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영국 사람들
영국에 두 달 있으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윔블던에 사는 언니 덕분에 런던을 자주 오갈 수 있었던 것도 좋았지만 이번 여행에선 특히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20년째 영국에 살아온 언니가 이웃들과 돈독하게 사귀어 온 덕분이다. 덕분에 이웃 사람들, 언니 친구들, 교회 사람들과도 많은 교재를 나눌 수 있었다. 잘 불지도 못하는 오카리나로 사람들 앞에서 홀로 아리랑도 불어보고 히스토리 토크 시간에도 참여하고 커피 모닝에도 함께 했다. 한국 음식을 대접하며 내가 좋아하는 문학 이야기, 윤동주 같은 시인들을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할 수 있었다. 내셔널 트러스트에 가고 윈저 성을 보고 이튼 스쿨 견학, 뮤지컬 관람도 물론 좋았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경험은 역시 영국인, 영국 사람들이다.
영국을 방문하고 여행한 건 여섯 번 정도 되는데 이토록 영국인들이 내 마음에 들어온 적이 있었을까.
코로나로 한동안 영국에 못 가게 된 이유도 한몫할 수도 있고 결혼하기 전, 아가씨일 때부터 훨훨 자유롭게 다니던 그곳이 이젠 아이들과 함께 동네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럴 수도 있다. 그때와 지금, 사실, 영국인들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내 마음, 보는 시선이 바뀐 탓이겠지.
1년 중 200일이 넘게 비가 오는 날, 그 비가 대부분 또 겨울에 집중 호우로 내린 덕에 나는 한 번도 해가 쨍쨍하게 떠있는 날을 경험하지 못했다. 어딜 가나 영국 날씨는 축축하고 촉촉하고 어쩌다가 낮부터 해가 뜨면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거리를 막 걷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산을 쓰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는 게 이 나라의 재밌는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함께 먹고 생활하고 걷고 마주치다 보니 이 사람들이 왜 우산을 안 쓰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더라.)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내가 느낀 영국이란 나라에 대한 느낌, 특히 그중에서도 영국 사람들에 대한 나의 감상을 정리해보고 싶다.
놀이터에만 가면
엄마, 저기 사람들이 있어. 사람들이 있는 곳이 제일 재밌는 곳이야!
라고 외치는 우리 둘째처럼 나도 어딜 가나 제일 먼저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어쩔 수 없는 호기심, 관찰, 관심 그리고 애정이 쏠린다. 그런 걸 보면, 나도 선율이 엄마가 분명 맞나 보다.
Briain's Got T★lent라는 영국 ITV에서 2007년부터 방영된 유명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노래나 춤, 미술 ·버라이어티 등 다양한 재능을 겨루는 쇼인데 보고 있으면 와, 감탄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웃음과 눈물이 터진다. 한국에서도 이 쇼를 기반으로(원작은 미국으로 알고 있다) Korea's Got Talent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도 있다. 가장 감동적인 요소는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전부 일반인이라는 점이다. 유명한 '폴 포츠' 같은 사람도 평범한 휴대폰 세일즈맨에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Briain's Got T★len
A를 재밌게 ★로 표기했다. 스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별 같은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니깐.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니어도 나는 올 겨울 내내 영국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탄하고 놀란 적이 참 많았다.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예의를 차리는 모습에, 그들만의 삶의 규칙을 따르는 모습에 존경심이 우러나왔고 배우고 싶어졌다. 이걸 나만의 이야기, 기록으로 남겨둔다면 어쩌면 '영국'이라는 나라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언니로부터 '로지'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로지 할머니, 10년 만에 뵌 모습이 잘 걷지도 못하시고 배에 복수가 찬 모습이어서 안쓰러웠는데 보조기구를 끌어서라도 천천히, 힘겹게 힘겹게 교회에 나오셨다. 동네에서 하는 히스토리 토크나 처치 미팅에도 꼭 오셨다. 붉은 머릿결은 아름다운 은발이 됐고 빨갛게 상기된 두 볼만은 여전히 빨갛고 따뜻했다. 문을 잡아주거나 손을 잡아주면 언제나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나를 안아주셨는데, 한국으로 오기 전 날에도 일어나시는 게 행여나 귀찮을까 봐 악수로만 인사를 나눴는데 옆에서 옆에서 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00아, 로지 할머니도 네가 가서 한 번 꼭 안아드리고 와.' 언니의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래, 안아주는 게 뭐가 힘들다고, 얼른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곁에 가서 안아주려는 자세를 취하자 로지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을 때 왠지 뭉클한 마음도 들었다. 힘겹게 부축받아서 일어나셨을 때, 로지는 나를 꼭 안아주시고 "So lovly So lovly... "라고 말해주셨다. 그때 그 촉감과 온기가 지금까지 생생하다. 그게 마지막 작별 인사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Good bye 로지, 잘 가요, 로지 할머니.
#영국인영국사람들
#올겨울방학은영국에서
#내가만난영국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