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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Feb 16. 2023

인천 공항 가는 길

-공항 한편에 꾸며놓은 작은 정원, 공항에서 시간 보내기

인천 공항을 좋아했다. 좋아한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비행기가 날아오는 것만 봐도 설렜다. 거대한 사이즈의 비행기를 직접 눈앞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 


장거리 여행을 하기 전날이면 꼭 몸이 으슬으슬 아팠는데 몸살처럼 오한도 느껴지고 감기 기운이 몰려왔다. 일을 미리 왕창 해놓거나 여행 가서 있을 생각에 기대감, 긴장감 때문인지 짐을 다 싸놓고도 

에이, 가지 말까, 그냥 여기 이불속이 제일 천국인데

이런 마음을 가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주연이랑 홍콩 가기 전 날에도 처음 영국에 가려고 비행기를 탔던 그 겨울에도 역시 같은 증상이 찾아왔다. 하지만 웬 걸?!


공항으로 떠나는 고속버스 위에서 리무진만 탔는데도 벌써 몸이 붕 뜨는 게 몸 컨디션을 떠나서 마음부터 즐거워지는 시간을 여러 번 체험했다. 비행기를 안타도 비행기 '보러' 공항에 간다는 사실 만으로도 설렜다. 


언니에게 가기 위해 처음 간 런던 히드로행 비행기 회항 사건


오랫동안 못 본 언니와 사랑스러운 조카들을 보기 위해 떠난 비행기가 연착도 아니고 취소도 아니고 비행기를 타고 멀리멀리 날아갔다가 다시 인천 공항으로 돌아왔다. 몽골 항공쯤에서 헤비스노(폭설)때문에 히드로 공항에 착륙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세상에 차도 아닌데, -자동차, 기차라면 그냥 멈췄겠지- 비행기는 내리질 못하면 그냥 다시 돌아가야 하는구나 속수무책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울고 있는 영국인들 사이에서 기내식, 먹을게 엄청 많이 나왔다. 이미 식사가 한 차례 나왔음에도 먹을 걸 주고 또 줬다. 성난 군중을 달래는 데 달달한 간식만큼 좋은 게 없는 걸까. 간식으로 나온 피자와 과일을 먹고 어수선한 와중에 화이트 와인까지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화난 건 화난 거고 짜증은 짜증이고 일단 먹어야지, 내가 이렇게 단순한 미식가, (<) 대식가다. 곧이어 한 차례 더, 남은 저녁 식사가 또 나왔다. 


사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지방에 산다고 한다면 하얏트 호텔에서 숙박을 해결했을 것을 그런 상황을 전혀 몰랐던 나는 공항 근처, 서울에 산다고 하니(개봉동) 그럼 집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새벽에 다시 공항에서 대기를 하라고 했다. 출발하는 비행기가 언제 있을지도 모르고 어떻게 출발할지도 모르겠다는 답변과 함께. 



아침에 눈 뜨자마자 새벽부터 머리도 못 감은 채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공항' 노숙자가 됐다. 터미널이란 영화에서 나라 잃은 주인공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가 크로코지아, 자신의 나라가 분쟁으로 유령 국가가 되어 나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된다. 이리저리 공항을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사귀기도 하고 거기서 밥도 얻어먹고 하루를 지내는데 나도 아무 소득 없이 삼일을 그렇게 공항에서 보냈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공간, 잠깐 있을 땐 그 감격스러운 장면만 봐도 뭉클했는데 삼일을 오고 가니 사람들을 기웃기웃 관찰하기 시작했고 공항 택배 부치는 장소에서 유창한 실력으로 영어 하는 사람들 발음 하나에도 귀 기울이게 됐다. 면세점 직원이나 스타벅스 매장 일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공항에서 일을 하려면 무조건 영어를 잘해야 하는구나,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멋진데! 나라면 공항 어디에서 일할 수 있을까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공항 밥 값은 왜 이리 비쌀까. 어디 한정식 집에서 나오는 것도 아닌 딱 우리 집 밥상 차림 같은 비주얼인데 기본 3, 4만 원이나 나갔다. 그땐 속이 헛헛하고 스트레스가 높았는지 비싼 밥도 주저 않고 먹었다. 언제 내 이름이 대기 명단에 오를지 몰라서 그것도 후다닥 먹고 커피 하나를 들고 항공사 앞에서 또 죽치고 대기한다. 음악을 듣고 다이어리를 쓰고 잡지 한 권을 읽기도 했다. 아,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은 만나러 가는 길부터 험난하구나, 머피의 법칙이 있다면 이렇게 걸린 걸까 싶었다. 남들은 해보지도 못한 경험을 나는 내 돈 주고 돈을 쓰면서 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뭐, 자식의 졸업식, 결혼식, 휴가 시간을 전부 놓친 사람들에 비하면 난 그래도 양호한 편이지 않을까 스스로를 위로했다. 거기다가 내가 기다리고 대기하는 장소가 혹한의 추위에 바깥도 아니고 화장실마저 쾌적한 공항이라니!-나는 깨끗하고 깔끔한 화장실이 중요한 편이다- 누워서 잘 수도,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고 집보다 더 좋은 TV, 체험관이 잔뜩인 곳이다. 그때는 인천 공항이 생긴 지도 얼마 안 될 때여서 전부 다 새것 같고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공항에서 대기하는 건 그리 나쁘지 않구나, 어쩌면 좁고 긴장된 비행기 내부와 닮은 듯 다른 듯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구나 싶었다. 


내가 그때 좋아한 공간은 한옥으로 꾸며놓은 휴게실 같은 공간과 사람이 제일 없었던 끝 게이트 쪽 침대 같은 의자 자리였는데 실제로 거기에 다리를 쪼그리고 잠든 적도 있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얼굴엔 언제나 피곤이 가득했고 뚱뚱하고 큰 가방 속에는 즐거운 추억이 가득해 보였다. 모두 잠시 잠깐 스칠 인연과 얼굴들이지만 '비행기'를 탄다는 건 역시 특별한 경험이고 언제 추락할지도 모를 그 커다란 기계에 몸을 맡기고 12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데-나는 하늘 정 가운데서 조금이라도 비행기가 흔들리면 사실 추락 하는 아찔한 생각을 먼저 한다- 우리는 갔다가 돌아왔으니 좀 더 특별한 인연인 듯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서로 전화번호도 교환하고 명단이 떴냐, 밥을 먹었냐 물어보기도 했다. 

그래, 나도 곧 저렇게 잔뜩 쇼핑한 짐을 이고 지고 꽉꽉 채워서 피로한 얼굴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겠지. 머지않았어.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선재랑 아빠를 기다린 공항 곳곳의 공간


신랑이 출장을 자주 가서 선재랑 가끔씩 공항에 나갔다가 입국하는 신랑을 깜짝 놀라게 해주곤 했다. 나의 끊임없는 공항 사랑에 선재가 좋아하는 제2 여객 터미널에 있는 쉑쉑버거도 처음 맛봤고 2층 장소 홀로그램이 있는 스크린 앞에선 두 시간 넘게 논 적도 있다. 동양화, 자연의 풍경, 우리나라 곳곳 문화재나 문화유산으로 화면이 바뀌는데 노는 애는 선재 밖에 없었다. 그래서 별로 특별한 일이 없을 때도 공항에 가서 커피랑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서 거기서 놀았다. 

어떤 날은 1층 로비 전체를 캠핑장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나서 둘이서 텐트에서 책을 읽고 마치 캠핑 온 것처럼 소꿉놀이를 하고 논 적도 있다. 공항에 대기하며 그렇게 구시렁구시렁 욕하고 짜증을 냈으면서도 미운 정이 팍 든 걸까. 


나는 공항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부정할 수가 없다. 


이런 게 흔하지 않던 시절, 아이와 내가 좋아한 공간
짠! 멋진 피크닉 상차림
경복궁(영상)에서 한참 뛰어놀았던 5살 선재


공항에 못 가본 지 어언 3년이 넘는다. 둘째 선율이가 태어나고 공항에 가고 싶어서 백일도 안된 아가랑 제주도에 갔더랬는데. '제주' 공항은 겨울에 가도 제주도만의 후끈한 냄새와 분위기가 있다. 대놓고 관광지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곳곳 야자나무들도 반갑고. 


훌쩍 공항에 가보고 싶어서 이번에 대전 여행 가기 전에 주말에 온 식구가 인천 공항으로 놀러 갔는데 비행기 가상 체험하는 장소에서 오래도록 재밌게 놀았다. 우리가 자주 가던 공항 근처 밥집 '은행나무집'에서 굴 솥밥과 고등어구이, 해물파전을 시켜 먹고 왕산 해수욕장에 발도 담갔다. (이 겨울에?!) 

제일 편안한 공항 의자에 앉아서 춘식이와 고흐 그림이 잔뜩 나오는 영상을 재밌게 보고 한옥으로 꾸며진 장소에서는 선율이랑 꼭꼭 숨어라 숨바꼭질 놀이도 했다. 아이들에게 공항은 어떤 곳으로 기억될까, 궁금하다.


주연이랑 처음 탄 '타이 항공' 비행기 보랏빛 색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내에서 들으라고 나눠준 이어폰 케이스마저 보라색이었던 타이 항공. 내가 탄 비행기 중 가장 작은 비행기는 라이언 에어였는데 비행기 연결 다리가 없어서 직접 간이 계단으로 성큼성큼 올라간 기억도 난다. 그날, 스웨덴 가는 길을 지각할까 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형부가 돈을 더 주고 바로 패스하는 공간으로 가라고 동전을 흩뿌렸던 기억도. 

온통 영어로 쓰여있는 공간에서 트레인도 타고 다시 실시간 이동을 해야 하는 내내 긴장을 해서 그런지 사실 외국 공항은 별로 인상 깊지 않지만 공항을 나서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좋은 기억이 있다. 하하하하. 외국은 공항을 벗어나야 행복하다. 나의 여행과 한 세트가 돼버린 인천공항. 무작정, 맹목적으로 기다린 장소가 내가 사랑하는 장소로 바뀌는 데는 단 삼 일이면 충분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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