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ain's Got People

큰 집 작은 문 ① 작은 문 큰 뒷마당

by 앤나우

나는 '영국인'이라고 하면 내가 좋아하는 책,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큰 숲 속 작은집』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 유명한 아동문학 시리즈는 미국 서부 개척 시대가 배경인데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영국인들이 어쩜 그리 크고 화려하고 멋있는 집에 살면서도 그렇게 '작은 문'을 가지고 드나드는지 문을 볼 때마다 신기하기도 왜 그런 걸까 늘 궁금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겨울과 크리스마스만 되면 떠오르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도 이 작은 문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영국 총리가 관저에서 나오는 장면에서도, 그 유명한 스케치북 고백씬에도, 총리가 나탈리의 집 앞으로 찾아간 장면에서도 작은 현관 문이 나온다. 누가 봐도 반짝반짝 새것처럼 잘 닦인 문을 열면 좁다란 복도나 바로 보이는 계단이 펼쳐지는데(실제로 대부분 영국 집들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작은 문 앞으로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지, 영화를 다시 보면서 작은 문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세다가 맞아, 맞아, 영국은 집은 큰데 문이 참 작았어!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영국 사람들은 분명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해 평균키도 큰 편이다. 다들 길쭉길쭉하다. 오히려 창문은 우리나라보다 넓고 큰 편인데 (창문도 온전히 젖혀지지 않고 늘 반만 열리는 구조가 많다) 문은 뭔가 여기가 문인가 싶게 지나칠 뻔할 때도 있다. 그만큼 유심히 안 보면 '대문'이란 생각이 잘 안 든다. 언니가 사는 윔블던에서 윔블던 '힐스' 쪽엔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예쁜 집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호수와 백조를 보러 아이들과 종종 소풍을 가곤 했는데 과연 부자들이 사는 여기의 문은 또 다를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문마다 깨끗하게 페인트칠된 색깔이 쨍 하니 예뻤다. 심플하고 모던한 장식은 개성 있고 고급스러웠지만 거대해 보이는 저택에서도 큰 집에 비해 작은 문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런 걸까.

사실, 이렇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메모를 해뒀는데, 정작 영국인들을 만나서 이걸 직접 물어본 적은 없다. 까비... (하지만 덕분에 내가 영국인들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본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마냥 안타까운 상황만은 아니다. 어쩌면 그 사람들도 늘 살고 있는 공간이기에 나처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렇기에 이 글은, ~이럴 것이다, ~이런 이유일 것이다, 싶은 순전히 내 생각뿐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문은 작은데 누가 봐도 아주아주 커다란 집에 살고 있는 영국 사람들.



일단 우리나라만 해도 옛날부터 궁궐 같은 기와집이나, 대궐 같이 잘 사는 집엔 일단 화려하고 커다란 대문이 떡 하니, 달려있다. 여기서부터 이제 큰 집이 시작될 거라는 예고도 하고, 자랑도 하고, 뭐 이런 속내가 숨겨지기도 한 커다란 대문. 끼이익 하고 열리는 부잣집 대문들을 떠올리는 건, 우리에게 조금도 어렵지가 않다. 그래서 당연한 줄 알았다. 집이 크면 당연히 큰 문을 갖는다는 게.








나는 영국인들의 그 작은 문이 사람들의 성격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대문을 활짝 열고 환영하기보다는 사적인 공간, 개인의 공간을 중시하고 더 우선시하는 그들의 특성과 묘하게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참, 대문은 작지만 그들은 모두 엄청나게 큰 뒷마당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비밀은, 진짜는 커다란 뒷마당에 숨겨진 느낌이 든다.


일단 조금 더 커다랗게 뚫려있는 창문들만 봐도 영국인들의 성격을 살짝 파악해 볼 수 있다. 사적인 보호를 위해 얇은 레이스 장식이 된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그 위엔 또 두꺼운 암막이나 색색깔로 다른 천으로 된 커튼이 이중, 삼중 보호를 한다. 당연히 환기를 시키거나 바깥을 들여다보고 바람을 쐬고 싶을 때 창문을 열고 생활하지만 굳이 좋은 거, 자랑할만한 왁자지껄한 일이라도 시끌벅적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는 게 그들만의 습관이 된 듯도 하다.


개개인의 고유성과 감정, 그들이 함께 하는 가족, 특히 가정을 소중히 여긴다. 굳이 멀리 사방팔방 좋은 거 멋진 게 있다고 큰 대문으로 냄새를 피워봤자, 그게 아무 의미도 기쁨도 아니라는 걸 영국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뒷마당엔 좋아하는 꽃을 심고 아이들이 물놀이하고 바운스 놀이를 하는 방방이를 설치해 놓기도 한다. 토끼를 키우거나,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바비큐도 굽는다. 어쩌면 대문 앞이 아니라 그들의 진짜 시간은 뒷마당처럼 사적이고 큰 곳에서 펼쳐지는 것 같다.


우리는 화장실 변기의 물을 늘 반절 이상 가득 채워져 있지만 영국인들의 물은 아주 소량이 쫄쫄쫄 흐르게 만드는 구조로 되어있다. 변기가 대신 우리보다 길고 깊이감이 있다. 최소한 적은 물로도 큰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만드는 실용성, 어쩌면 비와 안개가 습한 곳에서 바깥바람과의 차단과 보온의 역할을 하기 위해 작은 문을 만든 지도 모르겠다. 작은 문과 달리 커다란 게 하나 있는데, 이것 역시 화장실에서 발견했다.


세면대에서 물을 담아두기 위해서 막아두는 동그란 이거, (찾아보니 배수구 마개 혹은 'pop-up', 세면대 팝업이라고 한다) 이건 또 무지 크다. 한국에선 배수구 마개가 세면대 물이 내려가는 구멍과 딱 맞는 사이즈가 대부분이라면, 영국의 팝업은 훨씬 더 크고 둥그렇다.


어쩌면 따로 새어나가는 바람, 기온, 온도는 철저하게 다 확실하게 막아버린다는 의도일까.



별거 아닌 생활의 평범함 속에서도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특징과 문화가 보인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정확한 답은 찾을 수 없는 의문 투성일지라도 곳곳에서 한국과 조금이라도 다른 특징이 보이면 일단 호기심도 생기고 궁금해서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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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집 작은 문 | 넓은 뒷마당(*뒤로 보이는건 축구장 보다 더 큰 공원이다) | 들어가는 문은 아주 미니미




*전부 우리 언니가 살았던 집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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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트러스트 귀족이 살던 집 | 리치몬드 파크 카페 대문 | 이튼 스쿨 근처



이렇게 오래되고 화려한 건물에서도 커다란 문을 찾을 수 있겠는가?


소박하지만 실용적이다, 키가 큰 사람은 고개를 좀 숙여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지만 나처럼 키 작은 사람에게 작은 문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리포터」에서 해리는 계단 아래 작은 수납공간을 두는 곳에 살았다. 다락방이라 할 수도 없는 그곳으로 구박받아서 쫓겨난 거나 다름없지만, (우리 언니도 처음 영국 유학 시절엔 그렇게나 작은 방에서 친구와 함께 이층 침대를 두고 살았다고 한다.) 작고 작은 문은 영국인 같다. 어디가 문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문을 열면 그 안에는 작지만 또 해리만의 공간이 펼쳐진다. 마법 같은 공간, 강단 있는 해리. 영국인들의 집은 작은 문을 열기까지 힘들지만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엄청난 에너지와 사랑이 곳곳에 숨어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내셔널 트러스트 National Trust Polesden Lacey

*리치먼드 파크 White house cafe Pembroke Lodge

*윈저성 근처 Eton College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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