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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복잡하지만 저마다 다른 단 하나의 스트링 아트

by 앤나우


요 며칠, 영어캠프와 도서관 특강 수업을 하면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는데 나보다 조금 더 작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선생님 놀이를 하면서 어른이 되는 기분을 미리 느꼈던 것 같다. 한 살 터울의 언니가 언제나 우리의 '선생님'역할을 해줬는데 죠리퐁 과자가 밥이고 치토스가 무말랭이 반찬이고, 자갈치는 문어반찬, 이렇게 각각 과자로 점심시간 식판을 꾸며줬다. 간단한 수학이랑 음악도 가르쳐주고 수업 중간 점심시간에는 맛있는 과자 밥과 과자 반찬을 바삭바삭 씹어먹었다.

언니의 단골 학생은 나와 보미, 같은 동네에 사는 또래 친구들 무리였다. 언니는 비록 1살 차이인데도 천사들의 합창에 나온 '히메나'선생님처럼 우리를 돌봐주고 우리랑 잘 놀아줬다. 앞에서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면 네~ 하고 아이들이 졸졸졸 따라야 하는 과정이 멋있어 보였고 그래서 나도 선생님이란 직업을 절로 동경하게 됐다. 하지만 막상 내가 선생님 역할을 하고 싶어 일일 선생님이 된 날에는 꿈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을 되자마자 내가 한 말은

"나, 이거 안 해!"였다. ㅋㅋㅋ

*변덕쟁이 같으니라고;;


정작 나는 제대로 과자 한 조각 못 먹고 전부 학생역할을 맡은 친구들이나 언니 입에 골고루 나눠줘야 했고 예쁘고 특별한 종이인형, 반짝이는 스티커는 다 양보해야만 하는 고충도 따른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입이 댓 발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이 가장 편한 거구나, 느낄 수 있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 그 뒤엔 우리 언니가 과자를 하나도 안 먹고 우리 밥그릇에 나눠주고, 뭘 가르치고 재밌게 해 줄까 고민하던 시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언제나 내 친구들이 놀러 오면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서 산처럼 높이 쌓아주고 매시간마다 달달한 간식까지 챙겨준 고마운 배려가 있었다는 것도 배우게 됐다.


선생님이 꼭 돼야지 마음먹은 건 아닌데 그냥 어쩌다 보니,라는 말로 표현하면 좀 이상할 수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고 자연스럽게 중고등학생 과외 수업도 병행하게 됐다. 학원보다 한 명씩 일대일로 소통하고 공부할 수 있는 과외가 나와 좀 더 어울리고 맞았던 것 같다. 내신과 모의고사 대비하는 것도 재밌었는데(아이들보다 몇 배로 준비하고 공부해야 했지만, 문제풀이를 하는 그 시간이 재밌었다! 희한하게도 ㅋㅋ 내 공부할 땐 그냥 심드렁하더니, 돈을 벌면서 문제집을 푸는 시간은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문제집을 몇 권씩 풀어봤는지 모르겠다. 특히 비문학 지문에 있는 다양한 이야기가 흥미롭고 상식이 쌓여가는 기분이 들어 우쭐했다. 문학은 뭐, 말할 것도 없이 반가웠다. 학창 시절, 대학생 시절보다 그 시기 EBS 문제집을 들고 다녔을 때 공부가 가장 재밌었다. 20대 후반, 너무 뒤늦은 나이의 수능 공부였다는 게 아쉽지만.)

가장 재밌는 건 독서 수업이었다. 학교마다 지정한 독서퀴즈를 풀어야 하는 수업이나 아니면 따로 독서 논술을 요청한 수업이 있었는데 그걸 준비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보고 생각해 봤던 시간이 즐거웠다. 좋았다. 내가 짠 커리큘럼으로 2시간 넘게 한 명의 학생과 수업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결혼하기 전부터도 아이들을 예뻐했는데 아이들만의 세계가 언제나 호기심 가득, 빛나는 별을 머금은 듯 총총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진즉에 눈치챘기 때문이다.


똑같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가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이유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얌전하고 조용한 스타일이라고 해도 전부 달랐다.

원하는 것도, 나아가는 방향도, 저마다의 요구를 이야기하는 방식도.

흔히 어른들은 점점 비슷한 부류로 묶여서 아~ 00 무리, 이런 사람들이 많지,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은 그렇게 단순히 묶이지 않는 저마다의 매력과 개성이 넘치는 것 같다.


미운 아이도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특징이 있다면 단점으로 보이는 특성 뒤에 또 새로운 장점, 무한한 가능성들이 보였다. 어린아이들은 생각보다 예민하고 어른의 눈빛, 목소리 하나에 섬세하게 반응하고 공감해 주고 자기 목소리를 들어주길 원했다. 그래서 뭔가 특별히 해주지 않아도 자기 차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점수를 딸 수 있었다.










영어캠프 첫째 날 만들기 시간




하트로 된 도안을 나무 판지에 놓고 각 지점에 못을 박아야 했다. 핀셋과 작은 망치, 작은 사이즈 못을 박은 뒤에 털실로 예쁘게 꾸며서 하트를 완성하는 만들기였다.

(*찾아보니 스트링 아트 미니액자 만들기라고 한다. 우리 아이들도 학교와 외부 수업에서 몇 번 해 본 적이 있는 작업이다.)


나는 초등학교 이제 1학년이 올라가는 아이들부터 3학년이 되는 유년부 아이들을 맡았는데 아직 손이 여물지 못한 아이들은 망치질부터 난관이었다. 함께 들어있는 핀셋과 미니 망치로는 도저히;;; 단단한 나무판자를 뚫을 수가 없다. 이미 못이 잘 안 박힌다는 걸 아셨는지 담당 선생님께서도 큰 망치, 리얼 망치를 몇 개 더 챙겨 오셨다.


쾅쾅, 시원하게 박혀야 기분 좋은 만들기가 될 텐데 아이들과 30분 넘게 못질 하나에 낑낑거렸다. 하다가 손을 다치는 아이도 발생하고 아이들 작업을 대신해 주다 내 손도 다치자 그때부턴 화가, ㅋㅋㅋㅋ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게 왜 안될까, 너무 어렵다, 그냥 하지 말자 하고 싶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마음의 소리를 마음껏 말할 수도 없고 그때부턴 각양각색 아이들을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쾅쾅 얇은 못이 들어가지도 않는데 끝까지 자기 힘으로 도전하는 어린이

선생님, 도와주세요, 웃으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어린이

아, 짜증 난다. 안 할래. 재미없어, 집에 갈래! 그대로 포기하고 뻗어버리는 어린이



크게 세 부류로 특징이 나눠졌다. 나는 선생님이라고 하지만 부끄럽게도 삼 번에 속하는 사람이다. 상황을 탓하고, 그냥 우리도 유치부처럼 못을 미리 다 박아주고 좀 더 쉽게 작업하게 해 주지 이게 뭐야?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불만을 토로하고 안 되는 D앞에서 선생님도 화가 난다, 왜 안될까? 괜히 만들기를 지도한 선생님에게 어려움을 슬쩍 토로하기도 했다.


*어느 아이들이 옳고 나쁘고 좋고 밉고를 말하는 글은 아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다양하게 반응이 갈리고 거기에서부터 저마다의 방식으로 헤쳐나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도움을 받지 않는 아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끝까지 완성하는 성취를 맛보는 것 같았고 생글생글, 도와주세요 하고 쉬운 부분부터 스스로 만들어가는 아이는 손도 다치지 않고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만드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리고 틈만 나면 나 갈래, 재미가 없어요, 이 아이는 물론 다른 시간에도 잘 집중하지 못했는데 사실은 살펴보니 낮잠이 필요한 아직은 7살(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였다), 몸이 좀 힘들었던 것 같다. 연습하는 시간과 발표회 중간에서도 낮잠에 들었고 결국 발표회 시간에도 컨디션 난조로 의자에서 잠들어있어야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1시간 반동안 열심히 망치를 두드렸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도와주세요!" 요구한 어린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하기 싫고 힘들어하는 D도 만드는 걸 도와주고 있으면

-이제부턴 제가 완성해 볼게요.

가져가서 어떻게 해서든 자기 색을 드러나는 작업을 완성해 갔다.


전부 자기 손으로 완성한 S도 동생이(도움을 잘 청하는 J가 자기의 여동생이다) 먼저 완성했다고 좋아하자

-넌 다 선생님들이 도와준 거잖아!

한 마디를 하긴 했으나 마지막 실 감기와 매듭짓기는 결국 내 도움을 받아야 했다.


독립심이 강하고 끝까지 끈기 있는 어린이도, 도움을 요청해서 지혜를 발휘하는 어린이도, 그냥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하는 어린이도 모두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고 완성했다. 하나하나 그 기질은 모두 개성 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특성에 맞게 조금 더 기다려주고 도와주고 다독여주는 건 어른의 몫인 것 같다. 아이들에겐 좋은 선생님이 필요하다. 기다려주고 꾸준하게 또 지켜봐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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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작업중인 아이들 / 저마다 다른 아이들의 글씨/ 선율이가 만든 스트링아트(캠프에서 만든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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