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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Feb 03. 2023

여우난곬족

[*창비/ 홍성찬 그림]

여우난곬족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 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넛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山)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 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 싸움 자리 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가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명절이 되면 왜 그리 다들 꾸역꾸역 시골로 내려가는 건지, 귀향길 귀성길 차량 혼재 교통체증 이런 것과는 전혀 친해지고 싶지,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영국에서 온 언니랑 엄마, 우리 식구들 다 같이 와르르르 영주 서릿골 시골 할머니댁에 갔다. 

그런데 이게 아뿔싸! 

역시나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구나 싶었다. 새벽 5시, 동이 트기도 전에 출발했는데 6시간 동안 도로에서 해 뜨는 걸 보고 어린아이들과 차 안에 갇혀있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릴 적마다 방학 때면 언니랑 둘이서 외할머니 댁에 꼭 갔는데 나는 언니랑 언제 또 이렇게 할머니를 뵈러 함께 갈까 싶었고 무리가 되더라도 이번명절엔 꼭 가고 싶었는데 도로에 발이 묶여 버리니 내가 운전하는 것도 아닌데 피로가 마구 몰려왔다. 전부 입 벌리고 자는 우리들을 보고 잠을 참아야 하는 신랑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었겠지. 새벽 운전에 꽉 막힌 도로라니, 신랑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휴게소에 들러서 추억의 꽈배기 과자며 뜯어먹을 오징어, 이것저것 잔뜩 사 왔지만 도통 흥이 나지 않았다. 알뜰한 엄마도 처음엔 모처럼 함께 가는 시골길에 들뜨셨는지 휴게소 편의점에서 삼만 원어치나 간식을 사 오셨다. 언니랑 내가 사 왔으면 돈 아깝다 할 것도 자식이며 사위, 손주 먹거리를 살 때는 하나도 아깝지 않은 우리 엄마. 하지만 차는 도무지 앞으로 나갈 생각이 없었다. 도로는 막혀있고 애들은 양쪽으로 치이고 언니가 선율이를 내내 안고 갔음에도 좌석은 불편했다. 


다들

왜 명절에 저렇게 차 막히는데 내려가는 거야? 미리미리 찾거나 자주 보면 되지, 


늘 꽉 막힌 귀향길 교통체증을 (뉴스로) 보면서 내가 한 말이다.  내가 그런 일을 ‘절대’ 안 할 거라곤 자만하지 말아야지. 인생이란 참 어찌 될지 모르는데.


별거 없었다. 

할머니 댁에서 할머니가 차려준 뜨신 시골 밥을 '함께' 먹었다. 신랑과 나영이 언니는 시골 할머니 된장국을 세 그릇을 더 퍼서 먹고 나는 할머니의 하얀 배추 무침에 누룽지 숭늉까지 한 사발 다 마셨다. 안부를 묻고 할머니 집에 쌓여있는 물건들도 구경하고 꾸벅 졸다가, 뜨신 방바닥에서 벌러덩 자다가, 뒹구르르 다시 옥수수를 까먹고 또 차가 막힐세라 바로 올라가야 하는 하루. 참, 나는 중간에 선율이랑 동네 한 바퀴를 돌고 할머니가 타준 커피를 맛있게 후루룩 한 잔 마셨다.


돌아오는 길은 4시간이 채 안 됐나. 가는 길이 거북이걸음이어서 그런지 올라오는 길은 오히려 가뿐하게 느껴진 거리, 뻥뻥 뚫린 도로와 달리는 차 안에서 보는 풍경은 분명 아침과는 달랐다. 옆에는 시골로 내려가는 꽉 막힌 차들로 가득했다. 그런 막힌 도로를 보니 우리는 '달린다'는 사실에 기분도 살짝 좋아지고. (옆 차선은 막히는데 내 차가 뚫린 차선으로 달리면 은근 기분이 좋단 말이지.ㅎㅎ)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차 안에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할머니 동생 항구 삼촌 이야기가 나왔다.

나경아, 넌 전혀 기억이 안 나? 나도 얼굴은 다 까먹었는데 항구삼촌이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고 하회탈같이 항상 웃는 얼굴이었어.


나는 늘 이름으로만 기억하는 엄마의 외삼촌, 항구삼촌. 나보다 한 살 더 먹은 언니는 삼촌의 얼굴을 기억하는구나. 설명하는 언니 이야기를 가만가만 듣다가 나도 궁금해진 엄마의 이모들(외할머니동생) 나에겐 이모할머니들 근황이 궁금해졌고 나와 동갑인 미희와 아슬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간 왕래가 없었던 사촌들의 이야기를 물었다. 광재 삼촌과 혜정이이모, 미경이언니, 미현이언니, 부산고모와 큰 엄마, 사촌언니 이야기까지. 그렇게 가족들과 일가친척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여우난곬족. 


나는 백석의 시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이 시가 제일 좋다. 백석 시인에게 반하게 된 계기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시였지만 시집을 읽으면서 도무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긴긴 호흡이 이어지는 '여우난곬족'이 읽을수록 더 좋았다. 시골에서 명절을 보내는 아이가 아침부터 늦은 밤, 다음 날까지 보낸 이야기를 세세하게 적은 평범한 일기 같은 이 시가 왜 그토록 자꾸 생각나고 좋았던 걸까. 남의 일기장을 들춘 것 같은데 이런 추억이 펼쳐질 거라곤 상상도 못 해서일까. '현대'를 지나 '현재'를 사는 나에게도 같은 쥐불놀이나 제비손이구손이가 뭔지 몰라도 저런 비슷한 뭔지 알 것 같은 추억이 분명 있기에 자꾸자꾸 생각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컴퓨터게임을 처음 한 곳도 큰 집이었고 킹콩 게임을 하다가 사촌오빠가 자꾸 같은 편인 나를 죽이고 자기 에너지를 채우는 게 열받고 약 올라서 건물이 아닌 서로를 주먹으로 때린 격투게임이 됐던 일도 사실은 쥐불놀이만큼 재밌는 추억이었구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명절날의 풍경이 생각나고 

그 시간들이 

나에겐 지루하고 집이 아니라 불편하고 싫을 때도 있었는데 


또 그걸 뛰어넘을 만큼 나에게도 뭔가 좋았구나 싶다. 




어린 시절 큰 집에 가면 그렇게 맨날 끓여준 뭇국이 너무 먹기 싫고 상다리 부러지게 꽉꽉 채워진 상에서도 먹을 게 없다며 늘 투덜투덜 밥 먹기도 싫었는데 어른이 되니 소고기 뭇국이  왜 이리 맛있는지 겨울엔 소고기 뭇국만큼 시원하고 따끈한 게 없구나 싶다. 소고기가 왕창 들어간 그 국을 큰엄마와 우리 엄마 두 분이서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하신 건지, 상마다 놓여있는 잡채와 전에 쏟은 정성은, 우리가 윷놀이며 어른들 고스톱 놀이를 할 때면 간식으로 주시던 떡과 감주, 다과들도 전부 그냥 나온 게 아니란 걸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 시집오고서야 알았다. 심지어 나는 지금도 시댁에서 설거지 한 번 한 적 없는데 (늘 손님처럼 대접받고 얻어먹고만 간다) 제대로 상차림이나 뒷정리를 돕지 않고 밥상에 수저를 겨우 놓으면서도 투덜거렸던 나의 어린 시절, 하루종일 설거지로 보냈을 큰 엄마, 우리 엄마, 사촌언니들이 생각나서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설거지 한 번, 일손 한 번 돕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했구나 이런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엄마는 장성, 우리 친할머니가 계신 곳에서 명절을 보내고 꼭 통리 외할머니 댁으로 이동을 했는데 사북에서 통리까지 눈이 한참이나 쌓여 아빠 허벅지만큼 쌓인 눈더미 속에 내가 푹 빠진 적도 있다고 한다. 너무 어렸을 아가 때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어린 시절 명절 하면 '눈', '눈', 가득 쌓인 눈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온통 하얀 눈밭만큼 하얗고 추웠던 공간, 하지만 친가도 외가도 나에겐 등 따시고 배부르고 복작복작 도란도란 한 기억이 주를 이룬다. 엄마가 통리 할머니 댁에선 늘 집안일을 쉬고 마음이 편해 보여서일까, 언니와 나는 외할머니댁에서 편안히 쉬고 할머니 밥을 얻어먹는 엄마 얼굴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시끌벅적했던 사촌언니 오빠들과의 놀이가 좋은 한편 나의 정서적 편안함은 엄마의 쉼에서 온 기억도 난다. 할머니도 맏딸이 먼 길을 왔다고 이거 저거 귀한 걸 차려주시고 우리들을 예뻐해 주셨으니 세세히 기억이 나지 않아도 나는 시댁을 돌아 친정으로 향하던 엄마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던 걸 아주 어린 나이에도 느낀 것 같다. 엄마의 시댁, 나의 할머니 댁은 늘 친적과 사촌 언니 오빠들로만 해도 북적인 곳이었는데 눈싸움 놀이를 하면 서로 깍두기인 나를 자기편으로 오게 해 줄라고 나는 인절미나 떡 같은 걸 내 입으로 넣어주는 사람들 편에 들어가겠다고 왕노릇 했던 것도 떠오른다. 제일 어린 깍두기 주제에 말이다. 내가 친척집에선 제일 나이 어린 막내였다. 막내아들인 우리 아빠의 막내딸이었으니까. 

복작거리고 매번 자기 방을 내줘야 했던 사촌 언니 오빠들이 우리를 위해 비디오며 만화책을 왕창 빌려다 주고 과자를 사주던 기억, 그 기억의 끈은 사촌언니가 20살 넘어 은행에 취업해서도 영화를 보여주고 같이 재워주고 맛있는 걸 먹여줬던 기억으로 이어진다. 종숙언니 고마워.


아,...

별 거, 안 해도 진짜 같이 시간을 보낸 것만으로도 

별거구나. 


단단한 동지애


언니

엄마랑 우리 신랑, 내 아이들까지

좁은 차에 6시간 넘게 갇혀 있다 보니 왕복 시간으로 따지면 11시간이 넘는 동안에도 함께 달려오고 서로 도닥도닥할 수 있는 동지애. 


명절마다 만나던 우리 큰집, 백내장으로 실명하셔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던 우리 할머니가 늘 벽을 더듬더듬 짚고 와서 만화책을 읽으며 키득키득 거리는 우리 옆에 앉아서 성경책을 읽어야지, 성경 책 속에 답이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만화를 보면서도 지금 성경을 읽고 있다고 지금 나영인 마태복음, 자기는 누가복음, 나경이가 요한복음 하나씩을 재밌게 읽는 중이라는 동훈 오빠 말에 나도 깔깔거리며 웃었던 철없음이여! 앞이 보이시지 않았지만 늘 반들반들 고왔던 우리 할머니 손, 쪽진 머리와 비녀가 생각난다. 


외할머니댁, 방학 때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계신 통리로 언니랑 둘이서 참 많이 갔는데 그때마다 우리를 눈 쌓인 곳에서 놀게 해 주시고 산토끼도 잡아주시고 황지 큰 연못도 보여주시고 저기가 황부자가 빠져버린 못이라고 설명해 주던 우리 할아버지, 진짜인 줄 알고 황부자 며느리의 동상을 한참이나 쓸어보고 오소소 몸을 떨었던 기억이 난다. 탄광촌 목공소에서 손가락이 다 잘려버린 외할아버지 손이 낯설면서도 늘 불쌍해서 그 큰 손을 내내 쓰다듬어 만져봤던 나의 유년시절이 자꾸 떠오른다. 우리 할아버지, 큰 소같이 큰 눈을 꿈뻑이며 늘 새벽부터 도시락 두 개와 도시락 컵라면 두 개를 싸서 나가신 우리 할아버지. 통리 할아버지도, 장성 친할머니도 이 제 모두 이 세상에 안 계신 나의 외조부, 할머니시지만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하신 분들. 나는 내려가는 그 길 내내 하나도 거창한 건 없었던 하루지만 내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그냥 나의 뜻 나의 마음대로가 아닌 나의 일가, 가족이 있었기에 또 '내'가 있다는 거창함과 가슴 벅참을 느꼈다. 명절이 이토록 나에게 뜻깊고 감사한 시간이 될 줄은 몰랐다.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오면 늘 황지 시내 가장 맛있는 짜장면 집에서 해물 쟁반 짜장면을 사주고 집 앞 얼음길을 뚫고 가야 하는 큰 마트에서 과자를 매일 한아름씩 사주신 외할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신기하지, 막히는 차를 타고 할머니를 만나고 다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돌아오는 차는 그나마 빠르다고 좋아하면서, 자주 보지도 못한 미경이 이모, 이모네 사촌들, 고모할머니댁, 부산 고모, 큰 고모, 또 아빠의 사촌들, 친척들, 이제는 진짜 별이 된 나의 외할아버지, 우리 친할머니, 종수삼촌, 별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꾸자꾸 생각났다. 이제는 장례식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치고  선율이를 보며 이렇게 컸냐며 놀라워할 걸 생각하니 마음이 서글퍼졌고 그럼에도 여우난곬족처럼 따스한 무이징게국 같은 아련하고 포근하기만 한 추억이 떠올랐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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