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
작년에 친정에 가서 집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놀란 점이 한 가지 있다. 엄마가 생각보다 그림을 엄청 좋아한다는 점이고 밀레, 브뤼헐 그림이 집안 곳곳에 있었다는 점이다. 밀레의 《만종》같은 작품은 워낙 유명하니까 어렸을 때부터 제목을 알았지만 피터 브뤼헐은 유명한 그림만 알았지 화가의 이름은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시기여서 더 재밌고 신기했다. (브뤼헐 작품이 두 점이나 있었다)
엄마는 원래부터 골동품을 좋아했다. 도자기, 접시나 아기자기한 장식품을 모으는데도 엄청난 취미가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없는 게 없었다. 맷돌은 물론이고 절구, 절구공이, 중세시대에 썼을법한 물레(?) 재봉틀이라고 해야 할까. 뭐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베란다 정원으로 같이 어우러져 있었다. 엄마는 거기에 아끼는 보물들을 차곡차곡 진열해 놓고 절구 안에는 작은 물고기와 부레옥잠을 키우기도 했다. 나는 엄마만의 작은 정원에서 책도 읽고 작은 물고기가 노니는 것을 보면서 심심한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거기서 심심하게 어슬렁어슬렁 거리기도 하면서.
나는 왠지 모르지만 그 공간이 좋았다.
엄마는 왜 이렇게 골동품, 아기자기한 장식품을 좋아할까. 가스레인지며 배, 식기 같은 작은 모형도 하나하나 사서 따로 장식작으로 꾸미고 영국에서도 카부츠나 체러티샵에 가서도 하루 온종일 구경해도 지치지 않으셨다. 가구도 앤틱으로만 골라서 내 신혼집 가구를 전혀 맞지도 않는 무슨 스페인 왕실 화장대 같은 걸 사주시는 바람에(물론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작은 신혼집에 화장대나 장식장들만 유독 튀었다. 둘이 살기 적합한 아담사이즈 집에 웅장한 가구들만 돋보이고 있었다. 혼수를 좀 더 모던하고 작은 사이즈로 하고 싶었던 나는 돈으로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확고했다.
나는(*라떼는) 이런 화장대도 없이
비키니 옷장 하나만 놓고 살림을 시작했어,
그래서 무조건 너 시집갈 땐 내가 가구를 채워줄 거야.
아니, 그러면 좀 더 나의 취향 고려를 ;;;
하하, 차라리 영국에서 신혼살림을 꾸리고 살아갈 언니가 살짝 부럽기까지 했다. 아마 엄마는 자신이 못 이룬 신혼방과 가구를 대신 우리 집을 꾸미면서 느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무튼, 엄마가 그림도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이번에 보니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그림을 하나하나 보면서 갑자기 어린 시절, 엄마가 제일 좋아했던 화가 르누아르가 떠올랐다.
어제, 마침 《게이트웨이 읽기》 시간에 르누아르 그림과 이야기가 잠깐 실렸다. 그의 그림은 관람객을 아름다움과 즐거움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란 글이 쓰여있었다. 행복한 일상을 그리는 화가, 누구나 보기만 해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행복'의 화가 르누아르.
뺨이 장밋빛으로 물든 통통한 소녀들과 전부 반달 모양의 눈으로 웃고 있는 화사한 표정의 사람들을 그린 르누아르, 어렸을 때 우리 집에 르누아르 그림이 참 많았지, 하고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그의 작품엔 유독 어린 소녀들과 여인들이 많았다. 따로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모델 삼아,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을 배경 삼아 그림을 그렸다.
*피아노 치는 두 소녀 | 1893년
*책 읽는 소녀 (피아노 치는 소녀들과 같은 모델인 듯하다)
*시골의 무도회 | 1883년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 책 읽는 소녀들을 보면서 엄마는 어쩌면 우리 자매를 떠올리신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붉은기가 도는 소녀들, 금발의 소녀들이 사이좋게 나오는 그의 그림들을 좋아했고 집에 걸어놓기도 했다. 자매가 한 명도 없이 줄줄이 남동생만 있었던 엄마는 우리 자매가 나중에 서로에게 이모가 될 거라며 이모가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는 이야기도 해주면서 언니와 나에게 피아노 학원도 보내주고 르누아르 풍으로 원피스도 입혀주고 파란 리본을 묶어주셨다.
좀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엄마가 원하는 르누아르 그림 속 삶이 순종적이고 여성스러운 언니에겐 어울리고 잘 맞았을지 모르지만 왈가닥에 반항 기질이 다분한 나에겐 7년 넘게 피아노를 배우는 일도, 긴 머리를 묶고 샤랄라 하는 원피스나 드레스를 입는 일이 무척이나 싫었다. 엄마는 언니와 나를 이렇게 예쁜 드레스로 꾸며주고 싶어 했는데 사진을 보면 내 입이 늘 댓 발 나와있다. 나는 멜빵바지나 반바지를 입고 싶었는데 늘 불편한 치맛자락이 신경 쓰여서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부터 말을 참 안 들었네. ㅋㅋㅋ)
언니가 영국에서 산지도 20년 가까이 되는데 엄마는 지금도 종종 영국으로 소포를 보낸다. 예전에 보낸 소포에 언니 옷이 한가득이었는데 형부가 화사하고 샤방방한 언니 원피스를 보면서
-오, 여보, 장모님이 식탁보를 아주 예쁜 걸 보내셨네~
라고 했던 일화가 있다.
세상에나!
대체 무슨 옷들을 보낸 건지 찍어달라고 했다니 전부 퍼프소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좋아할 법한 옷들이었다. 치마가 어찌나 큰지 형부가 식탁보로 오해할 만도 했다. ㅋㅋㅋ
반항적인 나에겐 자라면서도 옷을 권하지도 않지만 지금까지 언니에겐 어린 시절 그 소녀스러운 샤방샤방한 옷을 보낸다는 사실에 웃음이 빵 터졌다. 형부의 반응까지 더불어. ㅋㅋㅋㅋ 엄마, 언니 나이가, 이제는!
맞아, 르누아르 그림 속 소녀들이 이런 옷을 입었지, 소박하고 단정하고 여성스러운 옷. 미소까지 장착한 모습은 어쩌면 엄마가 그리는 행복한 여성의 삶인지도 모르겠다.
The spontaneous brushstrokes he used and the cheerful gathering he chose to depict reflect his belief that life was, or should be, a perpetual holiday.
게이트웨이에 나온 르누아르의 그림,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년]에 나온 구절을 미옥선생님께서 해석해 주시는데 이 표현이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즉흥적으로 사용한 붓놀림과 그가 묘사하기 위해 선택한 쾌활한 모임은 인생이 영원한 휴일이거나, 그래야 한다는 그의 믿음을 반영한다.
듣고 있는 복규 선생님께서도 르누아르 그림을 보면 행복해진다고, 화가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느껴진다고 하셨다. 수많은 그림 중 대단히 인상적인 그림이 아닐 수는 있어도 르누아르 그림을 보면 미소가 안 지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아, 그는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자체로도 너무 행복한 사람이었구나. 실상 그의 삶은 매일 한 끼를 먹기에도 힘들었고 가난해서 머물 곳이 없어 모네와 함께 바지유(*장 프레데릭 바지유)의 아뜰리에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했으며 한 작품을 완성할 물감을 구하지 못할까 봐 그걸 가장 걱정하기도 했다는데 그럼에도 그는 밝은 빛이 나는 공간으로 나가서 무도회 속 사람들과 책을 읽고 피아노 치는 소녀들의 모습을 그렸다. 거기에 온통 행복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오늘 그림 읽기 방에 마침 심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에 대한 영상을 보면서 한 번 더 르누아르 생각이 났다. 그의 생애와 그림을 연결해 보면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이런 그림을 그렸지, 하는 감탄이 터져 나온다. 애잔함이,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바지유의 아뜰리에 속 가만히 앉아있는 르누아르의 뒷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정작 그는 이젤 앞에서 활발히 이야기하고 그림 그리는 세 사람의 무리는 아니지만 (모네/ 마네/ 바지유 자신 :특이하게도 바지유 실제 모습만 마네가 그렸다) 바지유는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르누아르가 작업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고 계단을 올라가는 (비평가로 추정되는) 인물과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자연스럽게 공간에 녹아있는 뭔가 조심스럽고 순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보고 있는데 언제나 그가 한 발짝 물러나서 이렇게 풍경의 메인 자리가 아니라 한 발 더 떨어져서 행복한 시간을 좀 더 느긋하게 여유 있게 바라본 건 아닐까. 행복은 언제나 현실적으로 조금 더 멀리 한걸음 떨어져 있지만 붓을 잡고 있으면 이 순간이 바로 쏟아지는 햇살과 같은 행복이라고 느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 마음 자체가 너무 고귀하고 따뜻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어쩌면 엄마도 언니랑 내 머리를 묶어주고 피아노 학원에 데려가면서 우리 노래를 듣고 책 읽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이 아니라 그 자체로 행복한 시간을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프레임 밖 걸리는 자리 어딘가에 잘 안 보이는 자리에 앉아있는 르누아르 모습과 우리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 눈물이 터진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게 또 지금의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나중에 언니와 내가 저렇게 비슷한 공주풍의 옷을 입고 피아노 앞에 다정하게 앉아있는 사진을 찍어서 우리 엄마에게 선물해 줘야겠다. 나는 엄마의 인생이 르누아르가 그린 도시의 무도회 말고 시골의 무도회 속 여주인공처럼 자신만의 화사함과 행복으로 밝게 빛나길 바란다. 어떤 옷을 입어도, 무슨 부채를 들어도 그걸로 행복한 게 아니라 지금, 현재 이 시간을 즐기는 사람만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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