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싱클레어에게
사막과도 같은 세상에서 걷다가 지칠 때면 나만의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나의 첫 오아시스는 책이었는데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었는데 그때마다 책을 꺼내서 읽었다. 원장님이 아마도 책을 좋아하셨던 분이었던 것 같다. 한쪽 벽면이 꽉 찰 정도로 책이 꽂혀 있었는데 성경 동화 시리즈, 당시 유행하던 만화책, 세계 명작 시리즈 등이 빼곡하게 있었다. 단테의 신곡을 그때 만화로 처음 읽었는데 그 충격과 공포는 잊을 수가 없다. 모태 신앙으로 교회는 다니고 있었지만 천국과 지옥 외에도 연옥이란 곳이 있어 잠시 머물기도 하고 천국도 지옥도 연옥도 하나에서 끝나지 않고 각각 단계가 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어딘가 이상하고 무섭지만 또 기가 막히게 재밌었다.
엄마가 억지로 학원에 다니게 한 거라 피아노 연습실에 들어가면 혼자 딩가딩가 그림을 그리고 놀거나 문을 잠그고 엎드려 잔 적도 많다. 내가 떠올려도 이상한 애였네. (선생님이 문을 따고 잠든 나를 깨운 기억이 난다) 연습해야 할 기초 하농은 치지도 않고 하농 표지에 그림을 그리고 체르니, 브루클린 같은 다른 교재에도 각각 공주 왕자 같은 캐릭터 얼굴을 그려서 즐겁게 역할 놀이를 했다. 부끄럽지만 중얼중얼 입으로도 끊임없이 떠들면서;;
느리게 나가는 진도와 형편없는 내 실력에도 7년 넘게 꾸준히 샤론 피아노 학원에 다닌 건 순전히 ‘책’ 때문이었다. 전혀 성실한 꼬맹이가 아니었음에도 책장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학원에서 책 읽는 시간, 한 달에 한 번 있는 떡볶이 파티 때 가장 즐거워했다. 집에서,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읽을 수 없는 새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처음 읽은 곳도 거기였다. 어린 제제에게 슈르르까가 있었던 것처럼, 뽀루뚜까 아저씨가 있었던 것처럼 나도 책을 읽으며 누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엔 책이 늘 많았기에 서점에 가거나 책을 자주 사주는 편은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구매 도서 목록이 나올 때면 피아노 학원에서 제일 재밌게 읽은 책을 우선으로 쫙 골랐다. 가장 즐거운 쇼핑 시간.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도 직접 사서 집에서 밤새 읽고 또 읽었다. 피아노 학원에선 차마 울 수 없었지만 집에서는 읽다가 엉엉 울고 또 울 수 있어서 좋았다. 제제가 아빠에게 맞았을 때, 선생님 화병 안에 꽃을 꽂아주고 싶어 할 때(선생님이 안 예뻐서 아무도 꽃을 주지 않는다는 어린 제제의 마음, 내가 선생님이라면 그런 말이 화났을 것 같기도 한데 선생님은 제제를 앉혀놓고 따뜻하게 이야기해준다. 빈 병이어도 언제나 널 떠올리면 행복하다고) 뽀루뚜까 아저씨랑 낚시할 때, 뽀루뚜까가 기차 사고로 죽었을 때 분명 읽었던 장면인데 그 장면에서 똑같이 눈물이 주르륵 났다. 마지막 오렌지 나무가 베어지는 장면은 너무 끔찍하고 슬퍼서 그 부분은 다시 읽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했다.
마음이 꿀꿀할 때, 답답할 때, 혼났을 때 책을 읽으면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심심할 때도 단순히 무료함을 달래는 차원이 아니라 더 이상 심심하지 않게 친구가 돼주는 책이 있어 행복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황에선 책을 떠올렸고 너무 재밌고 좋은 이야기는 어떤 건지 기록했다. 읽는대서 그치지 않고 나만의 이야기를 조금씩 쓰기 시작한 것도 이쯤이었다. 나만의 오아시스를 찾은 것이다. 영화나 글쓰기보다는 책이 확실히 선배였고 언니였다.
중학교 때 학급 문고에서 처음만 난 ‘데미안’은 독서반에 있었던 책이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도둑질을 해서 콩닥콩닥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집에 가져온 물건이기도 하다. 손바닥만 한 그 책을 매번 너무 감질나게 읽어서 뒷얘기가 궁금한데 무슨 드라마 끊기듯 결정적인 장면에서 종이 쳤다.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로부터 벗어나야 하는데 열병이 나서 누워 있고 이제 무슨 일이 펼쳐지지? 그러면 어김없이 딩동댕동 종이 울렸다. 나는 확실하게 속독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성질은 급했지만 읽을 때는 꼼꼼하게 한 글자도, 한 장면도 놓치기 싫어서 눈에 꽉꽉 눌러 담듯 독서를 했다. 글씨가 작고 14살이 읽기에 조금 어려운 내용이라 해도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갔을까 떠올려보면 좋은 장면을 찾아서 다시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뒷장까지 긴장하며 읽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유복한 꼬마 아이였던 싱클레어가 작은 거짓말을 시작으로 누군가에게 빌미를 잡혔을 때 신경쇠약 직전까지 간 그 심리는 너무 공감이 가고 긴장되는데 나도 왠지 그랬을 것 같고 읽고 또 읽어도 왜 이리 처량한데 재밌는 건지, 읽으면서도 이유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드디어 ‘데미안’이 등장했다. 생각보다 느린 등장이다. 앞부분은 싱클레어의 밝은 세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데 대부분 썼지만 언제 유리알처럼 깨질지 모르는 그 밝음 역시 나에겐 늘 불안 불안했다. 싱클레어의 히어로, 구세주, 어벤저스, 전부가 된 데미안. 독심술을 부리는 장면에선 심리학 책 같기도 한 그 장면이 너무 좋아서 나도 써먹어야지 하고 순서를 기록했다. 직접 실험해 볼 대상을 물색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데미안의 등장과 함께 손바닥만 한 그 책을 몰래 집어올 결심을 굳혔다. 두근두근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비밀 일기장이 있는 서랍에 깊숙이 넣어 났다. 내가 훔친 건 그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책을 다른 아이가 발견해서 읽으면 그게 또 너무 싫을 것 같아서 아무도 관심 없어 보인 낡은 학급 문고였지만 누군가에게 ‘데미안’이 발견되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너무 멋지고 완벽한 데미안. 내가 가장 동경하는 사람을 누군가 알게 하는 게 정말 싫었던 것 같다. 이미 유명한 명작이었음에도 낡고 작은 표지만 보고 내가 마치 처음 보물을 발견한 양 들떴던 중학교 1학년. 그때를 떠올리면 별거 아닌 책에 몰두한 모습인데도 웃음이 난다. 그 시절 그런 습관 때문인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도 꽤 어릴 때 읽었는데 그 책도 제목을 들키기 싫어서 종이로 한 번 싸서 몰래 읽었다. 중학교 때도 이상한 애였다, 나는.
이문열은 이미 유명한 작가였는데 나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도 혼자 전전긍긍했다니;; 오아시스를 발견했지만 그걸 나 혼자 마시고 독차지하려 했던 욕심이 과했던 것 같다. 마치 실제 어디엔가 있을 것 같은 데미안에게 편지도 쓰고 이쯤 되니 경험담 같기도 해서 타임머신이 있으면 데미안을 만나러 가야지 했는데 헤르만 헤세에게 답장이 왔다. 몇십 년 전에도, 헤세가 살아있는 당시에도 나 같은 극성팬이 많았나 보다.
다들 막스 데미안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친 모양인지 침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쓴 편지. 이 글은 내가 가져온(훔친) 그 작은 책 가장 뒷부분에 실려 있었다.
꽃이 좋아서 향기에 취해서, 바라보는 대서 만족하고 기뻤다면 그걸로 충분한데 그걸 꺾어서 가져오고 자기만 보기 위해서 들고 오는 순간 꽃은 시들어버린다는 이야기. (어쩜 은유가! )
자기의 글도 작가의 글로 읽고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는 편지였다. 독자들에게 지나친 집착과 작품과 현실 세계 혼동이 얼마나 끔찍한 지 조곤조곤 알려주는 편지가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찔리기도 하고 읽다가 나를 어딘가에서 보고 있나 하는 마음에 자꾸 뒤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 편지를 다 읽고 결심했던 것 같다. 그래, 오아시스를 혼자 감춰 둔다고 감춰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달고 시원하게 마신 물이라면 사막 여우에게도 낙타에게도 기꺼이 나눠주자. 당장에 소개하고 자랑하긴 어려워도 (성격상^^;;) 데미안을 ‘내 거’라고 생각하진 말아야지
독서 감상문을 쓸 때 흔히 책 속 등장인물에게 편지 쓰거나 바꾸고 싶은 결말이 있는데 나는 책 속 인물이 나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 반대로 나한테 편지 쓰기를 해봐도 재밌을 것 같다. 작가의 마음도 알 수 있고 주제도 한 번 떠올려 볼 수 있는 과정이 될 것 같다. 사실 내가 작가의 진짜 답장을 받은 것처럼 그 과정이 소중한 기억이 됐다.
아무튼 나의 오아시스, 나의 밍기뉴, 사랑스러운 슈르르까 유년 시절을 꽉 채워준 제제부터 격동의(?) 사춘기를 잡아준 나의 데미안까지 덕분에 나는 책에 기대고 쉬는 나만의 방법을 배운 것 같다. 또 지금도 배워 나가는 중이고.
예민하고 우울하고 때론 너무 자기 세계에 빠져있는 듯한 나에게 곁을 내준 사람들도 빼먹을 수 없지.
결국 오아시스가 ‘사람’인데 그걸 또 언어로 표현한 책이 있어 글이 있어 마음을 대신 표현하고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멋진 것 같다.
나도 누군가의 특별한 오아시스가 돼줘야지.
P.S 데미안, 아니 나의 싱클레어에게
싱클레어, 중학교 때 단짝 친구 진아에게 답장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편지엔 작은 섬에 가서 혼자 조용히 글만 쓰고 싶다는 내 생각이 작은 싱클레어 같다고 쓰여있었어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는 진아를 엄청 동경하고 나의 ‘데미안’으로 여겼는데 한 번도 속마음을 그 애한테 말한 적은 없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체육 수업을 마치고 들어왔는데 그것도 수업 시간 중간에 내 필통 안에서 진아가 쓴 그 쪽지를 발견한 거예요. 진아는 그때 반도 다르고 내 자리도 몰랐을 텐데 물어물어 찾았거나 뭐, 내 필통을 한눈에 알아봤을 수도 있죠. 그래도 편지를 받는 그 과정이 신기하고 즐거웠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릴 적 사춘기 시절 마음인데 현재를 살아가는 제 마음과 비슷해서 놀랐어요.
얼마 전에 사람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아무것도 안 하고 암시롱, 뭘 안 해도 괜찮으니 그냥 책 읽고 글만 쓰고 싶다고. 친한 친구의 말이었는데 저도 공감을 하면서 맞장구를 쳤어요. 하지만 슬프게도 이제는 ‘책 읽고 글을 쓰는데’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고’란 말에 더 꽂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요. 슬프죠.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누워만 있고 싶고 멍하니 천장 벽지만 몇 시간이고 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전 멍 때리고 공상하기를 좋아하는 소녀였으니까요. 제 친구들 말처럼 지금이 제 인생 그 어느 시절보다 가장 바쁘고 부지런한 활동가(?) 시기인 건 분명해요. 아침잠이 많은데도 이제는 눈이 저절로 떠져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서 누룽지를 끓이거나 토스트를 구워야 하는 엄마가 됐네요. 그래도 나를 위로해준 말은 이너 조이님이 말한 것처럼 아무것도 안 하는 그날이야말로 이 세상 마지막 날이 될 거란 말이에요. 그 말을 읽는데 웃었어요. 우리가 살아있으니 이렇게 육신의 피로도 느끼고 하고 싶은 한 가지 욕망이라도 말하고 나눌 수 있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싱클레어, 당신은 밝고 가녀린 소년, 온실 속의 화초같이 귀한 도련님에서 프란츠 크로머로부터 인생 처음 위기를 만났죠.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벽 같은 존재, 내 약점을 쥐고 흔드는 악마 같은 존재, 하지만 그런 존재 덕분에 막스 데미안을 만났으니 인생에 모든 시련이 다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네요. 저도 당신과 비슷한 질풍노도의 시기에 데미안을 만났어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그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이 짧은 문장이 절 매료시켰고 자꾸 곱씹게 됐고 성장을 위해서라면 내가 속해있고 날 품어주고 있는 모든 환경으로부터 한 걸음 나와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싱클레어, 당신이 열심히 방황해 준 덕분에 저도 나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고는 하지만 사고 치지 않고 무사히 조용조용 넘길 수 있었네요. 감사해요. 당신은 헤르만 헤세의 나비 속 주인공과도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베 라트와도, 유리알 유희 속 크네히트와도 조금씩 묘하게 닮았어요. 맞아요, 어쩌면 작가 자신의 모습 중 유독 나약하고 부서질 듯 위태위태한 모습, 하지만 다시 성장해야만 하는 그 모습을 제가 좋아했는지도 모르죠. (4대 성인인 싯다르타와 닮았다고 하진 않을게요. 헤르만 헤세의 책 속 싯다르타도 재밌게 읽었지만)
전 어디쯤 와 있고 그 알은 온전히 다 부서졌는지 아니면 부리만 몇 번 쪼아대다가 아직도 그 안에 살아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 제가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고 전 계속 이렇게 누군가에게 뭔가를 끊임없이 전달하고 쓰는 중인지도 몰라요. 작은 섬에 갇히진 않았지만 글을 쓰라고 누군가 압박하지도 않지만 여전히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끼는 지금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느껴요. 나만의 아집, 위선, 세상의 편견으로부터도 탈출해서 그것들로부터 탈출해서 알을 뚫고 나올 수 있을까요? 싱클레어, 그때 나도 당신의 마지막 장면처럼 거울을 바라볼게요. 내 안 어딘가 있는 작은 싱클레어의 모습도, 데미안의 모습도 만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