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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Mar 03. 2023

하와이에서 길을 잃다 3

*창작 동화*

하와이에서 길을 잃다


-여보, 여보, 이영이가 없어졌어요. 

목이 말라서 잠깐 얼음물을 마시러 나온 사이에 우리가 있는 돗자리에 가보니 엄마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빠에게 달려왔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언제?!

-아니. 애가 푹 잠들었길래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져 가지고, 내가 짐도 잃어버릴까 봐 여기 당신 카메라랑 지갑만 먼저 챙겨서 얼른 화장실을 갔는데. 화장실에 사람이 너무 많은 거야. 멀기도 멀어서 돌아와 보니까,

-영영아, 안 되겠다. 너는 여기 이 자리에 꼭 붙어 있어라, 엄마랑 아빠가 이영이를 찾아올게. 이영이가 돌아올지도 몰라. 여기에 꼭 있어. 짐도 챙기고. 너는 어디 가면 안 돼!

아직 이영이랑 같이 제대로 물 한 번 담가보지도 못했는데 이영이가 사라졌어요. 이영이는 어디로 갔을까요?


하와이안 셔츠


-언니, 언니, 엄마, 엄마 어딨어? 아빠! 엄마!

잠에서 깬 이영이가 울고 있어요. 이제 막 눈을 떴는데 주변은 시끌시끌 덥고 햇볕도 강하게 내리쬐고 있어요. 이영이의 엉킨 잔머리가 얼굴이랑 목에도 붙어서 간질간질 답답해요.

-으아아 앙, 엄마, 언니. 아빠. 나빠, 나빠.

이영이는 생각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모두 불러 봅니다. 여기가 어디고 어떻게 오게 된 건지 아직 꿈인지 뭔지 기억도 안 나요. 부스스 눈을 뜬 채 무작정 걷다가 여기가 어딘 지 몰라 어리둥절합니다. 계속 걷고 또 걸요. 잠이 덜 깬 탓인지 앞을 제대로 못 봤어요. 

-풍덩!

이영이 발이 난간에 걸쳐 있다가 그대로 수영장 안으로 떨어졌어요. 

뽀르르르르르를 뽁! 

큰 일이에요. 발이 닿지도 않는 깊은 풀장이에요. 물속에서 눈을 떠보니 사람들 다리만 보여요. 물속에서 보는 사람들 다리가 신기해요. 투명하고 제각각 날아다니는 거 같아요. 말을 하고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네요. 어떤 상황인지 몰라 이영이는 '살려달라는'말 대신 '엄마'를 부르고 싶었어요.

-어푸푸푸!

누군가가 타고 온 튜브의 하얀 줄이 이영이 손 끝에 겨우 닿았습니다. 이영이는 놓치지 않고 얇은 밧줄처럼 생긴 그 하얀색 줄을 꽉 잡았어요. 이영이는 4살밖에 안 됐지만 김밥 싸는 엄마 손처럼 손끝 힘이 야무지고 단단했어요.

-푸화!!! 풉풉!

한 번 밖으로 나왔지만 이내 다시 꼬르륵, 키가 너무 작아서 물속으로 다시 잠겨요.

-어어, 아기다, 아기야! 잠깐요, 여기 아이가 있어요. 아이가 어떻게 이 깊은 풀에 들어왔지?

어떤 아저씨 한 명이 이영이를 얼른 들어서 물 바깥으로 나가는 난간 쪽으로 손을 잡을 수 있게 올려줬어요. 웩웩 이영이는 파란 수영장 물을 바깥으로 토했어요.

오들오들 물속에서 숨도 못 쉰 이영이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뭐라 뭐라 뒤에서 부르는 소리도 못 들은 채 계속 어딘가 걸어가요. 너무 창피하고 무서웠어요. 아무도 없다는 것이. 방금 뭔지 모르는 곳에 빠졌는데 숨이 안 쉬어졌다는 것도요. 그냥 앞으로만 계속 걷고 또 걸어요. 

계속 걷다가 정신을 좀 차리고 아까 식구들과 김밥 먹은 자리를 찾으러 가는데도 보이질 않아요. 분명히 이 나무였던 거 같은데 나무를 옮긴 걸까요? 물속에서 눈물을 흘리려던 게 쑥 들어간 줄 알았는데 다시 울음이 으앙 터집니다.

-엄마, 엄마. 엄마, 으아아아아아아앙!

울고 또 울어도 너무 많은 사람들 틈에서 이영이 울음소리조차 정확히 들리지도 않아요.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맛있는 걸 먹기 바빠요. 이영이는 울다가도 걸음을 멈추지 않아요.


이영아, 만약 길일 잃게 돼서 엄마 손을 놓치면 꼭 기억해.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어야 해. 알았지?


언젠가 엄마가 이영이를 붙들고 해 준 말을 떠올렸지만 그러려면 아까 빠진 커다란 물이 있는 곳으로 다시 걸어가야 하는데, 그쪽으로는 도저히 발걸음을 뗄 용기가 나지 않아요. 이영이는 슬리퍼도 안신은 채 맨발로 오렌지 무늬가 박힌 수영복만 입고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코를 훌쩍거립니다.

-엄마, 아빠랑 언니, 다 어딨어? 이영이만 두고 어딨어? 

걷다 보니 바닥의 까슬까슬한 시멘트 느낌이 아니에요. 이영이 혼자 맨발인 것도 창피했는데 나무가 울창한 숲 속을 들어왔어요. 

-아빠다!

아빠가 오늘 아침에 입은 하와이안 셔츠가 눈에 띕니다.

-아빠, 아빠!

이영이가 열심히 달려가요.

-어어, 누구니? 

커다란 키의 아빠랑 다르게 생긴 아저씨가 이영이를 바라봅니다. 처음 본 또 다른 낯선 얼굴을 본 이영이는 이미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주저앉아서 울어요. 젊은 아저씨는 이영이가 아빠라고 뛰어와서 셔츠를 잡아당길 때부터 놀랐는데 아이 얼굴을 보고 더 놀랐어요. 

-아빠랑 엄마랑, 다 없어, 다 사라졌어. 언니도. 으아아 앙!

아빠랑 같은 하와이안 셔츠만 입었을 뿐인데 이영이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서 도와달라고 말해 봅니다.

-이영이 길을 잃었어. 우리 돗자리 없어.

아저씨는 그제야 이영이 앞에 눈높이를 맞추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요.

-저런, 저런. 너 이름이 뭐야?

-내 이름? 훌쩍훌쩍.

-그래, 아저씨 봐봐. 아저씨가 저기 저기 멀리 보이지? 계단 위로 올라가면 아빠도 엄마도 만날 수 있는 데를 알아. 거기로 널 데려다줄게. 이름이 뭐야? 이름은 꼭 알아야 아빠 엄마 찾을 수 있어.

-나는 이영이. 윤이영.

아저씨는 이영이가 걸어오면서 생긴 상처 입은 발바닥을 우선 물에서 좀 닦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전에 하와이안 셔츠로 이영이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자, 손잡고 저기 수도까지 걸어가자, 이영이 다리 아파?

-다리 아파. 발도 아야 해.

-그럼 업어줄까?

아저씨는 이영이를 응차 업어서 수돗가로 걸어갔어요. 계속 엄마랑 아빠랑 언니 이름을 물어봤지요.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는 약속도 했어요.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손과 발도 다 씻은 이영이는 아저씨가 새로 사준 슬리퍼도 신고 바퀴가 달린 아이스크림 자동차에서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하나 받았어요. 빵빠레보다 이층은 더 높아 보이는 그 아이스크림을 이영이를 다시 처음으로 웃게 했어요. 이영이는 이제 엄마를 찾으러 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미아보호소 


거기엔 외국인이 있었어요. 넓적한 돌계단을 밟고 종종걸음으로 따라간 커다란 사무실에는 은색 머리의 안경을 낀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이 있었어요. 수영장 물빛보다 더 파랗고 투명한 눈동자예요.

-외국인이닷!

이영이가 손가락으로 가리켰지만 외국인은 웃으며 이영이한테 손인사를 해줬어요. 마이크에 대고 솰라솰라 뭐라고 말을 하기도 해요.

-아이 이름은 윤이영, 4살 꼬마예요. 울고 있어서 제가 데리고 왔어요. 길을 잃은 거 같아요. 장소에 대한 개념은 하나도 없고요. 그래도 언니랑 아빠 엄마 이름을 정확히 알아요. 똑똑한 애예요. 부모님을 찾는 방송을 해주세요.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아저씨는 이영이 대신 말을 해줘요.

예쁘게 생긴 언니가 이영이 앞으로 다가왔어요. 물도 한 잔 손에 들었어요. 오늘은 전부 내 앞에서 키를 낮춰서 무릎을 꿇네요.

-이영아, 이영이 진짜 똑똑하다. 많이 무서웠지? 자, 여기서 이제 크게 숨을 쉬고 물도 한 잔 마셔. 여기는 무서운 곳이 아니야. 봐봐, 방송으로 사람들을 찾아주고 있지. 언니랑 여기 아저씨들, 외국인 아저씨도 전부 엄마 아빠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야. 언니한테 하나씩 또박또박 말해줄 수 있어?

이영이는 낯선 또 다른 세계가 무서워져서 얼른 아저씨 뒤로 숨었어요. 아저씨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영이도 업어주고 손도 잡아주고 아이스크림까지 사줬는걸요. 이영이는 그래도 아저씨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고, 상철아, 이놈아, 어디 갔었어? 

여기저기 울고 있는 아이들, 이영이보다 키가 두 뺨 넘게 큰 오빠야들도 웅성웅성 있는 그곳에 반 실신한 모습으로 엄마들이 달려와서 자기 아이를 찾아왔어요. 모두 엉엉 울고 있어요. 잔뜩 인상을 쓴 채, 웃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어요. 한쪽엔 여러 대 있는 마이크가 멋있는 방송국 같지만 빡빡하게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작은 텔레비전 화면 속에 사람은 빽빽하고 거기 어디에도 이영이의 엄마 아빠는 보이지 않아요. 영영이 언니도요.

상철이 오빠는 엄마를 만나서 철썩철썩 소리 나게 엄청 아프게 등판을 맞고 있어요. 이영이도 엄마에게 저렇게 혼나면 어쩌죠? 기가 죽은 이영이는 자꾸만 아저씨 뒤로 숨습니다.

-괜찮아, 이영아, 무섭구나. 여기 낯설지? 여기는 전부 이영이처럼 길을 잃은 아이들이 오는 곳이야. 길을 잃어서 이영이처럼 무섭고 힘들어서 우는 거야. 제가 아이 이름하고 부모님 이름을 적어 줄게요. 저한테 펜을 주실래요?

-아, 그럼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이영아, 언니가 여기에 엄마랑 아빠 이름 말해 줄 거야. 그럼 이영이도 얼른 엄마랑 아빠 만날 수 있어. 그럼 부탁드려요.

예쁜 언니가 제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싱긋 웃어 줬어요.

-언니도, 언니도 있어요, 전.

이영이는 가족 중에 빠진 언니 이름을 제일 먼저 말해줍니다.


미아보호소 안내 방송입니다.
윤이영, 4세, 윤이영 아이의 보호자를 찾습니다. 아빠 윤주성 엄마 정숙자 언니, 6살 윤영영 서울시 개봉동에 거주합니다. 아이의 이름은 윤이영 4살입니다. 부모님은 이 방송을 들으시면 서쪽 타워 ‘미아보호소’로 와주세요. 미아보호소 안내 방송입니다.……


드디어 이영이의 이름이 부곡 하와이에 울려 퍼졌어요. 미아보호소에 잠시 후에 옷을 입다 만 머리가 온통 헝클어진 엄마 모습이 보였어요. 세상에 엄마의 모습이 10년은 더 나이 든 할머니 같이 보여요. 예쁜 원피스를 입는다고 목걸이도 달고 제일 빛나는 모습이었는데 엄마는 왜 이렇게 순식간에 변한 걸까요. 거의 기다시피 뛰어오는 아빠도 보였어요. 그리고 뒤에서 계속 울고 있는 언니 모습도요. 영영이는 잠든 동생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어요.  동생과 떨어져서 영영 못 찾게 되면 혼날까 봐 조마조마하기도 했어요. 또 동생을 영영 자기 이름처럼 못 찾으면 어떡하지 계속 걱정이 됐어요. 부곡 하와이 수영장 곳곳엔 어른 한 명이 서도 안으로 쑥 들어갈 만큼 깊은 물도 많았는데 처음에 멋있어 보이는 수영장이 영영이는 점점 무섭게 느껴졌어요. 

‘우리 이영이가 혹시 저런 곳으로 떨어지며 어떡하지?’

영영이도 엄마도 아빠도 모두 이영이를 부르느라 목이 잔뜩 쉬었습니다.

“엄마아~!! 엄마! 엄마, 어디 갔어?”

이영이를 보자마자 엄마가 작은 영영이 몸을 들어 꽉 끌어안아요.

-아니, 자다가 그렇게 네 맘대로 일어나서 길도 모르고 이상한 데서 혼자 걸어서 어디까지 간 거야? 어떡할라고, 세상에, 어떡할라고. 아이고 이영아!

엄마도 철썩철썩 소리가 나게 이영이 작은 등을 때려요. 작은 오렌지 빛 색깔에 더 작은 오렌지 모양이 촘촘하게 그려진 이영이 비키니 위로 엄마의 빨간 손자국이 남아요.

-어머니, 아이 때리지 마세요. 아이가 정말 많이 놀랐어요. 

아까 전에 이영이를 챙겨주고 물도 가져다준 예쁜 언니가 엄마 옆으로 와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8세 이하 미취학 아동이 길을 잃은 건 전부 부모님 잘못이에요.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어요. 때리지 말고 안아주세요.

이영이는 엄마에게 등을 맞고 속상해서 엉엉 울다가 자기를 안아준 영영이 언니에게 안겨 목이 터져라 웁니다.

-갑시다, 가요. 여기서 창피하게 아이 더 때리지 말고. 다 찾았으니 된 거예요. 여기서 찾아서 얼마나 다행이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아빠가 엄마 어깨를 다독거리며 미아보호소 직원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이영이가 다친 곳은 없는지 여기저기 살피면서요.

-여기까지 데리고 온 한 분이 계시는데, 어머나 사라지셨네요. 그분이 아이 발도 닦아주고 업어주시기도 한 거 같아요.

-응응, 아빠 나 아이스크림도 사줬어!

철없는 이영이는 엄마 아빠가 여기선 꼼짝도 못 하고 자길 안 혼낸다고 하니 기분이 금방 좋아졌어요. 이제 가족들도 만나고 집에 가겠구나, 기쁜 상상을 하니 기분이 살아났어요. 그래서 또 아이스크림 자랑을 합니다.

-야! 윤이영, 그거 혼자 먹으면 어떡해? 우린 지금 우리 짐도 다 잃어버렸어. 돗자리에 둔 짐도 전부 사라지고 너랑 내 선글라스, 아빠 카메라도 도둑맞았대. 으앙, 나도 아이스크림!

영영이 언니도 갑자기 소리 내서 울어요. 


하와이안 셔츠의 아저씨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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