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늦은 나이?

영화 ‘루키(The Rookie)’

by 따뜻한 만년필
나이와 금기

현재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문명국가에는 대동소이하게, 정해진 연령 이상에게만 허용이 되는 것들이 있다.

술, 담배가 대표적이고 투표, 운전도 그렇다.


그런 것을 금지당하던 어릴 때의 우리는, 그때의 그 나이 자체가 더 축복이라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금지된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경험해 보길 원하고, 빨리 나이 들기를 바라고, 몰래라도 그것들을 접해보려고 애쓴다.


중고생 시절, 부모님과 선생님의 눈을 피해 담배를 핀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호프집 한쪽 구석에 앉아 혹시라도 신분증 검사가 있을까, 가슴 졸였던 경험을 가진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물론 모두는 아니겠지만 술도, 담배도 금지된 나이에 시작한 이들이 아주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조금만 참으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20대가 될 텐데 말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이런 상황이 정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특별하게 금지하는 것은 없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 속에 자신을 가두고,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한다.


'이 나이에 이것을 시작해도 될까?'를 계속 자문하게 된다.

'이 나이에 이직이 가능할까?', '이 나이에 창업을 해도 될까?', '이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해도 될까?‘ 하는 식으로, 본인의 나이를 계속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우리나라 야구영화

오래전부터 야구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아주 많았다. 스포츠는 종류가 너무나 많지만, 야구라는 종목 자체에 극적인 요소가 많아서인지, 그것을 그대로 영화에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이 다른 종목의 그것에 비해 유독 두드러지는 것 같다. 영화든 드라마든 스포츠를 소재로 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모험이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성 관객 동원이 쉽지 않은 뚜렷한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시도 자체도 워낙 간헐적이기도 하고, 영화판을 뒤흔들만한 화재작이 거의 없는 것도 명백하다. 오히려 내가 어렸을 적에 만화가 이현세의 원작을 영화화했던 1986년작 '공포의 외인구단'은 당시에 어마어마한 화재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영화의 유명한 대사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를 가사로 한 O.S.T의 인기도 정말 대단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작 중이거나 시사회 때까지는, 우리가 사랑했던 슈퍼스타를 소재로 했다거나 출연배우의 지명도, 약간 독특한 설정 등으로 인해 기대를 좀 모으다가도 막상 개봉을 하고 나면, 영화 자체의 미흡한 완성도나 진부한 스토리로 인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그다지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2004년작 '슈퍼스타 감사용'도, 최근 2019년작 '야구 소녀'도 그랬던 것 같다. 그나마 관객 동원에 어느 정도 성공해서 100만 명 이상 관람한 영화는 우리나라 야구계의 두 전설 최동원과 선동열의 맞대결 이야기인 2011년작 '퍼펙트 게임', 강우석 감독, 정재영, 유선 주연의 2013년작 '글러브' 정도였다.


미국 야구영화

반대로, 자타공인 ‘야구의 나라’인 미국의 할리우드에서 만든 야구영화는 무수하게 많고, 아주 오래전부터 꾸준하게 신작이 나온다. 주제가 다양하고, 영화적인 완성도도 높고, 재미도 감동도 있다. 굵직한 몇 개를 꼽아보자면, 제법 오래된 영화로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1984년작 '내츄럴'이 있고, 찰리 쉰, 톰 베린저의 메이저리그 시리즈 '메이저리그[1989년작]', '메이저리그 2 [1994년작]'도 꽤 재미가 있었다. 톰 행크스, 마돈나 주연의 여자 프로야구 이야기 1992년작 '그들만의 리그', 야구영화에 유독 많이 출연한 듯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1988년작 '19번째 남자', 1989년작 '꿈의 구장', 1999년작 '사랑을 위하여'까지 모두 잔잔하고 감동적인 야구영화의 수작이라 생각한다.

영화 ‘42’


비교적 최근작으로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2011년작 '머니볼'이 있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2013년작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영화 '블랙 펜서', '어벤져스'에서 블랙 팬서 역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너무나 유명한 배우 '채드윅 보스만'이 주연을 맡았던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 이야기를 다룬 2013년작 '42'도 감동적이다. 그 외에도 할리우드 야구영화는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 가장 좋아하는 한편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루키(The Rookie) [2002년작]’를 꼽는다.


영화 루키(The Rookie)

어쩌면 이야기의 큰 줄기는 '슈퍼스타 감사용'과 약간 비슷한 것도 같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것도 같다. 다만 무대가 메이저리그이고, 도전할 때의 나이가 감사용보다 10살이 더 많다. 주인공 짐 모리스(Jim Morrris)는 유년시절에 야구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아들의 욕구를 무시하고, (물론 직업 탓이지만) 근무지를 옮겨 계속 이사를 하는 아버지로 인해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악조건을 이겨가며 야구를 이어가지만 어깨 부상이 겹치며 결국 야구를 포기하게 된다. 그리곤 가정을 이루고 평범한 두 아이의 아빠로 살아간다. 시골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면서, 시설도 실력도 형편없는 학교의 야구부 코치를 겸하며 지낸다.


그러다가 다소 많은 나이가 되었음에도 자신이 98마일(157km/h)의 강속구를 던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야구선수로 다시 도전해보길 기대하는 야구부 제자들과의 어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잊고 있었던 자신의 꿈을 위해, 다시 도전하기로 결정한다. 메이저리그 팀의 트라이아웃(선수 선발 테스트)을 통과해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하고, 마침내 (지금 최지만 선수가 속해 있는) '탬파베이 레이스(당시 팀명은 '탬파베이 데빌 레이스')'에서 1999년, 35세의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 불펜 선수로 데뷔를 한다는 이야기다. (※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은 특히,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분도 한번 보시기를 권한다.)

짐 모리스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꾸준하게 프로선수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35세까지 이어가는 선수야 많지만, 10년 넘게 다른 일을 하며 살던 사람이 프로야구선수로 데뷔를, 그것도 35세에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해낸 이의 감동적인 스토리 자체가 당시에 많은 화재가 되었던 것이고, 영화로도 제작된 것이다.


삶에서 무엇이든 가능하다

과거에는 우리 사회가 지역, 학력, 성별에서의 차별을 없애는데 치중했다면,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고령사회가 되어서인지 최근에는 나이에 의한 차별을 없애는데도 꽤나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실상이 어떤지의 여부를 떠나, 신규채용 때 하는 '블라인드 채용'으로 생년을 적지 못하게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나이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고,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패스트푸드점, 커피전문점의 아르바이트를 고령의 어르신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공익광고도 많이 접한다. 어쩌면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너무 많은 나이란 우리 모두가 가진 뿌리 깊은 편견 인지도 모를 일이다. 재작년, 내가 뛰고 있는 사회인 야구팀에 야구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로 46세 때 처음 와서, 지금도 같이 뛰고 있는 이가 있다. 그도 우리 앞에 나타나기 전 얼마나 망설이고 고민을 했을까? 그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그의 결심에, 용기에, 도전에 마음속으로 나는 항상 박수를 보낸다.


이제 더 이상 청년은 아니고, 노인이라 하기에는 아직 젊은 나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선택지를 앞에 두고 '이 나이에 이것을 시작해도 되는 것일까?'를 고민하는 일은 분명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마다 나도, 남들보다 늦은 출발을 앞둔 많은 이들도,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시작해보자.'라고 결정하는 일이 몇 번쯤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내 인생에서 뭔가를 시작하기에 가장 젊은 나이는 바로 지금이기도 하니까.


끝으로 짐 모리스가 한 말이다.

"Anything is possible in this life. I'm living proof of that"

("이 삶에서 무엇이든 가능하다. 나는 그것의 살아있는 증거다.")


* 커버 이미지 : 영화 '루키 (The Rookie)'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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