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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Apr 12. 2023

서태웅의 패스

더 퍼스트 슬램덩크

5살 선율이가 축구를 하거나 농구를 하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다. 어떻게든 자기 앞에 온 공을 발견 하자마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을 잡고  뛴다. ㅋㅋㅋ


▶ 이유는?

아무도 못 차게 하려고. 


그 모습을 본 신랑 왈

-재는 축구나 농구는 하면 안 되겠다. 패스는 죽어도 안 할 거 아니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할 수 있는 공을 줘야겠네. 테니스나 탁구 같은 작은 공.




코트의 귀공자 서태웅이 산왕 공고와 전에서 어마어마한 짓을 해버린다. 

원래 잘난 녀석들은 자기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패스 따윈 하지 않는다. 아니, 패스가 왜 '따위'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내가 좋아하는 명대사를 여기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야, 송태섭, 날 환영해!


만화책으로도, sbs방영 당시 오래된 화질의 애니메이션으로도 본 장면이었지만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본 그 장면은 내내 잊을 수 없었다. 


왜 환영하라 하는지 어리둥절하지, 처음엔.


(작년 여름 재밌게 본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등장하는 대사 '환대해'가 떠올랐다. 서태웅을 웃으면서 반갑게 환대하는 태섭이 얼굴은 도저히 상상조차 안되지만)


농구공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송태섭과 서태웅은 사실 만화책에서도 접점이 별로 없다. 송태섭은 서태웅을 자기만 잘난 줄 아는 귀공자 취급하고 서태웅은 송태섭을 깡다구만 부리는 키 작고 고집 센 가드 정도로만 보는 것 같았다. 그런 그가 자기를 처음 깨드린 순간이 온 것이다. 


▶ 정우성은 못했지만 서태웅은 한 거?

▷ 선율이는 안 했지만 서태웅은 처음 시도한 거?

바로 패스! 패스! 패에쓰!!!!


내가 넣을 수 있는 포지션과 거리라고 해도 내 앞에 꽉 막혀 있는 벽 같은 수비를 뚫지 못한다면 든든한 동료를 믿고 맡기는 거다. 패스 하나로! 


얼마 전 손흥민의 패스로 황희찬의 슛이 들어간 카타르 월드컵 최종전 장면도 떠오르고, 단체 경기의 묘미는 내 자리에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서있는 자리에서 그 사람의 마음도 살펴 주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내 곁에도 든든한 나의 팀이 있다. 내가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언제나 나를 살피고 안아주는 든든한 우리 식구, 가족들 - 나에게 별일 없어도 보고 싶다고 말해주고 나를 궁금해하는 우리 아이들. 든든하고 유쾌한 벗들, 소중한 이웃, 스승님, 목사님, 교회 동료 교사들과 팀들, 함께 글을 쓰고 읽어주는 사람들. 글을 쓰면서 한 번도 내 얼굴을 본 적 없지만 내가 올리기만 하면 내 글을 보러 와주는 한 분 한 분들도 나의 팀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오버인가? ㅋㅋ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진심으로 라이킷을 눌러주는 그대들이 고맙다. 내 편이라고 하고 싶다!)


세상은 아무리 뛰어난 농구 천재, 코트의 황태자, 귀공자 정우성 서태웅이라고 해도, 독불장군 5살 선율이라고 해도 혼자서는 뛸 수 없다. 뭐 혼자서 농구 골대에서 온갖 묘기를 뽐내고 덩크슛도 막 100골씩 때려 박을 순 있겠지만;; 그게 뭔 재미가 있다고!
때론 내가 가진 능력으로 내가 서있는 자리를 뽐내기보다 돌아보고 다른 사람 자리도 살펴보면서, 내 것 것을 나누고 던져줬을 때 승리할 기회가 찾아온다. 아니, 승리는 장담 못할 수도 있지만 '나누는 기쁨'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다. 든든한 우리 편!

나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면서 새삼 또 깨달았다. 




다정한 지영이는 이 영화를 보고 송태섭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며 눈물이 났다고 했다. 송태섭 엄마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엄마의 무기력하고 우울한 모습이 이해가 가고 슬펐다고. 

맞아, 아빠도 떠나고 큰 아들까지 떠나간 빈자리에서 엄마가 자기의 마음을 패스하기엔 두 아이들은 너무 어렸다. 엄마 손에 쥐어진 그 공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웠을까. 그럼에도 조금씩 자라난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주장, 부주장이 아니라 한『팀』이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으리라. 


나 역시 쓸쓸한 엄마와 무표정한 태섭이 모습에 중간중간 울컥한 장면도 많았음에도 이미 만화책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버린 탓일까.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이 나를 좀 더 가볍게, 담백한 마음이 들게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모처럼 웃으며, 통쾌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왔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아이맥스로 개봉한다고 하니 흐르는 땀방울과 부딪힐 때마다 삑삑거리는 농구화를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Note. 사진은 농구에 푹 빠진 큰 아이 친구 지호와 킥보드를 타며 농구하는(?) 선재, 와중에 공 빼앗길까 혼자 축구공을 뛰고 달리는 선율이. (가관이다! ㅋㅋㅋ 언제쯤 한 팀으로 뛸 수 있을까?)
하지만 너희들도 '패스'를 나누는 날이 언젠가 꼭 오리라 
난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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