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선물한 인연
나는 교우관계의 면적이 그리 넓지 못한 편이다.
솔직히 말하면, 어릴 때부터 쭉 이랬다. 지나온 일평생의 그 어느 지점을 무작위로 찍더라도, 거기가 어디쯤인가에 관계없이, 친한 친구는 대략 한 손으로 꼽을 만큼만 있었던 것 같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매 학년 그때그때 친한 친구들은 항상 있었지만, 학년을 진급하거나, 다음 학교로 진학을 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몇몇 알게 되면, 이전의 친구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거의 연락을 하지 않게 되고, 자연스레 잊히고는 했다. 대체로는 그때그때 내가 속한 집단의 친구들과만 관계가 유지된 셈이다. 그래서 가끔 '아~ 그때 ***이랑 친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렇게 연락이 닿지 않고 멀어진 친구들이 제법 많다.
이런 연유로 하여, 학창 시절 친구는, 내 학업의 종착역이 된 대학교 때의 친구들이, 대체로 내가 능동적으로 계속 연락을 하며 지내는 친구로 남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들과도 대체로는 그렇다. 굳이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아주 가끔씩 연락하고 또 그보다는 약간 더 뜸하게 만나는 친한 친구’ 정도.
이런 패턴에 대해 '그냥 늘 현재에 조금 더 충실했다.'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가족 & 친구
어쩌면 이것이 내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엄밀하게 말하면, 시대에 따라 친구도, 어쩌면 가족도 우리 각자에게는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있을 수 있다. 오래 전과 비교한다면 확실히 더 그럴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의 우리 역사가 이젠 제법 깊다. 안타깝게도 그 시간의 길이만큼 양극화가 깊어져서, 세상은 그만큼 각박해져 있다. 누구든 자기 존재의 근본은 가족이고, 그래서 가족만큼 소중한 것은 없을 터인데... 언젠가부터 ‘가족이란 것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사람들마다 너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자본주의 그늘 아래의 우리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동시에 여러 빛깔의 수저를 논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도 되었고, 이것은 나뿐 아니라, 내가 속한 가족이라는 집단 전체에, 등급과 계급을 부여한 것 같아서 심히 매우 매우 불쾌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현실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친구도 약간은 그런 면이 있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이나 [토지]에서 보이는 친구란, 태어난 마을에서 같이 자라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대체로 남의 땅을 빌려서) 평생 농사짓고 사는 것이 친구다. 이제 그런 친구는 없다.
대부분의 진학과 취업은 거주지 이전을 동반하며, 이런 것은 교우관계를 이어가는데 지속적으로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필연적으로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것이다. 많은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지만, 바늘구멍 같은 취업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전국 단위로 구직활동을 해야 하고, 결국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들이 성인이 되고 취업을 한 뒤에도 한동네에 같이 사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요즘엔 사는 곳, 출신 지역, 부모의 직업 등에 따른 수저의 색깔이 교우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서글픈 현실이다.
인생 친구
교우관계가 그다지 넓지 못했던 내가, 운 좋게도 성인이 된 후에 많은 친구들을 만난다. 야구하러 나간 곳에서 친구들을 만난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모두 야구를 좋아한다. 뚜렷하게 같은 것을 좋아하고, 목표를 공유하는 친구가 있다는 주는 위안은 크다. 온라인에서도 이런저런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것이, 아마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우리 집만 해도 나 이외엔 아무도 야구를 보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야구에 관심이 없는 이들은 야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랜 친구도 각자 직업을 갖고, 각자의 가정을 꾸리게 되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예전처럼 자주 만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게다가 취미가 같기란 어렵고, 각자의 일상으로 바쁘다가 가끔씩 만나니, 세월이 흐를수록, 공통된 관심사 또한 희박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야구 친구들은 만나면 늘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다른 데서는 눈치 보여서 못했던 야구 이야기를 자유롭게 쏟아낸다. 지난주의 패배, 다음 주 승리를 위한 대비책, 갖고 있는 또는 사고 싶은 배트, 글러브 등의 야구장비, 각자가 응원하는 야구팀, 국가대표팀, 빅리그의 한국인 선수... 등등 이야기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야구를 같이 하는 내 친구들은 거의 매주 만난다. 가족만큼이나 가깝고, 서로에게 아주 든든한 인생의 동반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과거의 내가 야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내가 여가시간에 무엇을 하고, 체력단련이랍시고 다른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와 교류하고 있었을지를 상상하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만의 놀이를 하는 사람들. 다 같이 협동하여 함께 공격을 하고, 함께 수비를 한다. 협력을 해야만 득점할 수 있고, 실점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내가 경험해본 어떤 종목보다 팀원 사이의 결속력이 뛰어나고 또 중요하다. 선생님 투수가 던지고, 자영업 사장님이 공을 받고, 회사원도,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도 있다. 그들 모두가 함께 어울려 시간을 공유한다.
처음 만났을 당시, 10대, 20대였던 이들이, 오랜 시간 함께 하다 보니, 이제 거의 30대 40대다. 앳되고, 미혼이던 그들이, 이제 모두 가정도 아이도 생겼고, 주름도 생겼고, 많게 적게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보인다. 나는 더 달릴 수 없을 때까지 그들과 운동장에 함께 서있을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나이 들었을 먼 훗날에도 그때의 야구와 지나간 우리의 야구를 함께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그저 취미로 시작했을 뿐이지만, 그 취미가 내 인생에 가져다준 모든 선물에 감사한다.
친구들!!
이번 주말에도 만납시다. 그리고 올해는 더 잘해봅시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