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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길을 잃었을 때

덴마크에서 국제 미아가 될 뻔한 예나

by 앤나우


언니네는 여행을 자주 갔다. 영국에 살고 있으니 근처 다른 나라들도 쉽게 오갈 수 있으니 휴가 때마다 쉴 수 있는 장소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열 살에 온 가족이 이민 간 형부도 이스터(부활절 휴가기간), 여름휴가,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무조건 쉼을 찾아 떠났다. 나도 선재가 3살도 안 됐을 때 언니네 가족과 프랑스 - 벨기에 - 네덜란드를 거쳐 여름휴가를 보내고 온 적이 있다. 수영장과 쉴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차를 타고 유럽을 이동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차에 여러 가지 먹거리와 전기밥솥을 챙겨 와 밥은 물론 죽도 끓이고 찜도 해 먹고, 다용도로 활용해서 알차게 요리도 했다. 아이들이 많으니 각 나라마다 가장 첫 번째로 들리는 대형마트에서 장 본 양만 해도 어마어마했던 기억이 난다. 선재까지 포함해서 아이들만 모두 다섯 명이니 한 번 식탁에 모이면 전투적으로 아구아구 열심히 먹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몰랐던 이야기
나영언니언니에게 올여름, 처음 들은 이야기








덴마크에 여행 갔을 때 일이었어. 그때도 예나가 선율이 보다 좀 더 어릴 때였으니까, 예찬이도 어렸고, 막내 예니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까 그랬을 거야. 거기에 갔는데 세상에, 예나가 없어진 거야. 아이들은 정말 순식간에 사라지잖아. 선율이가 잠시 잠깐 사이에 바로 없어지는 것처럼. 예나는 영어는커녕 아무 말도 못 하고 자기 이름도, 엄마 아빠 이름도 말 못 하는 아이였으니까 이 낯선 나라에서 덴마크까지 와서 국제 미아가 되는구나 싶었지. 우리가 있는 곳이 광장이었는데 거기 스물두 개가 넘는 플랫폼이 있었어. 형부는 스무 개가 넘는 그 플랫폼을 전부 계단으로 다 올라갔다가 내려오고를 스무 번도 넘게 반복한 거야. 땀이 전부 온몸을 홀딱 적실 때까지. 예찬이가 그때도 어렸는데 가장 큰 아이니까 예찬이한테 단단하게 일렀어. 여기에 꼼짝 말고 그대로 있으라고, 어린 동생 두 명을 전부 유모차에 묶어서 태우고 예찬이한테 아이를 맡기고 나는 왔던 길을 돌아서 다시 골목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어. 상가 문을 열었다 닫았다, 아이가 어디에 있을까, 뭐에 흥미를 느꼈을까 찾으면서.


어디에도 예나는 없었어.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 우리 예나가 좀 더 평범한 아이였더라면 말도 잘하고 동생들에게 큰 언니 노릇도 하고 함께 눈을 마주치는 일반 아이었더라면 나는 좀 더 행복했을 텐데, 하고 말이야.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 하고 살았거든. 그러면 내가 더 행복하고 내 삶이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말이야. 그런데 아이를 찾는 그 시간들 속에서 아니구나, 예나 자체로 정말 소중했구나. 예나가 살아있어서 내 삶이 더 풍요로웠구나, 이 아이 자체로 내게 살아있고 숨 쉬고 함께 할 수 있다는 하루하루가 행복이었구나. 정신이 바짝 차려지더라고. 너네 형부도 나도 결국 아이를 찾지 못했어.



어디에도 예나는 없더라고.



남은 곳은 이제 경찰서를 찾아가서 아이를 찾는 수밖에 없구나 하려는 찰나, 정말 평소에 나라면 쳐다보기도 싫은 곳, 그런 더럽고 음침한 곳, 구석진 곳에 더러운 노숙자 한 명이 우리 예나 목덜미를 질질질 잡고 걸어오는 거야. 덴마크 노숙자였어. 누더기 옷을 입은 거지, 노숙자, 내가 평소라면 한 번이라도 눈길조차 주기 싫어서 더러워서 피하는 그런 사람말이야. 작은 동양애 한 명을 질질 끌고 와서 예나를 우리 앞에 던졌어.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노숙자를 꽉 끌어안고 있더라고. 영어는 못하는 것 같은 그 노숙자가 우리 예나에 대해 막 화를 내면서 설명해 주더라고. 사 차선 차가 위험하게 다니는 거리 중앙에서 죽을 뻔 한 애를 자기가 구해서 여기로 온 거라고 그 과정을 말해주는 것 같았어. 덴마크 중앙에서 목숨 걸고 예나를 꺼내서 자기가 여기까지 왔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었어. 그 애와 같은 동양인을 찾으러 돌아다니고 자기 손도 잡지 않는 예나를 우리 앞에 데려온 거야. 기적 같은 일, 기적 같은 손길을 통해 예나가 다시 우리 곁으로 왔어.








이야기를 듣는 엄마도, 나도 조용히 눈물을 닦고 있었다. 예찬이(가장 큰 조카)는 정말 순하고 착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 롯데월드에서도 선율이가 사라질 때마다 나보다 먼저 벌떡 일어나서 선율이를 찾으러 다녔다. 오락실에서, 혹은 옆 테이블에서, 아니면 바닥에 엎드려서 천연덕스럽게 놀고 있는 선율이를 발견할 때마다 예찬이는 다시 손을 잡고 선율이를 내 곁으로 데리고 왔다. 튀어나간 용수철을 다시 붙잡는 사람처럼 사라지는 선율이를 살피는 예찬이. 나는 없어진 걸 눈치채기도 전에 예찬이가 그렇게 살뜰하게 내 아이를 챙기는 모습이 고마운 한편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니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휘황찬란한 그곳에서 재밌는 것 투성이인 꿈과 희망의 나라 롯데월드에서 열 번도 더 넘게 선율이가 사라졌는데 그때 마다도 예찬이는 선율이 뒷모습을 좇고 있었구나. 나는 늘 내 시야에 선율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찬이는 예나가 없어지고 동생들을 돌보는 상황들 속에서 알게 모르게 어떤 책임감도 쌓였을 거고 작은 아이들을 살피는 습관이 생긴 건 아닐까. 언니 이야기를 들으니 어린 예찬이가 낯선 나라에서 동생들을 데리고 유모차에 있는 동생들을 또 진정시켜 줬을 생각을 하니 왠지 대견하기도 하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예나, 갑자기 사라진 우리 예나. 예나는 그날 일을 생생히 기억할까.


아이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모들은 너무도 잘 안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 지옥 같은 기분, 잠시 잠깐이라도 오만가지 상상을 다 하게 되는 그 순간.

최고의 시나리오는 없고 최악의 시나리오만 반복적으로 상상되는 그 순간.



세상 유쾌한 성격인 우리 형부가 수백 번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가게 문을 열면서 어떤 마음으로 예나를 찾았을지 형부와 언니 부부가 걸어온 인생길이 참 힘들고 불안하고 무서웠겠구나. 아이를 얻는다는 책임감과 동시에 돌보고 옆에서 걷게 하고 손을 잡고 끌어주는 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떠올리기도 싫었을 그날 일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분 때문이다.


이름 모를 덴마크 노숙자분. 귀한 은인, 고마운 분, 생명을 살려주고 목숨을 구해준 것도 모자라 말도 안 통하는 아이를 부모에게 다시 되돌려준 그분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 내 앞에 있다면 무릎이라도 꿇고 내가 가장 아끼는 목걸이라도 걸어주고 싶다.


무심히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거지'라고 부르는 사람과 인연이 될 일이 뭐가 있을까. 구걸하고 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사람을 이르는 그 말에도 멸시가 담긴 듯하다. 깔끔하고 정돈된 걸 좋아하는 우리 언니가 그런 것과 다 상관없이 그 사람을 와락 껴안았을 때 느꼈을 마음은 커다란 감탄이고 감사고 사랑이었을 것이다. 보고 싶지도 않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누군가가 내 인생에 가장 귀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냥 스쳐갔거나 지나쳤을 순간에도 도움의 손길을 뻗어 구해준 용기 있는 노숙자분께 나 역시 감동했다. 내 조카를 끌고 오는 그 시간까지 아이를 지켜줘서 감사했다. 지켜보는 눈을 갖게 하고 직접 꺼내주고 구해주기까지 했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움직이고 동네가 들썩거린다고 했는데 예나를 위해서는 세계가 움직여준 것 같다. 소중하고 특별한 예나를 위해 함께 하는 또 누군가의 손길들이 있다. 부모가 못 채우고 놓친 빈자리와 틈에도 또 다른 누군가의 사랑과 은총이 닿길, 우리가 지나친 낮은 곳, 어두운 곳에서도 보석 같은 사람들이 함께 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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