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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Mar 28. 2023

글루스, 글루스

우리들의 글루스 II 후기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우리들의 글루스'모임에 참여했다. 

대학교 때 희곡이나 단편 소설, 달랑 시 한 장도 뭐가 그렇게 안 써지고 뭉그적거리다가 마감 타임을 겨우겨우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냈는데. 그런 내가 자발적 글쓰기 모임을 할 줄이야! 그것도 재밌게!!  :)

감상문이나 일반 리포트를 제출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내 이름으로 쓴 내 작품을 내는 일은 언제나 어렵고 부담스러웠다. 머릿속으론 좀 더 멋진 장면, 표현이 떠오르는 것 같은데 그게 활자로 나왔을 때 왜 이리 시시하고 맹숭맹숭한지;;  그래서인지 자꾸만 미루게 되는 일 같다. 미리 와다다다 써버리고 여러 번 보고 또 봐서 정성스럽게 짠! 하고 내는 성실한 학생이었으면 좋으련만, 


아니다, 사실은...


내가 그런 학생이 아니었기에 

지금 몇 곱절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쓰기의 기쁨을! 


이렇게 일상 속에서 한 번씩 공통 주제로 글을 쓰고 꽤나 실험적인 글 쓰기를 한다는 건 나에게 엄청 즐거운 일이다. 


시작은 작년 2022년 7월 18일 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제목은 '아이러니에서 시작된 나의 세리머니'-첫 번째 걸음


시작을 멋있게 브런치에 담고 싶었는데 글이 자꾸 발행이 안 돼서 야밤에 이너조이님께 따로 부랴부랴 개인 톡을 드리며

글이 안 올라가요 ㅜㅜ(글을 쓰긴 하는데) 왜 공유가 안 되는 거죠?

답답해서 묻기도 했었지. ㅋㅋㅋ 작가 신청, 통과가 돼야 공유하고 발행이 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몇 년 전에 소팔이와 진숙이가 깔아준 브런치를 나는 참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고 살았구나 싶고;;;

*이너조이님, 늦은 밤 죄송했어요. 저의 첫인상이 너무 웃기고 그랬을 것 같은데 ^^;;; 궁금해지네요.


그래도

신기했다. 매일 배달되는 문장을 엿보는 것만으로 떠오르는 일상이 바뀌고 나는 왜 이리 할 말이 많을 걸까? 왜 이리 가득 차다 못해 넘치는 이야기들이 자꾸만 자꾸만 쏟아져 나오는 걸까. 세상에 나오는 준비 중이었던 이야기가 폭발하는 사건. 글을 쓰는 공간도 없어서 친구에만 공개했던 페이스 북에 첫 시작을 열었고 이너조이님과  "글루스" 사람들에게 내 글을 보여주기 위해서 처음으로 '친구 설정'을 전체 공개로 바꿨다.

세상으로 첫 소통을 꿈꾸는 날을 *_* 잊을 수가 없다. 

모르는 사람, 한 번도 나를 스쳐가지도 않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지나간다는 상상을 해 본 적 없기에 '글쓰기'자체가 나의 사생활과 같은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그걸 좀 깨고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글 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블로그를 만들었고(여전히 꾸밀 줄을 몰라서 오울드 한 나의 블로그;; 미안해) 내밀한 깊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어서 '브런치'도전도 했다. 속 안에 가득 찼으나 꺼내지지 않았던 나의 마음 이야기, 유년 이야기, 육아를 하면서 울기도 하고 웃었던, 우리 식구들, 내 소중한 친구들, 문학과 영화 이야기.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해 줘서, 쏟아지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 줘서 진짜 고마워. 고마워요.
이너조이님과 연희에게 이 말을 건넸을 때 돌아오는 답변이 똑같았다.
(읭?? 둘은 같은 엠비티아이가 아닐까? ㅎㅎㅎ 잠시 생각하기도)
겸손하고 멋진 사람들의 반응은 나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도 언제나 단단한 말을 덧붙여준다.
-그냥 이때가 앤나우랑 잘 맞았던 기회이고 때였던 거다. 언제고 나왔을 글이 시기가 맞아서 "지금"이었던 것뿐. 그러니까 네가 다 잘한 거야!! [ ->네가 다 잘한 거야,는 내가 해석해서 덧붙인 표현입니다. ㅎㅎ]


나는 누군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줬을 때 어떤 사람이었지? 덩달아 더 폴짝폴짝 기뻐하는 유형, 좋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ㅎㅎㅎ혼자 눈물 콧물, 기절이야 서준엄마처럼 한 구석에서 오버스러운 눈물을 보이며 ㅋㅋㅋㅋ내가 뭔가 도움 돼서 뿌듯 그 자체인! 동네방네 자랑하는 타입인데. 벅찬 반응의 나와 달리 이런 답을 보면서 겸손한 사람들은 또 다른 단단한 힘을 주는구나. 공로도 그냥 '너'에게 돌리는구나, 혼자 잠시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 답이 멋있다고 느껴져서 마음에 오래오래 남아있다.




박완서 작가님의 시작을 여는 글로 내가 떠오르는 사람, 나의 유년 시절, 사랑을 주셨던 구경희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쓰다 보니 알았다. 내가 '글쓰기'를 정말 사랑하게 된 커다란 사건이 있었고 그 뒤엔 책도, 사건도 아닌 "사람"이 있었단 걸. 


신기한 게 늘 읽었던 문장임에도 골라준 문장마다 나의 생각들이 활개 쳤고 쓰고 싶은 주제가 몇 개씩 꼭 떠올랐다. '우리들의 글루스'는 그런 모임이다 '글'로 세상까진 바꾸지 못해도

'글을 쓰고 나서  내 기분을 조금이라도 좋게 바꿔주는' 글쓰기 모임. 

내가 주인공인데 이 정도면 세상이 바뀐 게 아닌가 싶다. 


진숙이와 얼마 전 등산을 마치고 이야기를 하다가 '글루스'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언니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편안해 보여요. 상담을 한 것도 있지만 또 다른 뭔가 계기가 있을까요?

-글쓰기! 나를 자꾸 들여다보고 내면을 꺼내보는 글쓰기! 이너조이님! 

(내 주변은 이너조이님을 나를 지탱해 주는 수호천사님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ㅎㅎ)

-언니 '자화상'글 쓰기 보고 놀랐던 게 와, 대단하다. 나는 아직 용기가 없어 그런 글을 쓰고 꺼내볼 시도조차 못하겠어요. 하지만 혼자 일기엔 써보고 싶어요.

진숙이 말을 들으니 알겠다. 나도 '이너조이님 자화상'글을 읽으며 너와 같은 생각을 했는데.

-진숙아, 사실 나도 용기가 없긴  마찬가지야. 나의 진짜 흑역사, 추태, 똘기까지 모든 걸 꺼내 보이기엔 내 용기도 한참이나 부족해. 도서관에서 책은 정리 안 하고 맨날 꿀물을 읽다 걸린 건 거기가 공개된 장소에 민정이랑 다른 친구들이 맨날 놀리고 그 사서 담당자분 한테도 몇 번 혼났거든. 조성기 선생님이 그러셨잖아. 

'누구나 마음속 노벨 문학상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걸 꺼내고 안 꺼내고 결정하는 시기만 다를 뿐이라고' 나도 어마어마한 그런 이야기를 전부 꺼내게 된다면 그게 진짜 용기란 생각이 들 것도 같고. 아직은 잘 모르겠어. 사실 나에게 가장 큰 용기는 "전체 공개" 발행을 했다는 거야. 내 친구들, 주변 사람들이 아닌 내 글을 우리 식구들에게도 공유하고 모르는 누구나 다 와서 읽게 한 것부터가 어마어마한 용기지. 내 글을 읽고 '용기'를 떠올려주니 고마워. 같이 글을 쓰자, 쓰는 건 멈추지 말자.


이건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번 우리들의 글루스 II 두 번째 시즌엔 좀 더 실험적인 글쓰기가 이어졌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주제가 정해졌고 PM님의 글과 여러 작가님들의 글이 배달됐다. 성장해 가는 중, 확장이 아니라 점점 뾰족하게 하지만 마음은 말랑하게 변화하면서 성장해 가는 중인 것 같다. 우리들의 글루스의 또 다른 변화가 기다려진다.

이너조이님은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글루스'를 떠올렸다고 하는데 그 드라마엔 주인공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춘희삼촌도, 동석이도, 선아도, 은희, 인권과 호식이도 모두 각자의 삶에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란 영화를 보면 처음엔 카메라가 주인공의 뒷모습만을 쫒고 있다. 하지만 그날 하루 일상 속 뒷모습이 아닌 옆에서, 앞에서 표정을 살펴보면 그제야 그 사람에 대해 우리는 '안다'라고 말할 수 있듯이

'뒷모습'만 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게 있다.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뒷모습, 그림자가 아니라 사실은 정면으로 나를 잠깐이라도 나를 바라보고 들여다보는 일 같다. 암, 뒷모습만 본 사람들은 절대로 모르지. -아니 정정, 나는 잠깐이 아니라 꽤 길게 나를 들여다보는 축에 속한다. ㅎㅎㅎ-

나를 볼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글루스!


글루스에도 날 글 쓰게 해 주고 손 잡아준 PM이너조이님이 계신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같이 공감해 주고 도닥여주고 달려준 귀한 러닝메이트들도.

'우리들의 글루스 시즌 II' 굿바이. 안녕.




글쓰는 오늘 Season 10 우리들의 글루스 II

후기를 씁니다.

후기도 참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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