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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Feb 28. 2023

왼쪽 정렬 후기

전부 다 붙어있는 나의 글자들

대학교 첫 소설 습작 시간. 별 고민 없이 소설 한 편을 썼는데 그냥 일기 쓰듯, 원래 메모하듯, 늘 그럴듯한 글을 완성해서 냈다. '데미안의 알' 사실 컴퓨터 한글 문서로 작업해서 정식으로 글을 쓴 게 처음이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던 게 정확하다. 컴퓨터 켜는 걸 싫어해서 매번 손으로 쓰고 전부 쓴 걸 컴퓨터로 옮기는 오울드 한 사람이 바로 나다. 교수님들도 전부 컴퓨터 작업을 하는 마당에;;;


합평 시간, 내 작품 차례가 됐을 때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는데 웅성웅성, 서로 내 작품에 대해 말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일단 교수님부터 엉망진창인 내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기계보다 정확하게 잡아내셨다. 아, 분명 맞춤법 점검을 했는데 뭔 소설 내용이고 나발이고(소설이 영어로 나블이긴 하지;; ㅋㅋ) 주제 의식이고 말할 틈도 없이 여기저끼 내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지적하기에 정신없었다. 내 소설 담당으로 지적해야 할 사람도 마찬가지.

이건 초현실주의, 장르 파괴도 아니고 (한숨) 이렇게 다 붙여 쓴 건 이유가 있나요?
일부러 이렇게 전부 와 다다다 다 멋대로 마음대로 붙어있는 글자들은 뭔 뜻이 있는 건가요? 


세상에! 이유가 어딨어? 나는 그냥 내가 그렇게 쓰고 싶어서 쓴 건데? 이유 따위도 없고 그냥 내가 그렇게 쓰고... 아, 제기랄, 쪽팔려! 너무 쪽팔려서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만 나는 남들과 정리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깔끔하게 한 줄로 이어진 각을 맞춰 딱딱 보기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손 뻗기 쉬운 곳에, 내가 뭔가를 작업하거나 쓰거나 만드는 모든 것이 전부 내 눈앞에 깔려 있어야 했다. 그게 나에게 가장 큰 안정을 주고 발에 책이 밟혀도 그대로 가져다 누워서 읽기 편하면 그게 나한텐 최고의 정리였는데. 엄마는 늘 늘어놓고 한 번에 다 때려놓고 구석에 처박아두는 내 정리 방식을 못마땅해했지만 날 서있고 까칠한 예민 중2병 시기부턴 내 방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들릴 듯 말 듯, 아휴, 한숨을 쉬셨을 뿐. 

음악을 듣는 미니 컴포넌트와 침대 앞에 이어진 기다란 책장, 그 앞에 바로 책상, 책상에서 공부하다가 그대로 침대에 털썩 누워서 잠자기 좋은 구조로 방을 꾸몄다. 그래서 어수선 산만하다고도 다소 느껴질 수 있는 내 방이 나는 편안하고 좋았다. 몰아서 한 번에 촥촥 정리해도 내 눈에 내가 보이는 그대로 펼쳐진 게 좋았기에. 어느 날 마음을 먹고 방 정리 대신 구석에 물어넣은 물건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보는 게 나의 '정리'였다. 뭐 남들과 조금 다르다고 해도 그게 나의 정리가 됐기에 나는 전혀 이상할 게 없었지만


내 작품이, 처음 습작한 데미안의 알이라는 작품이 그렇게 전부 붙어있을 줄이야. 


세상에, 주인 닮아 가는 불쌍한 내 글은 처참하게 지적만 받고 집에 돌아가야 했다. 그 주인처럼.


나는 그날 '작품'에 대한 감상은 전혀 들을 수 없었고 칭찬 한 마디도 건질 수 없었다. 사람들의 온갖 집중이 붙어있는 이상한 '소설'이라고 불리는 내 글에 있다는 걸 알고 혼자 눈물을 뚝뚝, 시간을 막 되돌리고 싶어 미치겠고 나는 그동안 왜 왜 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면서

책의 구조나 구성, 대화나 띄어쓰기엔 관심조차 가지지 않은 거지, 내 성격을 탓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두근거릴 때 두근두근 거리는 발소리와 조여 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데,라고 뭐라 뭐라 말하다가 그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한 지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작품을 까내려가는 게 나를 까는 거 같아서 전부 이름을 외워두고 얼굴을 기억해 둬서 너네 차례 때 한 번 보자, 이런 마음도 품었던 거 같고 교수님 수업 시간에 이제 난 맞춤법 공부부터 시작해야 하나, 앞 길이 캄캄 했다. 


쫙쫙 찢어버리는 상상을 했다. 내가 쓴 소설도, 네가 쓴 소설도. 




왼쪽 정렬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 단

하나

도.


한 번도 지금까지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양쪽 정렬에 대해서도 가운데 정렬에 대해서도 깊은 생각을 안 해봤다. 전부 좋았다. 왼쪽으로 치우 쳐서 여백의 미가 생기는 것도, 정 가운데 와서 양쪽에 여백을 만드는 것도 양 쪽 다 균형감 있게 담아내는 것도 거슬릴 게 없었다. 글자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뭐.

아, 호흡과 여유가 좀 달라지긴 하니까, 굳이 따진다면 나는 '그냥 대부분 사람들이 쓰는 양쪽 정렬 파'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컴퓨터로 주욱 작업해서 쓴 것과

모바일로 봤을 때 다르게 나온다는 걸 알아도 별로 타격감이 없었다. 


어느 날, 어떤 글은 내가 쓴 마침표와 띄어쓰기가 내 뜻과 달리

.

가장 앞에,

오지 말아야 할 자리에 와 있어도 별로 신경이 안 쓰였다. 문장 앞에 절! 대! 오지 말아야 할 마침표를 앞에다 찍어 놓는 그 모양새에 어이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고치진 않았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 맞게 찍었는데, 컴퓨터가 지 마음대로 편집해서 보여주는 걸 
그건 컴퓨터 마음인가 보지, 뭐.


나도 안 하는 실수도 컴퓨터 딴엔 편집한다 뭐 한다 자기의 회로가 돌아가서 이런 실수를 종종 하는데 내 맞춤법 띄어쓰기에 더 이상- 주눅 들지 말아야지, 하는 나만의 뇌피셜. 그냥 웃지요. ㅋㅋㅋ한다. 

일일이 따로 모바일로 보여주는 '미리 보기'를 고쳐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섬세함은 나에겐 없는 모양이다. 내 방 정리부터 잘못된 걸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방식인거지 나는 그냥 그 안에서 성장하고 꿈을 키웠다. 내 방은 구깃구깃 아늑하고 편안하고 사각사각 글 쓰고 싶은 맛이 있어서 늘 머리맡엔 스탠드와 창문으로 커다란 커튼이 있어서 내 친구들이 많이 자고 갔다. 특별히 엄선해서 뽑은 나만의 커다란 '영화 포스터'가 크게 세 군데 벽을 차지했다. 그것 때문에 가위에 눌린 지 뭔지 모르지만 압도당할 듯한 문 사이즈의 포스터를 나는 얼마나 신중하게 골랐는지 모른다. 

우리 집에 오면 일단 잠을 한 숨 자야 한다. 내 방에만 오면 그렇게 잠이 소르르 온다며, 왜 그런지 모르지만 폭신폭신 잠이 막 쏟아진다고 하며 야자를 땡땡이치고, 혹은 마지막 교시가 끝나자마자 달려온 내 친구들. 미영이도, 난정이, 혜선이, 정희, 봄봄이, 현희도 내 아늑한 작은 방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나는 불면증이 심한 편이었는데 나보다 더 빨리 잠드는 친구들을 어이없어하다가(학교랑 5분 거리도 안 되는 아파트에 살았다) 친구들의  새근새근 잠든 소리에 나도 스르륵 눈이 감기기도 했다. 밤에 자는 게 아니고, 낮잠을!


앤나우의 글은 글쓰기의 노마드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너조이님의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좋았다. 배실배실 조금 웃기까지 했다. 나도 정신없는 내 글이 좋은 말로는 '의식 흐름 기법'같기도, 나쁜 말로는 '그래서 대체?! 뭐? 네가 말하고 싶은 게 뭐야?'산만과 어수선 * 얼렁뚱땅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노마드"라.


디지털 기기를 들고 다니며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로, 제한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유목민. 
*또한 노마드란 공간적인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 가는 것, 곧 한자리에 앉아서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지향하는 사람을 뜻한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무수한 의미를 가진 단어구나. 의식흐름과 제 멋대로인 나의 두 가지 점을 짬뽕 해나도 '당당해질' 만큼 멋진 표현 같았다. 정착하지 않은 유목민, 떠돌아다니는 나의 정리 습관과 글쓰기, 나란 사람과 또 어딘가 밀접하게 닮은 것 같아서 좋기도 하다. 

특히 저 말이 내 마음을 찌르르 사로잡았다.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지향하는 사람을 뜻한다. 


자꾸 떠오르는 어떤 일화도, 내 유년도,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도-그걸 다시 글로 뱉어내고 써 내려가고 기록하는 것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나를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정형화되고 멈춰있는 글 쓰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무언갈 다시 떠올리게 하고 '환기'시켜주는 노마드면 좋겠다, 정말. 

떠돈다고 해서 나를 잃은 게 아니듯이 그 안에서 진짜 '나'를 발견할 거라 믿는다.


내 말을 들어줄 만한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때도 나는 책을 꺼내 메모를 하고 일기를 썼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그냥 내 감정이나 상황을 기록하고 싶어 했다. 널브러진 어떤 책 한 조각 어디쯤이 펼쳐 놓은 채라도 내가 다시 볼 수 있는 그 자체가 좋았듯이 글을 쓴다는 건 그냥 나를 툭 내려놓는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위치와 정리된 자리를 나 혼자만 알지만 이젠 그걸 나 혼자가 아닌 함께 공유해 가고 다듬어 가야 할 필요성도 느낀다. 


토하듯 글쓰기란 글을 시작으로 브런치에 글을 썼지만 그게 내 온갖 토사물이 아니라 나의 찢어지고 조각난 때론 빛났던 어떤 한 부분이듯이 거기에서 끊임없이 또 새로운 걸 발견하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엉망이지만 한 가지 칭찬을 들었다. 새 숲 습작 시간, 대학교 때 어마어마한 나의 오류들을 지적해 주신 조성기 선생님께. 

맞춤법, 띄어쓰기 오류를 일 학년 때 보단 적었지만 여전히 왕창 받은 후 선생님의 한 마디.

-난 그래서 기계의 맞춤법 점검도 믿지 않는다. 기계보다 정확한 사람들을 존경할 뿐.-


그래도 오늘 읽은 소설 중에서 내 마음을 찌르르 와닿게 번뜩이는 한 문장은
 나경이 글에서만 발견할 수 있었네.
딱 한 문장!


그 나경이다. 

나다, 앤나우.





글쓰는 오늘 Season 10 우리들의 글루스 II

'왼쪽 정렬로 글쓰기' /후기

세 번째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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