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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Mar 17. 2023

나의 관념사전

ㄱ부터 ㅎ까지 나의 마음이나 주의


기시감(旣視感)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


데자뷔란 말보다 어쩐지 이 말은 이렇게 우리말로(물론 한자이긴 하지만)풀어났을 때 더 와닿는 이유는 뭘까. 하루키 소설에 자주 반복돼서 알게 된 단어. 어떤 일은 우연으로 일어나고 시작되기도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사실 우연으로 반복된 일 속에서도 친숙하고 편안한 순간들이, 그렇게 그냥 마음이 끌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경


어찌'나' 빛날'경', 난 내 이름이 좋다. 살면서 가까운 주변에 내 이름과 똑같은 사람을 지금까지도 만나 본 적이 없다. 중학교 때 만화책에서 '꽃나경'이 나왔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외국 사람들이 내 이름을 물어봐서 나경이라고 설명해 주면 꼭 '나쿙', '나컹'으로 부르는 게 싫어서 그럼 그냥 '나나'라고 해, 했더니 그건 진짜 네 이름이 아니잖아? 그냥 끝까지 나를 '나쿙'이라고 했을 때 내 이름을 더 사랑하게 됐다.




다정


다정(多情)도 병인양 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이화에 월백하고'이조년의 이 시조를 읽을 때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뭉클했다. 나는 정이 많다. 선재가 '그 앤 말은 잘 못하는데 그래도 다정하게 잘 대해주더라'라고 전학생 이야기를 할 때 선재도 날 닮아 다정한 아이구나, 빙긋 웃음이 났다. 누군가가 겪은 슬픔과 기쁨, 잔잔한 순간들이 내 마음에 너무도 빨리 물들어 오는 게 늘 신기했다. 감수성, 감정이 풍부해서 일 수도 있지만 난 이 말이 더 좋다. 다정도 병인양 하여, 그냥 이렇게 잠 못 드는 사람이 됐나 보다 하고.


+ 드라마


더 글로리 partII를 끝까지 다 봤다. 송혜교의 팬이다. 다다다 빨리 말하는 송혜교 말투가 좋다. 동그란 눈망울도, 환한 웃음도.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도 함께 봤는데 역시 추잡한 현실이 '드라마'를 따라올 수 없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추악하고 더럽고 화나도 드라마에선 복수라도 해주니 통쾌했던 일들이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는구나. 그래도 끈질기게 싸운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다시 바로잡고 싶은 사람들의 용기는 드라마보다 아리고 대단해 보인다.




롤업


나는 예쁘게 접지 못하지만 때론 소매나 바지 끝단을 가뿐하고 산뜻하게 접어서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멋스러워 보인다. 세심한 친구들이 나의 긴소매나 애매한 기장의 바짓단을 정성껏 예쁘게 접어 준 기억이 좋았던 것 같다.




무비


내가 영화에 처음 빠져 들게 된 계기는 추석인지 설날에 큰집에서 보았던 '비룡맹장'. 성룡이 나오는 영화였는데 성룡과 원표, 홍금보까지 쓰리 콤비로 어마어마한 액션과 애들 풋사랑(?) 같은 로맨스가 펼쳐졌다. 그 영화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냐면 삼일 내내 내 꿈에 등장했다. 물론 나는 성룡 여자친구 변호사였던가 경찰로.

우리 집은 부모님도 텔레비전을 거의 안 봤는데 드라마도, 가요 프로그램도 같이 시청한 기억이 거의 없다. 아빠가 뉴스를 챙겨 보시던 걸 빼곤. 유일하게 마음껏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 바로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였다. 졸린데도 밤새서 KBS에서 하는 토요명화를 다 보고 MBC로 갈아타서 주말의 명화 끝 부분까지 다 봐야 마음이 뿌듯해졌다. 항상 졸리다고 먼저 들어간 언니를 뒤로 하고 세수하고 볼을 꼬집으면서도 영화를 본 나의 유년시절. 불가사리, 루이말의 잃어버린 아침, 오멘, 미시시피 버닝, 델마와 루이스, 안녕 나의 빈센트, 태양은 가득히 같은 영화를 TV에서 본 건 나의 자랑이 됐다.





통통한 아가의 볼을 볼 때마다 자꾸 만지고 싶다. 통통 볼에서 목까지 이어진 찐빵얼굴. 잘 익은 통통 아가의 볼에서 나는 고소한 빵냄새를 좋아한다. 아이를 낳고 한참이나 아이 볼을 넋을 잃고 쳐다봤다. 가만히 코를 대보니 진짜 갓 구운 빵 냄새가 나는 듯도 하고. 으앙 하고 눈물 흘릴 때도 아가의 말랑하고 푹신한 볼이 그 슬픔을 다 씻어주는 것 같았다.




사과


툭하면 사과를 요구했던 아이, 분이 풀릴 때까지 선생님이고 친구이고, 가족들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상소문 같은 편지를 3장도 넘게 선생님께 올린 적도. ㅜㅜ(구자옥 선생님, 죄송합니다)

사과하란 말이야! 내 기분이 풀릴 때까지? 그렇게 못한다면 내 넋두리라도 듣고 있으라고 고문할 정도로 사과를 엄청나게 주장했다.

정작 나는?

사과는 잘해요. 감사와 사과를 표현하는 일이 나에겐 어렵지도 않고 누군가 그렇게 원한다면 원할 때까지 말해 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 '쉬운' 사과를 왜 안 하지 하고 상대방에게 더 요구했던 건 아닐까. 철딱서니가 없었다.




야미야미


맛있는 거 먹는 걸 좋아한다. 먹는 게 중요한 편이다. 밥보다 회가 더 커서 축 늘어지게 덮은 초밥과 마라탕 2단계 신라면 정도의 맵기, 매콤한 쑥갓과 조화가 일품인 등촌 샤부샤부 칼국수, 황금룡의 능이짬뽕, 망원시장의 간장 새우장, 해물찜에 들어간 낙지와 아삭아삭 콩나물, 엄마가 해준 꼬막 비빔밥과 김밥, 두부 불고기, 어메이징 달걀말이까지! 요리 잘하는 엄마 덕분에 맛은 기가 막히게 올라왔으나, 정작 내 요리 솜씨는 쏘쏘. 그게 좀 아쉽기는 하다. 아니다, 오히려 다행인가. 요즘은 엄마가 해준 무채와 우거지 나물 + 계란 프라이 2개, 고추장과 참기름 또르륵 비빔밥을 자주 해 먹는다.




절대


절대 아니야! 전혀 몰랐어! 네버! 뭐 이런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러라고 해라. 그냥 몰랐어. 저 깊숙한 심연 어딘가에 살짝 알거나 스쳐 지나가듯 들었을 수도 있기에. 언제 내가 그 입장에 처할 수도 있고 그런 실수가 내 안에 있을 수도 있을 만큼 나도 허접한 사람이기에. 그런데 '정말'이란 말은 정말로 좋아해. ㅎㅎㅎㅎ




처음


처음 그 느낌처럼, 처음 느낌 그대로 -신승훈과 이소라의 노래를 좋아했다. 학창 시절에 자주 들었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곡. 아, 언타이틀의 채채채 책임져! 이 노래도 ㅎㅎㅎ  나의 추억 소환 플레이리스트. 'ㅊ'에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 많네.

순서상으로 맨 앞이지 언제든 뒤가 될 수 있기에 '처음' 해본 여행, 연애, 출산이라고 해도 그게 많이 무섭지는 않았다. 두근두근 뒤에 따라올 일이 기대되고 설렌다. 하지만 처음이 좋은 이유는 늘 안 해본 것보다 도전했을 때 좋은 일이 더 많았기에.




코미디


코미디 프로그램 보는 걸 좋아한다. 엉뚱한 상황극에 바로 몰입하는 것도 재밌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는데 채플린 말처럼 행동과 상황은 웃기지만 가까이 개개인을 들여다보면 이건 너무 슬프기 짝이 없다. 맨날 얻어맞고 먹을 게 없고 인간은 소모품처럼 사용되고. 슬픔과 웃음이 공존하기에 코미디가 좋다.




트랜스포머


라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누가 누구인지 *어떤 로봇이 착하고 나쁜 건지 네 편 내 편*엉켜서 기계가 한데 어우러진 게 뭐가 재밌다고 하는지, 큰 스크린으로도 전혀 감흥이 없었다. 아이언맨이 변신할 때는 놀라움과 뻥 뚫린 시원함, 짜릿짜릿 그 자체였지만 역시 로봇 안에 사람이 타야 제대로 된 드라마든 뭐든 된다는 내 생각에서 일까. -슈퍼 그랑죠, 에반 게리온 세대라 요요 같은 걸 막 던지고 사람이 로봇 안에 타서 조정하는 게 더 재밌는 건지도 모르겠다. 둘째 아이가 카봇에 푹 빠져서 맨날 변신 흉내를 냈다. 작년에 헬로 카봇을 처음 봤는데 로봇을 이용해서 집안 청소, 쓰레기 치우는 걸 시키거나 개인 비서처럼 부리는 설정에 빵 터졌다. 그래, 인류 평화고 나발이고 우선 내가 처한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지.




푸하하


하고 빵 터지는 웃음소리가 좋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노주현 아저씨가 웃는 웃음소리만 들어도 빵 터지곤 했다. 주전자가 끓는 소리가 나다가 호방하게 빵 터져서 웃는 소리, 나도 진짜 기분 좋을 땐 저런 소리가 나기에. 우리 신랑은 늘 나의 빵 터지는 '푸하하' 웃음소리로 내 기분을 살피곤 한다.




혼자


혼자서 밥 먹는 것도 산책하는 것도 책 보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뭘 먹는지, 어디에 가는지, 내가 뭘 하는지가 더 중요한 사람이기에.  -육아를 하면서 종종, 아니 자주 '혼자'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사실은 혼자 있어도 별 거 없이 그냥 나였는데도.-

하여간, 난 그래.


*혼자 못하는 게 있다면 컨저링이나 나카다 히데오의 '검은 물 밑에서'같은 공포 영화를 보는 일. 사회적 민감도와 관계성이 높은 '또라이'라는 친구 말이 왜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가.


끝.

디엔드.





글쓰는 오늘 Season 10 우리들의 글루스 II

'나만의 관념사전 쓰기'

다섯 번째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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