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환경의 개선 (상)

퍼펙트 게임?

by 따뜻한 만년필
퍼펙트 게임(Perfect Game)

두 개의 영어 단어로 만들어진 이 용어는 ‘완벽한 게임’이라 여겨질 만한 어떤 상황에서든 쓸 수 있겠지만, 대체로는 야구에서만, 그것도 특정 상황을 지칭하는 용어로만 사용된다.

그 상황이란, ‘투수가 단 한 번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고 상대팀의 27명의 타자(3 아웃 * 9회)만을 상대하여 그 모두를 아웃으로 처리하고 경기를 끝내는 것’을 말한다.


1867년에 시작된 미국 야구에서 지금까지 23번 있었고—미국 야구는 역사도 150년에 달하고 팀도, 경기수도 우리 프로야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많다—40년이 된 우리 프로야구에서는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퍼펙트 게임'하면 사람들은 각자의 배경지식에 따라, 동명의 웹툰(장이 작가) 또는 영화(박희곤 감독, 2011년작)를 더 많이 떠올릴 것 같다.


영화 ‘퍼펙트 게임’

선동열 vs 최동원

이 정도의 매치업을 요즘으로 치면 누구 vs 누구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 김광현 vs 류현진 정도?


영화 '퍼펙트 게임'은 실제 있었던 경기,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벌어졌던 자타공인 전설의 대투수 선동렬과 최동원의 맞대결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려 5시간, 연장 15회까지 팽팽한 접전을 벌였고, 양 팀의 선발투수가 완투로 2:2 무승부(당시에는 연장전은 최대 15회까지였다)를 기록한 이야기다. 이날 선동열은 무려 232개, 최동원은 209개의 공을 던졌다고 한다. 이 정도면 완벽(perfect)한가? 아니면, 그저 조금 놀라운가? 완벽하다면 그것은 어떤 면에서인가?


40년이 된 한국 프로야구에서 한 번도 없었던 ‘퍼펙트 게임’, 그 아쉬움을 그날 그 경기 정도면 대신할만할까?

그래서 영화는 그 경기를 굳이 '퍼펙트 게임'이라 이름 붙인 것일까?

영화 '퍼펙트 게임' 속 양동근(선동열 역)과 조승우(최동원 역) (이미지 출처 : 스포츠경향)

이 이야기 속의 상황은 지금의 우리에겐 너무나 낯설다. 두 투수의 투지와 체력은 분명히 대단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이고,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무턱대고 미화하고 포장하고 박수칠일만은 아닌 것 같다. 프로 선수들도 결국 급여를 받는 근로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혹사였고, 실상 최악의 노동환경이었다. 한 사람이 5시간을 던지다니, 선발투수가 15이닝을 던지다니, 한 경기에서 200개가 넘는 공을 던지다니, 이것은 현대 야구에서는 절대로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계의 일이 아닌듯한 이들의 전쟁을 보고 감탄만 하고 지나쳐버린다면, 그것은 마치 노동자들이 하나둘 쓰러져가는 택배업계에서 — 산더미 같은 박스더미 속에서 배달일에 분류업무까지 더해 — 일주일에 7~80시간 작업하는 택배노동자들이 대단하다며 감탄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지금도 가끔씩 언론을 통해 특정 노동현장의 실태가 알려질 때 경악할 정도로 열악한 경우가 많은데, 옛날엔 얼마나 심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한 달 월급은 1천5백 원이었다. 하루에 하숙비가 1백20원인데 일당 50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다니기로 결심을 하고, 모자라는 돈은 아침 일찍 여관에서 손님들의 구두를 닦고 밤에는 껌과 휴지를 팔아서 보충해야 했다. 뼈가 휘는 고된 나날이었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희망과 서울의 지붕 아래서 이 불효자식의 고집 때문에 고생하실 어머니 생각과 배가 고파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막냇동생을 생각할 땐 나의 피곤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것은 전태일이 처음 시다 생활을 시작할 때의 기록이다. 14시간 노동에 커피 한 잔 값밖에 안 되는 50원, 기막힌 저임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 조영래 ‘전태일 평전’ 최신 개정판 p.104에서 -


“정말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괴로움의 연속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다리미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 - 1967년 3월 17일 일기에서
- 조영래 ‘전태일 평전’ 최신 개정판 p.138에서 -


전태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눈에 비친 여공들이 자신보다 더 힘들게 지낸다 여겼고, 여공들의 아픔에 더 아파했다.


“1개월에 첫 주일과 셋째 주일, 2일은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는 아무리 강철 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1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1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들로서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해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1969년 11월 경에 전태일이 작성한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에게 보내려던 탄원서의 일부)
- 조영래 ‘전태일 평전’ 최신 개정판 p.241에서 -


이것이 그가 했던 노동운동의 이유이고 원동력이었다. 그는 외쳤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이미지 :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84년 한국시리즈

선수의 혹사에 대해 말하자면, 1984년의 한국시리즈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이 또 등장한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롯데 자이언츠는 지금까지 딱 두 번 우승을 했다. 84년과 92년, 그중 첫 번째인 84년은 오직 최동원의 시리즈였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위해 필요한 것은 4승인데, 84년 시리즈에서 우승한 롯데의 4승에 승리투수가 모두 최동원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면 분명 "와~~ 한 선수가 4번이나 던졌단 말인가?" 하며 아주 놀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최동원에겐 1패(5차전)가 또 있다. 심지어 완투패였다.


84년 한국시리즈 최동원의 등판 기록이다.

1차전 완봉승 9이닝 무실점 138구 (4:0 승)

3차전 완투승 9이닝 2 실점 149구 (3:2 승)

5차전 완투패 8이닝 2 실점 125구 (2:3 패)

6차전 구원승 5이닝 무실점 72구 (1:6 승)

7차전 완투승 9이닝 4 실점 126구 (6:4 승)

84년 롯데 자이언츠 우승 확정 때의 최동원(이미지 출처 : 나무 위키)

롯데가 우승을 위해 7경기를 치르는 동안 최동원은 하루 또는 이틀 걸러 5경기에 등판했다. 리그 최강이던 삼성의 타격에 맞서, 팀이 막아내야 했던 63이닝 중 40이닝을 혼자서 막아냈고, 610구를 던졌다. 이 또한 현대 야구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최동원에게는 무쇠팔, 철완이란 별명이 있었다. 남들보다 좀 더 강했다 하더라도 정말로 팔이 무쇠인 사람은 없다.


선수 보호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이라 해도, 또 아무리 우승이 간절했다고 하더라도, 상태팀은 소속팀 선수에게 저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감독의 제안을 받은, 결국 최동원 자신의 선택이었겠지만,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을 리는 없다. 그리고 이런 혹사를 당한 선수에게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최동원은 또 다른 선택으로 스스로 그것을 더욱 재촉한다.



* 표지 이미지 : 영화 ‘퍼펙트 게임’ 포스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