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두 시간이 내 얼굴로 있다면
함께 줌으로 미술사 책 읽기와 일본어 수업을 하는 선생님 중에 인경쌤이란 분이 계신다. 탐구심도 강하고 학구파에 엄청 지적이신 분인데, (지금도 미술관에서 *도슨트로 일하고 계신다.) 이분이 일상생활에서 실수한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까지 흘리며 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정신없으셔서 아들에게 차를 타라고 하고 반대편 차문을 열어주고 혼자 열심히 달리면서 뒷자리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는데
갑자기 아들에게 전화가 와서 '뭐지?'하고 보니 아드님이
-엄마, 지금 나 태우지도 않고, 혼자 왜 갑자기 쌩 가는 거야?
하는 이야기는 ㅋㅋㅋㅋ
얼굴 '붓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경쌤도 얼굴이 엄청 잘 부으시는 편이라 아침에 퉁퉁 부은 모습은 거의 사람들이 못 알아볼 정도라고, 특히 여행 가서 아침부터 만나는 분들은 하나같이 다른 사람이라고 놀랄 정도라고까지 하셨다. 그래서 부기가 빠지는 시간은 저녁 먹고 7시가 지나서 7시에서 9시 정도까지가 정말 내 얼굴로 돌아온다는 말을 꺼내셨다.
그 말에 집중하며 끄덕끄덕 격하게 공감하며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라면을 먹지도 않았는데도 이른 아침 성가대 연습을 하려고 교회에 가면 주일학교 선생님께서 언니와 나의 부은 얼굴을 보고
-어젯밤 너네 라면 먹었지?
그냥 물어본 말인데 라면 한 젓가락 흡입도 하지 않은 우리 자매는 이 사실이 너무 억울해서 길길이 날뛰었다.
언니보다 내 얼굴 부기가 좀 더 심해서, 오죽하면 나는 결혼식도 얼굴 부기 때문에 아예 오후 시간대로 바꿔버렸다. 엄마랑 언니는 뭔 결혼식을 자기 아침 얼굴 부기 때문에 애매한 네, 다섯 시로 정하냐면서 막 놀리고 웃었는데 나에겐 중요했다. 암, 이것만큼 중요한 게 없지! 어차피 화장하고 꾸미는 건 아침부터 이어지는 스케줄이라 9시부터 샾에 가서 열심히 얼굴을 수천번 두드리고 찍고 바르고 기초 과정을 좀 길게 거친 후에야, 그나마 내 얼굴 다운 얼굴에 메이크업을 입힐 수(?) 있었다.
나는 7시까지는 아닌데 확실히 해가 한풀 꺾여, 점심시간이 좀 지나고 저녁 먹기 전 네다섯 시쯤이 내 얼굴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밤에 피는 장미가 왜 밤에 피냐면, 얼굴이 아침엔 부으니까, ㅋㅋㅋ라고 말할 정도로 나도 아침만 되면 눈과 눈밑 주변으로 심하게 퉁퉁 부어서 거울을 들여다보면 내 얼굴이 아닌 것 같고 화들짝 놀랄 때가 많았다.
나는 밤에 볼 수록 더 예쁜 얼굴인데(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ㅋㅋㅋ) 이걸 증명할 방법이 밤에 거울을 보는 '나'밖에 없다는 게 억울했다. ㅋㅋㅋ
낮에 대부분 내 얼굴을 마주하고 보여줘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건 내 얼굴 아닌데라고 쓴 걸 붙이고 다닐 수도 없고.
참, 인경쌤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다. 함께 일본으로 여행 간 팀들도 그날도 역시 아침에 부은 인경쌤 얼굴을 보다 화들짝 놀라서 붓기 이야기를 하니 주변에 한 분이 진지하게 듣다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아니, 하루 중 2시간만 내 얼굴이라고 하면,
그게 진짜 얼굴로 돌아오는 시간이라면
진지하게 본인 얼굴은 24시간 중, … 음,
부어있는 상태가 「진짜 내 얼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ㅋㅋㅋㅋ 잠들기 전, 2시간 7시에서 9시까지가 부기 빠진 내 얼굴이라고 한다면 24시간 중 7시간가량은 잔다고 하면 그중 2시간 빼고는 15시간은 부은 얼굴이라는 소리다. 당연히 숫자로 보면 시간으로 보면 그게 내 얼굴인 게 맞아야 하는 상황, 웃겨서 막 웃다가, 아니지, 아니야. 이건 내 얘기기도 하잖아!
정색하고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자, 지금 거울이 없는 상태에서 「내 얼굴」을 한 번 떠올려보자, 흠이 있거나 마음에 안 든 구석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거고, 사실 나처럼 부기 빠진 가장 예쁜 최상의 상태 '가장 마음에 드는'어떤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나는 후자인 편인데 초근접으로 기미나 주름, 아침에 퉁퉁 부은 얼굴을 떠올리는 대신 붓기가 없다고 느끼는 가벼운 내 얼굴을 떠올린다. 뭐 떠올리는 건 상상이고 상상은 자유니 거기에 기미나 잡티를 굳이 구체적으로 떠올리진 않는다.
방금 거울을 보니 지금 내 얼굴이 그 상태가 맞네, 〔 부기가 빠진! 상태 〕씩 ^___^
밤 11시 반이 돼서야;;; ㅋㅋㅋㅋ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부은 채로 붓기가 많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부은 상태의 모습이 오랜 시간을 품어왔고 마주했다 하더라도 이건 분명 '내'가 아닐 거다.
왜 그런 걸까.
내가 나로 규정하고, 진짜 나라고 인정한다는 건 뭐일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나'라는 건 언제나 그 상태, 더 오랜 시간이 아니라 내가 나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가능한 거니까. 부은 나도 당연히 '나'는 맞지만 내 얼굴은 컨디션 좋은 상태의 단 몇 시간의 '나'인 게 더 기분 좋은 건 왜일까.
나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아니라 익숙하고 편안하게 날 떠올리면 자연스레 그려지는 모습이 각자가 다 다를 것이다. 그게 설령 남이 보는 것과 좀 차이가 크더라도 나만의 고유한 건 진짜 내가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
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밤에 오랫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 얼굴은 이건대, 하고 생각한 시간, 아침에도 얼굴은 부었지만 뭐로 감싸고 가리기보단 당당하게 나갔다가 화들짝 놀라며 '나인줄'못 알아봤다는 사람들도 떠올랐다.
그래, 나만 안 놀라면 돼! 내가 안 놀라고 웃을 수 있고 마음에 드는 게 진짜 내 얼굴 아닐까?
내가 떠올리는 '나'와 남들이 바라보는 '내'가 이 정도 심각한 단계를 거치진 않겠지? ㅋㅋㅋ
*못된 생각하지 말고 마음이 얼굴에 나타나기 전에 착하게 살아야;; 이상한 결론으로.
쓰기 전엔 분명 어떤 철학적인 생각이 번뜩여서 노트북을 켰는데, 결론은 여전히 산으로, 엉뚱하게, 하지만 글 쓰는 건 또 멈출 수가 없고 희한하긴 하지만 내 얼굴을 조금 오래 들여다본 그런 날이었습니다.
#얼굴부기
#너무부어서속상한아침
#나만의부기관리노하우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