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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by 앤나우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처음 본 건 『아무도 모른다』였다. 영화를 보고 한참 동안 멍했다. 이전에도 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예를 들어 조로도프스키의 「산타상그레 : 성스러운 피」,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 토브 후퍼의 「바디 백」 같은 영화는 파격적인 동시에 재밌었다! ) 신선한 소재와 음울한 분위기에서 풍겨오는 충격과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어마어마한 감독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지막 배우 이름에 You가 떴는데(*엄마역을 맡은 배우 이름이 바로 '유'였다) 이 아이들을 방치하고 내버려 뒀던 사람들, 무심했던 이웃들, 본 척 만 척 지나친 사람이 바로 너는 아니냐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끼고 아껴 두었다 한 편씩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하나씩 꺼내봤다. 영화의 전개가 느리고, 친근한 배경 속에 깨지면 부서질 것 같은, 그럼에도 단단한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평범한, 있을법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발견하는 놀랍도록 세밀한 시선이 신경 쓰이고 내 마음을 움직였다. 작년에 본 영화 중 가장 감상문을 쓰고 싶었던 두 작품이 있는데 한편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바로 이 영화였다. 당장이라도 쏟아지는 감정을, 화가 나고 울컥하면서도 이상한 이 감정을 와르르 쏟아내고 싶다가도 멈칫하게 만드는 건 내가 본 게 느끼는 게 무슨 감정인지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도 잘 모르는 내 감정이 생경하면서도 소중하다고 느껴졌다. 급한 성격인데도 조금 더 기다리고 묵혀두고 꺼내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두 편 모두 쉬운 영화는 아니었지만 기꺼이 두 번 봐도, 세 번 봐도 좋을 만큼 몹시 좋은 작품이기도 하기에 나는 좀 더 기다리다 생각을 정리하고 감상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괴물




우리는 어떤 사람을 괴물 같다고 말할까?

비밀을 감춘 사람, 발광해서 미쳐 날뛰는 사람?

영화가 끝날 즘에야 알았다.


아, 사람은 그냥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고 '평범'에서 벗어난,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괴물로 치부해버리기도 하는구나. 순진해 보이고 순수한 아이들조차도.

이 영화에선 이렇게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몰카야, 몰카 하면서 수없이 요리를 뭉개고 괴롭히고 낄낄거리고 놀리고 아무렇지 않아 하는 초등학생 양아치(하;;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양아치가 딱 어울리는 아이들)들이 등장하는데, 얼마나 현실적으로 표현했냐면 한 대씩 꼴밤 좀 쥐어박아주고 싶었다. 괴물 같은 녀석들, 하고 나도 어느새 이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영화를 두 번째 세 번째 이어보다 보니 좀 더 흥미가 생기는 몇 개의 장면과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어서 오늘은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어쩌면 이 영화는 볼 때마다 자꾸 할 말이 생기고 글이 쓰고 싶어지는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 내용 요약과 스포일러가 포함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를 안 봤다면 보고 나서 감상을 읽으시길 추천드린다.



| 첫 번째 의문

교차되는 터널 장면에서 꽃을 든 미나토


너무 스치듯, 잠깐 나와서 몰랐지만(*이런 재 발견의 기쁨!) 어두컴컴한 터널에서 엄마 사오리를 마주친 미나토의 한 손엔 아주 잠깐이지만 꽃 한 송이가 들려있었다. 꽃을 들고 간 미나토는 요리에게 줄 꽃을 꺾거나 가져간 것 같다. 둘이 아직 서먹한 사이일 때부터 미나토는 요리에게 관심이 있었고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 괴롭힘을 당해도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아이, 아빠에게 학대당하지만 밝고 투명하고 귀여운 아이, 이런 아이를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눈에 별빛을 가득 담은 듯한 요리 모습은 영화 내내 절로 눈길이 간다. 아마도 이런 요리의 의연한 태도나 학대받은 비밀엔 입을 다물지만 (아빠를 위해서겠지) 자기의 취향, 감정에는 언제나 솔직하다. 이런 모습이 또래 아이들에겐 괴롭힘으로 이어진 걸까. 양아치(?) 무리에게 괴롭힘 당하고 넘어져도 반응이 없고 묵묵할 뿐이니까.


하지만 주변 시선과 사람들 눈치를 지나치게 인식하는 사춘기 아이 미나토는 모든 게 섬세하고 예민해 보인다. 이 꽃 저 꽃에 대해 밝고 귀엽게 이야기하는 요리에게도 무심결에 한 마디 던진다. 꽃 이름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남자애는 인기가 없다고, -이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좀 있는데, 은연중에 강요된 '남자다움' 남성성에 대해서 미나토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미나토가 왜 꽃을 쥐고 그들만의 장소에 간 걸까.


평범에서 벗어난다는 게 어떤 건지 아는 미나토는 작고 순수한 남자아이를 자꾸 관찰하게 되고 마음이 쓰이게 된다는 게 무서웠던 것 같다. 그래서 끊임없이 벗어나려 머리를 자르고 자기부정을 하고 표면상으론 그들의 장난에 동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리는 생각보다 단단하다. 자길 도와준 여자앨 놀리자고 유혹하는 나쁜 놈(이 녀석들, 보다 보면 연기가 리얼해서 화가 난다! 이 눔들!)들의 손길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나는 말할 수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 순간 미나토는 자신이 얼마나 더 싫고 미웠을까. 자기가 가장 관심 갖는 아이에게 사랑은커녕 아픔을 줬다는 죄책감 같은 감정에 쓰라린 감정이 요동치진 않았을까.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꽃과 풀이름을 다 외우고 자연 속에 아무도 모르는 비밀 장소를 발견한 '요리'에게 미나토가 이미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요리도 알고 있었다. 자기를 못 괴롭히게 하기 위해서 미나토는 오히려 요리에게 반대의 행동을 한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좋아하면 나 자신조차 이해되지 않은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이 작은 아이들은 그런 스스로의 모습이 괴물 같다고 느꼈을까. 극단적으로 엄마 차에서 내리는 아이(미나토)의 행동도 처음 등장한 엄마의 에피소드에선 이해되지 않았지만 마지막 아이들의 이야기 시점에선 끄덕끄덕, 눈물이 날 정도로 간절하고 절박했다.



| 두 번째 의문

교장 후시미 선생님


그녀는 왜 신랑 면회를 가서 종이배를 접었을까, 단순히 손이 심심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죽은 손녀가 가장 좋아했던 종이 접기일 수도 있고 어딘가로 훨훨 떠나버리고 싶은 또 다른 자기 마음을 반영할 걸 수도 있을까.


이 교장선생님


에피소드에도 포함되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인물인데 자기 자신의 비밀이 너무도 크기에 어디에도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갑갑한 방관자처럼 보인다. 그저 비밀을 간직해 주고 들어주고 후, 하고 숨을 쉬듯 내뱉듯이 악기를 연주해 주는 방법을 가르쳐 줄 뿐이다.


음악 선생 출신인 그녀는 예전에 브라스 밴드를 할 정도로 활달하고 명랑한 소녀였겠지. 쌓인 악기들 속에서 방치되고 먼지 쌓인 악기들 속에서 그녀도 그녀만의 해소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만 같았다.


사오리(미나토의 엄마)의 방문 소식에 죽은 손녀와 찍어둔 사진이 잘 보이도록 책상 위에 올려두기도 하고 마트에서 떠들며 장난치는 아이들 발을 슬쩍 걸기도 한다. 어딘가 적절하게 자기의 슬픈 상황을 이용하기도 하면서 아이들을 좋아하는 듯하면서도 벌주는 듯한 이런 모습은 뭐랄까.


*이미 영화를 재밌게 감상한 한밤중 도반들에게도 '교장 선생님'에 대해서 물어봤다.


심선생님은 한 인물에게 여러 가지 얼굴이 있는 게 당연한데 우리는 특정한 것을 그 사람에게 딱지 붙이고 다른 게 보이면 묘하게 거부감을 느끼는 게 하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혜진쌤은 나쁜 사람은 아닌데, 흐리멍덩한 인물 같기도 하다면서 소신은 없고 규칙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떠올렸다. 호리 선생님과 아이들 일에는 속 터지게 행동하면서도 자잘한 규칙에 대해선 엄수하고 융통성 없는 고지식한 부분을 말하기도 했다.



▶ 교장 : 나는 원래 음악 선생님이었어. 옛날엔 전국 대회도 출전한 브라스 밴드였지.
*미나토에게 트럼펫을 부는 방법을 설명해 준다. 공기를 밀어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입을 대고 입술에 힘을 빼라는 것도 말해주고
▶ 교장 : 그랬구나. 거짓말을 한 거구나.
▷ 미나토 : 저는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요 좋아하는 애가 있어요.
▶ 교장 : 그래?
▷ 미나토 : 남한테 말할 수 없어 거짓말하는 거예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게 들통날 테니까요.
▶ 교장 : 그렇다면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일이라면 후- 불어.(악기를 부는 법을 가르쳐준다) 후-하고, (악기를 함께 분다) 그런 생각 다 쓸데없어.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라고 부르지 않아. 쓸데없는 생각이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고 부르는 거야. (울분을 뱉듯, 가질 수 없는 행복을 원망하듯 미간에 인상을 쓰며 관악기를 분다)



늘 무표정에 무기력한 표정에, 밤마다 다리에서 죽고 싶은 표정으로 서있는 그녀에 대한 감정이 조금은 해소되는 순간이다.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 생각하기에 그래서 저런 행동을 하고 감추고 억누르고 감정을 숨겼던 거구나, 사실은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상냥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충격적인 일로 더 이상 자기는 회복될 수 없는 사람, 쓸데없는 꿈을 꾸지 않는 사람, 행복해선 안 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규정한 건 아닐까. 세 개의 큰 에피소드 중에 바로 이 의문의 '교장'선생님만이 에피소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도 흥미롭다. 모든 것을 알지만 적극적인 '방관자'가 되기로 택한다. 관객에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너라면 어떻게 할래?



| 세 번째 소리

후시미와 미나토의 관악기 합주


고래의 낮은 초음파 소리와도 같은 소리가 그 순간만큼은 교장이 따뜻한 이야기를 해준 것도 아닌데 묘한 위로가 됐다. 그들만의 주파수로 알아듣는 것처럼 두 개의 불행을 공유한 어른과 아이는 이상한 불협화음으로 연주를 이어간다. 냉정하고 차가운 말을 하는 어른이지만 후 뱉어내는 악기 하나만으로도 미나토는 웃고 있었다. 곁에 모든 걸 들어주고 있어 준 (아무것도 하진 않았지만) 어른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임금님 귀 당나귀 귀, 해소라도 된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리가 죽을뻔한, 옥상으로 무기력하게 올라갔던 호리선생님을 깨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불협화음에도, 미숙하고 어긋난 소리에서도 울림은 있었다.



| 네 번째 장면과 대사

아이들



빅 크런치가 온다.



▷ 요리 : 우린 새로 태어난 걸까?
▶ 미나토 : 그런 일은 없는 거 같아.
▷ 요리 : 없다고?
▶ 미나토 : 없어. 원래 그대로야.
▷ 요리 : 그래? 다행이네.


요리의 귀여운 ‘요깟따(다행이네)’라는 대사가 들으면 들을수록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무뚝뚝한 미나토의 '원래 그대로'라는 말이, 사실은 사랑 고백이라는 것도, 가슴이 아프면서 찡하다.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마지막 장면에 이어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소리가 들릴 때 왠지 눈물이 났다.


불을 내고 온 세상을 뒤집어엎고 태워버리고 싶은 아이들이 물을 헤치고 그지꼴로 덕지덕지 진흙에 뒹군 채 살아서 하는 첫마디가 인상적이다. 은하철도의 밤이 생각난다.


그리고 아이들은 은하철도를 지나 그들만의 숲 속을 뛴다. 즐겁게, 아이답게. 뽀송뽀송 머리도 옷도 말라있고, 깨끗해졌다. 근데 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슬프고 악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감춰야 해. 그래, 알게 모르게 착하고 평범한 어른들도 아이를 학대할 수 있다. 때로는 무심해 보이고 냉정한 어른이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게 인생인걸 어쩌냐.



모든 성장이 고통을 수반한다지만, 조금 더 적게 아프고 크게 성장하길 바라는 40대 어른이 됐지만 거짓말을 할 순 없다. 큰 성장이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감정을 감추고 그 나이와 내 상황에 맞게 행동하도록 짜이며 모두가 자란다는 걸. 하지만 때론 그렇게 마음껏 소리라도 지를 수 있는 곳이, 휴식처가 되는 사람이, 따뜻한 온기가, 그들만의 오래된 은하철도 같은 공간이 계속 빛나고 살아갈 원동력이 됐으면 좋겠다. 각각의 모든 아이들에게, 어른이 된 아이 같은 우리들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 『괴물』중에서




▶ Monster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23. 11.29 개봉 · 드라마 · 일본 · 127분

*각본가 음악을 빼놓을 수 없는 영화다.

◇ 각본 : 사카모토 유지

◆ 음악 : 류이치 사카모토

▷ 사진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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