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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가야 낫는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by 앤나우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마지막 차례가 나한테 올 것 같았는데 막바지 한 바퀴 다 돌아야 결국 낫는 질병이라면 마지막엔 꼭 엄마 차례다.

나에게도 그 무시무시, 아니, 지긋지긋한 장염 바이러스가 막판에 오고야 말았다. 토하기 싫어서 어떻게라도 지나가길 꾹꾹 참았지만 그건 어리석은 내 욕심일 뿐이었다.



토할 때 거스른다는 그 느낌이 너무 찝찝하고 더럽고, 목까지 쉬고 변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내 모습이 처량한 것 같다. 맞아, 나는 겁이 좀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부딪혀서 그냥 해결하기보다는 피하고 막을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변기 앞에 잠시 몇 분이 뭐라고;; 그래도 바닥에 전부 쏟아낸 아이들과 달리 이성을 붙잡고 안방 화장실에서 계속 대기를 했다. 세숫대야를 하나 침대 옆에 둬야 하나 했지만 그냥 대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갑작스러운 결과물(?) 역시, 어차피 내 손으로 다 치워야 할 거라면 이왕이면 빠르고 깔끔한 처리가 좋으니까.



미식미식한 울렁이는 기분에 누워도 잠이 쉬 오지 않고 계속해서 가슴 한편이 너무 답답했다.

아이들이 전부 낫고 팔팔 살아나니, 이제 내 차례라니 억울한 마음도 들었고, 이런 증상이 있기도 전에는 불과 글을 완성해서 쓰면서도 행복과 감사를 어쩌고 했는데. ㅋㅋㅋ


역시 글은 글이고 닥쳐보니 바로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고 불안하고 짜증이 마구마구 솟구쳤다.

시원하게 한 차례 쏟아냈다고 생각해도 그게 끝이 아니라, 새벽 4시, 6시까지도 네다섯 번 다시 변기를 끌어안아야 했고 아..., 아이들 체력보다 내가 좀 못하나 보다. 면역도 애들과 비할 바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비교할 수도 없지, 젊은것도 아니고 어린애들의 회복력과 중년의 회복력이란 ….

나중엔 나올 게 없어서 위액까지(그렇게 총 천연 샛노란 색을 마주했을 때 심경이란! ㅜㅜ) 쏟아내고 나서야, 그제야 휴우, 깊은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억지로 뭔가 그렇게까지 터져 나오려는 걸 내 의지로 막는다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언젠가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는 토하는 듯 글이 터져 나온다고 썼는데, 토하는 듯 터져 나온다는 표현은 실로 어마무시한 거구나 느꼈다. 내 몸인데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의지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그렇다, 내가 마구 쏟아지듯 나온 나의 글이 그렇다고 토사물은 아니라고 쓴 것도 정확히 기억한다. 토사물이라면 빨리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고 그냥 물을 내리고 양치질도 하고 다시 헹궈버려야 하지만 내 글은, 몇 번을 봐도 또 읽을 수 있었기에. 두고두고 읽고, 기록하고 간직하고 싶은 글은 이런 것과 비할 순 없지!


나의 꿈과 열정, 그리고 사랑이 이렇게 나도 어쩌지 못할 만큼 내 안에서 나와줬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냥 그대로 쏟아지는 힘이 실로 너무 대단해서 그게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을 때는 너무도 갑갑하고 눈물이 맺히지만 이미 다 표출해서 쏟아내놓고 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조금은 결과에 후련할 수 있지 않을까. 아..,

나는 토하는 순간에도 글을 쓸 생각을 하다니, 뭔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내가 글쓰기를 대하는 마음을 나조차 몰랐던 마음을 조금은 깨달은 것 같아서 배시시 웃기까지 했다.

(*물론, 네 차례 넘게 구토가 이어져서 속이 좀 후련한 이후긴 했음 ㅋㅋㅋ)


아픔이 가시고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 역시, '글쓰기'였다.








아이를 네 명이나 키우는 우리 언니 생각이 났다. 혈압도 낮고 평소에도 너무 조금씩 먹고 눈이 자주 아파서 늘 두통을 달고 살았는데 그런 우리 언니가 가장 많이 챙기는 건 한국의 가장 강력하고 센 두통약이었다. 영국 약은 도무지 잘 안 들어서 한국에 올 때 마다도, 두통약을 잔뜩 사가고 우리도 몇 번 보내줬는데 이유인즉슨, 언니가 아프면 네 아이를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냥 그대로 all stop 되는 마비되는 상황으로 치닫는 게 싫다고 했다.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는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형부도 있는데, 함께 돌볼 배우자가 있지만 대부분 엄마가 맡아서 해야 하는 자질구레하지만 큰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아침부터 내내 메슥거리는 속이지만 아이들 식사를 챙길 때마다 음식 냄새조차 맡기 싫었지만 아픈 아이들에게 따로 배달시켜 줄 수도 없고 뭔가 만들어서 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강박처럼 있었다. 하면서 그럼 와, 아이들에게 뭔가라도 할 수 있어~ 행복했느냐, 아니다, 더 큰 짜증이 마구 몰려왔다. ㅠㅠ

그냥 좀 건강한 반찬가게, 국집에서 한식을 시켜줄걸 하는 생각마저, ㅎㅎㅎ 강박을 좀 덜어내고 엄마가 아프면 올 스탑되는 마비되는 상황도 좀 겪고, 아이들도 신랑도 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너털웃음이 나왔다.


무조건 다 내 손으로 한다고 그 완성된 과정과 결과물이 좋은 것도 아닌데, 이웃, 친구라도 도움을 요청하고 언제든 도와주는 이웃에게 아이들 밥 한 끼라도 부탁하고 그렇게 먹어야지, 이런 생각으로 바뀌어야 결국 엄마가 좀 쉬고 웃어야 아이들도 행복하지 않을까.


왜 나는 지금 속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서 먹지도 못하는데 이런 음식 냄새를 맡아야 하는가, 음식을 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기에. 누우려고 하면 작은 아이가 10분도 못 눕게 끊임없이 내 침대 위에서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엄마, 일어나! 잠은 밤에만 자는 거야!





눈을 억지로 열어, 눈꺼풀까지 하나하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어주는 아이를 확 밀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그냥 꽈악, 아이가 못 움직이게 안아줬다.


엄마, 좀 자자, 너무 힘들어, 선율아. 엄마도 아픈데 쉬어야 낫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탈출 게임하는 거냐고 하면서 까르르 웃고 같이 가지고 놀고 싶은 걸 안방 침대로 죄다 끌어온다.




선율아, 너는 왜 이렇게 엄마만 좋아해?
응! 엄마가 나랑 제일 잘 놀아주고 나를 젤 사랑해 주니까.




몸이 잠깐 아픈 거에도 이렇게 사람이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고 지치는데, 앞으론 나도 좀 쉬어가는 지혜를 발휘하고 내 몸을, 그리고 마음을 잘 다스리고 가꿔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래오래 아이들을 사랑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장염 걸렸을 때 꿀팁 : 무조건 안 먹는 거다.
쫄쫄 굶어야 후유증도 없고 회복도 빨리 되는데 는 아예 안 먹을 순 없으니 청포도 사탕과 자두맛 사탕을 입에 넣고 천천히 오래 녹여먹는다.
나름대로 '포도당 보충'이다. 거기에 이온음료와 미지근한, 따뜻한 물을 충분히 마시고 카페인이 들어가지 않은 차를 마시는 것도 좋다. 끌리는 음식이 있다면 생각한 양의 절반만 아주 천천히 먹어야 한다.
나는 신랑이 사다 놓은 블루베리가 너무 먹고 싶어서 한 움큼 씻어서 사탕처럼 녹여먹었더니 기분 전환도 되고 더 이상 배도 많이 아프지 않았다. 원래는 장염에 과일, 유산균, 기름진건 금물인데 신기하게도 아프면 당기는 음식이 죄다 과일뿐이다.



난 평소엔 사탕을 전혀 먹지 않는데 장염에 걸렸을 땐 청포도와 자두맛 사탕을 꼭 번갈아서 입에서 돌려가며 먹는다. 소리도 재밌고, 뭔가 엄마 손은 약속처럼 스르륵 배가 낫는 기분이 든다.


장염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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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렇게 아파서 캠프 중에 잠들었으면서도 엄마를 깨우냐! / 사탕이 더 달게 느껴진 날






#장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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