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새 정당은 계속 생겨난다.

이합집산의 일상

by 따뜻한 만년필

※ 정당 : 동일한 정견을 가진 사람들이 정권을 획득하여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 ('Daum 백과사전')

정치와 정당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사람이 있다고 치자.

(정상적인 경우라면) 그것을 결심하게 만든 자신만의 큰 뜻(철학, 신념 등)이 있을 것이다 — 자신은 한없이 정의롭고 고결하고, 그러면서 누군가를 다짜고짜 부패했다거나 적폐라고 부르짖는 것 말고 — 예를 들면 ‘국민들의 더 나은 삶’, ‘양극화 해소’, ‘청년실업’, ‘저출산’, '경제성장', ‘지역 균형 발전’, ‘지역구도 타파’, ‘소수 인권’, ‘기후변화’, ‘재생에너지’ 등등 우리가 익히 들어본 좀 크고 거창한 수많은 주제들 말이다.


그것들을 실현하기 위해서 어디에서 어떻게 입문하고, 어떤 길을 거쳐나갈 것인지, 그리고 최종 목표를 머릿속에 그려볼 것이다. 대개는 당원, 누군가의 보좌관, 당직자, 기초자치의원, 광역자치의원, 비례대표를 거치고, 그러다가 어느 정도 지명도를 갖게 되면, 자치단체장, 지역구 국회의원, 또는 대통령이 최종 목표일 것이다. 정치인들에겐 그런 자신들의 꿈을 도와줄 곳, 발판이 되어줄 곳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정당을 선택하게 된다.

그때는 무엇이 중요할까?

나와 신념이 같은가?

나와 지향점이 같은가?

구성원들은 어떠한가?

여기서 나의 신념이 실현될 수 있는가?

나의 최종 목표를 실현해 줄 수 있는가

아마도 대략 이런 것들을 고려할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것을 통해 형성된 자신만의 신념과 목표로, 오랜 고민을 거쳐 선택한 정당에서, 자신과 자신이 몸담은 정당의 꿈을 실현해 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어쩌면 다소 이상적인 모습을 그린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현실세계의 정치인들이 과연 그러하던가?

내 자리가 있는가?

나를 키워주는가?

나의 야망(욕심)을 실현해 줄 수 있는가?

내 생각에 동조해 주는가?

주로 이런 문제들로 갈등하는 것처럼 보이고, 이중 어느 하나라도 수틀리면 가차없이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이들을 우리는 자주 본다. 사실, 이와 같은 상황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다 보니,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유독 심하다고 모두들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지도 모른다.

정치적 견해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당을 만든다고 한다. 정치판은 온갖 욕망의 결정체인 인간 군상들이 모여있다. 그나마 뜻이 좀 더 유사한 듯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당을 형성할 텐데, 처음에는 조금씩 다른 각자의 내밀한 욕심은 조금씩 감출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던가? 가입도 탈퇴도 꽤나 자유로운 모양이다. 원하던 무엇이 좌절되는 순간, 이당과 저당을 옮겨 다니고, 당을 쪼개기도, 합치기도 하고, 당명을 바꾸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나가서 — 혼자 나가기도 하고, 여럿이 함께 나가기도 한다 — 새로운 당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대화를 하는 일에 꽤나 익숙하다.

“저 사람 원래 저당이었어?”

“얼마 전에 새로 창당했잖아’”

“도대체 몇 번째야.”

야구와 동호회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머무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그것만이 우리가 아는 모든 세상인 시기를 지나면, 울타리를 넘기 시작하고, 어린이집, 유치원, 단계별 학교, 직장으로 이어지는 사회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그렇게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가 거치는 조직들은 우리 각자에겐 거의 강제적인 것이다. 일단 한번 몸담게 되면, 싫든 좋든 시간이 허락하는 때가 오기 전까지는,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거의 처음으로, 온전히 스스로 선택하는 — 동시에 가입과 탈퇴도 자유로운 — 조직이라 하면 대학교에서는 동아리, 사회에서는 동호회가 아닐까 싶다.


이런 조직들이 지속되기 위한 기본 전제는 개인의 기호와 선택이다. 학교나 직장이야 마음에 안 들어도 달리 방법이 없으니, 차마 어쩌지 못하고 꾸역꾸역 다니지만, 동호회란 것은 그렇지가 않다. 이렇게 가입과 탈퇴에 자유가 주어졌을 때, 나타나는 양상은 아주 복잡하고 미묘하다.

끊임없는 이합집산

야구하는 우리들의 세상도 정치권만큼이나 이합집산이 활발하다. '다 같이 좋아하는 야구하고 놀면서 복잡할 게 있냐'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도 온 갖가지 생각과 욕망이 집결된 곳이라, 내막은 그렇지가 않다.


자신이 원하는 포지션을 쟁취하지 못할 수도, 누군가에게 나의 자리를 내줘야 할 수도 있다. 원하는 타순이 안될 수도 있고, 선발 출장을 못 할 수도, 벤치에 있어야 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승리를 더 갈구하고, 어떤 이는 다 같이 더 즐기기를 원한다.


간혹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와 오해가 겹쳐, 안타깝게 팀을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마음에 안 드는 누군가가 있거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원하는 자리를 갖지 못하거나, 자신의 입지가 약해지거나, 팀이 나아가는 방향이 자신의 것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 가차 없이 뛰쳐나간다. 다른 종목의 사정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세계는 정말로 이합집산이 심하다 — 아마 축구도 비슷할 것 같다.


단체경기이고 포지션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역할 분담이 뚜렷하고, 선발 출장, 선수 교체, 출전시간 등에 대해 개개인이 가지는 기대치와 현실에 차이가 계속 발생되기 때문에, 소소한 불만과 갈등은 끊임없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래서 단체 경기를 하는 동호회는 어떤 면에서는 정당과 정말 유사하다. 문턱을 넘나드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프로야구선수들에게 소속팀은 직장이고, 선수들은 급여를 받는 직장인과 같아서, 당연히 우리와는 다르다. 내가 처음 사회인 야구를 시작했을 때는, 우리 지역에 야구팀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제법 오랜 기간 야구를 하다 보니, 우리 팀을 거쳐간 이가 있는 팀이 제법 많다. 어떤 팀에는 여러 명이 있기도 하고, 우리 팀 출신을 주축으로 생성된 팀도 있고, 이 팀 저 팀으로 거의 10번을 넘게 옮긴 이도 있다. 각각의 탈출엔 각각의 사연이 있다. 대부분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안타까운 결과들이다. 이 같은 현상에 예외인 팀은 보지 못했다. 사라진 팀도 많다.


야구팀이든, 정당이든,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다른 어떤 집단이든, 결국엔 각자의 욕망을 가진 개개인의 집합체이다. 같은 것을 좋아해서 한 곳에 모인 사람들도 결국에는 글러브의 모양이나 색깔만큼이나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치적 견해가 같아서 모였다고 하는 이들도, 막상 경선으로 자리다툼을 시작하거나, 의견 충돌로 인한 갈등이 시작되면, 같은 당 사람들끼리도 일순간 다른 당 사람들과 별다를게 없어진다. 오히려 더 치열하게 미워하게도 되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을 우리는 또 이미 많이 목격했다.

선당후사

조직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의 욕망을 좇는 일에 집착하는 구성원이 많아지면, 조직은 그만큼 내홍을 겪게 된다. (애당초 큰 뜻 없이 오로지 자리만을 탐한 것이 아니라면) 각자가 가졌던 초심이 있을 것이다. 모두 다 함께 가졌던 신념, 같은 꿈을 꾸던 동료를 생각한다면, 무분별하게 이합집산으로 가는, 아쉬운 결정이 쉽게 나오진 않을 것이다.


'선당후사'라는 말을 좋아한다. 팀원 모두가 각자의 목표보다는 팀의 목표와 승리를 앞세워 함께 뛰는 것. 그것이 팀을 더욱 단단하게 하고, 소속감과 승률을 높일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더 많이 이기게 될 것이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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