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들에게 판단받는 두려움

나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 | 에드워드 리 셰프

by 앤나우

어린 시절부터 남들의 인정, 칭찬이 고픈 아이였다.


* I'm still hungry (for compliments).


부모님 모두 칭찬에 인색하신 분들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살 터울 언니에겐 칭찬을 많이 해준 것 같았기에 알게 모르게 자격지심이 쌓여갔다.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칭찬받기 위해서, 어른들 눈에 들기 위해서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글씨를 예쁘게 썼다.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들 이름을 와르르 적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 교무실까지 당당하게 찾아가 선생님께 책받침 뒷면에 이름 쓴 아이들 목록을 당당하게 내밀었다.


-어어, 그래? 얘네들이 떠들고 장난쳤다는 거구나.

그런데 왜? 넌 반장도 아니잖아.


하 …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1학년이라, 반장선거도 없었을 때 어떻게 해서라도 선생님께 사랑받고 싶었던 나의 몸부림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전 과목을 늘 올백 맞는 언니처럼 완벽할 수가 없었기에 발표를 잘하고 숙제를 잘하고, 뭐든 나서서 학급일을 맡아서 하다 보면 칭찬과 인정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열심히 공부해서 4과목에 4개를 틀려서 그 시험지를 자랑스럽게 가지고 가면 돌아오는 건 부모님의 구박과 야단이었다. 아주 어린 나이에, 공부를 때려치워야겠다고 결심했다. 혼나고 비교당하고 언니 실내화를 대신 빨 때면 그때마다 좌절감, 절망이 넘쳐났다. 내 딴엔 누구랑 비교해도 나쁜 점수가 아니고 최선이었는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늘 전 과목을 백점 맞는 언니를 뒀다는 게 나를 늘 뭔가에 쫓기게 만들었다. 언니를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었다. 키도 크고 예뻐서 늘 인기도 많은 언니는 성격마저 온순하고 착해서 늘 나를 먼저 챙겨주고 감싸줬기에.


그냥 온전한 나로, 내 존재로 기쁘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다른 어른들의 관심이 굳이 필요했을까도 싶다.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기 시작했을 때 여기저기 불려 나가 대회에도 가고 조회 시간에 교장선생님께 상을 받곤 했다. 그때 난 처음으로, 언니보다 더 큰 사람이 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잘하는 걸 찾고(그때도 부모님이 유난스럽게 칭찬해주시진 않았지만) 특별한 뭔가를 발견한 느낌을 받았다.


나를 유독 예뻐해 주시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나에게 따로 글짓기 수업도 지도해 주셨던 5학년때 담임, 구경희 선생님을 만나고 누군가에게 온전히 사랑받는 느낌, 편애받는 행복을 느꼈던 것 같다.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선생님은 한 번도 나에게 말로 다른 아이들과 차별하며 지나치게 칭찬해 준다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거나 예뻐하는 느낌은 또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쓴 일기장 아래 늘 나의 글이 좋다고 이런 마음이 속상했겠다고, 나경인 장점이 많다고 이런 메모들이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했다.


남들에게 판단받는 두려움이 늘 나에게 있었다. '인정'받는 욕구가 지나치게 큰 아이였다. 더 잘하고, 잘 보이고 싶고 그런 마음이 나를 좀 더 성실하게 만들었고 책임감 있는 아이로 만들기도 했고 나를 더 드러내고 표현하게 하는 성격으로 만들기도 한 것 같다. 그러니까 두려움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이상한 결론, ㅎㅎㅎ

아니다. 하려는 이야기는 이게 아니지, 참.



중학교 땐가도 소풍 겸 백일장에 나갔는데 대부분 아이들이 '네가 맨날 받으니까 이번에도 네가 탈 거야, '이런 말을 여유 있게 들으며 친구랑 수다 떨고 놀다가 끝나기 30분 전에 후다닥 글 한 편을 아무렇게나 썼다.

에이, 이렇게 썼는데 뭘 누가 주겠어. 오늘은 그냥 하루 놀았다 쳐야지, 그때 한참 친해진 친구랑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 시간이 너무도 값져서 나는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도 까먹은 상태였다. 이런 마음으로 뭘 썼는지도 모르겠는 이상한 글을 냈는데,


당당하게 장원으로 뽑혔다.


부끄러웠다.


남들에게 인정만 받으려는 나의 생각이 뭔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잘못된 것 같고 어딘가 내가 오만한 아이란 걸 사춘기 무렵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제대로 심사를 했다면 더 멋진 글도 많았을 텐데 그냥 그동안 상 받았던 아이를 추리다 보니까 읽기 귀찮아서 나를 그대로 뽑을 걸까, 나는 내가 뭘썼는지도 모르게 아무렇게나 분량도 못 채운 글을 후다닥 낸 것뿐인데.


심사위원도,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인정받고 싶었던 선생님들도 때론 잘못 판단을 할 수가 있구나. 결국 누군가의 판단에 의해 받는 1등과 영광이라도 그게 내 마음에 온전한 '기쁨'이 아니라면 전혀 즐겁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생각한 나의 최선이 그에 상응하지 못한 결과와 판단을 불러올 수도 있다. 유년시절 늘 그랬던 것 같다. 귀엽고 애교 있는 둘째가 되고 칭찬받고 어디서나 잘 어울리고 싶었지만 (표면상으론 그랬을지도 또 모르지만) 늘 마음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밝아 보이는 앞모습 뒤에 늘 시끌시끌 어둡고 비참한 그림자가 마음 한편에 가득했다. 칭찬받기 위해 달려온 시간이 온전한 기쁨으로만 충만했을까?!



그렇게 달려온 시간 속에 나를 설치고 나댄다고 재수 없게 본 아이들도 있었고(직접 이런 말을 들은 적은 없다, 신기하게도 ㅎㅎㅎ) 이기적인 아이라고 판단한 선생님도 계셨고(1학년 '통지표'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 그만 좀 설치라고 꾸지람한 부모님도 계셨다. 저마다의 판단이 달랐지만 사실 칭찬의 말, 상을 받고 대표가 됐을 때의 뿌듯함?, 어떤 꾸지람 한 마디가 특별히 기억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흘러가는 말, 스쳐간 대사, 잘 떠올려지지 않는 감정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성장하는 과정 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건


사실은 이거다.


첫 문장까지도 고심하다가 뭔가를 골랐을 때 나도 모르게 휘몰아쳐서 글을 쓸 때 터져 나오는 내 안의 소리, 내 안의 문장들, 쓰는 순간도 읽는 순간에 몰입되는 것처럼 정신없이 나를 사로잡는 뭔가가 있다는 걸 느꼈고 나는 그걸 도피처 삼고 방패 삼아 하루하루 버티면서 살아왔다는 거, 이거 하나뿐이었다. 좋은 책과 문장들이 나를 사로잡았을 때 그걸로는 세상에 우뚝 선 느낌이 없었는데 내가 쓴 온전히 만족한 내 글 하나로는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게 했다.




나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선 지 '이것 때문에 죽진 않을 거야', '다음날은 다 괜찮아질 거야' 이런 태도를 갖게 되었다. 나는 아주 다양한 흥밋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뭔가 당장 결과가 안 좋아도 그냥 다음 것으로 넘어간다. 집착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뭔가를 엄청나게 잘했다고 해도 거기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가족들하고 조금 보긴 했지만, 나는 '흑백요리사'도 다시 보지 않는다. 과거를 분석하기보다 그냥 계속 다음 것을 하는 게 내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에드워드 리가 사는 법 "나는 압박감 없이 일한다"인터뷰 중에서
인터뷰 전문을 읽어보시고 싶다면 여기를




영글음 작가님이 보내주신 에드워드 리 셰프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와닿았던 구절이 있다.


뭔가를 엄청나게 잘했다고 해도 거기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늘 남에게 '판단'받는 직업, 평가받는 직업임에도 이렇게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요리를 하고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에드워드 리 셰프가 멋있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나도 흑백요리사에서 에드워드 리 셰프의 여유 있고 예의 바른 태도, 집중하고 연구하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는데(가장 응원하는 셰프이기도 했다) 이런 바탕에는 단단하게 쌓인 시간과 가치관이 있었단 걸 깨달았다. 또 누군가의 '판단'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의 기준, 마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잘하거나 못하거나, 누군가의 판단이 필요해도 이거 때문에 죽지 않는다는 마인드는 정말 중요하다. 우리가 성취해야 할 어떤 목표나 욕구는 사실 그때그때 마다 흘러가고 바뀌기도 하니까. 원하는 결과를 못 얻고 실망할 순 있어도 그래도 온전히 '나'인 채 웃을 수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당당하고 기쁜 일 아닐까.


나는 상을 받기 위해, 누군가의 인정을 위해, 평가를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온전히 나인채로 내 감정을 통해 성장하고 싶어서, 성장하지 못하더라도 뭐, 어때. 이 순간이 행복하니까, 글을 쓴다.


*오랜만에 행복한 글쓰기의 즐거움을 깨워주신 영글음 작가님, 스타티스작가님, 몹·글 고맙습니다.




#몹시쓸모있는글쓰기

#몹글릴레이글쓰기

#칭찬에고픈아이는

#칭찬받지않아도행복한어른이됐다

#내가나인채로사는거

#남들에게판단받는두려움

#압박감을느끼지않는강한멘털

#에드워드리셰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