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픽 시험을 준비하다 보면,
어렸을 적 기억을 묻는 질문이 자주 나온다.
오픽 시험에서 '사전에 미리 외운 준비된 답변 (스크립트)'은 최대의 빌런으로 통하고,
이는 최악의 점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질문이 나올 때마다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답변을 생각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오픽 질문들 중에서는
'무조건' 과거 경험을 묻는 질문이 있는데,
어렸을 때 누군가를 방문했던 경험,
어렸을 때 산이나 바다에 갔던 기억,
어렸을 때 휴일에 대한 기억,
어렸을 때 보았던 책, 영화... 등등
무궁무진한 과거 경험에 대한 질문을 듣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첫 번째 기억을 영어로 설명해야 한다.
이렇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경험에 대해서 대답을 하다 보니,
다양한 어린 시절 경험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한 사람이 보였다.
아빠.
아빠는 도대체 나한테 어떤 아빠였던 것일까.
어렸을 때 친척집에 방문할 때도 데려다준 것은 항상 아빠였고,
등산에 대한 기억도 아빠와 함께한 한라산 등반,
바닷가에 놀러 가서 아빠와 함께 성게랑 전복을 잡았던 기억,
크리스마스 때 아빠가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주었던 기억.
의도치 않게,
오픽은 유년 시절 내가 가진 소중한 경험들은 전부 아빠와 함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특히, 아빠는 바다를 정말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바다로 휴가를 자주 갔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가족은 모두 수영과 잠수를 곧잘 했는데,
깨끗한 동해 바다에서 잠수를 해서
바닷속에 있는 성게와 게 같은 것을 잡고 놀곤 했다.
한 번은 바다에 끌고 나간 작은 고무보트에
손수 잡은 성게와 게를 담았는데,
성게의 뾰족한 가시에 찔려
결국 고무보트에 빵꾸!가 났다.
그날 저녁, 우리가 잡은 성게를 까서
코딱지만 한 성게알을 사이좋게 나눠먹고,
직접 잡은 게를 넣은 해물 라면을 끓여 먹으며
빵꾸가 난 고무보트에 대해 이야기하며
온 가족이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
이 모든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영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최고 등급은 따놓은 당상일 텐데...
아무튼,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나에게 나의 아빠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난 아마 오픽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참 동안 생각하다
떠오르는 것이 없어 포기하게 되지 않았을까.
다음 달, 아빠는 갑상선 반쪽을 떼어내는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
나의 소중한 기억들이 전부 아빠와 함께했던 기억인 것처럼,
나중에 아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누군가 가장 소중했던 경험이 무엇인지 설명하라고 물어본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딸과 함께 했던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아빠와 더 많은 시간, 행복하게 보내야지.
매일 하는 다짐, 오늘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