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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Mar 03. 2023

하와이에서 길을 잃다 1

*창작 동화* 공모전에 내려다 지각해서 여기에 먼저 올려본다

영영이네 집은 아침부터 분주합니다.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김밥을 열심히 말았어요. ‘영이네’ 김밥·분식의 사장이기도 한 영영이 엄마는 김밥, 떡볶이, 라면에 튀김까지 뚝딱 잘 만들지만 그중에서 김밥을 제일 맛있게 잘 만들어요. 동네 사람들도 소풍날이나 나들이 갈 때 영이네서 김밥을 단체로 주문하기도 해요. 속이 꽉 찬 영이네 김밥 집엔 먹음직스럽게 조린 갈색  우엉도 전부 영영이 엄마가 만들어요. 두껍게 말아진 김밥은 옆구리 하나 터지지 않고 참기름을 발라 논 덕에 윤기가 좔좔, 탱글탱글 맛있어 보입니다. 영영이는 눈곱도 안 떼고 동생 이영이랑 엄마 옆에 쪼르르 붙어서 보조 역할을 해요. 갓 지은 밥에 다시 양념을 칠 차례예요.

-영영, 소금 탈탈!

-소금! 요만큼? 이만큼?

네 살 이영이가 자기가 하겠다고 난리지만 소금이 와르르 쏟아져서 혼난 경험이 있는 걸 기억하는 두 살 터울 언니 영영이는 다급하게 동생 손을 잡아요.

-아냐, 아냐! 이건 언니가 할게. 이영이는 이따 밥에 참기름 살살 넣어줘. 알았지?

눈치 빠른 영영이가 참기름 뚜껑을 뽕 열어서 좔좔 고소한 냄새로 이영이를 유혹해요. 이영이는 소금 탈탈은 잊은 채 어느새 침이 꼴깍, 코가 벌름벌름 참기름 통으로 통통한 손을 뻗습니다.  참기름은 실수로 조금 더 들어가도 고소하고 맛있기만 하거든요.

동생 이영이가 정 가운데로 몰린 예쁜 속이 있는 김밥을 먹으려고 하면 엄마가 말립니다.

-아니야, 이건 반듯반듯 예쁘니까 도시락 싸가야지. 여기 꼬랑지 부분이나 아니면 엄마가 한 입 크기 싸 놓은 거 애기 김밥 먹자, 이영아.

-이이, 시러, 시러!

이영이는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나 봐요. 양손으로 커다란 김밥을 더 꽈악 쥐고 터뜨려요. 아휴. 영영이는 언니답게 엄마가 한쪽에 챙겨놓은 미니 김밥도 먹고 김밥 꼬다리라 부르는 양쪽 끝 부분도 입에 열심히 넣어요. 엄마의 김밥은 각각 재료마다 알록달록한 맛이 나요. 특히 고소 짭조름하게 볶은 요 당근이 평소엔 그렇게도 먹기 싫은 반찬인데 엄마 김밥 속에선 마법같이 꿀맛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살짝 매콤하게 무친 어묵도 햄과 오양맛살 사이에선 하나도 안 매워요. 볼이 빵빵 다람쥐가 알밤을 저장하듯 김밥 두세 개를 한 번에 입 안 가득 넣습니다.

-에헤, 그러면 김밥은 체해. 밥이 꽉꽉 찬 음식이라 엄마가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고 했지. 오늘은 가게를 안 열어서 엄마가 어묵국은 못 끓였어. 대신에 아까 계란 지단 부치고 남은 걸로 계란 국물 해났어. 잠깐 기다려, 영영이랑 이영도 여기 따뜻한 국물 해서 같이 먹자. 

엄마는 쉬는 날도 왜 이리 분주할까요. 우리처럼 김밥 꽁지 하나 쏙쏙 빼먹지 못하는데 계속 우리 입에 국물도 넣고 반찬도 넣기에 바빠요. 사실 영영이는 김밥 꼬다리를 하도 질리게 먹어서 예쁜 김밥을 입에 쏙쏙 넣고 싶었어요. 하지만 오늘은 참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하와이로 여행 가는 날이거든요. 


하와이 여행에 웬 김밥이냐고요? 우리 가족은 같이 손잡고 전철 타고 버스를 타고 하와이에 간데요. 하와이까지 걸어서 가야 해요. 다른 날 보다 많이 많이 걸을 거래요. 그래서 아침 일찍 출발하고 점심 먹을 김밥도 엄마가 준비한 거예요. 엄마의 파인애플이 그려진 수영복, 영영이 수영복은 딸기 그림, 막내 이영이의 오렌지가 그려진 수영복까지 어젯밤에 봉지 안에 꼭꼭 쌌어요. 엄마는 평소에 안 입는 하늘하늘 나비처럼 예쁜 원피스를 입고 갈 거래요. 아빠 수영복만 무늬가 없어요. 아무것도 그려진 게 없지만 아빠는 커다란 꽃무늬가 그려진 ‘하와이안 셔츠’를 입을 건가 봐요. 하와이 아빠들이 입는 옷인가 봐요. 우리 아빠도 하와이에 가서 그걸 고르신 걸까요? 


부곡 하와이 티켓


아빠 회사에서 티켓이 나왔어요. 아빠는 영등포에 있는 커다란 롯데 백화점에서 일해요. 어린이날이 되면 이영이와 영영이 이름으로 된 롯데 제과의 과자들이 전부 담긴 커다란 과자 박스를 두 개나 받아오는데 그게 얼마나 기쁘고 짜릿한 일인지 몰라요. 생일에 나오는 케이크 보다 더 큰 비명을 지르게 돼요. 아빠의 일터가 백화점이란 것도 나중에야 알았지만 영영, 이영 자매에게 ‘롯데’는 빼빼로와 칸쵸만으로도 이미 최고의 직장이에요. 아빠는 그곳 전기 시설부에서 일하는 기술자인데 아빠가 직원들 하고 응모한 ‘하와이 응모 티켓’에 딱! 당첨이 된 거래요. 아, 물론 부곡 하와이요. 거긴 한 해 방문객이 200만~250만 명이 되는 어마어마한 큰 수영장이에요. 영영이는 상상이 되지 않아요. 200명만 해도 이미 영영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아이들이 하나 가득 차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숫자인데 거기에 0을 몇 개를 더 붙여야 200만 명이 되는 걸까요? 모르긴 해도 더 큰 언니들이 다니는 국민학교에도 전부 다 들어갈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숫자임이 분명해요. 아빠는 거기 가서 수영도 하고 밤에는 바사삭 치킨에 시원한 맥주도 한 잔 마실 생각에 벌써부터 즐거워 보여요. 엄마는 아무리 졸라도 가게 문 한 번 닫지 않았지만 공짜 티켓이 생기고 어린 동생과 영영이가 엄청나게 조른 탓에 결국은 졌다, 하면서 평일이지만 큰 결심을 하고 가게 문을 닫았어요. 우리 가족은 하와이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매일같이 말았던 김밥인데 오늘따라 엄마의 손길도 가볍고 즐거워 보입니다.

-언니, 언니, 엄마도 기분 좋아?

막내 이영이가 엄마랑 언니에게 기분이 얼마큼 좋은 물어봅니다. 

-응, 맞아, 엄마도 언니도 기분 엄청 좋아. 엄마가 우리보다 더 좋아하는 거 같아. 엄마 수영복이 제일 예뻐. 근데 봐봐라, 언니는 선글라스도 챙길 거다. 

-언니, 나도! 나도! 썬썬썬!

언니 영영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금 더 예쁜 꽃무늬를 골라 자기 머리에 척 끼고 동생 이영이 건 조금 덜 예쁜 구름 모양의 하늘색 선글라스를 골라줘요. 엄마는 이영이가 무조건 자기 거를 찾을 때부터 똑같은 걸 사주고 싶어 했지만 그건 영영이가 싫어서 매번 반대했어요. 동생이랑 똑같이 쌍둥이처럼 보이긴 싫었거든요. 하지만 영영이에게 이영이는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하고 귀여운 동생이랍니다. 

엄마한테 이렇게 예쁜 수영복이 있는 줄 몰랐어요. 매일 김밥 집에서만 보는 우리 엄마, 양복차림으로 회사에 출근하는 아빠, 귀여운 동생 이영이와 영영이가 처음으로 가는 물놀이예요. 

돗자리, 수영복, 갈아입을 옷, 커다란 비치 타월, 슬리퍼, 그리고 영영이랑 이영이의 귀여운 오리랑 도넛 모양의 튜브, 아빠의 비싼 카메라, 엄마가 아침부터 준비한 맛있는 김밥과 구운 비엔나, 과일 도시락, 우리 가족은 단단히 준비했어요. 자자, 이제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거예요. 바다를 본 건 텔레비전과 그림책에서 본 게 전부예요. 수영장은 작은 데 가봤지만 바다처럼 생긴 수영장은 처음이에요. 우리가 가게 될 바다 수영장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이영이도 영영이처럼 설레는지 재잘재잘 말이 많아요,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가는데 손을 앞뒤로 붕붕 흔들어 봅니다. 다른 때 보다 힘이 넘쳐요. 이렇게 엔진을 가동해서 걸으면 하와이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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