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되겠지
「한국소설 읽기 방」에서 영글음 작가님을 통해 이 책 제목을 만났을(들었을) 때,
제목만 듣고도 '어머, 이 책은 꼭 읽어야 돼!' 하고 따로 메모까지 해두었다.
오늘 큰 아이 초등학교 안에 있는 도서관 봉사활동을 마치고 신간 구입 코너를 보는데 이 책이 바로 눈에 띄었다. 그럼 그럼,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제목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지랄 총량의 법칙'을 신봉하게 됐다. 원래 조금 더 유식한 용어로 '등가교환 법칙'이란 말이 있지만
등가교환의 법칙 :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두 가지를 서로 교환한다는 뜻. 어떠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가치를 지불해야 한다는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경제 용어인데 지금은 경제학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루하루 성질이 뻗쳤다 웃었다 울었다 육아를 하면서 '나'보다 아이 인생을 키우는 '나'를 들여다보니 사람에게는 일평생 '총 지랄할 수 있는'총량이 있고 그게 유아기, 성장기, 어른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양이 정해져 있기에 어린 시절 힘들게 한 아이는 커서는 좀 더 유순하고 편하다, 이런 말을 신봉하게 됐다. 아니, 신봉하고 싶어 졌달까. 도무지 잠을 잘 것 같지 않는 아이, 하루 종일 뛰고 밖에서 움직여야 하는 아이를 볼 때도 혼자 속으로
'그래그래, 지랄 총량의 법칙! 이 시기를 버티면 행복이 온다'
혼자 슬쩍슬쩍 웃어더랬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에세인지도 모르고 봤다가 책의 앞 날개에 쓰인 작가의 이야기를 보자 마음이 찌르르했다.
나는 표지 다음으로 항상 책의 앞 날개, 뒷날개, 양 날개에 쓰인 말과 책을 둘러싼 띠가 있으면 그 부분을 먼저 유심히 읽는다.
86년 아시안게임을 시청하다 나를 낳은 엄마는 내 이름을 '승리'라 지었다. 열다섯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 이제는 눈앞이 어둠으로 가득하지만, 엄마가 지어준 이름 덕분에 나는 대한민국의 승리로서 신나는 일을 찾아 어둠 속을 헤매 다닌다.
세상에, 눈앞이 어둠으로 가득하지만 학교를 다니고, 취업을 하고, 여행을 하고 만나는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꾸준히 글을 썼구나. 나보다 어린 나이의 당찬 아가씨! 신나는 일을 찾아 어둠 속을 헤매 다니는 멋진 지구별 여행자의 이야기가 한가득 펼쳐졌다. 사실 날개에 적힌 특별한 자기소개나 특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면(장애인 콜택시 이야기 같은) 나는 이 책을 장애인이 썼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담담하고 평범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같은 「한국소설 읽기 방」에 있는 허우리 작가님께서 얼마 전 김금희 작가님의 북콘서트에 다녀오셨는데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김금희 작가님께서 하신 이야기
에세이도 보통은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하는데
쓰다 보니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에세이인 것 같아요.
나는 이 책이 정말 재밌고 강렬해서 앉은자리에서 뚝딱(금나라와 뚝딱은 아니지만 시간이 그처럼 빨리 간 것 같은 기분) 읽었는데 책을 다 덮을 즘엔 갑자기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평범하게 어울리기 힘든 환경 속에서도 섞여서 어울리는 와중에도 시선이 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마주하고 피하기보단 부딪혀서 세상에서 싸워오고 살아온 이야기가 사실은 쓰다 보니 주변에서 만난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스쳐간 사람들, 손님이었고 마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는 '조승리'작가님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를 대하는 방식뿐 아니라 나를 '대해주는' 방식을 표현하고 기록한 것만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앞이 보이지 않기에 손을 잡아주는 느낌, 안마사 일을 하기에 어딘가 불편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찾아온 손님들, 가장 가까이 있지만 상처가 됐던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어쩜 이리 담담하게 이야기하지, 싶을 정도로 담담한 문체에 눈물이 왈칵 난다.
작가님이 여기엔, 그 모욕적이고 굴욕적인 언행을 다 담을 수 없었지만-이라고 쓴 구절에선, 그래, 세상이 이런 곳이지. 그저 한 번 스쳐갈 뿐이어도 장애를 가진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무심하고 냉랭한 곳이었지 가슴이 아팠다. 더 험난하고 아픈 수기 같은 글을 충분히 차고 넘치게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조승리 작가님의 에세이는 신파로 흐르지 않는다. 자기에게 닥쳐온 인생이고, 자기보다 더 호들갑 떨며 아파할 가족들을 생각하느라 온통 마음을 쓰고 앞으로 '살아갈 날'을 꿈꾸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실명하는 상황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안마사의 고된 일과와 엄마와 이별하던 순간에도, 앞이 보이지 않지만 다짐을 하고 꿋꿋이 살아왔던게 아닐까. 남들이 보이지도 않는데 왜 가냐고 했어도 해외여행을 꿈꾸고 계획하고 도전했을 만큼 한 발 한 발 더 넓은 세상 속으로, 앞으로 나아갔던 게 아닐까.
그들은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나도 내가 자랑스러웠다. 처음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무척 사랑스럽게 생각되었다.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며 새로운 꿈과 함께 자신감이 피어났다.
나의 새로운 장래희망은 한 떨기의 꽃이다. 비극을 양분으로 가장 단단한 뿌리를 뻗고, 비바람에도 결코 휘어지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하늘로 향해야지. 그리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되어 기뻐하는 이의 품에, 슬퍼하는 이의 가슴에 안겨 함께 흔들려야지.
3부 『비극으로 끝날 줄 알았지』p.238 중에서
가장 마지막 부분 제일 멋진 구절은 뺐습니다. 책을 꼭 읽어보세요!
나의 한줄평(말이 많아서 두어줄 평이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 지랄 총량의 법칙은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지랄'을 겪을 대로 미리 겪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여기 지랄 맞은 사람이 어딨어? 악착같이, 자기에겐 붕어빵 천 원어치의 행복이 있어도 다짐한 대로 지키며 꿈꾸는 아름다운 여성이 있을 뿐인데. 맞아, 지랄 맞은 상황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달도 뜬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도 장애를 잊고 살아가는 그녀를 떠올려본다. 아, 그렇구나! 조승리작가님, 인생이 축제인 이유를 책을 다 읽고 나니 조금은 알것 같다.
**가장 와닿았던 장은 3부 첫 번째 유령남매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선 왠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강단 있기도 하고 소외된 또 다른 친구를 마음에 담아두고 챙기는 작가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따뜻한'사람이란 말로는 표현이 안된다. 용기 있고 삶을 '마주하고' 기억하려 애쓰는 모습이 진솔하다.
■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 조승리에세이 · 달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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