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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라라 May 04. 2022

글라라, 엄마 되다

2001년 3월 3일, 리나가 태어난 날. 봄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던 토요일. 그와 나는 외출 준비를 했다. 남포동에서 H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H는 1990년대 20대 청춘의 끝자락을 함께 어울려 지냈던 대학 동기이다. 결혼 전,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사법고시 준비를 하던 H가 고시에 합격하고 부산 사법연수원으로 내려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내가 임신 중이라는 말을 듣고 H는 한껏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서로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궁금함을 못참고 출산 전에 만나자고 급하게 약속을 잡았다.


아침에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가 무언가 물컹하는 것이 쏟아져 나오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소변을 다 보고 나서도 줄줄 물이 흘러내렸다. 어어 이상하다, 이게 뭐지? 덜컥 겁이 났다. 어떻게 해야 하지?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순간 불안이 엄습해왔다. 그는 급히 나를 태우고 병원으로 갔다. 어제 산부인과 진료를 갔을 때 의사는 출산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아기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1주일 지켜보고 계속 태아가 내려오지 않으면 유도분만을 해야 할 수도 있겠다고 하면서.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간호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기가 엄마 배 속에 있는 게 좋은가보다." 그리고는 내 배를 바라보며 "아가야, 이제 나와야지. 거기가 그렇게 좋아? (웃음) 세상에 나와도 좋은 게 많아." 나도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맞아, 세상에 나와도 좋은 게 많아. 리나야, 이제 나와 봐. 엄마 아빠가 널 기다리고 있어."  


3월 1일 삼일절 아침에 그와 나는 여행을 떠났다. 그와 나는 여행을 좋아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당분간 여행을 갈 수 없겠지, 이번 휴일이 둘만의 마지막 휴가가 되겠지, 생각하며 맘껏 즐기자고 했다. 불안 초조한 마음을 느끼지 않으려고 한 것도 있으리라.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내가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을지를 눈치 챈 그가 일부러 나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려 한 것이리라. 딸기농장에 가보기로 했다. 나는 딸기를 엄청 좋아했다. 서울에서는 겨울에 딸기를 먹는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딸기가 흔치도 않은 데다 설사 있다 하더라고 가격이 비싸서 먹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을 하면서 그를 따라 따뜻한 남쪽 부산으로 내려오니, 주변에 하우스 딸기재배농장들이 있고, 교외로 드라이브를 갈 때면 도로변에서 딸기를 파는 트럭들을 종종 보곤 했다. 그는 나를 태우고 부산 시내를 벗어나 삼랑진으로 달렸다. 딸기 농장에 입장비만을 내고 들어가면 직접 딸기를 따서 그 자리에서 맘껏 먹을 수 있었다. 그는 광주리 가득 딸기를 따서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농장 아주머니는 배불뚝이 나를 보고는 예쁜 것을 먹어야 예쁜 아기를 낳는다며 먹음직스럽고 알이 굵은 것들을 골라 주었다. 정말 실컷 딸기를 먹었다. 내 생애 가장 많은 딸기를 먹었을 것이다. 그것도 탐스럽고 예쁜 것을 골라서 맘껏. 하고 싶은 것을, 제한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해본 경험이었다.


아기가 나오기를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면서 또 한편으론 좀 더 있다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살다 보면 한 마음일 때보다 두 마음이 오락가락할 때가 많다. 양가감정. 출산에 대한 기대와 설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불안과 두려움도 있었다. 1주일 후에도 밑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유도분만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사 말이 신경이 쓰였다. 삼 년 전 작은 언니가 조카 출산할 때가 떠올라서, 덜컥 겁이 났다. 언니는 결코 수술만은 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유도분만을 여러 번 시도했다. 오랜 시간의 산통을 버티고 견뎌 36시간 만에 조카를 낳았다. 유도분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1주일만 기다려보자는 의사의 말에 나는 아기에게 애원하듯이 말했다. 왼손으로 아랫배를 받치고 오른손으로 위아래 쓸어내리며 "제발, 이제 그만 나와. 엄마 아빠가 널 기다리고 있어. 이제 밖으로 나올 시간이야.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와도 괜찮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 과연 어떨지 모든 것은 두렵고 불안했다. 내가 엄마인데, 아기에게 내가 엄마인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엄마를 해낼 수 있을까. 잘 못하면 어쩌지. 내가 잘 못해서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은 괜찮지 않았다. 아기도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 불안하고 무섭겠지. 그래서 배 안에서 안전하게 좀 더 있고 싶은 걸까. 태아가 엄마의 양수 안에 있을 때에 가장 안전감을 느낀다는 말을 들었다. 아기가 자궁 밖으로 나올 때 자궁 밖 세상 모든 것이 아기에게는 공포의 대상일 거라고 했다. 아기를 낳는 엄마도 불안하고 두렵지만, 그보다 훨씬 더 아기는 공포를 느낄지도 모른다. 아기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안전한 엄마 배 속에만 있고 싶은 유혹이 있을 수도 있겠다. 따뜻하고 안락하게 자궁 안 양수 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기에게는 가장 편안한 것일지도. 그래서 안 내려오는 걸까.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밖으로 나가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알 수 없으니 불안 공포 두려움에 지금 이대로 엄마 배속에 편안히 그대로 있고 싶은 마음일까. 엄마인 나처럼, 아기도 두 마음이지 않을까.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것은 무섭고 겁난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이 마치 정글 속 나뭇가지 사이에서 뱀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듯이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뱀은 조용히 지나갈 뿐 공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뱀이 징그럽고 무섭다. 나에게 달려들어 나를 물어뜯고 온몸을 감싸며 조여올 것만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고 공포스럽다. 보고 싶지 않다.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 나에게 오지 마, 저리 가.'  가보지 않은 길, 알 수 없는 안갯속 미궁, 보이지 않는 불안과 두려움은 마치 스멀스멀 기어 나와 혀를 내밀어 나를 집어삼키려 하는 무서운 뱀같이 느껴졌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는 내진을 하더니 양수가 터졌다며 당장 수술을 하자고 했다. '어어, 수술이라고요? 수술을 해야 한다고요?'  기다려볼 수도 있지만, 기다리다가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지금 수술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마취과 의사 퇴근하기 전에 얼른 서두르라고 간호사를 재촉했다. 수술은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술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지? 아아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그와 나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덜컥 수술이라니. 엉겁결에 나는 그와 분리되어 혼자서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떨어지면서 불안이 더 엄습해왔다. 간호사를 따라 들어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 위에 누웠다. 천정을 보는 순간 덜컥 겁이 나서 눈을 감아버렸다. 눈으로 보면 무서움이 더 클 것 같았다. 눈을 감고 다른 생각을 하려 애썼다.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를 생각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장애가 있는 엄마가 아이를 낳고 힘겨운 역경을 딛고 홀로 아이를 키워내는 이야기였다. 지난겨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에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던. 영화 속 한 장면, 열차를 타고 딸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나며 엄마와 딸이 함께 춤추며 노래하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마취과 의사가 간호사들에게 "점심 먹고 와서 할까? 얼른 하고 가서 점심 먹을까?" 간호사들은 답이 없고, "얼른 하고 가자. 얼마 안 걸릴 텐데. 서둘러. 빨리 하고 점심 먹으러 가자." 서두르는 마취과 의사의 말이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서두르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성급하게 하다가 나에게, 아기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호탕한 목소리의 중년 남성이었던 의사는 껄껄 웃으며 "금방 끝날 거예요. 한숨 잠을 잔다고 생각하세요." 그 말도 기분 나빴다. 아기가 태어나는 이 순간에 엄마에게 한숨 잠을 자라니, 아기가 처음 세상으로 나오는 그 순간에 엄마인 나는 곯아떨어져 자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비참한 기분이었지만 그런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아른아른 잠결에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영화 속 그녀처럼 아이와 함께 들판을 춤추며 날고 있는 꿈이었다. 하늘하늘 바람에 휘날리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예쁜 여자 아이였다. 꿈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아아 딸인가 보다. 딸이 나와 함께 춤추고 있구나.'


마취에서 깨어나니 딸이라고 했다. 아직 움직일 수가 없어서 아기를 보러 내려갈 수도, 아기를 품에 안아볼 수도 없었다. 그가 비디오카메라에 담아온 아기 얼굴을 영상으로만 보았다. 감격스러웠다. 내가 엄마가 되었다. 이제 나는 엄마다. 예쁜 아가! 사랑스러운 내 아가! 그런데, 아직 품에 안아볼 수가 없다. 영상 속에 비친 그 모습을 볼 수밖에 없다니. 속상했다. 시어머니는 악 소리 한번 안해 보고 아기 낳았다고 하며 웃었다. 기다려보지 않고 그냥 수술을 해버렸다고 나무라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 내가 그런 게 아닌데, 내가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얼떨결에 의사 말에 밀려서 수술을 해버렸다.





글라라는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그때를 회고하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돌아보니 글라라는 수술하게 되었던 것이 서운했었나 보다. 온전한 나의 의지가 아니라 상황에 떠밀려 얼떨결에 어쩔 수 없이 해버린 선택. 아쉬움과 함께 의료진들에 대한 불편감이 느껴진다. 성급하게 수술하지 말고 좀 더 기다려볼걸 그랬나. 자연분만을 할 수도 있었을까. 의사 말만을 듣고 급하게 수술해 버린 성급한 결정이었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글을 쓰면서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 내가 처음으로 아기를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그 일을 겪었던 글라라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괜찮아. 아기도 산모도 건강하잖아. 잘했어. 엄마가 된 것을 축하해. 결혼하면서 그와 했던 언약, 아이는 갖지 않겠다고 했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이제 알겠니? 아이를 낳길 잘했지? 엄마 되길 잘했지? 축하해.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겠지만 기쁘고 보람 있을 거야. 진심으로 축하해. 글라라, 당신은 이제 엄마입니다. "  

그리고 나의 딸로 세상에 나와 준 리나에게 말하고 싶다.

"네가 나에게로 와서 나는 엄마가 되었단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네가 세상으로 나오던 바로 그 순간에 너를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잠들어 있어서 네가 홀로 외로웠겠구나. 제일 먼저 너를 품에 안아주고 싶었는데. 네가 태어나던 날, 너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을까. 세상 밖으로 나와 네가 처음으로 경험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너에게 세상은 어떠했을까. 엄마 배속에 있을 때만큼이나 세상 밖으로 나와서도 너에게 안락하고 편안한 품을 내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너는 나의 기쁨, 행복. 너로 인해 엄마는 많은 기쁨을 얻었단다. 이제는 내 아이라기보다는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어엿한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아가는 네 모습이 자랑스럽고 기쁘다. 너는 나의 자랑, 하느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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