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감정이 날아갔어
나는 사람들 관찰을 좋아한다. 내 주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물론이고(당연히 우선순위는 나의 식구들이다) 잠깐 스쳐가도 나의 레이더망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다면 관찰을 멈추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잠깐 스쳐가는 전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 안에서 조금 특이해 보이는 옷차림이나 특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티 나지 않게 관찰한다. 살짝 곁눈질로 하거나 다른 걸 하는 척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식이다.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는다. 티 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독특하고 재밌는 스타일을 참고해서 예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왜 저런 아이템을 좋아할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사실 다양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관찰할 기회가 흔치 않기에 어쩌다가 이용하는 대중교통이 나에겐 호기심을 충족해 주는 또 다른 장소기도 하다. 핸드폰을 보는 것보다 누군가에 대해 관찰자의 시점으로 행동 목소리를 살펴보는 게 재밌다. 솔직히.
탐정 셜록이 잠깐만 스쳐가는 사람의 직업을 맞춘다거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구보씨가 천변 풍경에서 많은 이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그 재미를,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뉴스나 신문을 보면서 오히려 삶이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면 그 온갖 소음을 차단하자.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의무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크게 관여하지 말자. 내 삶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가장 귀한 사명이다. 내 삶의 뉴스에 귀를 기울이자. 나는 나로 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지 타인을 관찰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다.
-김종원, 《철학이 삶의 언어가 될 때》중에서-
오늘 글향님이 보내준 모닝 레터를 읽다가 '관찰자'를 좋아하는 내 마음 한편에 뜨끔, 그러다가 반색하게 만드는 작은 사건도 하나 떠올랐다.
주말에 오래된 친구를 만났다. 밑반찬과 작아진 자기 아이 옷을 챙겨다 주기 위해 만난 거지만, 우리는 눈길을 뚫고 동네 카페에서 잠깐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중학교 동창으로 오래된 친구인데 우리는 성격부터 성향까지 전부 다른 편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나에게 긍정적인 칭찬과 열렬한 응원을 보내주는 사이다)
시댁이 우리 집 근처라, 시댁에서 밥을 먹고 우리 집에 들러 아이 신발이며 옷가지랑 다양한 음식을, 장본 것과 시어머님이 해주신 백김치까지 잔뜩 챙겨다 줬다. 고마웠다.
최근에 우리는 동창 모임을 했는데 그 모임 후, 친구는 어딘가 마음이 신경 쓰이고 개운하지 못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거기서 내가 말해준 '방법'을 처음 써봤다고 한다.
나는 그때 왜, 그런 감정이 들었을까?
*
지금 내 기분은 왜 그런 걸까?
이 질문 두 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질문이다.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서 상담을 시작하면서 '왜' 이런 감정이 올라왔을까, (대부분은 주체할 수 없는 '화'와, 화를 낸 후의 '죄책감' 같은 것들이었다) 내 감정을 돌아보면서 나의 기분과 상태를 따라갔다. 어쩌면 이런 출발점에서 「욱아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과 신랑에게, 우리 부모님께, 주변사람들에게 욱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화를 내거나 참았을 때도 바로 질문했다.
선생님과 나눴던 대화의 화법을 나에게 적용해 보니 내가 모르는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나의 내면이 투명하게 잘 보였고 눈물 나게 연약하고 산산조각 날 것 같은 콩닥콩닥한 마음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감정을 말하기에 그치지 않고 나는 글로 정리해서 쓰거나 일기장에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건 없었다. 갑자기 내가 잘 참는 사람이 된다거나, 순둥이가 되고, 인류애가 넘쳐서 천사 모드로 변신한 것도 아니다. 천사표 엄마가 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하나가 있었다. 그건 내가 왜 그런지 이제는 알았다는 것이다.
세상 관찰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눈이 아닌, 나의 내면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고 살펴보는 게 가장 유익한 일이란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변할 수 있다, 변한 것이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도 깊이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진짜 맞았다.
또 화를 내고 또 눈물을 흘려도 좋으니 내가 왜 그런지 생각을 해보고 잠시라도 멈춰 나의 마음 상태를 관찰하고 살펴보라고 했다. 심호흡을 할 필요도 없고 거기에 온갖 감정을 쏟을 필요는 없지만 '왜'에 대한 답이 보인다면 거기까지 생각하라고 했다. 그 덕분인지 나는 정말 달라졌다.
같은 상황에 부딪쳤을 때 매번 비슷한 걸로 화가 나고 우울함에 빠지고 자괴감에 빠진다는 걸 알고 미리 조금은 더 빠르게 대처했고(나는 대부분 시간에 쫓기거나, 준비한 계획대로 안되고 예상보다 심하게 뭔가가 어그러졌을 때 아이들에게 화를 내곤 했다) 5분 더 서두르는 여유를 가졌다. 정신이 없었지만 화를 낸 후의 자책이나 죄책감으로 빠져드는 걸 경계하고 싶다는 '인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즉흥적으로 될 대로 되란 식의 성격이지만 계획과 준비가 육아와 나의 삶에 안정을 찾아준다는 것을 알았다. 준비물을 챙기고 미리 예습을 하고 대비를 하나씩 하고 쌓아가는 방식들에 변화를 줬다. 나만의 전환점과 생각을 끊어내기 위한 나의 공간, 시간을 탐색했다. 여전히 부족한 인간이지만 나는 이전과 달라진 확연한 변화에 그 당시 너무 좋아서 상담 선생님께 칭찬(을 넘어선 극찬을 받았다)을 받은 건 물론이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도 이 방법을 함께 공유했다.
다시 친구 이야기로 돌아와서, 친구는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니 바로 답을 찾았다고 했다.
> (또 다른 친구에게) 자기가 기대하는 말이나 이랬으면 하는 배려가 부족한 부분에서 실망하고 서운했던 점
> 오랜만에 만나고 좋았지만 나라면, 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웠던 점
이런 생각이 떠올랐고 귀한 시간을 만나고 함께 한 자리지만 자기가 더 많은 부분 배려와 다정함을 발휘했던 부분에 대해 아쉬움이 남았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자리에 있고 비슷한 부분을 느꼈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공감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었던 나의 감정을 나눴다. 친구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잘못됐다고 탓하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감정에 초점을 맞추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하는 방법이 네 말대로 정말 좋은 거더라.
왜냐하면 계속 찜찜한 채로 싸안고 가는 게 아니라
'왜'를 찾아서 보다 보니까
이렇게 느낀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게 됐어.
세상에!! 나는 몇 번 나의 감정 질문을 이야기한 것뿐인데 그걸 실천하는 첫 번째 사람이 주변에 생겨서 반가웠고 나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은 친구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말로 그렇게 꺼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한 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지금 이 감정들을 꼭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했다. 말은 쉽게 정리되는 듯해도 사라지기 쉽고 날아가기도 하지만 한 번 더 글로 쓰면 다시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다짐을 하고 또 기록을 보는 의미도 있으니까. 친구에게도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자신만의 '블로그'가 있다는 걸 알기에 그 공간에 공개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런 일기들도 써나가 보길 응원했다.
세상이 온통 뉴스, 뉴스, 온갖 뉴스로 시끌시끌하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TV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고 인기를 끌었던 연예인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거기에 지나치게 감정들을 몰입하고 있는 게 아닐까. 더 재밌고 귀중한 걸 놓치고 있다.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의무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크게 관여하지 말자.
내 삶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가장 귀한 사명이다.
내 삶의 뉴스에 귀를 기울이자.
내 삶에서 수백 수천번도 더 바뀌고 자라기도 하고 터질 것 같은 나의 상황과 감정들이 바로 나의, 나만의 '뉴스'가 된다. 에너지를 좀 더 안으로 안으로 집중하다 보면 이런 복잡하고 혼란한 뉴스 속에서도 우리가 놓친 것들, 왜 그런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과 지나친 관심이, 나에겐 불편한지에 대한 길이 보일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크게 관여할 필요는 없다. 나의 관여로 바뀌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 삶의 뉴스는 언제든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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