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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만년필 Nov 25. 2022

規制(규제)

안전과 생존의 울타리

* 규제(規制) : 규칙이나 법령, 관습 따위로 일정한 한도를 정하여 그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함                                  
                            - 'Daum 한국어 사전'
혁신을 하겠다는 정당

우리나라에 ‘거대 정당’이 둘 있다.

'거대 정당'이라 함은,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뜻이고, 다수의 지방의회의원 및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보유했다는 뜻이고, 전국 기초 및 광역 자치단체장 중의 대다수를 보유했다는 뜻이고, 또 대통령을 배출하여 정권을 잡을 잠재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 거대 정당이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이라는 양대 정당으로 존재한다.

* 이미지 출처 : 법률신문


성격이 크게 다른 두 정당은, 시대 상황에 따라,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은 쪽이,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집권을 한다. 집권당은 자당 지지자들이 원하는 정책, 집권을 위해 주장했던 여러 사안들을 그들의 철학—없을 수도 있다—에 담아, 통치를 통해 녹여낸다.


그 과정 안에 수동적으로 몸담은, 우리 소시민들은, 그저 어제랑 다름없는 오늘을 또 내일을 살아내지만,

주기적—유독 특정 정당이 집권을 하는 시기—으로 '규제를 푼다'는 말을 듣게 된다.

지금도 여지없이 그렇다.


현 정부는 <오징어 게임>의 배우 오영수를 내세워 '규제 혁신' 대대적으로 홍보 중이다.


규제는 죄악?

규제(規制)라는 것이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위에 기재해 둔 바와 같은데,

어떤 당은 경제 침체와 취업난의 원인이 규제 탓인 듯, 그래서 그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삶을 옥죄는 올가미 인양 규정하고, 마치 당장 죽여 없애야 할 해충인 듯, 하기도 한다.

규제를 푸는 것이 엄청난 경제효과를 가져올 것이고, 자신들의 대단한 업적이 될 것처럼 한다.


2014년 3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민관합동 규제개혁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한국경제의 위기를 언급하고 규제개혁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때 이런 말도 했다.


"청년들이 많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를 다 막고 있다는 것, 이것은 거의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규제가 어떤 일자리를 얼마나 막고 있었던 것인지, 그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있긴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 자료 속에 어떤 수치들이 있었는지까지는, 우리는 모른다.


다만 특정 정당이 집권할 때마다 국민들에게 반복적으로 각인시키고, 그에 전폭적으로 지원사격을 하는 언론에 의해,

"규제? 그거 나쁜 거잖아, 우리가 잘 사는데 방해되는 것이겠지." 정도가, 

규제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자리 잡은 인식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사실 규제라는 이름으로 제한되는 것들,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 한도에 접근할 일이 거의 없어서, '규제 철폐'라는 말에는 익숙하지만, 실질적으론 피부에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규제 탓에 나는 무엇을 못하고 있으며, 대체 규제 혁신이 무엇이란 말인가...

실감하지 못한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개혁된 규제

규제라는 것이, 저절로 생겨나서, 태초부터 이 땅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멀지 않은 과거 어느 때에, 선배들의 고민을 거쳐,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때 한없는 자유를 주는 대신, 일정 수준의 제한을 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 이유란, 대부분 시민의 안전이나 약자들의 생존권 보호가 목적이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누군가—대부분 거대 기업—의 이익이 있다.


그러니 ‘규제 철폐’가 '시민의 안전이나 생존권 희생'을 담보로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고작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기억하는 규제 철폐의 폐해 사례를 2가지만 들어보겠다.


첫 번째는, '도시형 생활주택'이다.

2009년 도입된 도시에 지을 수 있는 공동주택의 일종. 전용면적 85제곱미터 이하, 300가구 미만 공동주택이며 일반적인 주택에 비해 주택으로서 갖춰야 할 기준들이 덜 까다로운 것이 특징이다.

2009년 2월 3일에 개정된 주택법에 근거하여 5월 4일부터 시행되었다.

                                         - '나무 위키' 참조


주택으로서 기준들이 덜 까다롭다니…

언뜻 획기적이고 간편하고 좋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도시형 생활주택이 가진 모든 장점에 앞서, 화재에 대단히 취약하다는 사실은 거의 명백하다. 검색창에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라고 치면, 무수히 많은 기사들이 검색되며, 공통적으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 많은 화재사고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자신과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잃었다.


두 번째는, 여전히 가슴 아픈 '세월호'다.

2009년 대한민국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되었다.

이때 여객선 운용 시한이 진수일로부터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고,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는 운용시한 약 18년이 된 세월호(1994년 건조)를 사들여와 선령 20년의 오하마나호(1989년 건조)와 함께 운항할 수 있었다.


당시 국토해양부는 "여객선의 선령(船齡) 제한을 완화하면 기업 비용이 연간 200억 원 절감될 것"이라며 규제완화에 대하여 논평했다.


이후, 청해진해운은 2012년 10월 세월호를 담보로 산업은행에서 개보수 자금 30억 원 등 100억 원의 차입금을 받았다. 이중 상당한 돈이 세월호 증축에 사용되었고, 이후 톤수 239톤의 증가·탑승 가능 정원 116명이 늘어났다. 선박 설비 안전 검사 기관인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증축 등에 대하여 2차례에 걸쳐 문제가 없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구명정이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기울어지며 침몰한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개조·증축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다.

           - 출처 : 위키피디아


여객선 운용 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10년 늘렸다는 말은, 애초 법을 만들 때는 (심의를 거쳐) 20년으로 했었다는 말이고, 2009년에 그것을 굳이 30년으로 변경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저렇게 규제를 완화하지 않았다면, 수명을 거의 다한 (낡은) 여객선을 해외에서 국내로 들여 올리도 없었을 것이고, 그 배의 불법 개조나 증축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세월호 사고'가 아니라, 세월호라는 여객선 자체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 우리나라의 그 누구도 가슴 아픈 저 단어를 기억할 일이 없었을 것이었다는 말이 된다.


누군가는 지나친 비약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다. 해운법 개정으로 실제로 누가 이익—연간 200억씩—을 취했는지는도 모르겠다.


그러나 5년 후에 발생할, '세월호 사건'을 막기 위함임을 그때 알았다면, 2009년의 법 개정에 동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란 정도는 분명한 것 아닐까?


이런 식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규제 개혁이란 이름 아래, 무언가가 바뀐다.

주택법이 우리 사는 환경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모른 채 우리는 입주를 하고, 해운법이 바다 위의 여객선들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모른 채 배를 탄다.


주토피아(Zootopia)

2016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Zootopia)’ 속,

‘주토피아’는 모든 동물이 함께 사는 이상적인 도시의 이름이다. 육식동물, 초식동물 구분 없이 친구가 되고, 각자 자신의 재능에 따라 원하는 직업을 갖고, 어울려 산다. 이것은 육식동물들이 더 이상 육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고,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규제다.


애니메이션 속 가상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우리 실제 삶과 다르지 않다.

육식과 초식을 강자와 약자에 비유한다면, 금수저, 흙수저를 통해, 우리도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어느 정도의 강약을 타고 난다.


만약 우리의 실제 삶이 새랭게티만 같다면, 우리 중의 거의 대다수는 늘 희생당하고, 가질 수 없고, 빼앗기고, 도망만 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테지만, 그나마의 법과 규제 덕분에, 어딘가에 붙어서, 뭐라도 하면서, 밥이라도 먹고사는 것이다.


영화 '주토피아' (*이미지 출처: Wikipedia)
깨어있는 관찰자

'규제 혁신'이라는 주제가 또 고개를 든다.


규제를 '성장을 방해하는 귀찮은 장애물'로만 인식하는 것은 육식동물만의 관점이다.

그렇지만, 국민의 대다수인 선량한 시민들은 초식동물이고, 규제는 그들에게 보호막이 된다.


그러니 보호막을 낮추고, 줄이고, 없애는 것만이 항상 정답 일리 없다.

규제는 안전 운임제, 최저임금, 대형마트 강제 휴무, 편의점 간 거리, 2인 1조 근무 준수, 근로시간 단축 등...

수없이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한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고치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이 나비효과에 의해, 언제 어디서 어떤 얼굴로 우리를 다시 찾아올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금 겪는 어떤 큰 일의 원인이, 고작 그때의 그 (상대적으로) 작은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하면, 잘 믿기지 않겠지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고,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깊은 고민 없이 '규제혁신'이 무조건 만능인듯하며, 성급하게 더 많은 규제를 없앤다는 목표에만 치중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일에 미숙한 정부라 더 우려스럽다.


정말 나쁜 규제라서 폐지되어야 하는 것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저 잠시 나빠 보이는 것일 수도 있으니, 그것을 다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아주 나빠 보이는 규제라 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안전과 생존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끝까지 지켜내야 할 것이다.

실패한 역사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또 실패할 것이다.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 시민은 항상 깨어있고, 관찰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멀지 않은 미래에, 어디선가 누군가는—원인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또다시 크게 흐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 표지 이미지 출처 :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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