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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엄마 좋은 엄마 2

먼데이 마더스 (일 년 만에 쓰는 두 번째) 이야기

by 앤나우

먼마스에서 발행한 나쁜 엄마 좋은 엄마의 두 번째

*2편에선 다른 영화와 드라마, 다큐에 대해서 써보겠다.

라고 써놓고 이제야;;;;


-〔작가의 서랍 〕을 열어보니 이 글이 저장되어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다. 이런 드라마도 있었지, 엄청 재밌게 봤었는데. 일 년 만에 쓰려니 흐름이 뚝 끊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2년으로 넘어가기 전에 정리해서 발행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도 역시 타이밍이긴 하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아, 옛날이여' 벌써 오래전 일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지만 저장해 놓은 대사들을 읽으니 (각 드라마의 대사들만 정리해서 저장해 놓았다) 바로 기억 소환.




『더 글로리』 동은이 엄마 정미희

정미희 : 야, 나 네 엄마야. 핏줄이 그렇게 쉽게 끊어지니? 아이, 또 숨어봐, 내가 못 찾나.

문동은 : 내가 당신을 용서 안 하는 이유는 당신이 내 첫 가해자라는 걸 당신은 지금도 모르기 때문이야. 고마워, 엄마 하나도 안 변해서. 그대로여서 정말 고마워.

문동은 : 나는 자식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지옥을 선택한 엄마들을 알아, 연진아.



최대 빌런 같은 동은이 엄마 말고도 여기엔 또 하나의 엄마가 나오지, 박연진의 엄마 홍영애. 겉으로 볼 땐 이만큼 최고의 엄마도 없지 싶다. 사고 치는 자식을 위해 매번 손을 써주고 수습해 주고 더러운 일은 전부 덮어준다. 자식 입장에서는 모든 걸 다 커버해 주니 든든한 나무 엄마 같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 자식보다 더 중요한 자기 자신을 위해서 고개를 돌려버린다. 마지막 연진이의 절규에서 보이듯, 한 번도 아이를 제대로 안아주고 꾸짖은 적이 없는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걸 전부 엄마 탓 할 순 없지만(그러면 동은이는 더 큰 가해자가 됐어야 한다) 멀쩡하던 애도 잘못되긴 하겠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엄마다.

자식을 자기 삶의 수단과 자기를 높이기 위한 장식품, 탄탄하게 해 줄 장치 정도로 생각하는 엄마.(드라마에서 연진이에게 이름에 「ㅇ」이 있는 사람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하는데 엄마 이름인 홍영애의 이름 곳곳엔 「ㅇ」이 천지다. 자, 이젠 진짜 누굴 제일 조심해야 하는 줄 알겠지?


그리고 트라우마 투성이인 딸에게 가장 무서운 트라우마를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날려주는 엄마 정미희. 첫 가해자. 가슴 아픈 말이지만 사실이다. 동은인 엄마의 부재와 이기심으로 모든 걸 잃었기에. 평범하지 않더라도 딸의 반대편에 서지만 않았더라도 딸은 또 다른 길을 갔을 것 같다. 지옥에서 탈출하는 길이 험난해도 엄마라는 한 사람이 함께 해줬더라면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다. 복수만을 위해 달려온 사람이 됐는데 그걸 또다시 등장한 빌런 엄마로 인해 망쳐버렸다. 부글부글


나는 어떤 대사보다 저 마지막에 적은 대사가 와닿았는데 자식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지옥'을 선택한 엄마들(나는 그게 강현남이라고 생각한다. 동은이는 이런 엄마가 있다는 걸 아마도 이때 처음 알지 않았을까) 자기의 목숨보다 귀한 아이를 지키는 엄마들을 떠올리는 자체가 뭉클했다. 자기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모든 걸 건 엄마들. 최악의 엄마가 갈 수 없는 또 다른 숭고한 글로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가진 건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세상을 살아갈 힘조차 없어도 자기 자식만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지옥을 선택한 엄마들. 눈두덩이를 밤탱이로 맞아도, 피를 흘리고 굴욕의 순간을 맛봐도 지켜낼 수 있는 아이가 있고 그 아이가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엄마 마음엔 가장 천국이 된다.




『나쁜 엄마』 속 엄마 진영순

진영순 : 인생이라는 게 참 신기하게도 기특하죠? 뭔가 한 가지를 빼앗아 가면은 그 자리에 꼭 다른 한 가지를 채워 넣어요. 부모 복이 없어서 남편 소중한 걸 알았습니다. 남편 복이 없어서 자식 소중한 걸 알았어요. 그 자식이 아프니 그 자식을 돌봐야 하는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어요.
그리고 내 인생이 이렇게 짧다 보니 그 자리를 대신 채워줄 여러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어요.



자기 욕심으로 검사아들을 만들었지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걸 찾고 다시 사과해 준 엄마. 나에게 사과는 엄청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나는 우리 부모님을 비롯, 주변 어르신들에게 속상한 마음이 들 때마다 사과해달라고 요구하고 상소문 같은 편지를 올렸을 정도로 사과 집착쟁이였다.


사실 나는 … 엄마가, 미안해. 이 한 마디를 듣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엄마의 사과는 말이 아닌 나에게 차려준 따뜻한 밥, 다양하게 채워준 물질, 아무렇지 않은 듯 그대로의 일상, … 행동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진영순의 이런 고백과 사과가 더 용기 있게 느껴졌다. 백치가 된 아들이 지능이 떨어져도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다시 한번 걷고 내 곁으로 돌아왔으니 엄마도 후회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한번 더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그건 기적이고 행운일 테니.



인연의 '연'자에는 실「주 」 자와 돼지머리 「계 」 자가 들어있다는 거 아니? 돼지를 실로 묶어 끌고 가는 것만큼 어려운 게 바로 사람의 연이라는 거지. 그런 연으로 나는 너의 엄마가 되었고 너는 나의 아들이 된 거란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이 세상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한번뿐인 인생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서툴고 부족했던 거 미안해.


맞아, 그녀의 말처럼 넘어지면 또 일으켜 주고 무서우면 괜찮다고 말하는 대신 그냥 꽉 안아주고 잘했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매일매일 말해주는 거 제목은 나쁜 엄마지만 자신을 성찰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사랑을 말하는 엄마야 말로 정말 좋은 엄마가 아닐까.





마지막

『나는 신이다』


이미 숱한 사이비의 피해자인 사람들의 증언으로 이뤄진 다큐이기에 누구누구의 엄마라고 이름을 언급하진 않겠다.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용기 내서 증언을 하고 누군가는 여전한 피해 속에서 숨어있고 그곳에 머물길 택한다. 끝까지 못 볼 것 같은 장면이 곳곳에 있는데 그럼에도 계속 봤다. 하지만 《아가 동산》, 낙원이 편은 -엄마가 스스로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부터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어렵게 말을 이어가는 중에도 내내 분노와 죽은 아이의 고통이 떠올라서 참담했다.

가정의 불화와 다툼으로 진짜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하고 외로웠다는 말도 나온다. 세상에서라도 편을 만들고 안주할 곳을 찾아야 했기에. 하지만 결국 그럼에도 자신을 받아주고 그곳에서 용기를 내주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역시 가족이었다는 부분에 마음이 멈칫했다.


가족들의 허용과 공감, 네가 어리석고 바보 같아서 빠졌지 하는 세상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도(이렇게 생각하는 일이야 말로 피해자들에겐 가장 힘든 질문이라고 하지만) 유일한 편이 돼줄 사람들, 그 자리에 엄마가 진짜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가을이 편에서도(이것도 일 년 전 〈그*알 〉인데 내용이 기억 안 나서 다시 찾아본 TT) 가스라이팅 당한 피해자이기 이전에 한 아이의 엄마라는 점이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가스라이팅 피해자 임에는 분명하지만 내가 아니라 아이를 사지로 몰고 죽게 할 정도라면 나는 그 엄마에게도 책임을 피해가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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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엄마일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을까.





유난히도 육아가 어렵고, 마음이 심란했던 때에 아이를 데리고 놀이치료도 다니고 나도 상담을 꾸준히 했다. 상담을 받던 초기에 집에 오자마자 A4지에 선생님께 들었던 말 중에 인상적인 말을 써 내려갔다. 나의 분노를 다스리고 내 감정을 주체하기도 힘들었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고 싶었다. 저 글을 썼을 때도 벌써 4년 전 일이다.

지금은 어떤 엄마냐고? 저 다짐은 똑같은 장소에 붙어있지만 그대로 지키는 건 다섯 개도 채 되지 않는다. 싸우고 부딪히고 날마다 티격대는 아이들에겐 버럭 짜증을 내기도 한다. 통제하는 말이나 잔소리는 이미 말을 듣지 않고 딴생각들을 하기에 저절로 안 하게 됐다.(좋은 건가, 나쁜 건가, ㅎㅎㅎ)

"안돼! 하지 마!"를 "~하지 않겠니?"라고 돌려 말한다면 좋겠지만 이미 말이 되어 튀어나온 적도 여러 번, 나도 모르게 아차차차, 순간적으로 저 말을 해놓고 다짐했던 글자들을 떠올린다. 그래, 이미 그렇게 했는데 무슨 소용이냐 할지도 모르지만 한 번 깨닫고 떠올렸으니 언젠가는 또 안 하게 될 날이 진짜 찾아오지도 않을까.


아직도 성장할 게 많지만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엄마이기도 하다.





엄마, 나영이 이모는 진짜 착한 사람이야. 천사 같아,
선재야~ 날 부르는 목소리부터 엄마랑 달라.
뭐 필요한 거 없어? 항상 내 편이야. 엄청 잘 챙겨주더라.
…근데 엄마, 솔직히 재미는 없어.
재미없어서 엄마가 생각나더라. 보고 싶었어.
난 그래서 차라리 막 화내고 혼낼 때도 있지만
그냥 엄마가 제일 좋아.





얼마 전에 아이와 함께 영국에서 온 이모 이야기를 하다가 웃음이 터졌다. 엄마의 성격이 이모 같은 천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이기 때문에 더 좋다고 말해주는 부분에선 뭉클하기도 했다. (막 화내고 뒤에 수많은 나의 단점들이 더 길게 열거 됐지만 생략했다, 나의 치부를 ㅋㅋㅋ 뭐, 내 글이니까;;;;→ 자체 편집)

솔직하게 소통하고 재밌는 엄마, 아이가 선물로 받은 세상 중에서 그중 가장 첫 번째, 변함없는 선물이 되고 싶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성장한다. 점점 자라면서 머릿속 생각도 커지고 비교는 어른만 할 수 있는 특권도 아니기에 이렇게 좋은 어른들과 비교해 봐도 쉽게 알 수 있을 거다. 우리 엄마가 좀 부족하고 성질 나쁜 부분이 보여도 사실은 '우리 엄마'이기에 그냥 나에겐 제일 좋다는 걸, 내가 그걸 왜 모를까! 나도 그랬으니까.

육아엔 정석도 정답도 없는 건 결국 미워도 싫어도 우리 엄마가 나를 키우고 안아주고 내 편이기에 (그렇게 돼줬으면 싶기에) 아이들은 다른 곳에 갈 곳이 없다. 여기에서 만족하고 부족한 중에서도 엄마가 최고라는 걸 찾지 않을까. 조건 없는 사랑을 마치 부모가 주는 대단한 특권인 양 착각하면 안 된다. 나는 지금도 내가 주는 것 보다 더 큰, 조건 없는 사랑을 우리 아이들에게 받고 있는 중이다.








-요즘에 재밌게 본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지극히 주관적인(내 마음 기준) 나쁜 엄마 좋은 엄마

(드라마 - 나쁜엄마/ 더 글로리, 영화 -더 웨이, 웨이 백/ 마틸다, 다큐멘터리 - 나는 신이다)

*더 웨이, 웨이 백을 제외하고 대부분 NETFLIX를 통해 시청 가능.



▶ 드라마 -더 글로리 (16부작) *연출/ 안길호 *극본/김은숙

나쁜엄마(14부작) *연출/ 심나연 *극본/배세영

▶ 영화 -더 웨이, 웨이 백 (108분) *감독/ 냇 팩슨, 짐 러쉬

마틸다(122분) *감독/ 매튜 워처스

▶ 다큐멘터리 -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 (총 8부작) *연출/ 조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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