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뚫고 나오는 작은
씨앗
또 하나 밀고 나온다.
내 어금니 뒤 혀뿌리 구석에서
살을 뚫고 나오는 작은 씨앗
누군가 단단하게 박아놓은 반짝이는 조약돌처럼
원래
가
그 자리인양
주변을 말랑하게, 노곤노곤하게 차지한 채, 그
러나 몸짓은 거침없이
뚫고 나온다.
사랑니가 천천
히 뿌리를 내린
다.
애초에 이는 뿌리가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모르겠다. 뿌리에서 올라오는 게 아니고 숨겨져 있던
단단한 조각이 밀고 올라오면 기존에 있는 치아는 흔들흔들
흔들리기 시작한다. 유치들은 뿌리가 없다.
다음 이가 나올 때 이미 녹아서 없어진 거란다.
태아는 이미 엄마 몸속에서 태어나서 자랄
머리카락, 이 조각 하나까지 전부 쫙쫙 빨아들여서 미
리 만들어질 이까지 구상한 다지. 그걸 전부 만들어서
세상에 나온다고 한다. 신기하고
오
묘한
사람 몸속의 뼈
뼈 안의 피
피안의 살
살 속의 두뇌와 피부.
뇌 속 주름 한
겹.
초음파로 자세히 볼 수 있을 만큼 과학이 발달해도
두근거리는 심장의 판막이며 구멍까지 자세히 들여
다 볼 수
있지만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차근차근 생기는 건지
과학은
전부
말해 줄 수 없다.
그래서 뱃속 아가를 내가 안고 느끼며 걸으면서도
신기했다. 자꾸만 자꾸만 나도 내 몸이 이상해서
-똑똑-
두드려봤다.
-안에 누가 있는 건가요?-
엄마가 모르는데 태어난 아가도 무슨 영문
인 지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이가 하나도 없는 아가가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둘씩 이가 올라오는 과정은 귀엽기 그지없다.
대학교 시론 수업 시간 김인섭 교수님 시간에 사랑니에 관한 시를 처음으
로
썼다.
사랑니에 관한 시를 처음으로 썼다.
어렸을 때 이 빠진 경험도 무섭고 신기했지만
다 커갈 무렵, 19살 무렵 난데없이
갑작스레 이가
올라오는 과정이
당혹
스럽고
아프고
쓰라리고
신기했다.
어어, 거긴 네 자리가 아닌데.
이
미
꽈악 차서 더 이상 나올 자리가 없는데도
기
어
코 뚫고 나오는
그 기상이 대단했다.
원래가 제 자린 양.
위즈덤 티스는 얼어 죽을,
Wisdom Teeth
Love tooth는 콩글리시라는데 양쪽 다 몰랐을 때 이가 계속 나오
더니 스무 살이 넘어서도 위
아래
위
위
아래
뾰족하게
살을 계속 뚫고
나
왔
다.
지혜도
사랑도 전부 몰랐는데
그게 나온다고 갑자기 세상에 눈
뜨게 되는 것도 아닌데
아픔만큼은 정확하고 확실했다. 양 볼이
빠방 하게 부어오르고 혀끝으로 자꾸 단단하게 올라온 치아의 높
이를 확인
했다.
확실한 건 하
나뿐. 사랑을 잃어도 사랑니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탓에 계속 계속
다른 이처럼 높게 올라왔다.
너덜너덜 해 진
헤집어진 잇몸이 다시
단단하게 굳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
렸다.
마치 기형도 시처럼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사랑을 잃어도 더
할
말이 많아진 시처럼
갇혀서 꽁꽁 봉
해 진 게 아니라 사랑니가 떨어져 나가도
단단한 사랑
은 남는 거라고 깨달았다.
사실은 이미 다 뽑아버린
지금에서야 알아버렸다.
늦된 이,
나는 너를 이렇게 부르고 싶네.
깨달음도 지혜도 사랑도 늦게 나왔고
연애를 한다고 사
랑을 전부 안 것도 아니고
사랑을 한다고 전부 상대방을 보듬어 꽉 끌안는 게 아니
듯이.
공감하는 작은 마음, 진심으로 잡아주는 손 하나, 그냥 그
자체로 기다려주고
인정해
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기도해 주는 마음 하
나.
나도 기댈 수 있는 사랑을 깨닫기 까진 사랑니가 나오고
이 십 년이 넘어서
야 나만의 사랑을 표
현 할 수 있게 됐다.
늦된 이, 늦게 지각한 그 한 조각을
차례
로 뽑아 버릴 땐
나도 모르게
선생님 손가락을 꽉! 잘못 물기도 했다.
마취 상태라 전혀 감각은 없었지만 윗
니 보다
아랫
니를 뽑을 때 몸 전체가 흔들릴 정
도로 기분이 이상했다.
-묵직합니다, 뿌리가.
뿌리가 곧아서 빼기 쉬울 줄 알았는데, 기분이 좀 이상해요.
응차, 가녀린 여자 선생님의 한 손엔
양쪽 뿌리가 좌우대칭으로 통통한 내
사랑
니가 보였다.
그 어떤 이
보다 깊은 뿌
리가
뿌리 깊게 있었다.
어느 날 알게 될
것이
다.
실연
연애에 실패해
도
사랑하는 꿈
을 잃어도 사랑의 대상이
어긋
나도
또 지나가면 다시 그 자리가 메꿔지는
잇
몸처럼
단단
하게 올라올 것이란 것을.
별 일 아니란 듯이 쑤욱
뽑아지고
다시 일상을 살아 낼
것이란 것을 나는 안다.
내 어금니 뒤 오묘한 사랑니 구석 자리,
지금도 툭
툭 한 번씩 자꾸만 건드려 보지만 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글쓰는 오늘 Season 10 우리들의 글루스 II
'왼쪽 정렬로 글쓰기'
세 번째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