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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Feb 28. 2023

사랑니, 뿌리를 내리다

살을 뚫고 나오는 작은

씨앗


또 하나 밀고 나온다.

내 어금니 뒤 혀뿌리 구석에서

살을 뚫고 나오는 작은 씨앗


누군가 단단하게 박아놓은 반짝이는 조약돌처럼 

원래

그 자리인양 

주변을 말랑하게, 노곤노곤하게 차지한 채, 그

러나 몸짓은 거침없이

뚫고 나온다.


사랑니가 천천

히 뿌리를 내린

다.


애초에 이는 뿌리가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모르겠다. 뿌리에서 올라오는 게 아니고 숨겨져 있던

단단한 조각이 밀고 올라오면 기존에 있는 치아는 흔들흔들

흔들리기 시작한다. 유치들은 뿌리가 없다.

다음 이가 나올 때 이미 녹아서 없어진 거란다.


태아는 이미 엄마 몸속에서 태어나서 자랄

머리카락, 이 조각 하나까지 전부 쫙쫙 빨아들여서 미

리 만들어질 이까지 구상한 다지. 그걸 전부 만들어서

세상에 나온다고 한다. 신기하고

묘한

사람 몸속의 뼈


뼈 안의 피 

피안의 살

살 속의 두뇌와 피부.

뇌 속 주름 한 

겹.


초음파로 자세히 볼 수 있을 만큼 과학이 발달해도 

두근거리는 심장의 판막이며 구멍까지 자세히 들여

다 볼 수 

있지만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차근차근 생기는 건지

과학은

전부

 말해 줄 수 없다.


그래서 뱃속 아가를 내가 안고 느끼며 걸으면서도

신기했다. 자꾸만 자꾸만 나도 내 몸이 이상해서 


-똑똑-

두드려봤다.

-안에 누가 있는 건가요?-

엄마가 모르는데 태어난 아가도 무슨 영문

인 지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이가 하나도 없는 아가가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둘씩 이가 올라오는 과정은 귀엽기 그지없다.


대학교 시론 수업 시간 김인섭 교수님 시간에 사랑니에 관한 시를 처음으

썼다.

사랑니에 관한 시를 처음으로 썼다.

어렸을 때 이 빠진 경험도 무섭고 신기했지만

다 커갈 무렵, 19살 무렵 난데없이

갑작스레 이가

올라오는 과정이

당혹

스럽고

아프고

쓰라리고 

신기했다.


어어, 거긴 네 자리가 아닌데.

꽈악 차서 더 이상 나올 자리가 없는데도

코 뚫고 나오는

그 기상이 대단했다.

원래가 제 자린 양.

위즈덤 티스는 얼어 죽을, 


Wisdom Teeth 

Love tooth는 콩글리시라는데 양쪽 다 몰랐을 때 이가 계속 나오

더니 스무 살이 넘어서도 위 

아래

위 

아래 

뾰족하게 

살을 계속 뚫고 

다. 


지혜도

사랑도 전부 몰랐는데

그게 나온다고 갑자기 세상에 눈 

뜨게 되는 것도 아닌데

아픔만큼은 정확하고 확실했다. 양 볼이

빠방 하게 부어오르고 혀끝으로 자꾸 단단하게 올라온 치아의 높

이를 확인

했다. 


확실한 건 하

나뿐. 사랑을 잃어도 사랑니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탓에 계속 계속

다른 이처럼 높게 올라왔다. 

너덜너덜 해 진

헤집어진 잇몸이 다시

단단하게 굳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

렸다.

마치 기형도 시처럼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사랑을 잃어도 더 

할 

말이 많아진 시처럼

갇혀서 꽁꽁 봉

해 진 게 아니라 사랑니가 떨어져 나가도 

단단한 사랑

은 남는 거라고 깨달았다.


사실은 이미 다 뽑아버린

지금에서야 알아버렸다. 


늦된 이,

나는 너를 이렇게 부르고 싶네.


깨달음도 지혜도 사랑도 늦게 나왔고

연애를 한다고 사

랑을 전부 안 것도 아니고

사랑을 한다고 전부 상대방을 보듬어 꽉 끌안는 게 아니

듯이.

공감하는 작은 마음, 진심으로 잡아주는 손 하나, 그냥 그

자체로 기다려주고

인정해

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기도해 주는 마음 하

나.

나도 기댈 수 있는 사랑을 깨닫기 까진 사랑니가 나오고

이 십 년이 넘어서

야 나만의 사랑을 표

현 할 수 있게 됐다.


늦된 이, 늦게 지각한 그 한 조각을

차례

로 뽑아 버릴 땐

나도 모르게

선생님 손가락을 꽉! 잘못 물기도 했다.


마취 상태라 전혀 감각은 없었지만 윗

니 보다

아랫

니를 뽑을 때 몸 전체가 흔들릴 정

도로 기분이 이상했다.

-묵직합니다, 뿌리가.
뿌리가 곧아서 빼기 쉬울 줄 알았는데, 기분이 좀 이상해요.

응차, 가녀린 여자 선생님의 한 손엔

양쪽 뿌리가 좌우대칭으로 통통한 내 

사랑

니가 보였다. 

그 어떤 이

보다 깊은 뿌

리가

뿌리 깊게 있었다. 


어느 날 알게 될

것이

다.


실연

연애에 실패해

도 

사랑하는 꿈

을 잃어도 사랑의 대상이

어긋

나도 


또 지나가면 다시 그 자리가 메꿔지는

몸처럼 

단단

하게 올라올 것이란 것을.


별 일 아니란 듯이 쑤욱

뽑아지고

다시 일상을 살아 낼

것이란 것을 나는 안다. 


내 어금니 뒤 오묘한 사랑니 구석 자리,

지금도 툭

툭 한 번씩 자꾸만 건드려 보지만 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글쓰는 오늘 Season 10 우리들의 글루스 II

'왼쪽 정렬로 글쓰기'

세 번째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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