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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

떠나는 날 아침에 챙겨주신 정광태 아저씨의 두유 간식

by 앤나우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우리 땅!)


*옛사람이라, 이 가사가 더 입에 착착 붙는다. ㅎㅎ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87K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우리 땅!)


*87K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이란! 나 같은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1982년에 나온 이 노래가 가사가 가장 최근인 2012년엔 이렇게 바뀌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은 요 버전으로 부르는데 구체적인 단위들이 자세히 바뀌었다

**5절까지 가사는 생략하지만 처음 나왔을 때 가사와 비교해서 보면 재밌다. 네 번이나 세상이 바뀌는 과정이 가사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다.

***10월 25일은 독도의 날! 잊지 말자.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 가수이자, 독도 명예 주민인 '가수 정광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지 모르겠다. 노래야 워낙 유명해서 우리 집 꼬맹이도 달달 외우지만, 가수 이름까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가수'이름이 늘 먼저 떠올랐다. 다섯 살 때 신기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이 동네로 처음 이사 왔을 때 우리 단지에서 아침마다 누군가 엄청난 발성으로 성악을 부르는 걸 종종 들었다. 신랑이랑 나랑 서로 '들었어? 들었지?' 하면서 그 아저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웃음이 났다. 유쾌하고 우렁찬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늘 궁금했다.


어느 날 우연히 노랫소리가 들리기에, 창 밖으로 우연히 보게 됐다.

세상에, 풍만한 체구의 허스키한 음성의 주인공. 까만 선글라스를 늘 착용하고 다니신 분이 바로 정광태 아저씨였다.




아주 예전에 (다섯 살 무렵이다) 설악산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우연히 그곳을 여행온 '정광태 아저씨'를 만나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나는 당시엔 누군지 몰랐지만 눈썰미 좋은 우리 엄마가 바로 한눈에 알아보고 얼른 사진을 찍으라고 했고, 엄마는 정작 쑥스러워서 안 찍으면서도 나랑 언니는 그 아저씨 쪽으로 들이밀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싼 카메라로 사진 찍으시는 게 취미이신 우리 아버지께서는(IMF때 카메라도 파시고 또 잃어버리셨다 T_T) 사진을 멋있게 찍어주셨다. 지금도 친정집에 그 사진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난 인연이 있는 분을 여기로 이사 와서, 그것도 같은 단지 안에서 만나다니 이런 인연이! ㅎㅎ 반가웠다.




당연히 처음엔 누군지 몰랐다.

어떻게 알았냐면 그냥 성악을 좋아하시고 흥이 많으신 어르신인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늘 가곡이나 노래를 부르시고 동네를 군데군데 열심히 돌아다니셨기에 가는 곳마다 마주쳤다. 그분은, 경비 아저씨들과도 두루두루 다 친하시고 단지 내 빈 텃밭에는 각종 야채나 꽃을 심고 가꾸셨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수확물은 또 경비원 아저씨 분들이나,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님들, 이웃분들과 나누시기에 이미 우리 동네에서는 유명한 인물로 소문이 난 분이었다. 나도 이사오자마자 어린아이들 둘을 데리고 매일 뛰어다니고 놀이터에서도 하루 종일 놀다 보니 오갈 때마다 자연스레 그분과 마주칠 때가 많았다. 어르신께서는 마주칠 때마다 먼저 말도 걸어주시고 인사를 해주셨다.


아유, 아들 둘 엄마! 대단해! 멋져! 힘내요! 애들이 아주 잘 생겼네~ 에너지가 넘쳐. 아주 멋있게 클 거야!


누군지 몰랐지만 인사할 때마다 이렇게 칭찬과 응원을 세트로 해주셔서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볼 때마다 늘 말도 걸어주시고, 특히 늘 뛰어다니는 우리 아이들을 예뻐해 주시니 감사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누군지 몰랐는데, 어느 날 놀이터에서 본인의 '독도는 우리 땅' 사인 CD를 나눠주시는 게 아닌가?!


!


독도에 대한 퀴즈를 맞히는 어린이에게 CD선물을 해주시겠다면서 복작복작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모으고 계셨다. 나랑 우리 애들도 기웃기웃하다가, 그분의 정체가 '정광태아저씨'란 걸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퀴즈를 맞히지 못하고 아쉬워한 아이들에게도 아저씨는 선물을 나눠주셨다. 집에 오자마자 신기해서 폭풍 검색을 했다. ㅎㅎㅎ 어머어머, 맞구나! 고양시 「(사) 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 사무실에서 인터뷰한 기사를 찾아냈다. 2019년 기사여서 6년 전인데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주 예전에 내가 기억에도 어렴풋이 남아있었을 때 모습은 키도 무척 크시고 빼빼 마르신 체형에 외국인 같은 이목구비를 갖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사진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도 패셔너블한 반바지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계셨는데 그때도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사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정광태 아저씨의 태도 때문이었다. 너무도 흔쾌히 언니와 나를 환영해 주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며 사진을 찍어주셨다. 우리를 양 옆에 세우시면서 본인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우리와 눈높이를 맞춰주셨다. 쭈삣거리고 뭔가 어색했던 느낌에도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우리에게 칭찬해 주고 긍정적으로 웃어주셨기 때문이 아닐까. 그때도 아이들을 예뻐해 주셨는데, 다정하신 성격 그대로 우리 동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말도 걸고 인사도 먼저 해주시고 칭찬과 응원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여기에 이사 와서 어르신들을 통해 정말 많은 걸 배운다. 우리 아랫집 할머니께서도 제초 작업을 하거나 한 번씩 더위에 조경일을 거들고 청소하시는 경비아저씨들을 위해 늘 오미자차를 시원하게 가지고 가시거나 아이스커피도 타주신다. 우리가 내는 관리비 속에 그분들 월급이 포함된 돈이라고 생각하는 걸 넘어서(나는 부끄럽게도 이렇게만 생각해서 눈이 오거나 해도 먼저 빗자루로 앞마당을, 단지 내 나가는 길목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힘들고 고생하신 어른들을 챙겨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특히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릴 때, 눈길을 다 쓸어야 하고 미끄러움을 방지하기 위해 염화칼슘도 뿌리시는 등 할 일이 정말 많다. 수요일마다 있는 분리수거는 거의 주무시지도 못한 채 밤새 재활용품을 다시 분류하고 새로운 걸 걸어서 준비하고, 마무리가 안된 걸 끝까지 손보신다. 우리 신랑은 우리가 아파트에 살 때부터 이렇게 '분리수거'하나로 잠 못 주무시는 경비원분들이 너무 안쓰럽다고 아주 철저하게 분류하고 라벨 하나까지 전부 떼어낸다. 신랑 덕분에 분리수거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웠다. 작은 것 하나까지 조립을 뜯고 분해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 주도 신랑이 출장 기간이라 이렇게 간혹 출장 기간에만 내가 분리수거를 담당하는데 그때마다 눈썹이 진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경비원 어르신께서 늘 내 거를 대신해 주시겠다고 하시며 얼른 들어가서 아이들을 챙기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때마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서울에서 살 때는 한 번도 눈 여겨보기도 않았고 잘 몰랐는데, 어린아이들 키우고 쫓아다니느라 바빠서 몰랐는데 여기 일산에 이사 와서 이웃 간의 정을 느끼는 순간들이 참 많았다. 정말 그랬다. 전에 살던 서울 대단지 아파트와 달리 단지마다 나눠지고 어르신들이 많이 계셔서 그럴 수도 있지만 코로나 시기가 지나고 함께 견디면서 이웃의 정이 좀 더 두터워진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본다. 마스크로 얼굴은 가렸어도 함께 견디고 지내는 사람들이란 인식이 생긴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정광태 아저씨도 그런 분이었다. 늘 웃는 얼굴로 유쾌하게 먼저 인사해 주시고 특히 아이들에게 "멋지다, 잘한다!" 호방한 웃음소리와 함께 엄지를 척척 올려주셨다. 내가 힘들어할 땐 아이들에게 '엄마 말씀 잘 들어야지 훌륭한 사람이 된다'라고 한 마디를 꼭 덧붙여주셨는데 그때마다 우리 부모님 말고 누군가 어른이 해주는 그 말 한마디가 왠지 좋았다. 그런데 이제 정광태 아저씨께서 이사를 가신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다.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어디로 가시는지 여쭙고 인사를 드렸다. 항상 우리 아이들도 예뻐해 주시고 챙겨주신 덕분에 여기 와서 이웃분들과 지내는 것도 배우고 소통도 더 많이 하고 정말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웃과의 나눔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삿날 아침, 차로 짐 빼기도 바쁜 그 시간에 정광태 아저씨께서 마을 주민과 아이들을 위해서 하나씩 일일이 간식을 나눠주시는 게 아닌가. 맛있고 든든한 두유를 건네시며 이거 하나씩 가져가라고 아이들에게 "파이팅!" 하며, "정말 멋있어!" 란 말도 잊지 않으셨다. 이삿날 아침이 얼마나 분주하고 정신없는데 이렇게 먼저 이웃들을 한 분 한 분 챙기시는 건지 둘째를 등원하다 말고, 갑자기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정말 좋은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미리 나도 뭐라도 준비할걸, 아무것도 챙기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은 물론 나도 덕분에 떠나는 날까지 아저씨께 간식을 받았다. 처음에 힘겹게 아이들을 쫓아다니면서 지친 모습이 역력했던 내가, 아이들이 좀 크면서 태권도도 다니고, 이전보다 더 여유롭게 내 시간이 생겨서 전과는 달리 넘치는 여유를 뽐낸다며(슬슬 걸어 다닐 수 있게 됐다 ㅎㅎ) 덩달아 잘됐다고, 아주 굿굿 나이스를 외쳐주셨던 어느 날도 떠올랐다.



늘 나의 작은 감정, 지친 마음까지 살펴주고 응원해 주셨던 거구나.



독도는 우리 땅 이란 이 노래는 《유머 일번지》에 나오는 한 코너에서 개그맨들이 짧게 부르면서 시작했다고 한다. 이 노래로 음반까지 낸 배경과 이야기도 재밌지만 미국 영주권도 가지고 계셨지만(지금도 자식들은 미국에서 지낸다고 하셨다) 1999년에 그것을 포기하고 영구 거주지를『독도』로 옮긴 일화는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분의 강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희극배우로 데뷔하신 분 답게 언제나 유머러스하고 동네 곳곳 대소사에 모두 참여하셔서 즐겁게 인생을 사신 것 같았다. 날마다 긍정적인 이야기로 먼저 웃어주시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낯가림이 심한 동네 아이들도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도 그랬다.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뿐 아니라, 긍정의 에너지도 넘치는 멋진 분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이 세상에서 우리 동네에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예뻐해 주시고 늘 응원해 주셨던 어른들, 일산에서 그런 이웃분들을 정말 많이 만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나게 뛰고 움직이는 우리 아이들 덕분에 시끄럽고 힘드셨을 텐데도 같이 이야기도 나누시고 차도 대접해 주신 우리 일층 할머니도(고충을 이야기하고 나누면서 더 친해졌다. 돈독한 사이, 층간 소음이 또 다른 문제로 화두 되는 세상에서 나와 우리 아이들을 먼저 초대를 해주신 감사한 어르신이다) 이젠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귀엽다고 꽉 안아주신다. 아이들 간식이며 텃밭에서 따온 먹거리들 옥수수며 애호박, 오이 같은 것도 잔뜩 나눠주신다. 앞집 옆 집 할 것 없이 우리 아이들까지 챙겨주고 초대해서 아이들과 놀 테니까 나보고 더 쉬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 비가 오는 날엔 먼저 아이들 등굣길이(엄청 짧은 거리임에도) 정신없을까 걱정해서 직접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앞집 동생도 있다.



좋은 사람들을 이렇게나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잘 안다. 그전에 경비 아저씨들이 고생한다고 한 번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나를 떠올리면, 지나갈 때마다 우리 아이들 자전거도 잡아주시고 꼭 귀엽다, 예쁘다 한 마디씩 해주는 경비 아저씨 분들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 속에 보살핌을 느낀다. 친절한 마음, 마음을 담은 인사나 표현만큼 사소하면서도 힘을 주는 게 또 있을까.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움직이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키우는 거라 했는데 나는 그 말을 날마다 실감하며 살았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친정과 좀 더 멀어지며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친정과 멀어진 지금 친정 부모님께서 채워주지 못한 급한 일, 다급한 상황들도 이웃분들을 통해 잘 해결한 적이 많다. 병원에 가거나 급한 일로 아이를 직접 등원하거나 등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기꺼이 도와주고 오히려


천천히 와, 괜찮아! 그럼, 물론이지!


라고 대답해 준 따뜻한 사람들. 이웃사촌을 왜 이웃이 아니라 '사촌'이라고 했는지 이곳에 이사 와서야 깨닫게 됐다.



나도 그분들께 배운 대로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경비원 분들에게 간식도 나누고 분리수거할 때마다 더 꾸벅 인사를 드리고 산책하거나 이동시 잘 모르는 분들에게도 먼저 다가가서 인사한다. 와이파이나 인터넷 사용이 어렵다고 하시는 아래층 할머니께는 우리 집 와이파이를 연결해 드렸다. 그분들이 이유 없이 조건 없이 이렇게 이사 온 나에게 친절을 베푸시고 아껴주셨듯이 나도 할 수 있는 걸 나누고 들어주고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단지가 조경이 제일 멋있게 가꿔진 곳이란 이야기를 들었는데 눈이 올 때마다 그 풍경에 실감했다. 자연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풍경에! 놀러 온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마치 '숲 속의 집'이나 '펜션'에 놀러 온 기분이 들어서 고요하고 멋있다며,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풍경은 약과다, 따뜻한 나의 "이웃사촌"들에 비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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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기사(*2019년 10월 25일)에서 찾은 정광태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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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선 외롭지만 함께 가면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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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가면서도 챙기는 이웃사랑

#몹시 쓸모 있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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