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도 참여했던 참관수업
세상이 이렇게 밝은 것은 즐거운 노래로 가득 찬 것은
집집마다 어린 해가 자라고 있어서다 그 해가 노래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모를 거야 아이들이 해인 것을
하지만 금방이라도 알 수 있지 알 수 있어
아이들이 잠시 없다면 아이들이 잠시 없다면
나나나나나나나 낮도 밤인 것을 노랫소리 들리지 않는 것을
-1987년 7회 MBC창작동요제 입선곡 〔아이들은〕
작사 선용 · 작곡 정윤환 · 노래 김미은(숭의초 6학년)
올해 초 둘째 선율이의 학예회 때 선율이네 반 아이들이 다 같이 부른 곡이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차고 맑은지 며칠 동안 귀에서 맴돌았다. 가사 그대로 아이들은 '해'구나. 나 역시 아이들 덕분에 울고 웃고 슬프고 기뻤던 날들이 떠올랐고 슬프고 걱정됐던 날마저 나에겐 '노래'였다는 걸 깨달았다.
집집마다 자라는 어린 해에 대한 관찰일지
신랑과 나는 아이들의 크고 작은 발표회, 상담, 참관 수업은 꼭 함께 하려고 한다. 신랑은 출장도 잦은 편인데 참관수업이 있으면 출장 날짜를 변경해서라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이번 선율이 발표회 때도 반차를 내서 부랴부랴 택시까지 잡아타고 공연을 관람했다. 선재의 참관수업 역시 미리 날짜를 빼서 휴가를 냈다.
그게 바로 「오늘」, 바로 오늘이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 학교에서 딱 하루, 문을 열어주는 참관 수업은 그냥 단순히 아이를 지켜보는 게 다는 아니다. 나는 매 학기마다 시작하는 상담도 당연히 참여하지만 사실 상담보다 '참관수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학기 초 상담은 선생님이 파악한 아이의 성향과 전반적인 학교 생활에 대해 부모와 함께 나누는 시간이라면 참관수업은 부모님들도 선생님이 어떤 분이구나, 파악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학교 생활 가운데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선생님의 성향과 교육 방식을 가까이서 보고 · 듣고 · 배우는 시간은 참 중요하다. 우리 아이가 수업은 물론, 전반적인 학교 생활을 어떻게 따라가고 적응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기에.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 매일 마주하고 가르쳐주는 선생님, 친구들까지 놀이터나 집에서 마주한 '내 아이'가 아니라 학교 생활 안에 어우러지는 또 다른 '학생'으로서 모습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1학년 때는 코로나로 참관수업이 없었지만 2학년때부터 지금까지(5학년이 됐다) 우리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고 달라지고 적응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소중하고 감사하다. 참관 수업은 아이들에게만 특별한 하루가 아니라 어쩌면 부모님에게 더 특별하고 귀중한 시간이 아닐까.
주저하고 망설인다면 그래도 용기를 갖고 꼭 한 번은 참여해보시라고 권해주고 싶다.
나도 어렸을 적에 이렇게 학부모 참여 수업을 했다. 아빠는 직장생활로 바쁘셔서 오실 수 없었지만(그때는 주주6일, 토요일도 직장에 나가셔야 하는 때였다) 우리 엄마는 매번 가장 예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수업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뒤에서 나를 지켜보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뒤통수에만 눈이 달린 것이 아니라 이때만큼은 모든 아이들 뒤통수에 눈이 달려서 자기 엄마가 어디 있나, 두리번 두리번, 뒤 돌아 앉았을 때도 '우리 엄마'의 시선을 쫒았다. 그때는 지금과 또 다른 때여서(?)-옛날 옛적에 ㅋㅋ- 참관 수업 하나만을 위해서 다 같이 몇 번이나 읽고 쓰고 발표까지 딱딱 맞춰 열심히 연습했다. 예행연습시간이 중요했다. 장학사 선생님의 탐방이라도 있다고 하면 이런 '짜고 치는 연습'과정은 몇 번이고 반복됐다.
다른 날도 아니고 엄마가 와서 본다는 생각에 한없이 기분이 들뜬 나는, 이미 다른 걸 발표하기로 되어있는데도 매 순간 선생님 질문마다 손을 번쩍번쩍 들었고 계속 선생님이 시켜줄 때까지 나 좀 시켜달라고 간구하는 눈빛을 마구마구 보냈더랬다. 뒤에서 엄마의 탄식소리가 들렸다.
"아니, 쟤가 …. 아니, 손 좀 그만 들지. 무슨 …."
엄마는 그때마다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고 하셨다. 내 이름을 부를까 몇 번이고 망설이셨다고. 그게 엄마를 창피스럽게 하고 망신인 줄도 모르고 나는 거짓말까지 보태서 대답하고(우유 잘 먹는 습관에 대한 질문도 → 우유도 안 먹는데 잘 먹는 척) 더 잘난척하며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이때부터 나서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구나. ㅎㅎㅎ 또 그렇게 대답한 게 양심에 찔려서 집에 와서 벌컥벌컥 그날부터 하루 한 잔씩 우유를 한 컵씩 마셨던 기억도 난다.
계획에 없던 나의 돌발 행동에, 삐질삐질, 선생님의 식은땀은 보이질 않았지만 뒤에서 엄마들의 웃음소리가 그저 기분 좋았다. 선생님께서 당황하실 수는 있어도 이렇게 학부모 공개 수업 때는 나를 대놓고 혼내거나 지적하지 못한다는 것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영악스러운 꼬마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는 언니와 나를 키우면서 단 한 번도 일을 쉬신 적이 없는데 어떻게 매번 언니와 나의 참관 수업 때는 함께 해 주신건지, 엄마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그때 어린 딸의 번쩍번쩍 드는 손을 부끄러워하시면서도 늘 지켜보신 엄마가 있어 든든하고 좋았기에 나 역시 아이들 참관수업이 즐거운 건지도 모르겠다.
발표를 하고 또 하고.
선생님이 자기 이름을 안 불러주면
부를 때까지 계속 몇 번이고 선생님 코 앞에서까지
손을 계속 흔들어댔어, 너는.
엄청난 눈빛으로.
너는 그런 애였지.
*선생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 참관수업을 통해 아, 내 아이도 아무도 발표하지 않는데도 혼자 손을 번쩍, 의자를 빼고 자기가 쓴 글을 자랑스럽게 읽는데 갑자기 웃음이 터졌고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우리 엄마가 아니기에 전혀, 조금도 그런 아이가 부끄럽지 않았다. 엉뚱한 이야기를 썼어도 웃으면서 들었을 것 같다.
물론 수업 내용은 부모도, 학생들도 서로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준비해 주시는 것 같은데 덕분에 내 아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오늘은 '창*체(창의 체험 활동)'수업과 '영어'수업 2교시를 참여했다. 창*체 활동의 주제는 '사춘기의 나'에 대해서였는데 무척 유익하고 즐거웠다.
*4학년 때 수업 주제는 '칭찬'이었다. 서로 한 명씩 돌아가며 '칭찬샤워'를 해주고 내가 듣고 싶은 '칭찬'에 대해서도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선재가 아이들 틈에서(아이들끼리만 하는 활동인데) 먼저 엄마와 아빠에게도 따로 칭찬 스티커를 하나씩 써서 붙여줬을 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공감하면서 수업을 재밌게 진행해 주셨다. 이전까지 탭으로 수업을 하는 부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는데 막상 여러 아이들, 익명으로 선뜻 말하기 부끄럽거나 주저하는 부분을 취합하고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이들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장을 써보고 숫자를 적어보기 위해선 그래도 노트에 직접 사각사각 연필을 쥐고 써보는 과정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탭'을 이용해서 수업을 한다고 무조건 '탭'으로만 수업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직접 손으로 써보고 그리고 활동지로 적어보는 시간도 생각보다 많았고 이 둘을 적절하게 병행해서 수업하고 집에서 따로 배움 공책이나 글쓰기 공책을 활용한다면 기기를 이용한 수업이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다만 우려되는 부분은 있다. 자기가 뭘 틀린 지도 모르고 그냥 틀린 걸로 적어도 ai가 전부 고쳐주겠거니 한다면 제대로 짚고 배우는 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때그때 자기 의견을 적어서 화면에 띄우면 가장 많이 쓴 단어가 좀 더 진하고 큰 글씨로 나타나서 다른 아이들의 생각도 보고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늘은 사춘기를 앞두거나 진행 중인 우리 아이들이 부모님, 가족들, 미래의 나에게 쓴 편지에 대한 화답으로 부모님이 스마트 기기로 접속해서 하나씩 의견을 쓰고 띄워주는 시간도 가졌다.
아들아, 눈치챘겠지만 '앤나우'가 엄마야. 이건 너만 눈치챌 수 있는 닉네임이라 엄마는 더 좋았어. 참고로 아빠의 닉네임은 '난다도스'였어. ㅋㅋㅋ
아이들이 엄마에게 쓴 편지를 읽다가 몇몇 아이는 목소리가 떨렸고, 그 내용에 내 마음이 울컥하고 뭉클해지기도 했다.
■ 엄마, 저 00이에요. 요즘 저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사춘기 때문이래요. 엄마를 속상하게 해서 죄송해요.
□ 엄마, 요즘은 울컥하고 외롭고 힘들 때도 많아요. 그럴 때면 같이 화가 나더라도 조금 더 내 말을 들어주고 말없이 안아주세요.
■ 언니, 이제 나도 내 몸이 자라고 내 마음도 점점 자라서 '내'가 되고 있어. 그러니까 잔소리하고 내가 싫은 게 있더라도 나를 조금 더 존중해 줘. 언니, 사랑하고 고마워.
세상에, 우리 아이만 방황하고 휘몰아치는 감정의 가운데가 있는 게 아니구나. 이렇게 사랑스럽게 웃고 아직도 해맑아 보이는 아이들이 사춘기라는 벽을 마주하고 '자아'를 찾아가고 있구나. 응원하고 싶어지고 다짜고짜 화부터 내기보다 기다려주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그 어떤 '부모수업'보다 뭉클하고 감동적이고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참관수업'이었다. 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참 좋았다.
참, 아이들이 집중해서 쓰는 시간에는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어울리는 노래도 틀어주셨는데 나는 이런 부분도 좋았다. 뭔가 내 어린 시절과 달리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좀 더 하나의 인격으로 대접해 주고 배려해 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몇 분 안에, 몇 줄로 다 써!'가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돌아보고 생각할 시간도 충분히, 중간중간 늦는 아이들을 기다려주는 시간도 배워 갈 수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두 번째로 이어졌던 영어 수업도 덕분에 영어 체험실도 직접 볼 수 있어 좋았고 아이들의 역할극도 재밌게 구경할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즐겁게 수업에 참여하고 단순히 대사를 읽는데만 그치지 않고 연기도 곁들이는 선재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재밌게 학교를 다니고 있구나, 좋은 선생님들, 공감해 주고 함께 해주는 친구들과도 어울리며 이렇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구나. 물론 내가 보는 그 두 시간이 아이 학교 생활의 전부는 아니지만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려는 태도, 쉬는 시간에 어떻게 지내는지 모습 같은 것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 발 멀리서, 또 가까이서.
생각보다 많은 부모님이 와주셨고 함께 했다. 아버님들도 다섯 분 정도 오신 것 같았다. 교실 뒤는 부모님들로 가득 찼고 아이들은 괜히 설레고 왁자지껄 했지만 모든 엄마 아빠에겐 자기 아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을 거다. 하지만 나도 네 번째로 참가하고 보니 더 많은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다양하게 눈에 들어왔다.
영어 수업시간 후에는 누가 어떤 역할을 어떻게 잘했는지 발표해 주는 시간도 있었는데 *결이가 계속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구체적으로 열심히 손을 들고 칭찬해 줬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에 대해 말이 없자 본인이 마지막에 손을 들고
저는 저를 칭찬합니다. 발음이 아주 좋았거든요!
라고 하는데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영어 수업의 교육방식, 이점보다도 아이들의 이런 부분을 나누고 공감해 주는 영어 선생님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참 감사했다. 참관수업이 있어서 행복하고 즐거웠다.
우리 둘째 선율이도 학교에서 어떤 모습으로 수업할지 어린이집에서와 달리 또 어떤 모습일지도 참 궁금하다.
아이들이 없다면, 경험하고 느끼지 못할, 누리지 못했을 귀한 경험이다. 집집마다 자라는 '어린 해'를 좀 더 존중해주고 품어주고 사랑해줘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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