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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가 나의 마이진이야!

찐찐찐 마이진 사랑

by 앤나우

긴긴 연휴, 친정엄마와 함께 외할머니가 계시는 영주에 왔다.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서 토요일에 문경'에코월드'랑 예천 '용문사'를 비롯 주변 몇 군데도 들러볼 생각이었는데 금요일 퇴근을 하시고 갑자기 김치를 담그느라 피곤해진 엄마는 아 몰라, 그냥 집에서 편히 자고 내일 아침에 출발해,라고 통보하듯 계획을 변경하셨다. 엄마는 어디로 갈 때면 그때그때 기분과 컨디션이 달라지기에 갑자기 일정 변경을 여러 번 해왔던 터라 예상을 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파워 J, 계획이 어그러지는 순간 마음이 혼란스러운(?) 신랑은 기분이 급 다운됐다. 차가 막히는 시간을 피해서 출발하고 일부러 여행 동선도 짜놓고 지난달부터 계획 해났던 일정이기에 또 하나의 '아 몰랑'으로 시작하는 엄마의 작은 횡포(?)에 나는 양쪽에서 눈치가 보였다. 누구 편을 들어줘야 할지;;; 이미 집에서 편히 잠을 자기로 마음먹은 엄마를 흔들어 깨워서 출발할 수 없는 일이기에 엄마의 의견을 따라야 하지만 이래저래 양쪽 모두 신경이 쓰였다.


다음 날 아침 출발하려고 차에 탄 엄마는 '요즘 우울하다'는 이야기로 서두를 꺼내셨다. 역시나 파워 J, 신랑은 웃으며 대꾸한다.

-장모님, 진짜 우울증 걸린 사람은 그렇게 우울하다고 입 밖에 내지도 않아요.

쓰읍, 분석하지 말고 공감을 해줘야지, 눈치를 줘도 싱글벙글, 분석가처럼 그거 우울증 아니라고 거듭 강조해서 말한다. 아니, 평소에 말도 별로 없는 사람이 장모님한테는 왜 저러나 싶다.

생각해 보니 늘 뒤에서 분주하게 음식 준비를 하고 음식냄새를 맡으면 하나도 먹고 싶지 않다는 우리 엄마 걱정을 누구보다 많이 하는 우리 신랑이었다. 장모님, 한입이라도 좀 드셔보세요. 같이 식사하시죠, 가족 중 우리 엄마를 제일 많이 챙기는 신랑이었다. 신혼 초 그때도 친정에서 밥을 먹고 핸드폰을 두고 온 신랑은 모두 다 떠나버린 식탁 위에서 음식을 극구 안 먹겠다고 하신 장모님께서 비빔밥도 드시고 빵도 냠냠 맛있게 드시는 걸 목격한다. 빵 터져버린 웃음처럼 그때 엄마의 어떤 이미지가 깨진 건지, ㅋㅋㅋ 그 뒤론 한 번도 엄마에게 더 음식을 권하지 않았다.




-그으래? 임서방, 근데 나 살이 5Kg나 빠졌잖아, 요즘 통 먹지도 못하겠고. 어디 아픈데도 없는데 이젠 뭐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고 맛있는 것도 없어. 이제 집에 있는 엄마 명품백도 나경이, 너 다 가져라ㅡ 엄마가 다 줄게.(이때 나의 귀는 잠시 쫑긋해진다)




엄마가 최근 살이 많이 빠지기도 하셨다. 안 그래도 매일 관리하신다고 날씬하신 체구이신데도(민간요법과 식이요법을 신봉하신다) 살이 더 빠져서 작아진 우리 엄마. 평소 감정 기복도 크고 짜증도 많은 편이어서 요즘 무기력, 시들시들하신 모습이 안쓰럽고 걱정되기도 한 터라 엄마에게도 뭔가 전환이 필요할 것 같았다. 어찌어찌 영주로 내려간 길은 연휴까지 맞물려서 차가 너무 막히고 휴게소마다 몰려있는 화장실 탓에 휴게소 화장실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처음이었다. 다른 휴게소들은 입구부터 꽉꽉 줄지어있는 차들 때문에 진력나서 전부 패스하고 그것도 제일 마지막 코스인 단양 휴게소에만 겨우 들릴 수 있었다. 집에서부터 친정으로, 친정에서 다시 영주 할머니 댁이 있는 서릿골까지 8시간 넘게 운전한 신랑, 신랑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엄마는 우리에겐 뭐라 말 못 하고 아이들이 차 안에서 난리치고 투닥거리자, 할머니 변덕으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셨다. 운전해서 더 힘든 건 신랑일 텐데 아이들과 엄마, 내가 더 지쳐서 차 안에서 오는 내내 좀이 쑤시고 힘들었다.



영주에 도착해서 우리 할머니가 끓여주신 할머니표 된장찌개도 먹고 꽃구경 가신 앞에서 찍은 할머니 사진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영주에서 하는 선비문화 축제에 엄마가 요즘 엄청나게 열광하는 가수 '마이진'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 댁 근처부터 크게 팜플랫이 걸려있고 시끌시끌 사람들이 가득했기에 저기 모여서, 뭐 하는 거지 하고 차 안에서 검색을 해봤다.


-엄마, 가자, 가자,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잖아?

-그래? 그럼 갈까? 애들은?

-애들은 여기 할머니댁이 여기저기 숨을 데도 많고 물건도 많아서 재밌어서 하잖아. 두고 가면 되지. 둘 다 여기에서 놀겠대. 놀라고 하고 임서방하고 엄마랑 나 셋이 가면 되지 뭐.


'선비 문화 축제'도 여기에 초대된 트로트 가수에게도 관심 없었지만 엄마가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야, 저녁을 먹자마자 출발하자고 벌써 채비를 마친 울 엄마. 바깥바람이 겨울처럼 추워서 선재 롱패딩까지 엄마에게 따습게 입으라고 하고 축제가 열리는 문정둔치 근처로 출발~!! 엄마는 중간에 또 한 번 변덕스럽게

-너네 가기 싫고 귀찮으면 그냥 가지 말까?,라고 했으나 이번엔 우리가 무조건 가자고 서둘러서 나왔다.



8시가 좀 넘어 도착했는데 이미 좌석이 꽉 들어찼다. 엄마랑 그래도 앞에 명당자리를 찾아서 헤매는데 마침 앞 좌석에 두 자리가 보여서 엄마를 부르는데, 세상에나.

엄마는 이미 나보다 더 앞서 혼자서 빈 의자에 쏙 앉아 계신 게 아닌가!

엄마가 이렇게 빠른 사람이었구나, 빠르다, 전광석화와 같이. ㅋㅋㅋ 뻘쭘해진 나는 기웃기웃 다시 혼자 남은 좌석으로 가서 (거기는 시야 제한석이라 기둥이 막혀있었다, 크흡) 앉았다. 나는 같이 앉을 좌석을 찾았다고 좋아했는데 역시 마이진 사랑이 찐이다, 찐사랑이다, 그런 생각에 웃음이 났다. 뒤에 앉아서도 엄마를 지켜보니 다른 가수가 나올 땐 전혀 호응도 박수도 안치다가 드디어 마이진 차례에선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박수부터 환호까지, 우리 엄마 맞나, 싶게 신나고 즐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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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혼자 명당 자리에 앉으심 | 문정둔치(경북 전문대학교) 가는 길






와, 최애 가수가 있다는 건 이만큼이나 사람을 재빨리 움직이게 하고 우울하다는 엄마도 이렇게 180도 바뀌게 하는구나. 마이진 가수에게 알 수 없는 감사함과 나도 모르게, 팬심이 솟아났다. 시원시원한 목소리, 절도 있는 댄스, 유머 센스를 겸비한 말투까지, 나도 처음 보는 가수였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라고 하니 더 관심이 갔다. 당차고 절도 있고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그녀의 험난하고 고생했던 시기가 이제야 보상받는 것처럼 피어난다고 하니 더 승승장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태권도 선수 출신이어서 그런가 절도 있는 춤, 파워풀한 노래가 출연진들 중 단연 압권이었다. 아무튼 마이진 덕분에 울 엄마의 소녀 같은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 엄마의 찐사랑, 최애 가수 마이진!!

*앉을 의자도 못 찾은 신랑은 뒤에 서서 마이진 팬클럽에 둘러싸여 공연을 감상했다.>_<





공연이 끝나고 속이 뻥 뚫리게 좋았다고, 임서방한테 내내 운전시킨 게 미안하기도 했는데 그런 것도 싹 잊을 만큼 좋았다고 기분 최고라는 엄마 말에 나도 우리 신랑도 웃음이 났다. 엄마의 들뜬 목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TV나 방송을 즐겨보지도 않으면서 연예인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더 많았던 우리 엄마가 이렇게 누군가의 팬이 되니 부드럽게 칭찬도 하고 공격이 아니라 긍정적인 시선을 품는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어색했다. 마이진이 뭐길래. 최고구나!


장모님이 이렇게 좋아졌다면 8시간 운전도 하나도 피로하지 않다는 옆지기의 추임새도 고마웠다. 축제 콘서트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달이 예쁘게 떠있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도, 노래도, 맛있어하는 식당도, 감동적으로 보는 영화도, 편안하고 자꾸만 가고 싶어 하는 장소도 점점점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연휴가 너무 길다, 쉬는 날이 너무 길어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일 하는 게 더 좋은데 말이야.



영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오히려 긴 연휴를 힘들다고 말했다. 그래서 긴 연휴에 우리 집에서 같이 움직이자고 했고 작년에 이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천 전곡리 '구석기 축제'에도 함께 다녀오자 했다. 귀찮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그럼 먹을 때도 마땅치 않고 할 테니 김밥이랑 이거 저거 음식 싸가지고 가자, 엄마가 김밥 하나는 또 기가 막히게 말잖아.


마침 집에 김밥 재료도 다 있기에 엄마에게 김밥 도시락을 싸달라고 부탁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또 즐겁게 김밥을 말아주는 울 엄마를 보고 있자니 신기했다.

-엄마 김밥이 진짜 맛있다. 오늘따라 더 맛있어! 이번에 들어간 꼬들꼬들 단무지 때문인가?

-그래? 그럼 앞으로 이제부터 토요일마다 너네 집 와서 너네 애들 김밥도 말아주고 너네 맨날 놀러 다니는데 내가 도시락 싸줘야겠다.



아, 엄마가 매일 일하는 곳이 주 6일 근무에서 주 5일제로 바뀌면서 어쩌면 엄마는 쉬는 토요일 하루가 늘어난 게 조금은 버거웠던 걸까. 멍하니 누워서 보내는 시간이 뭔가 답답했던 걸까. 집에서 뭔가 좋아하는 걸 하고 쉬는 것보다 정해진 시간에 회사에 출근하고 일하는 거 하나를 더 낙으로 삼았을 엄마를 생각하니 안쓰럽고 짠한 마음도 들었다.



어렸을 때도 엄마에게 엄마 꿈을 물은 적이 있는데

-나? 나는 너네들 다 잘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그게 엄마 꿈이야.

나는 이 대답이 왠지 너무 슬프게 들려서 그런 거 말고 엄마의 진짜 꿈, 엄마가 되고 싶은 걸 말하라고 하다가 어떤 서러움이 복받쳤는지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늘 내가 가는 시간에 나 대신 먹거리 장을 잔뜩 봐주시고 딸과 사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종류별로 한 가지씩 다 준비해 주시면서 우리 앞에서 같이 밥 먹기보다 이거 저거 챙겨주면서 맛있는 게 먹는 걸 웃으면서 지켜보길 더 좋아하는 울 엄마. 엄마는 토요일 근무 하루를 쉬어서 더 좋아하는 게 아니라 월급이 그만큼 하루 줄어들고 너네 좋아하는걸 하나 더 못 사준 게 아쉽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기에 이래저래 심란했을 엄마 마음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도 했다. 식탁에 마주 앉아서 맛있게 내린 커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엄마, 임서방은 엄마 우울증 아니라고 했지만, 엄마 마음이 그동안 힘들었을 거야. 우울하니까 우울하고 식욕도 없고 살도 그렇게 빠졌지. 5킬로나 빠진 건 부럽지만, 그래도 엄마 나이에 또 갑자기 많이 빠지는 건 안 좋아.


엄마, 우울하다고 얘기해 줘서 고마워.


말에도 힘이 있어서 혼잣말이어도 무서울 때, 아쉬울 때, 답답할 때 나 너무 무섭고 긴장된다,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해소가 되기도 한대. 우울한 감정도 그런 거 아닐까. 남들이 뭐래도 엄마 감정은 엄마가 제일 잘 알지. 이제 엄마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거 하나씩 찾아서 그런 것도 하면서 살고 누려야 할 때인가 봐. 좋은 기회가 온 거야.

나는, 육아도 나랑 안 맞고 너무 답답하고 속상할 때 그냥 무조건 밖에 나갔어. 보미가 번역한 책 중에 침대에서 무조건 박차고 일어나서 나가라는 내용의 책이 있거든. 머리가 멈춰있으니까 계속 몸을 움직이고 싶었나 봐. 해가 뜨면 밖에 나가서 걷고, 또 걷고 그러다가 막 뛰고 싶으면 뛰고, 어떤 날은 공부하면서 날마다 내가 느끼고 찾아가는 성취감도 느끼고, 내가 진짜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걸 찾아보면서 기웃기웃했더니 우울보다 '해야 할 일'들이 먼저 들어오더라고. 그런 게 내 일상이 되고. 답답한 거 있으면 지금처럼 나한테도 꼭 말해줘. 마이진 콘서트도 같이 가줄게.


좋아하는 노래도 듣고, 엄마 보니까 나보다 걸음도 빠르고 더 잘 걷더라고. 둘레길도 걷고 트랙킹도 하고 박물관 구경도 같이 하자, 그렇게 하나씩 하고 싶은 거 찾아보자 엄마.



>>아유, 네가 그러니까 얼굴이 전체가 기미로 덮인 거 아니야. 나봐봐, 기미 하나도 없잖아. 선크림 무조건 꼭 바르고 나가라니까. 이런 날씨가 제일 얼굴 타기 좋아.



-_-



눼눼눼, 늘 내가 기대한 답변은 아니지만 김밥을 말면서 흥에 겨운 듯 노래를 부르고 썰어준 김밥을 하나씩 쏙쏙 집어먹는 우리 식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금방 이렇게 기분이 또 좋아지는 엄마를 보니 나는 다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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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나의 마이진 | 우리 엄마가 싸준 세상 최고 맛있는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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