 보면 기분이 좋은 것 같아."

"희망? 어떤 희망?"

"갑자기 찾아온 뜻밖의 행운. 예를 들면, 빌이 그 도시의 구두장인으로 추천된다는 것, 그런 건 희망이지 않아? 그런 희망이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보미의 말을 들으며 미숙은 생각한다. '나는 희망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무엇이 희망인가. 어떤 희망이 있지? 나에게는 어떤 희망이 있었지? 어떤 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했는데, 나에게는 보미가 희망일까. 누군가는 자식에게 희망을 지 말라고 했는데. 자식은 부모에게 받을 권한만 있으며 부모는 자식에게 줄 의무밖에 없다고. 자녀를 자원으로 떠올리지 말라 했지. 그렇다면 아이들이 아닌 무엇이 나에게 희망이 되어줄까.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희망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무엇이 되고 싶다. 글쓰기가 나에게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맛있는 저녁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낯선 곳에 오니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다시 길을 헤맨다. 보미가 데이터를 달라고 아빠에게 전화를 하는데, 아빠가 전화를 안 받는단다. 데이터가 다 되어서 맛집 검색을 하지 못하겠다고 투덜거린다. 여기까지 왔으니 무언가 근사한 저녁을 먹고 싶은데. 근처 음식점들도 보이지 않고, 시장 골목길, 구도심 상가들이 허름하고 낡아 보이고 구도심 분위기가 낯설다. 마땅한 음식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다시 신도심으로 돌아왔다. 파스타와 샐러드로 저녁을 먹다가 갑작스레 보미가 엄마에게 하는 말.

"엄마는 따뜻해, 배려심이 있는 사람이야, 책임감이 있어, 끝까지 해낼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나에게 그랬어. 적어도 나에게는 그래. 엄마는 그런 사람이야."   

"엄마가 너에게 그런 사람이어서 참 다행이다. 엄마를 그런 사람으로 받아들여주니 고맙네."

"아, 맞다. 오늘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잖아. 이제 22주년인가? 우리 축하 파티하자."

"결혼을 졸업하고서도 결혼기념일이 의미가 있는 걸까?"

"이 날이 있었기에 내가 존재하는 거니까, 나에게는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날이지. 축하해야 할."

보미와 단 둘이서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며 미숙은 마음속으로 읊조려 본다.  

'그는 곁에 없지만, 사랑마저 떠난 것은 아닙니다.

사랑했으므로 그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억 속에 유일한 사랑으로 남아 있습니다.'   


보미와 미숙의 불안한 동거는 계속될 것이다. 행복한 사람도 우울할 때 있다. 우울한 사람도 행복할 때가 있겠지. 행복과 불행, 우울과 불안, 이 모든 것들도 그때 그 순간 지나가는 한 부분일 뿐, 전체는 아니다. 저 먼바다에서 밀려왔다가 다시 사라지는 파도 물결처럼 파도는 사라지고 바다만이 남는다. 기억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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