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ain's Got People

영국의 식사는 따뜻한 접시에서 ② 시작해서 텅텅 비어야 끝난다

by 앤나우

흔히들 영국은 맛있는 음식이 없어. 뭐가 맛있는데, 말해봐? 이렇게 생각한다. 사실, 10년도 전에 영국을 마지막으로 여행했을 때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피시 앤 칩스가 있지만 뭐든 기름에 튀기면 원래 다 맛있는 거고 감자튀김이 좀 더 튼실하다는 것뿐 실제 영국 음식이나 영국 가정식을 떠올리면 별로 특별할 게 없었다. 캐서롤 같은 음식도 입에 넣는 순간 "와"하는 감탄이 나오진 않았으니깐. 삶은 야채와 간이 덜된 밍밍한 수프, 그리고 전체적으로 왠지 몸에 건강할 것 같지만 싱거운 느낌이 들었다. 기다란 야채 스틱은 어딜 가나 접시에 올라왔고 올리브오일이나 레몬즙만 들어간 샐러드도 떠오른다. (어쩐지 모든 요리에 빠지지 않았던 귀여운 완두콩도ㅎㅎ) 그래서인지 홍차나 티타임에 나오는 스콘이나 발라먹는 버터, 잼에 조금 더 매료 됐던 것 같다.

특히 영국 스콘에 발라먹는 클로티드 크림의대표 브랜드 Rodda's와 발라먹는 버터 Lurpak이 나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아쉽게도 클로티드 크림 같은 유제품류는 한국으로 가져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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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먼 한국에서 온 우리 식구를 위해 외식도 많이 했습니다만( 전부 맛있게 먹었던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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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맛있게 먹은 홍차와 빵 | 디저트 스콘세트 | Gail's 시나몬 번
GAIL's에서 마신 오트라테와 시나몬 번은 환상적인 맛이었다. 이번 여행에선 맛있는 커피를 매일 마셨는데(*인생커피를 만남) 그건 커피 러버답게 나중에 커피 이야기에서, 자세히 다뤄보겠다.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은 외식 비용이 훨씬 비싼데 그렇다고 해서 밖에서 먹는 음식이 또 그렇게 맛있는 것도 아니어서(이탈리아 요리도 전부 간이 덜 된 건지, 집에서 만든 것보다 맛이 없었고 칠리 콘 카르네는 언니가 집에서 8시간 넘게 끓여서 해준 게 훨씬 맛있었다!!) 사실 영국에 머물면서도 대부분 건강하고 싼 식재료를 구입해서 대부분 언니가 만들어준 한식이나 그날그날 먹을 음식들을 전부 만들어서 먹었다. 우리 아이들까지 식구가 북적북적 늘 하루에 10인분 넘는 요리를 해야 했지만 중요한 건 정성 가득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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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봐도 감탄스러운 음식들 | 어쩌면 이게 찐이다!
일단 언니는 요리 솜씨는 물론이거니와, 4인 가족인 우리 집보다 냉동실이 텅텅 비어있을 정도로 냉동식품이 거의 없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 배달도, 외식도 거의 없지만 엄마가 손수 만들어준 집밥으로) 그때그때 신선한 재료들을 사서 음식을 바로 만들어준다. 다양한 밑반찬은 물론이고 한식이나 가볍게 먹고 싶은 에그베네딕트, 베이글이나 치킨랩, 치킨 데리야끼 같은 음식도 뚝딱 나왔다. 덕분에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더 많은 살림살이 노하우와 음식을 배울 수 있었다.
*언니 요리 중 최고로 꼽는 건 8시간 넘게 끓인 칠리 콘 카르네(chili con carne)와 갈비탕 : 심지어 집에 갈비탕용 뚝배기도 가지고 있다. 요리에 진심인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려 본 시간이 됐다.




영국의 식재료 특히 고기와 야채는 한국이랑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다. 영국도 낙농국가답게 손질까지 깨끗하게 척척, 다양한 마켓들에서 고기를 부위별로 잘 포장해 났다. 일단 한국보다 대용량인 사이즈에 한 번 놀라고, 저렴한 가격에 두 번 놀란다. 예를 들어, 웨이트 로즈에선 삼겹살이 맛있고 리들에선(여긴 독일 마켓이다) 소시지가 아주 맛있다. 막스에선 껍질까지 싹 정리한 깔끔한 닭고기가 엄청 싱싱하고 저렴하다. 각각 마켓 브랜드에서 나온 베이글이나 고기, 그때그때 싱싱한 야채들로 장을 보기 편한 구조로 되어있다. 한국에선 뭐든 배달이 발달했다면 영국은 배달 문화가 이제 있긴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직접 장을 보고 눈으로 확인하고 식재료를 고른다. 한국에선 오가닉, 유기농 제품이라고 하면 터무니없이 가격이 확 올라가는데 반해 유기농 제품도 다양하고 가격도 착한 편이라 식재료만 꼼꼼하게 따져봐도 각각 마트에서 장 볼 음식들을 구비해서 그날그날 요리해서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국인들의 식사 초대



두 달을 영국에 머물면서 영국인들과 식사할 기회가 많았다. 감사하게도 이웃분들이 초대해 준 덕분에 직접 영국 가정의 인테리어도 살펴보고 식사까지 대접받기도 했다. 거기엔 15년 전부터 이어진 귀한 인연들도 있다. 마이클과 크리스틴, 나이젤, 그때도 나와 우리 엄마를 영국에 갈 때마다 꼭 초대해 줬다. 어쩌면 한국보다 식사 초대 같은 부분이 더 까다롭고 어려운 부분일 수도 있는데 기꺼이 안내해 주는 손길에 고마움을 느꼈다.

특히, 직접 만든 체리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맛있게 먹은 나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통으로 가져 오거나 직접 내린 커피가 맛있다고 하니 나를 위해 커피 한 잔을 타온 크리스틴에겐 감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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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나 토마토 스프가 이런 맛이었구나! 새롭게 느낀 날





따뜻한 접시의 비밀


*영국 사람들은 손님이 오기 전 접시를 꼭 따뜻하게 데워준다. 나는 이 과정부터가 신기하기도 하고 아주 정성스럽게 느껴졌는데 앞치마에 두꺼운 오븐 장갑으로 손님 앞에 접시를 살며시 놓는 영국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언니 역시 손님 초대를 많이 하는 편인데 늘 따뜻하게 접시를 데워서 음식을 담아줬다. 사실 언니 이웃분들이 거의 60대 이상인 분들이 많아서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이런 문화가 거의 없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따뜻한 접시를 받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영국은 도자기 접시로 유명한 나라답게 접시가 아주 따끈따끈하게 잘 구워졌다.


나는 이 과정이 성의 있게 보였는데 우리나라엔 맥주컵을 차갑게 냉동실에 넣어둔 건 봤어도 접시를 실제로 데워서 따뜻한 요리를 담는 가정집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샐러드를 덜어먹는 애피타이저 접시도 아주 따끈따끈하게 데워서 각각 테이블에 놓아준다. 오븐 장갑으로 매번 그 접시를 여러 번 따뜻하게 데워서(물론 새 접시를 갈아서 교체해 준다) 내주는데 그 수고스러운 과정이 이상하게도 좋았다. 천천히 정성스럽게 식사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접시를 놓아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국인의 식사는 요리를 준비하고 대접하는 '마음'에서 예열되는 것 같기도 하다. 잘 차려진 모양새나 담음새보다는 실제로 따뜻한 요리, 건강한 요리, 여기가 좀 더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 들었다.




싹싹 끝까지 먹기


식사법과 예절에 대한 부분도 눈여겨보면 배우고 싶은 점이 많았다. 우리가 배우면 좋을 습관들이다.

영국인들은 모두 접시에 나온 음식을 모두 아주 깨끗하게 남김없이 다 먹는다. 포크로 밥알 하나까지 수프 한 방울까지도 비워내는 걸 보면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이건 교육의 힘인지 습관인지 내가 본 영국인들은 전부 자기 몫을 남김없이 먹었다. 그날그날 먹어야 할 요리를 과일이나 야채까지 조각으로 각자 접시에 내어주면 조카들도 전부 남김없이 깨끗하게 다 먹었다. 처음부터 요리를 많이 주기보다는 살짝 모자란 듯한 양으로 덜어주고 더 먹는다고 해도 남기는 사람이 늘 아무도 없고 더 먹는 사람도 없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궁금했다. 학교나 가정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교육한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는 것 같았다.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부터 아주 작은 꼬마 아이까지 모두 제 몫을 남김없이 먹는다. 쓱쓱 싹싹 그릇이 반짝일 정도로 깨끗해진다.



모든 요리에 간은 거의 싱겁게, 오가닉으로, 디저트는 달게, 하지만 디저트는 아주 조금!



먹다 보니 자극 없는 그 맛들이 담백하고 건강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처음에 영국 갔을 때는 티타임에서 나만 혼자 초콜릿을 막 세네 개씩 맛있어서 집어먹고 했는데 주위 사람들을 보니 자기 찻잔에 초콜릿을 달랑 하나씩 올려놓고 거의 먹지 않는 모습에 놀란 적이 있다. 우유를 가득 부은 밀크티나 아니면 설탕을 가득 넣은 블랙티에 초콜릿이나 달콤한 디저트는 최소한 하나씩만 먹는다.



과일이나 야채를 꼭 곁들여서 오이와 양상추 당근 같은걸 스틱으로 내놓으면 그걸 또 남김없이 다 먹어서 영국 사람들은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실제로 대식구인 우리 언니네 가정도 그렇다. 요리할 때 껍질을 벗기거나, 손질하는 식재료 쓰레기 외엔 남겨지는 음식이 거의 없다)


난 먹다가도 우리 아이들에게 배부르면 항상 남겨라,라고 말했는데 영국에 다녀온 뒤에는 자기 몫을 다 먹으라고 남김없이 먹고 다 못 먹을 경우에는 처음부터 조금 먹어야 한다고 가르치게 됐다. 빵 하나에도 꼼꼼하게 버터를 빈틈없이 다 바르는 모습이 달인 같기도 하고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지켜온 음식문화생활 습관인 것 같기도 해서 꼼꼼하게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와 달리 저마다 안 먹는 음식도 많고 글루텐(밀가루) 프리인 사람들도 있고, 감자를 거부해서 안 먹는 사람을 위해 요리에서 감자를 빼기도 했다. 뭐 특별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으면 그러려니도 할 텐데 어른이 돼서 반찬 투정이나 골라 먹는 것처럼 투정인가 싶기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보면 전혀 다른 게 보였다. 사실은 개개인의 취향을 음식에서도 그만큼 존중해 주며 살아온 문화 같이 느껴졌다. 초콜릿같이 맛있는 디저트를 건네도 신념이나 건강을 위해서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성분인지 꼼꼼하게 표지를 살펴보는 사람들도 있고 저마다 추구하는 음식에 대한 생각이 참으로 다양했다. 우리는 '음식'이라고 하면 사양하지 않고 투정하지 않고 골고루 먹기, 이런 게 목표라면 우리와 달리 개개인의 호불호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자기 앞에 접시만 남김없이, 욕심 없이 이런 게 이 사람들의 철칙 같아 보였달까?


다수의 눈치 속에서 먹는 눈칫밥과는 좀 더 다른 느낌. 그냥 내 앞의 접시, 음식을 맛있게 끝까지 먹자,라는 느낌을 받은 영국인들의 식사에서 요리하는 즐거움, 누군가에게 차려주는 정성, 온전히 먹는 건강까지 삼박자를 골고루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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