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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만년필 Jan 04. 2024

蹴球(축구) (상)

축구국가대표팀감독과 대통령(상)

* 축구(蹴球) :  발로 공을 차서 상대방의 골에 공을 넣어 승부를 겨루는 구기 경기

                                  - 'Daum 한국어 사전'
축구는 A매치

나는 골수 야구(野球) 팬이다.

어릴 때부터 프로야구를 보면서 자랐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선수들의 경기를 열심히 챙겨보았다.


지금도 국가대표팀 경기는 물론이고, 한국프로야구(KBO), 메이저리그(MLB), 일본프로야구(NPB)까지, 응원하는 팀, 좋아하는 선수들을 위주로 항상 열심히 두루 챙겨본다.


반면, 프로축구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솔직히 K리그 경기는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도 우리나라사람 남녀노소 대부분이 그렇듯,

나 또한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엔 관심이 많다. 

사실 K리그의 인기가 그다지 높지가 않으니, 내 주변에도 나 같은 사람은 아주 흔하다.


축구를 국가대표팀의 것으로만 한정해도, 경기는 의외로 많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A매치 주간에, 평가전이란 이름으로 치러지는 단발성 경기부터, 아시안컵,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다양한 국제대회에, 각 대회는 예선, 본선이 있고, 게다가 연령별로 성별로 세분화된 대회들이 또 있어서, 따져볼수록 많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남자국가대표팀의 월드컵이 자리한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면서,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연속 10회(총 11회)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룬,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출전 역사는 깊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이미지 출처 : 한국일보)

대한민국은 1954년 스위스 대회를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다.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1998년 프랑스 대회까지, 4회 연속으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때 그렇게 매번 월드컵에 나갈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은, 우리나라가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또 그 당시에는, 운 좋게도, 아시아에서 우리 축구 수준은 독보적이었다.


그렇게 수차례 월드컵 본선을 참가하는 동안, 대부분 타 대륙에서 치르는 경기를 새벽잠 설쳐가며 지켜보았지만, 우리에게는 매대회 오직 (조별예선) 3경기씩만 허락되었고, 매번 일찌감치 대회 일정을 마쳤다.


그 시절의 월드컵 본선에서 우리가 치른 모든 경기는, 제국주의시대 동서양의 군사력 마냥, 격차가 너무나 현격하여, 이런 상황에 흔히 쓰는 표현처럼,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만 같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첫 경기에 가슴 설레었고, 크게 상처 입은 가슴으로 두 번째 경기를 보았으며, (남은 한 경기의 승리를 전제로 한)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세 번째 경기에 남은 모든 기대를 쏟았다.


독이 든 성배

밟히고 밟혀 희망조차 갖기 힘든 상황임에도, 애국심과 구별되지 않는 국가대표팀을 향한 우리의 애정은, 언제나 다시 기대를 품게 했다.


그런 기대는 힘이 강력했다.


그래서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은, 다른 그 어떤 종목과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관심도 사랑도 받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땐, 그 이상의 거대한 비난의 화살이 되돌아갔다.


‘독이 든 성배’와 같다 하겠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의 감독 차범근(*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그것의 절정이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은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대한민국 축구사의 가장 큰 이름, 차범근이었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도쿄대첩'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승승장구해서 국민들의 기대치는 한껏 높았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당시 네덜란드, 멕시코, 벨기에와 함께 E조에 속했던 우리나라는, 첫 경기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넣고도 1-3으로 패했고, 두 번째 경기 네덜란드전에서는 5:0으로 패했다.—‘오대영’은 별명이 되어, 한동한 차범근 감독을 따라다녔다.


그 경기 직후, 대표팀과 차범근 감독이 맞았던 포화는 상상을 초월했다.


언론은 모든 것을 문제 삼았다.

선수기용과 전략부재라는 감독의 고유영역에까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다, 그 경기 직후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바로 대회도중이던 대표팀 감독이 현지에서 바로 경질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차범근'이라는 이름으로도 버텨낼 수가 없었다.


선수로서도 지도자로서도 최정상의 성공가도만을 달려왔던 차범근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은 치욕이었을 것이다.

이후엔 대표팀 선발과정과 선수기용에 학연과 친소관계가 작용했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축구국가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이토록 지대하니, 이런 것이 우리나라의 축구와 관련된 모든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한축구협회로 하여금, 월드컵에서 오직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발돋움

98년의 큰 홍역을 치른 축구협회는, 절치부심 회심의 카드를 꺼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거둔 4강 진출이란 결과는, 그 이전에 없이 처음으로 모든 경기를 홈경기로 치른 것도 분명히 유리하게 작용을 했었겠지만, 당시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덕분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대한민국 성인 남성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으로는 두번째로 발탁된 외국인이었다—최초는 러시아 출신 아나톨리 비쇼베츠였다(1994년7월24~1995년 4월26일까지 역임)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의 감독 거스 히딩크(*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2002년 한일월드컵은, 대회성적뿐만 아니라, 월드컵에 임하는 우리 축구국대표팀 선수들의 자신감과 국가대표축구팀에 거는 국민의 기대치 등 모든 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온 변곡점이 되었다.


유능한 지도자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물론 월드컵 본선의 모든 경기는 여전히 어렵고, 매 경기가 살얼음판 같고, 극도로 치열하지만...


2002년의 4강은 우리나라 선수들의 해외진출의 교두보가 되었다. 국내선수들의 해외진출이 크게 확대되어 선수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그전에 비해 대등한 경기가 잦아졌고, 16강에 올라가는 것도, 애초부터 난공불락의 철옹성 같다는 느낌은 많이 옅어졌다.


2002년 월드컵 그 이전에는, 어쩌면 "누가 감독이 되든 그게 그거다"였지만, 이젠 아니다.


더불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에 대한 기대치 또한 많이 높아졌고, 축구를 보는 국민들의 수준도 많이 높아졌다.


우리는 거스 히딩크(Guus Hiddink)로 처음으로 시도했지만, 첫 번째 시도부터 확실한 효능감을 경험하였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그 후로도, 축구국가대표감독은 언제나 우리나라 전 국민의 뚜렷한 관심사다.


우리 일반인들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감독을 뽑는 과정은 꽤나 까다롭다.

축구대표팀의 국제경기 성적에 대한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찬사와 격려, 비난과 질타—의 수위를 감안한다면, 납득이 간다.


대한축구협회에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라는 별도의 회의체가 있고, 소속된 위원들이 대표팀 감독을 선출한다고 한다.


후보군으로 누가 거론이 되는지, 누가 더 유력한지 뉴스에 계속 나오고, 우리는 계속해서 주시를 하게 된다.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의 선수시절은 어떠했는지, 지도자로서의 경력과 성적은 어땠는지, 어떤 포메이션을 사용하는지, 어떤 스타일의 선수를 선호하는지, 전술이 어떤지, 우리나라엔 누가 더 적합한지...

갑론을박이 한동안 이어진다.


그렇게 국내외 모든 지도자를 후보군으로 하여 면밀히 검토한 후에, 2~3인으로 좁혀진 후보군을 거친 다음, 최종 1인이 발표된다.


그 과정을 모두 통과한, 독일대표팀 스트라이커 출신 '위르겐 클린스만'이 2023년 2월 27일에 부임했다.


그런 클린스만의 대표팀은 2023년 6월 20일 엘살바도르를 상대로 치른 평가전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서 4개월을 보낸 시점에서, 그때까지 치렀던 4경기에서  2무 2패를 기록하자, 언론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MBC 스포츠 뉴스’의 장면 발췌


국민들은 국가대표팀에 관심이 많고 성적에도 대단히 민감해서, 감독의 역할과 경기운영방식, 선수기용 등에 대해 각자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분석하고 감독을 곧잘 비난한다. 마치 자신이 고용주라도 된 듯...


그런데 엄밀히 말해 사실 우리는 감독 선정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다. 대의제라고 주장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 수 있겠으나, 우리는 대한축구협회장을 뽑지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의 위원을 뽑지도 않는다.


이처럼, 우리 국민들 개개인은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에 어떤 직접적 관여도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대표팀 감독을 비난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며, 비판은 언제나 신랄하다.


그리고 저 때 저 자리에 모인 기자들도, 또한 같은 생각으로, 마치 자신이 국민을 대표한 듯한 자세로,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질문을 했다.


“정확하게 추구하는 축구 색깔이 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 蹴球(축구) (하)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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