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가 겪지 않으면 모를 아픔에 대하여
일본어 수업 시간에 함께 수업을 하는 중에 외가댁이 영주인걸 아시는 분들이 이번에 일어난 '경북· 경남 산불' 이야기를 꺼내며 할머니의 안부를 물어주셨다. 할머니 댁도 근처라, 산불이 점점 커지는 중에 안동 근처까지 번졌기에 삼촌들도 한 차례씩 방문하고 전화도 자주 드렸지만 피해 지역 주변에 퍼진 연기나 불길로 인한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랑 시댁 쪽 어르신들이 거주하고 시할아버님 가족 산소가 있는 예천 지역은 상시 대피할 준비를 하고 결국 비상상태 주의보가 떴다. 예천 호명읍과 지보면 쪽에도 산불이 코앞까지 닥쳐 예천군도 더 이상 안전한 지역이 아니었기에, 어르신들은 아버님의 산소(시할아버님과 가족분들의 산소)가 탄 것도 모자라, 피난을 가야만 하는 큰 일을 겪으셨다. 주민대피 안내와 실시간 산불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이 아니더라도 이미 안동지역부터 퍼진 뿌옇고 자욱한 산불로 인한 연무들이 도로와 일대에 한가득해 보였다. 사진으로 영상으로 접해도 매캐해 보이는 유독가스에 기침이 나올 것만 같았다. 가까운 가족들이 살았고, 살고 있는 터전이라 생각하니 남일 같지 않았다. 남일 일 수 없었다. 터를 잃은 스님들의 절규와 아이들 옷가지며 비상식량, 기본적인 옷가지부터 필요하다는 마을 이장님의 절규가 남일 같지 않았다. 마음이 미어졌다.
인경선생님이 사시는 곳은 구미인데 바로 옆인데도 어떤 매캐한 연기나 기운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렇게 다리만 건너가고 넘어가면 가까운 지역인데도 실질적으로 와닿는 재난의 피해가 없으니 가슴 아픈 상황인데도 무감각하게 느껴졌다고, 사실은 이렇게 느끼는 감정이 더 무서웠다고 한다.
함께 글을 쓰는 몹*글 멤버 중에 '스타티스'님도 산불로 인해 잠을 이룰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고 한다.
성취보다 생존에 더 관련 있는 한 주였다는 표현을 쓰셨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스타티스님이 걱정되고 안부가 궁금해졌다. 거주하는 아파트 바로 옆 도로가 폐쇄되고 지역 커뮤니티에도 산불 사진이 올라오는 실시간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밤새 산불을 끄느라 애쓴 소방관분들의 불빛에 대한 이야기도 잊지 않고 전해주셨다.
우리네 일상이 가까운 곳에 맞닿아 있는 듯해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사는 듯해도, 우리의 상황은 환경 차이에 따라서 민감도나 관심이 극과 극,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매연의 매캐한 작은 기운조차 스미지 않는 곳에서는 어제와 다름없는 또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유지하고 생존이 절박한 한 곳에서는 자신의 머물렀던 곳에서 전부 버릴 각오를 하고 짐을 챙겨 떠나야 한다. 어쩌면 실시간 뉴스가 어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때론 이상하게 왜곡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우리 할머니가 근처에 사시지 않았다면, 시댁의 산소부터 큰집, 친척분들이 그곳에 터를 잡고 지내시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촉각을 곤두세우며 뉴스를 보고 안부를 묻고 했을까. 관심이 있었을까.
나 역시 큰 일을 겪은 누군가의 아픔에 무감각하게, 안쓰럽고 안타까운 시선으로만 던지고 휙, 채널을 돌려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인경선생님께서는 이처럼 우리가 느끼고 있는 『사회적 민감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점점 개인의 민감도는 섬세해지고 살펴보는 세상이 됐지만 반대로 사회적 민감성은 둔감해지는 세상이 된 건 아닐까. 세월호 아이들이 희생됐을 때 여러 시인들이 유가족들을 위해 한 명 한 명 아이들과 함께 시를 지어서 아이들을 기억해 주고 치유해 준 프로그램이 있었다. 인경선생님께선 그때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인과 함께 실제로 그 유가족들과 '생일'을 치러주고 시를 낭송하는 자리에 직접 참여해 주셨던 경험을 이야기해 주셨다.
우리가 함께 느꼈던 공포, 아픔, 그리고 연대란 건 어쩌면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데 그냥 사는 게 바쁘고 여기는 안전하니까, 그러니까 넘어가고 스쳐가고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 그런 사건 사고에 무감각한 편이었고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살고 지낸 사람을 비난하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나에게 좀 더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킬만한 계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큰 아이 선재를 뱃속에 임신 중이었고 곧 생명 탄생을 앞두고 있는 만삭의 산모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아니, 앞으로 다가올 수학여행을 기다렸을 아이들이 너무 처참히 희생됐고 학생들뿐 아니라 그날 그 배에 탔던 모든 사람들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운명이 갈려버렸다. 아주 작은 아이부터, 곧 가족과 만날 날을 기다린 사람들부터, 그냥 평범한 혹은 좀 더 특별한 수학여행을 꿈꿨을 아이들까지.
왜 그 아이들이 떠올랐냐면, 나도 그때까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고 과외로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기에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나가지도 못하고 배에 갇혀야만 했던 상황에 안타깝고 화가 날 지경이었다. 소설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에서처럼 유체이탈을 해서라도 누군가 초능력을 써서라도 그 많은 아이들, 갇혀있는 사람들, 아주 작은 아이부터 선원들까지 전부 깨끗이 구조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타인을 위해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이름만 보고 붙들어 그렇게 기도해 보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생명이 죽어간 큰 사건 뒤에 생명을 품고 있는 내 모습이 미안하고 미안했다. 마음이 답답하고 눈물이 터져 나왔던 것 같다. TV만 틀면, 라디오만 켜도 온통 세월호에 관한 뉴스뿐이었는데 구조된 소식은 하나도 없었고 팽목항에서 목놓아 우는 갑갑한 유가족들, 피죽 한 그릇도 삼킬 수 없는 부모들의 퀭하고 처참한 얼굴들, 너무 눈물이 쏟아져서 신랑은 곧 아이도 태어나는데 뉴스를 그만 보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까지 꺼낼 정도였다. TV를 치워버렸다. 무심하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내 아이도 태어나서 살아갈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갈피를 잃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고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했고 어른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아주 작고 작은, 사소하게 넘겨버린 사건들이 결국은 맞물려서 터진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재난'이란 생각에 이르자 울분이 터지기까지 했다. 관심을 갖고 기억하고 기도해 주고 그래 잊지 말자, 또 기억하자, 날마다 다짐하며 일기를 쓰기도 했다.
인경 선생님이 이야기해 준 '엄마. 나야.'란 시집을 나도 가지고 있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는데 그 어느 시 보다 내 마음을 울렸고, 또 울기만 한 건 아니고 울면서 바보같이 빙긋 웃기도 했고 세상을 안타깝게 떠났지만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는 글이 남아서 정말 고맙다고 생각했다.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 세상엔 너무 많지만 세월호는 세월을 담아, 흐르지 못하고 멈춰버린 배가 됐다. 내 기억과 마음속에서도 인양되지 못한, 가슴 아프고 묵직한, 녹슬어버릴지언정 닻이 무겁게 박혀있는 배.
유가족들, 살아서 돌아온 생존자들의 마음엔 오죽할까.
글씨를 익힌 선재가 어느 날 내가 펼쳐놓은 시집을 뒤적이다가 시 한 편을 낭송해 주기 시작했다.
우연히 내 아이의 음성으로 우연히 듣게 된 시는 더 놀라웠다. 내 아들 같은, 딸 같은 아이들이 하나하나 저마다의 이야기와 꿈을 가진 이야기들, 응원해주고 싶은데 응원해 줄 수 없어 반대로 자기를 기다릴 엄마 아빠, 가족들, 친구들을 응원해 주는 시는 가슴이 시리도록 슬펐다.
늦은 밤이나 새벽
아무런 기척도 없는데 현관 센스 등이 반짝
켜지곤 했지요?
어머니, 놀라지 마세요
제가 다니러 간 것이에요
애처롭고 간절한 응답이었어요
…
누가 묻는다면
저는 서슴없이
어머니를 가진다 말할래요
어머니가 손사래 쳐도 저는
어머니를 가질래요
어머니는 오직 하나뿐이니까요
애달픈 저의 또 다른 목숨이니까요
…
아픈 마음이 먼저
서러운 가슴이 먼저
나무에게로 가서
들판에게로 가서
또 흘러가는 구름에게로 가서
내 사랑이 어디에 있느냐고 다시 물어봅니다
이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이
그리운 것은 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노라
시집《엄마. 나야.》 중에서
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육성 생일시 모음
그리운 목소리로 아이들이 말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시인들이 받아 적다.
*이 날 우리 아이의 목소리로 우연히 낭송된 시를 들었을 때 심경을 일기에 적은 글을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작품을 검색하다가 작년에 이 시집을 발견하고 읽다가 울다가 다시 덮었다가, 결국 끝까지 읽지 못할 거 같아서 조마조마했다가 다시 펼쳐 들고 한 명 한 명 아이들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려고 했습니다.
식탁에 놓인 채로 두었더니 선재가 또박또박 한 글자씩 읽어주었습니다.
선재 목소리로 듣다가 아이 목소리로 듣는다는 사실이 왠지 미안했고 슬펐지만 이 시는 혼자 읽어선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해 줬습니다. 생일은 기쁜 날이잖아요. 나누고 축하해 주고 축복받아야 하는 날이니까 혼자만 알면 안 되겠다, 더 이상... 또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아침에 선재를 데려다주고 나서 다시 찬찬히 읽어봤습니다.
하늘도 곧 울 것만 같이 비가 내리려고 합니다. 함께 걷는 치유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생일시'지만 처음엔 환한 낮에도, 잠들기 전에도 한 글자도 읽기 힘들 만큼 마음이 아팠습니다. 눈물이 떼구룩 떨어져서 덮었다 다시 펼쳤다 손에 꽉 쥐었다를 반복했지요.
각 시가 등장하기 전에 아이 얼굴과 이름이 나오는데 잠깐 스친 그 얼굴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고 기억에 있습니다. 시인들이 가족과 친척, 친구들과 인터뷰하고 나눈 것들을 바탕으로 써서 평범하고 소소한 아이들의 일상이 보입니다.
과묵한 아이들도 시에선 전부 말이 많아졌죠, 하는데 이 대목에서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어떻게 지내니,
응 잘 있어, 이 한 마디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그 심경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이제 반대로 아이들이 손을 내밀어 우리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것 같습니다.
4월 16일
기억하고 잊지 않을게요.
선재가 크면 선율이가 자라면 아이들과도 함께 읽고 기억할게요. 코로나가 지나가면 책을 선물 한 지인들과도 함께 읽고 한 명 한 명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했지만 지금은 손잡고 걷고 있는 아이들 이야기를 할게요.
2021년 4월 16일 일기 중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사고들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오늘은 광명 지역에 신안산선 공사장 지하터널 · 도로가 붕괴됐다. 마침 출장에서 돌아온 신랑도 그 근처를 지나고 있었기에 2시간이 더 대기하고 길을 통제해서 한참을 고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한 걸 빼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살아있는 게 기적처럼 느껴지는 하루하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누가 언제 어디서 우연한 사고의 아픈 희생자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시공간이 뒤틀려서 꺾여있는 듯 출렁 땅으로 꺼져버린 그 처참한 모습들이 영화 인셉션 장면도 아닌데 영화를 보는 것처럼 멍하게, 현실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고립되고 연락두절 상태인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광명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후다닥 소식과 안부를 묻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전에 살았던 곳과 가까운 지역이기도 했고 다행히 근처에 거주한 내 친구들의 집과 거리가 있는 곳이어서 다들 괜찮다는 답을 해줬지만 심장이 쿵쾅 거렸다.
살아있는 게 기적처럼 느껴지는 요즘 같은 때에 살아있는 우리가 곳곳 도처에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들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경각심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그냥 슥 그대로 지나쳐버릴 뉴스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저마다 바쁜 세상이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 작지만 분명 힘이 되는 작은 손도 내 안 어딘가엔 꼭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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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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