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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Apr 11. 2023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더 퍼스트 슬램덩크)


보면서 알았다. 어느덧 저절로 나오는 대사, 맞다! 나 슬램덩크의 찐 팬이었지. ㅎㅎㅎ

고등학교 시절 완식이에게 슬램덩크 만화책 전권을 빌려서 읽었다. 한 권 한 권 읽는데 재밌고 설레고 아슬아슬 긴장되고 눈물이 펑펑 났다. 세상에! 농구 규칙을 하나도 모르는데도 농구 만화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니?!

놀라운 발견이었다.

책을 빌려준 완식이는 길거리 농구 대회에 나가서 친구들과 함께 일등으로 자전거도 받았다. 그 애에게 슬램덩크란 어떤 의미일지! 농구 골대만 있으면 삼촌 뻘 되는 아저씨들하고도 3:3 농구를 틈만 나면 했던 완식이. 그 애가 농구를 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슬램덩크 』때문이라고 했다. 전권 중 마지막 권 하나만 없어서 서점에서 마지막 권을 사서 선물해 준 기억이 난다. 선물하자마자, 포장지를 뜯자마자 내 손으로 몇 초 만에 다시 왔지만. ㅎㅎㅎ 나도 너무 읽고 싶었던 마지막 권!


나는 어이없게도 등장인물들 중 강백호 친구 양아치 건달 무리 중 제일 멀끔하게 생긴 '양호열'을 좋아했다. 몰랐는데 팬들 사이에선 꽤나 인기가 많은 녀석이었다. 유일하게 농구 룰도 잘 알고(?) 경기 전반을 간파하는 능력도 뛰어나고(박학다식 설명충을 좋아한다ㅋㅋ) 강백호보다 실질적인 백호파의 일인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노구식, 이용팔 이런 이름들 사이에서 뭔가 빛나는 존재!

 

여하간 나에겐 불꽃남자 정대만도, 불타는 머리 강백호도, 창백한 코트의 귀공자 타입의 서태웅, 넘버원 포인트 가드 송태섭도, 안 선생님도, 고릴라 채치수도 전부 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만화를 읽는 내내는 농구가 진짜 목숨과도 같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아줌마가 돼서도 내 감성을 깨워주는 영화라니! 놀랍고 어마어마하고 멋지다!!




이번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인공은


내 친구 미영이의 원픽 넘버원 가드 송태섭이다. 뽀글 머리에 이국적인 외모, 눈이 푹 들어간 송태섭. 가장 포인트는 시크한 성격, 작은 키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있는 그림을 봐도 역시 어마어마하게 작구나. 약점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걸 뻔하게 그리지 않아서 더 좋았다. 

나중엔 그가 아주아주 큰 산처럼 보인다. 

약점을 간파하기까지 과정이, 어떻게 뚫고 가느냐 그 여정이 두 시간 러닝타임 내내 펼쳐진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듯 2시간 내내 경기가 펼쳐지는 경기 속에 곳곳에 태섭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된 과거, 아버지와 형의 죽음이 자연스레 등장한다. 양아치 같다고 하지만 저 정도면 뭐, 따로 방황이랄 것도 없는 착한 아이 었네, 뭐.


착하게, 저렇게 단단하게, 송태섭이 다시 설 수 있는 이유는 뭐지? 


영화에선 한 번도 그가 작은 키로 괴로워하거나 콤플렉스 가진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형이라는 큰 벽을 뚫고 넘어서 한 골을 성공했을 때 그 느낌! 그 뒤에 형이 꼭 끌어안아주면서 

지금 이 느낌을 꼭 기억해!


라고 했던 말처럼. 불우한 것 같지만 어린 시절 고귀한 정서야 말로 우리의 삶 전반을 휘감아 키워주는 자양분이 되는 걸까. 얼마 전 재밌게 본 드라마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어린 시절 엄마가 차려준 밥이 어땠는지 엄마 밥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엄마가 안아준 느낌, 슬퍼했을 때 위로해 주고 안아준 그 일은
계속 마음에 남고 생각나더라고요. 
- 「신성한, 이혼」중에서 신성한(조승우)의 대사


태섭이의 엄마 역시, 죽었지만 이 세상에 없는 형아 준섭이도, 각자 모두의 인생에선 주인공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주인공일 것이고. 엄마는 넘어진 아이를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끌어 안아주지 않았지만 항상 태섭이 경기를 지켜봤다. 그리고 태섭이 말처럼 엄마에게 형의 죽음이 가슴 찢어질 듯한 트라우마였음에도 한 번도 

농구를 '포기하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묵묵히 응원해 주고 지켜 봐주는 정서.


나는 영화에서 내내 바다를 바라보고 혼자 앉아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처음에는 쓸쓸하게 느껴졌는데 나중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태섭이의 강인함은 엄마한테 온 거구나! 엄마는 그곳에서 엄마만의 시간을 보냈던 거구나, 바다로 떠나간 남편과 큰 아이를 그리워하면서도 그곳에서 쉬기도 하고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는 시간.

엄마의 쉼과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 


...


그리워할 수 있는 대상을 마음껏 그리워하고 누구 '대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랑했을 때 밀려가고 다시 다가오는 파도에 생각을 정리하고 수백 번 다잡았겠지.

남아있는 두 아이들과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 감정이 태섭이를 강인하게 단단하게 성장시켰다. 


농구 천재 정우성(아, 만화는 이름을 왜 다 이렇게 붙여 가지고;;; ㅋㅋ) 역시도 쓰라린 첫 패배에서 엉엉 울었지만 그의 바람대로 '경험'이라는 어마어마한 정서를 선물로 받았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세요, 그 기도가 패배가 될 줄은 몰랐겠지만 나는 지든, 이기든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응원한다. 


작은 성취감, 소소한 추억, 누구에게 응원받고 함께 한 작은 경험 하나가
 그 사람의 정서를 만들고 따뜻한 '정서'는 1초가 남은 상황에서도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한다.


흘러내리는 생생한 땀방울, 심장을 쿵쾅 거리게 만드는 메탈 음악, 그리고 친숙한 목소리의 더빙, 무엇보다 '슬램덩크'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기쁨 하나만으로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세컨드, 써드, 계속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Note. 정희가 선물해 준 영화 티켓으로 은진이와 함께 본 영화 슬램덩크! 3월 마지막 날까지가 기한이었는데 오전에 약속과 스케줄이 생기는 바람에 공짜 티켓을 날리기 싫어서 아슬아슬하게라도 봐야지 했는데 마침 은진이 시간도 괜찮아서 밤 9시 심야로 ‘슬램덩크’를 봤다. 심야 영화 데이트는 언제나 즐겁다. 히야씨, 은진 고마워! 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의 문단속 』이 좀 더 끌렸지만 맞는 시간이 없어서 차선책으로 고른 작품. 하지만 넥스트 베스트 띵이 아니라
퍼스트 원! 
넘버 원 더 퍼스트 슬램덩크!


*사진 :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영화 고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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