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나우 Apr 05. 2023

말문이 트인

40개월 둘째가 묻는다


-엄마는 뭐를 제일 좋아해? 
*나는 커피가 좋아. 선율이는?
-선율이도 커피 좋아. 엄마 커피 좋아. 
*선율이는 뽀로로 커피 마셔야지. 엄마 커피는 맛없어.
-아냐 아냐! 나도 엄마 커피 마실 거야!
*선율이는 그럼 뭐가 무서워?
-초록 괴물. 선율이 초록색 괴물 무서워. 으악.


새로운 어린이집에 조금씩 적응할 무렵,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걷는데 선율이가 나한테 또박또박 말한 첫 번째 질문.




영화 『미쓰 홍당무』에서도 양미숙이 오랜 시간 혼자 짝사랑한 서선생님에게 묻는다.

선생님, 저한테 전화하고 싶으신 적 있으셨어요?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나는 미쓰 홍당무 양미숙의 그 질문이 이렇게 들렸다. 한 번이라도 제 생각 한 적 있으세요? 

매일매일 전화하고 싶었어요. 그냥.

사랑하면 원래 그 사람이 언제나 올웨이즈, 내내, 가끔 문득, 뜬금없이 궁금해지는 법이거든. 이 당연한 사실이 평범한 사실이 나를 또 뭉클하게 한다. 

요즘은 또박또박 아이의 말귀를 알아듣는 것도 신기한데 아이가 나에게 말문이 트이고 한 첫 번째 질문이

내가 뭘 좋아하는 거냐니! 관심받고 사랑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린이 집에서 고단하고(?) 즐거운 하루를 마치고 엄마와 잠시 걷는 봄 소풍 같은 이 길에서 늘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 놀이터로 내 손을 이끌고 가는 아이지만 사실은 너도 내가 궁금했던 거구나. 

이제는 엄마 커피 좋아하는 것도 알아갈 만큼 살짝 크기도 했고. 

진짜 내 커피를 줄 수는 없지만 초콜릿 우유나 뽀로로 음료(내가 뽀로로 커피라고 속인 음료)를 마시면서 내 옆에서 가만가만 앉아있기도 했으면 좋겠다. 


사실 널 안다고 해도 늘 단편적인 것뿐, 네 속마음을 더 잘 말한다고 해도 내가 네가 돼 보지 않는 이상 네 마음을 전부 안다고 할 순 없다. 초록색을 좋아하고 감자과자를 하루에 한 봉지씩 먹고 싶어 하고 얼굴이 다 터지고 넘어져도 뛰고 일어나서 킥보드 타는 걸 좋아하는 너. 브레이크가 있어도 멈추기보다는 다시 나아가고 또 달려가고 싶어 하는 너. 맨날 달리기 일등을 하고 싶어서 선율이 일등이지? 내가 일등이지? 확인하는 너. 엄마는 쫓아가지 못하고 힘들 때가 많아서 늘 헥헥 거리지만 엄마도 널 자주 궁금해하고 네가 안 보이면 보고 싶어, 선율아. 네가 잠 잘 때면 늘 내 갈비뼈 근처를 베고 자려고 하지만 엄마는 아가 머리가 무거워서 늘 내려놓고 싶은데 기어코 네가 내 심장 소리를 들으려 할 때 그게 몸은 참 피곤한데 또 기분은 좋아. 선재 말처럼 너는 참 용감하고 멋대로고 늘 웃는 상이야. 타고난 웃수저, 우리 선율이. 나란 사람을 궁금해 해준 이 시간이 오래오래 기억이 날 것 같아.

어린이집에서 딸기를 얼마나 땄을지, 공부하는 시간엔 엉덩이 붙이고 제대로 앉아 있을지, 공룡이나 자동차 말고 또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 지, 네가 없는 시간 덕에 엄마도 충전하고 쉬면서 그 와중에도 널 생각할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해.




사진은 미선언니와 함께 한 솔방울 베이커리.

뽀로로 집을 선물해 준 미선언니, 놀이터에서 놀다 온 뽀로로를 뒤늦게 만났다. ㅎㅎ


작가의 이전글 글루스, 글루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