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배웠으면 더 좋았을 텐데
비 오는 토요일 저녁 박물관에 갔다. 아이를 챙기느라 피곤한 몸을 좀 더 쉬고 싶기도 했지만 친정엄마가 '무조건 나가서 너 하고 싶은 걸 하나 해'라고 기분 좋게 등을 떠밀어준(?) 덕분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설 수 있었다. 새롭게 개관한 선사관을 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연천 전곡리에 있는 선사 박물관을 좋아해서 아이들과 종종 가곤 했다.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한 유적지답게 살면서 가장 많은 주먹도끼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주먹도끼 빵까지 먹을 수 있었다. '원시인 축제'도 찾아갔는데, 다양한 체험은 물론이고 외줄 타기나 판소리 같은 전통 공연도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국사, 지리, 역사, 사회탐구영역 자체를 싫어했다. 하지만 조금만 외우면 점수를 잘 받는 과목이기도 해서 점수를 올리거나 유지하는 데는 또 어렵지 않은 과목이라고 만만하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공부였으니 수업 시간은 물론, 따로 암기만 달달 하는 시간이 유익하고 재밌을 리 만무했다. 오히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함께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찾아다니면서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이렇게 배웠으면 좀 더 흥미를 가졌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에서였고
우리가 왜 국사를, 사회를, 역사를 배워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하고 시작하는 선생님이 아무도 안 계셨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공부는 시작하고 접근하는 첫 시작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땐 '진도 나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하고 나머지는 뭣이 중한데? 시대이기에 물론 선생님들을 탓하려고 꺼낸 말은 아니다. 지금 학교에서 국사나 세계사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세세하게 알 수 없지만 여전히 학교보다는 다른 체험 활동과 다양한 프로그램이 풍부하게 많아졌다는 걸 알 수 있다. 학교에서도 이렇게 다양하게 접근하고 친근하게 시작하는 역사 교육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물관이나 유적지로 나가서 수업하고 다양한 자료를 직접 그리고 이야기 나누는 살아있는 역사 수업이 사교육이 아닌 공교육으로 이루어진다면 아이들 눈이 반짝반짝, 새로운 꿈을 키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선생님들 몇몇 분의 노력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교육부에서도 많은 지원이 있어야겠지만.
이번 선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내 눈을 끈 건 한쪽에 커다랗게 꾸며진 조개 무덤이다.
선사 시대부터 삼국시대 초반까지는 바닷가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의 양이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귀한 역사적 자료가 되기도 하는 패총.
여기에는 조개뿐 아니라 먹고 남았던 짐승의 뼈다귀, 각종 다양한 생활도구, 토기나 또 죽은 이의 유골, 유물이 넘쳐난다. 신석기하면, 농경사회, 정착으로만 달달 외웠지 나는 왜 '바다'를 떠올리지 못했을까. 내가 좋아하는 '모아나'의 모투누이에는 가슴 설레하면서 우리의 조상들이 신석기 시절에도 이미 바다를 활용하고 바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건 상상조차 못 했던 것 같다. 보이는 영상 자료를 보다가 아, 이런 식으로 낚시도 하면서 바다에서 헤엄도 치고 나갈 거라는 건 왜 상상조차 한 번도 안 해봤지? 나는 '패총'에 대해서도 이토록 흥미로운 역사적 산물이 사실은 땅을 파고 얻은 쓰레기의 흔적인데 왜 몰랐던 걸까. 함께 한 달 한 번, 박물관으로 나들이하는 선생님들 덕분에 조금씩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한계, 몰라서 상상으로조차 나아갈 수 없었던 벽들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일단 나오고, 직접 봐야 세상이 열리는 것처럼!)
*남해안의 조개무지에는 고래뼈도 많이 보인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작살로 고래를 잡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는데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라니! 신기하고 그저 놀랍기만 하다.
나중에 함께 모여서 혜진쌤의 고고학 유물을 발굴하는 과정까지 직접 들으니 더 재밌었고 우리가, 내가 죽은 후에 묻혀있는 곳이 하필이면 유적 발굴 현장과 맞닿아 딱 마주치게 된다면(다섯 배 되는 지점에 있는 모든 유물과 버려진 쓰레기들을 마주하게 돼서 파본다면) 어떤 유물들을 보고 후대 사람들은 무슨 추측을 할지 상상해 보다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포켓몬 카드나 베이블레이드 팽이 같은 것을 보면서 후손들이 어떤 놀이를 했는지 과연 추측 조차 할 수 있을까.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띠부띠부씰을 모았다는 것도.
ㅎㅎㅎ
순정선생님께서 이번 전시회 구성은 '교류'를 중심으로 꾸며졌다고 했는데 그 부분도 눈 여겨볼 부분이다.
우리가 삼국, 사국일 때도, 혹은 넘어서 어떻게 주변 다른 나라들에게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기도 했는지, 아직 '동맹국'이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을 때도 우리가 나라 안의 여러 부족들과, 중국, 일본과 교류를 맺은 중심으로 한눈에 보이게 구성한 점도 좋았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만 알았지 '낙랑문화'에 대해선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생소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낙랑 문화에 대해서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낙랑 무덤에서 껴묻거리로 늘 함께 묻혔다는 화분 모양 토기와 짧은 목 항아리를 보다가 소박한 단조로움에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도 했다. 늘 일상에 함께 한 귀한 가치품이 '토기'하나여도 풍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시대였던 걸까. 오늘날 현대인은 반대로 너무 많이 가져서 뭐를 같이 가져가고 무덤까지 끌고 갈지, 그것만 고민해도 한참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여기서부터다. (여태껏 계속 떠들고 뭐래?라고 하면 원래 썰이 길었다고 치고 ㅎㅎㅎ 내가 원래 들어가는 핵심까지 말이 좀 많다)
해마다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데 이때는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서 논다. 이를 무천이라 부른다.
『삼국지』 권 30 위서 동이전 예조
옥저와 동예 하면 바로 '무천'이 떠오를 정도로 달달 외워서 '무천'이란 글자만 봐도 반가울 지경이었다. 그 외에 또 바로 떠오른 건 읍군, 삼로라고 불리는 군장이 여기를 다스렸다는 거! 삼한의 소국들도 신지, 읍차 등으로 불리는 군장들이 있었다는 거, 제사장이 '소도'에서 제천행사 주관까지 줄줄이 터져 나왔다. 이래서 암기의 힘이 무섭구나, 한편 내가 느낀 건 씁쓸함이었다. 나는 여태껏 '무천'이라고 하면 옥저와 동예의 큰 행사로만 외웠는데 삼국지 동이전 짧은 구절 하나가 실렸을 뿐인데 갑자기 많은 생각이 물밀듯 밀려오고 있었다. 머릿속으론 온갖 재밌는 상상과 함께.
10월이면 가을의 한 복판인데 그것도 선선하고 가장 날씨 좋은 날, 사람들이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까지 추면서 미리 풍성한 축제를 즐긴 건가? 10월 중순이 지나야 노랗게 익은 벼가 가을 들판에 풍성할 텐데 수확과 풍요로움을 기원하며 마음껏 즐겼다니 한편으론 부럽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사도 기원도 핑계고 사실은 하나의 큰 행사를 앞둔 단합의 장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심선생님께서 '무천'행사는 아마도 음력이었을거라고 했다. 「양력」개념이 일제 강점기 때 생긴 것이기에.
나는 추수와 수확 시기만 연결해서 생각했는데, 이 부분을 좀 더 찾아봐야겠다.
옥저와 동예에선 무천이라는 축제(행사)가 있었다 - 국사 교과서에 이렇게 짧게 실려 나온 글자일 땐 몰랐던 게 '동이전' 구절 하나에 무한한 상상이 펼쳐졌다. 술과 노래, 춤까지 어우러진 이 어마어마한 행사가 옥저와 동예에선 가장 크고 떠들썩한 축제겠구나. 역사적 기록과 증거물들이 함께 보이고 만들어진 교과서가 있었다면 나의 상상력을 마구 자극해서 더 재밌게 접근했을 텐데, 그런 아쉬움과 뒤늦게 찾아온 역사 기록과 흔적들에 자꾸만 감탄이 나왔다. 역사를 통해서도 즐겁게 상상을 이어가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다. 나는 여지껏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이기에, 년도를 외우고 그 시기 중요한 유물을 맞추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사'를 진짜 배우는 이유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느끼고 활용하고 맞닦뜨리는 감정이구나. 크든 작든간에 박물관에서 봇물처럼 터지는 상상과 질문들에 스스로도 조금 놀랍고 신기한 경험을 했다. (무지한 자의 첫 걸음일수록 원래 더 즐겁고 세상 만사가 놀라운 법이다)
부슬부슬 비가 끝까지 내리는 밤이라 마왕퇴의 전설을 읽으신 숙희 선생님께선 왠지 무덤 쪽은 보기가 무섭다고 내 옆으로 쓱 오셨다. 그 모습이 귀여우셔서 쿡쿡거리고 웃다가, '에이, 여기 있는 대부분의 유물이 전부 무덤에서 꺼내온 것 같은데요?'라고 하니 어쩐지 으스스하다고 다시 밝은 날 보겠다고 하셔서 덩달아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미 비 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늘 모여 앉는 광개토대왕릉비 옆 기다란 나무 탁자에서 옹기종기 앉아 학교 안의 넓은 공터가 사실은 공동묘지일 수밖에 없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였으니까.
*마왕퇴의 귀부인도 읽어보고 싶다. ㅎㅎ
아, 내가 누군가의 무덤을 이토록 오랫동안 들여다볼 일이 있을까. 어쩌면 나는 숙희 선생님보다 더 겁이 많은 사람인데 신기하게도 어두컴컴한 무덤 그대로를 곳곳에 꺼내놓고 전시 박물관이 무섭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들었다. 선율이가 전시실 어느 곳도 한 발을 들어가지 못했던 것도 떠올랐다. 유난히 더 어둡고 무덤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박물관이 어린 아이에겐 아직 낯설고 무서웠을 수도 있었겠구나,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 것도 모르고 엄마는 가면 보여준다고(일본 전시관) 신나서 아이 손을 잡고 막 이끌었으니.
아마 미라 전시라도 있었다면 또 생각이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죽어서도 편히 쉬질 못하고 곳곳으로 옮겨 다니고 수천수만의 사람이 매일 와서 들여다보는 미라도 참 고달프다는 동정심이 들고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무덤 자체의 재현은 나에겐 눈을 빛내며 빠져들만한 호기심 요소가 가득하다.
무덤에서도 지혜를 꺼내어 볼 수 있는 곳, 도굴꾼은 도둑놈들이지만 여기서 꺼낸 무덤은 지식을 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나를 연결해 주는 보물창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양 석암리 9호 무덤 목관 껴묻거리에는 장례에 사용하는 옥, 눈을 가리는 옥, 매미 모양 옥 귀를 막는 옥, 코는 물론 항문까지 전부 옥으로 막아버렸다고 한다. 그 모든 걸 다시 재구성한 부분이 꽤나 흥미로웠고 손에 쥐는 돼지 모양 옥까지, 덕분에 이 옥 이야기만으로도 우리나라에도 옥이 직접 발굴된다는 이야기까지 연결돼서 들을 수 있었던 하루였다. 역사 전공자 선생님들 두 분이 계시니 궁금한 것도 묻고 나누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유익하고 알찼다.
*매미, 돼지같은 동물이 우리 나라에선 친숙하면서도 이렇게 옥으로까지 온 몸을 다 막아버린게 미라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 심선생님, 혜진쌤과 혜진쌤의 어머니, 순정선생님, 효순선생님, 그리고 앤나우가 함께 했던 4월의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하루였다. 벌써부터 푸르른 5월이, 박물관을 거닐 시간이 기다려진다.
국립중앙 박물관은 토요일은 밤 9시까지 운영된다. 늦은 시간까지 좀 더 유물을 보고 마주 보고 싶다면 주말 저녁 조용한 시간에 관람도 추천드리고 싶다.
어두운 걸 무서워하는 나도 박물관 관람은 즐겁게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비 오는 초등학교 두 군데를 지나쳐오는데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비 오는 날 밤 12시, 아무도 없는 학교에선 이순신 장군 동상이 ㅋㅋㅋ
하지만 학생들이 학교에서, 바닷가 해변에서 역사적 유물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역사란 아주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짧지만,
이들이 쌓이고 쌓여 인류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입구에 아장아장 걷는 아가와 함께 박물관을 관람하러 온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바다와 물, 땅, 불까지 역사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돌아온 하루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관
#교류중심의전시
#누군가의무덤에서
#삼국지동이전
#역사란무엇인가
#역사가재밌는과목이었네
#인류의역사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