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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Feb 14. 2023

자화상

내 소개 말고 내 이야기 한 번

 

내 이야기 좀 들어보오

내 소개 말고 내 이야기 한 번


일을 끝내고 시간이 남아 『자화상』을 읽었다. 신기한 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이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애는 나를 떠났다. 나는 검은색 셔츠를 입는다. 나는 열 살 때 제분소에서 손가락을 베였다. 나는 여섯 살 때 차에 치여 코가 부러졌다. 나는 열다섯 살 때 경오토바이에서 떨어져 엉덩이와 팔꿈치 살갗이 까졌는데 손을 사용하지 않고 뒤를 보며 길거리를 무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사는 없고 순서 없이 ‘나’의 기호나 체험, 생각 따위를 나열한다. 화자의 말을 따라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재미랄까? 파편적인 문장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자화상 한 점 같았다.

                                                              -장석주 박연준,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앵무새 죽이기'가 재밌어서 엄마가 읽던 책을 빼앗아 밤새 읽었다. 유치원 때 솔로몬 임금님 연극 가짜 엄마 진짜 엄마 역할 중에서 가짜 엄마 역할을 맡았다. 우리 집 창문으로 들어온 개미를 키우겠다고 가뒀다가 도망갈까 봐 날개를 뜯었다. 4살, 부곡 하와이에서 길을 잃다. 수족냉증이 심해서 10월부터 수면 양말과 장갑을 챙긴다. 수영장에서 나를 보고 두리번거리는 언니를 마주했다. 미아보호소라는 곳에 처음 가봤는데 그때 처음 본 외국인이 신기해서 말은 못 걸고 계속 쳐다봤다. 내 키보다 훨씬 큰 수영장 물에 발을 헛디뎌 빠졌는데 누군가 나를 구해줬다. 영어 회화 시간에 동원 참치라는 별명을 가진  '튜나' 영어 이름을 가진 남자애와 짝이 됐다. 길을 잃고 가족을 잃었던 4세 이후로 무작정 앞만 보고 걸었는데 엄마는 반 실신 상태로 날 찾자마자 혼내서 거기 있는 미아보호소 관계자들이 엄마를 꾸중했다. (그래서 울다가 속으로 고소해서 웃었다) 김정은 딸은 누구를 닮았지 생각했다. 아이를 낳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 전신마취를 했다. 레고를 가지고 놀다 지루해서 노란색 블록에 전부 다 다른 얼굴을 그려 넣었다. 나를 좀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산소마스크가 내 말 보다 먼저 얼굴에 닿았다. 5학년 때 '이지민' 좋아하는 남자애를 위해 엄마한테 특별히 맛있는 반찬을 부탁해서 도시락을 싸갔는데 점심시간에 다른 남자 애들이 전부 먹어서 엉엉 울었다. 배를 째는 고통보다 소변줄을 넣을 때 더 아파서 비명을 지르다 간호사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쉬는 시간마다 내 자리 근처로 친구들이 와서 아이들이 웅성거릴 때도 늘 마음은 외로웠다. 뭘 할지 모를 때 일기를 썼다. 수업 시간에 자다 일어나서 (공부를 하면 될 것을)할 게 없어서 일기를 썼다. 어느 날 일기 한 바닥을 전부 외롭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쓴 걸 스무 살 넘어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초밥을 좋아하는데 맛있는 걸 늘 제일 먼저 '맛있게' 먹었다. 피아노 치는 것보다 거기서 읽는 책이 재밌어서 책을 보러 새론 피아노 학원엘 갔다. 비 오는 날 비 맞고 뛰어 오는 걸 좋아했다. 미술 과외 시간에 그림보다 미술 선생님이 해주는 영화 ‘미저리’ 이야기 듣는 걸 더 좋아했다. 학원을 등록하고 한 번도 안 갔다. 엄마가 사 온 문제 은행을 한 장도 안 풀어서 뒤지게 맞았다. 선재 실내화를 사주려는 아빠가 문방구에서 오백 원도 아닌 천 원을 깎아서 너무 화가 나서 길거리에서 아빠랑 대판 싸왔다. 백 미터 달리기 전에 누군가 내 눈빛을 보면서 엄청 잘 달리게 생겼다고 말했다. 개구리 해부 시간에 온몸이 벌어진 채 심장이 팔딱팔딱 뛰는 개구리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대학교 때 원서를 넣으러 간 날 ‘인터뷰’라는 어두컴컴한 카페에서 나영 언니랑 밥을 먹었다. 서른 살이 될 무렵 헤어진 남자친구가 혹시 나를 데리러 왔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영국에서 미술관 투어를 할 때 너무 큰 그림에 압도당해서 그림 안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 이케아 화장실이 남녀 공용인 걸 알고 놀랐다. 백야를 경험했지만 12시에 밥을 먹고 늘 불을 켜고 자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었다. 친구 학생증으로 이대생인척 이화여대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도서관 근로 알바를 하다 꿀맛이라는 야한 책에 빠져 책 정리는 안 하고 쭈구리지도 않고 당당하게 사람 없는 자리에 앉아서 책을 보다 걸렸다. 아다치 미츠루의 팬이 되다. 드래곤볼 시리즈를 읽고 아이 태명을 ‘토리’라고 지었다. 아키라 토리야마의 토리. 시네타운 나인틴 방송을 깔깔 거리며 듣고 또 들었다. 아빠의 고집에 대항해 버럭 화낼 때마다 어디가 아프냐, 힘드냐는 말에 더 화가 나서 '아빠 때문이잖아'를 외쳤다. 오백일의 썸머에 나오는 주이 디샤넬에 빠졌다. 엄마가 내 옷차림을 지적할수록 일부러 더 튀게 입었다. 중학교 때 모두가 왕따 시키는 애랑 짝이 됐는데 정말 아무렇지 않아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러프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다. 우는 건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중학교 때 시험 주관식 답을 틀렸는데 맞았다고 채점이 돼서 확인하는 과정 중에 나도 모르게 틀린 거라고 말했다가 선생님의 과한 칭찬을 받았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선생님께 예쁨 받고 싶어서 나를 시킬 때까지 계속 손을 들었다. 카페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처음으로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스무 살 여름, 통영에서 이순신 장군이 보이는 광장에서 찬양을 했다. 어렸을 때 동화 구연대회에 나가서 일등을 했다.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보다가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 옷이 전부 콧물과 눈물의 알 수 없는 액체 괴물처럼 됐다. 대본도 사진도 그림도 없는 구연을 할 때 나에게 집중된 사람들의 조용한 입과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이름도 기억 안나는 중학교 국어 선생님께서 학교를 떠나실 때 나에게 유치환과 윤동주 시집을 선물해 주셨다. 선생님 아들 이름이 또렷이 기억난다. 산 마루해. 코이노니아 시간에 사회를 맡은 안재오빠랑 유치한 동전 마술을 준비했다. 내가 쓴 연극 대본이 매주 청년부 드라마팀에서 공연되는 게 즐거웠다. 연인에게 멋진 이별을 하고 싶어서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를 읽어주는데 ‘또라이 짓 그만하고 허세 그만 떨고’ 차에서 내리란 소리를 듣는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라는 구절이 누군가에게 허세로 들리기도 한다는 걸 깨닫고 미친년처럼 웃으며 안녕 빠빠이를 외친다. 송혜교랑 현빈이 진짜 사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엄기준과 사귀고. 처음 사귄 첫사랑 남자친구가 자기 친구들을 소개해준다는 자리에 슬리퍼를 끌고 나왔는데 친구들 10명을 데려와서 같이 노래방에 갔다. 구경희 선생님께 반듯한 글씨로 쓰인 답장을 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크리스마스 카드 꾸미기에 열과 성을 다해 주고 싶은 친구 목록을 만들었다. 내 생일에 반 애들 전체를 초대해서 오전 오후, 1부* 2부로 생일잔치를 하고 엄마가 하루종일 돈가스를 튀겨줬다. 선물 가져오지 않은 남자애들 목록을 적어서 기록으로 남겨뒀다. 결혼식 전날 식권 도장을 찍다가 인주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굴렀는데 무지개 마트에서 흔쾌히 대용량 인주를 빌려주셨다.  달리기를 맨날 꼴찌 했다. 전도연, 배두나가 나오면 영화는 물론이고 드라마까지 챙겨봤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떠들고 말 안 듣는 아이들 명단을 책받침에 적어서 선생님에게 제출했는데 반장도 아닌데 이걸 왜 했냐면서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연애도 안 한 미선 언니에게 내 부케를 꼭 주고 싶었다. 영국으로 처음 떠난 비행기가 폭설로 몽골 항공에서 회항했다. 주연이랑 고디바 초콜릿 드링크를 맛있게 빨아먹다가 전철을 타야 하는데도 초콜릿 음료가 남아서 전철역 앞에서 다 마셨다. 눈높이 수학을 끝까지 수료했다.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 아빠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언니와 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줬다. 장국영이 좋아한 페닌슐라 호텔에서 잉글리시 애프터눈 티세트를 먹었다. 입덧, 말할 수 없는 니글거림을 경험하고 전기밥솥에서 밥이 되는 냄새가 이렇게 싫을 수가 있구나 처음 알았다. 다이어트 한 번 한 적 없는데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가장 날씬한 몸무게가 됐다. 후각과 미각에 예민한 사람인 건 알았지만 임신 때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빠랑 기름을 넣으러 갔는데 주유를 하다 말고 앞자리 문을 연 고삐리가 그렇게 뜯긴 청바지를 어디서 샀냐고 물었다. 그때 나도 고삐리였다. 내가 뜯었는데? 난정이네 집에서 반건 오징어를 맛있게 먹었다. 정희네 옥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늘 불안했다. 영화 세븐에 나온 도서관 장면에서 G선상의 아리아를 듣고 바흐의 팬이 됐다. 겁은 많은데도 공포 영화가 좋아서 극장에서 공포 영화를 보다가 팝콘을 여러 차례 쏟았다. 남자 친구랑 헤어지고 보미네 집에 자면서 쓰리몬스터를 봤는데 밤새 와들와들 떨고 깔깔거리고 수다 떤 탓에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매일 지각 인생이었는데 돈 받고 일하는 직장엔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뛰었다. 걱정 없어 보인다는 소리에 버럭 화가 나서 상대방이 날 걱정할 정도로 따다다다다 흥분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집에 더 갇혀있게 될까 봐 100일도 안된 아이랑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17개월 아가랑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나라를 가건 이케아 구경을 재밌게 했다. 신부 입장 때 좀 천천히 걸어라, 그렇게 빨리 시집가고 싶냐는 아빠의 구박을 들었다.  공항에서 삼일을 자고 먹고 대기하며 여행 때 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 프리랜서 과외일로 돈을 벌었는데 돈 쓸 시간이 없어 울다가 억울한 마음에 무작정 백화점 들어가서 30만 원짜리 어그부츠를 샀다. 속눈썹 붙이는 재미에 들려 가짜 속눈썹을 열심히 부치고 다녔다. 경원대에서 일하는 미선언니를 보러 자주 갔는데 경원대 교직원 회식까지 가서 공짜 소고기를 얻어먹었다. 선율이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나에게 무말랭이며 깻잎장아찌, 내가 좋아하는 밑반찬과 빵을 싸주셨다. 맥주가 함께 딸려있어서 육아가 고된 거구나 웃었다.


와, 이거 끝이 없고 중독성이 있다. 지금 한 시간 넘게 툭툭 내뱉고 쓰고 있는데
대체 어디서 끝내지.
-마음의 소리 / 잠시 멈춤-


난쏘공을 필사하면 맞춤법 띄어쓰기 실수를 덜한다고 해서 대학생이 되고 다시 읽다가 엉엉 울었다. 슬퍼서 필사를 못한다는 핑계로 두 번 읽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책은 매번 같은 대목에서 꼭 눈물이 난다. 첫사랑은 나보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이었는데 그 덕분에 아멜리 노통을 알았고 바베트의 만찬이란 멋진 책을 선물 받았다. 나를 좀 이상한 애라고 표현한 사람들 옆에 꼭 내 친구가 있어서 ‘나경이 그런 애 아닌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흐뭇했다. 영국 출입국 관리소에서 내일 내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도장을 경쾌하게 찍어줬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보다 내가 아는 사람이 귀하고 소중하다. 후배 용하가 속눈썹 공장을 한다며 특이하고 다양한 속눈썹을 왕창 가져다줬다. 삼성갤럭시 노트를 들고 다닐 때 외국인들이 주머니에도 안 들어가고 네 손 보다 더 큰 핸드폰을 왜 들고 다니냐고 한 뒤로 아이폰 미니만 쓴다. 우리들의 글루스로 매일 글을 쓰는데 노트북이 있었음에도 미친 듯이 손가락을 불태워 핸드폰으로 전부 썼다. 외국인 친구 게리가 통일 전망대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같이 눈물이 났다. 주영 선배가 들고 다니는 카메라가 좋았다. 아무 데서나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찍어주는 모습도. 그런데 선배님 사진을 정작 한 장도 받은 게 없다. 푸하하하. 이반 교수님이 내가 쓴 희곡이 엉망이라며 아이들 앞에서 글 뭉치를 던져 버렸다. 솔방울 베이커리가 좋아서 세 번이나 더 방문했다. 언니가 숫자 8을 거꾸로 쓴다고 제대로 쓰라고 아빠가 호통치며 매를 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8을 거꾸로 써도 내 아이를 혼내지 않겠다고 6살에 다짐한다. 다양한 펜과 예쁜 편지지, 개성 있는 엽서를 살 때 가격도 안 본다, 나의 플렉스! 야무지게 살라는 엄마의 꾸중에 야무진 게 대체 뭔데? 심통이 났다. 희경이 희곡 속 문둥이라는 표현이 특정 장애를 가진 사람을 비하한다며 한센 씨 병이라고 써야 한다는 (교수님의) 대목에서 아이들이 놀리듯 노래하는 저 대목에서 한센 씨 병이라는 말도 등장하기 이전 시대 희곡에 저 표현을 써야 하나 고민하고 찡그리다. 마장동에서 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고 사격을 했는데 우리 신랑이랑 지윤언니가 전부 다 맞췄다. 야구장에서 스트라이크가 좋은 건지 홈런이 좋은 건지 묻는 정희 말에 진지하게 고민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엄마가 매일 해주던 정성스러운 집밥이 제일 맛있다는 걸 깨달았다. 예찬이랑 함께 본 라이언킹 공연장에서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 내가 보고 싶은 마술쇼는 이은결이었는데 최현우 마술쇼만 두 번 봤다. 상실의 시대를 읽다가 미도리가 되고 싶었다. 신랑이 춤을 췄는데 오오, 그루브가 살아있다는 걸 알았다. 하루키를 좋아해서 사진을 오려서 지갑에 넣고 다니다 친구들의 놀란 표정을 읽었다. 일본 작가에 빠져서 읽는데 같이 일하는 미옥 언니에게 추천해 줬다. 에쿠니 가오리 소설이었는데 읽다가 그래서 뭐? 하고 싶은 말이 뭐고 남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말에 아끼는 책을 함부로 빌려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선재가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뜬금없이 엄마 사랑해요,라고 하는 말이 어쩐지 애처롭게 들린다. 샤워를 하다가 배밀이로 내 발 밑 물에서 첨벙거리는 아가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다양한 손글씨 따라 하는 게 재밌어서 여러 개의 글씨체를 연구해 본다. 수업 종이 쳐도 계속 설명하는 김인섭 교수님이 짜증 났는데 내 시를 칭찬해 준 이후부터 급 호감으로 변한다. 감자탕을 좋아하는데 고기가 아니라 거기 들어있는 우거지가 제일 맛있다. 아이가 숫자 8을 이상하게 써도 다짐한 게 있어서 혼내거나 지적하지 않는다. 어른들이랑 말하는 걸 좋아해서 늘 졸졸 따라다니며 수다를 떨었는데 구역 예배 시간에 엄마가 방에서 나오지 말고 꽁꽁 숨어 있으면 상을 주겠다고 한다. 현욱이 엄마가 만들어 주신 수박화채에는 참외와 복숭아가 들어 있어서 놀랐다. 현욱이 아줌마네 마당과 가구들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엄마를 마중 가려고 삼덕마을 오르막 길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엄마는 나 학교 갔을 때 내가 보고 싶었어?라는 선재의 말이 사랑스럽다. 매일 집밥만 먹어서 엄마가 해준 요리보다 엄마가 사준 떡볶이랑 오징어 구이를 맛있게 먹었다. 신혼 초 신랑 양말을 널다가 이걸 왜 하나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 서울예전 면접을 보면서 내가 미리 준비한 대답을 그대로 하며 이건 완전 합격감이라고 마음으로 쾌재를 불렀다. 미끄럼틀은 무서워서 잘 못 탔지만 앞에 나가서 춤추는 건 무섭지 않았다. 시계도 달력도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봤다. 쌀국수를 좋아해서 300만 원도 넘게 먹은 쿠폰으로 여러 차례 월남쌈을 먹었다. 오글거리지만 문학에 빚졌다고 말을 한 나는 합격이었다. 공부를 잘했던 언니에 비해 한글도 안 떼고 학교에 갔는데 글씨도 예쁘고 발표도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다. 정우성 스시가 문 닫기 전 얼짱 차 안에서 진숙이랑 셋이 초밥을 흡입했다.-마지막 만찬이었다- 얼굴이 갈리고 무릎이 멍들어도 울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킥보드를 타는 둘째를 경이롭게 바라봤다. 선재를 샤워시키다 놓쳐서 물에 0.1초 정도 빠진 아이를 안고 물을 먹었을까 신랑과 병원으로 달려갔다. 맘리프레이밍 낭독회 전 선율이랑 선재가 다투다가 작은애가 코피가 터졌다. 스무 살 때 머리 탈색한 걸 숨기려고 밤마다 머리 감는 척을 하고 수건으로 덮었다가 아빠한테 걸렸다. 진아한테 운동장에서 농구를 배운 시간이 제일 재밌는 체육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단어를 일기장에 매일 빼곡히 때때마다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등장하는 단어가 ‘돌고래’였다. 영국에서 캔들라이트 서비스를 두 번이나 드렸다. 얼어 죽어도 겨울에도 아이스 라테만 마신다. 길을 잘 잃어서 엉뚱한 곳으로 자주 가는데 그러다 보물 같은 장소를 발견하기도 한다. 오늘 글을 쓰면서 알았다. 부곡 하와이에서 4살도 안된 나이에 길을 잃고 무조건 직진으로 사람을 찾으러 가던 그 습성이 남아서 방향치가 된 건 아닌가 하고. 요즘 이강민의 잡지사를 듣는데 재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곽재식 작가의 글씨를 글씨체만 보고 맞춰서 신기했다. 지진 속에서도 갓 태어난 아가가 엄마인지도 모를 누군가의 머리카락 뭉치를 꼬옥 쥐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이랬다, 저랬다.

넘어졌다, 일어났다.

슬펐다, 울었다,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웃었다.


이상하고 신비로운 이 세계가 아직 궁금하고

내가 살아온 조각을 기록하고 싶은


이것이 나의 자화상.


글쓰는 오늘 Season 10 우리들의 글루스 II

‘나의 자화상 쓰기’


첫 번째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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