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셋이라면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알지?

by 앤나우


그래, 맞아, 그 이야기야.


선녀와 나무꾼 혹은 나무꾼과 선녀라고 불리는 그 설화 말이야.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나무꾼이 서로 짝이 되었다가 이별했다는 이야기. 심지어 등장인물 이름은 알 수 조차 없어. 김 선녀인지, 나무꾼 이씨인지 조차, 직업과 정체성으로만 불리는 두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야. 앞부분 사슴을 구해주는 이야기에선 '숲 속 작은 집 창가에 작은 아이가 섰는데 토끼 한 마리가 들어와 문 두드리며 하는 말~'이 노래랑 비슷한 맥락도 보여. 어쨌든 우리 나무꾼이 그냥 착한 줄로만 알았는데, 홀어머니 모시고 결혼은 꿈도 못 꿀 줄 알았는데 선행의 결과처럼 선녀를 만나게 되지. 과정은 별로 선하지 않은데 훔쳐보기랑 도둑질, 범죄가 두 개나 나와. (사냥꾼이 사슴을 쫓는 건 오히려 합법적이라 할 수 있지. 되짚어 볼수록 이야기가 요상하고 재밌다는 생각이 드네. ㅎㅎㅎ 아이들이랑 읽고 이런 이야기를 나눠봐도 재밌을 것 같다.) 아무튼 도촬, 몰래카메라, 남의 기물 파손, 도둑질, 기타 등등 요즘 같으면 전부 큰 일어날 소리! 현대식으로 해석해 봐도 범죄를 지시하는 사슴이라...;;; 그래도 어쨌든 옛날이야기답게 뭐 잘 살아. 아이들 낳고 알콩달콩, 체념한 선녀도 홀어머니 잘 모시고 아이들에게 정 붙이고 좋은 며느리, 엄마, 아내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 같으나 미리 나온 금기 하나가 영 마음에 찜찜하게 걸려. 바로 아이 셋!! 세 아이를 낳기까지 절대로 날개옷을 꺼내주지 말라고 하거든. 이것도 보스 격으로 이거 저거 다 지시하고 도와준 조력자 사슴의 신신당부야! 날개옷을 꽁꽁 깊이 감추고 절대 보여주지 말래.(이쯤에서 드는 생각은 왜 태우거나 찢거나 없애라곤 안 했을까? 이것도 이상해. 그냥 처음부터 불안을 안고 시작하는 결혼 생활 같네) 뭐 이러나저러나 수삼 년을 지나는 사이에 잘 사는데 선녀가 슬슬 협상을 시작해. 반전인 건 자기의 정체성은 결코 버릴 수 없었던 거지. 어린 시절엔 나무꾼이 불쌍했는데 선녀입장에서는 참 억울하고 무서운 결혼 생활이었을 것도 같아. 날개 옷을 보여달라는 순간부터 우리는 사슴의 신신당부를 떠올리는데 나무꾼은 해이해진 건지, 까먹은 건지 선녀에게 홀린 건지 그냥 홀라당 보여줘. 입어보는 게 뭐 대수인가,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꺼내자마자 싸아악, 돌변한 선녀의 이야기. 좀 무섭네. "아무도 믿지 마라, 신신당부한 조언은 좀 지켜라"가 이 이야기의 큰 교훈인 건가? 어렸을 적엔 여기서 끝이 아니고 다시 부인과 아이들도 만나고 천상세계에서 선물도 받아오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진 이야기였는데 설화에선 좀 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 결국 나무꾼이 벌을 받고 수탉이 되는 이야기로 말이야.



아이가 셋이면 셋 다 안을 수가 없어.



오늘의 이야기는 엄마(*나야, 나!)는 밤마다 혼자 자고 싶은데 자는 중에 어느샌가 내 옆으로 달려오는 우리 두 아이들 덕분에 떠오른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야.


아이가 둘이니까 양쪽에서 끼고 자면 되잖아 뭘, 하고 편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잠버릇 심한 아이들 두 명과 끼어 자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야. 한 놈은 빙글 뱅글 시계처럼 돌면서 자고 그때마다 발과 다리가 내 얼굴과 턱을 차기 일쑤고 니킥으로 중간에 잠에서 깨면 진짜 똑같이 한 대 쥐어박고 싶어. 무의식에 돌다가 그런 거라 여전히 태평한 얼굴로 웃고 있는데 자다가 아이 뒤통수에 얼굴 전체가 맞은 사람들은 내 이야기 공감 할 수 있을 거야. 거의 주먹으로 코를 정통으로 맞는 타박상 같은 거랄까. 여하간 자기 방에서 잘 자던 큰 애도 어느샌가 내 옆으로 와서 엄청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동생이랑 뒤엉켜서 자기 시작하는데 나는 새우잠 자기 일쑤야. 특히 둘째는 내 심장소리 듣는 걸 좋아해서 그런가 꼭 내 갈비뼈나 가슴 위에 얼굴을 대고 자는데 갈빗대가 콕콕콕 무거워서 떨어뜨려 놓으면 슬금슬금 다시 내 몸 어딘가를 베개 삼아 자세를 잡아. 아흐흑! 다시 착, 아예 못 달라붙게 그냥 쪼그리거나 웅크리고 자는 게 버릇이 됐어.



패밀리 사이즈 침대도 자유로운 아이들에겐 비좁아 보여;;;; 선녀와 나무꾼에서 사슴이 그렇게 신신 당부한 이유로 다시 돌아가자면 아이가 셋이란 숫자가 되면 제일 힘들 때라고들 하거든. 아이를 네 명 낳은 우리 형부랑 언니가 그랬어. 셋이 엄청나게 정신없는 고비고 진짜 힘든데 넷째가 태어나면 셋을 키우나 넷을 키우나 그 차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해진다고. 돌이켜보면 숫자 '삼' 아이 '셋' 세 명이 가장 힘들었다고. 저마다의 요구가 다르고 한 명이 볼일을 봐도 거의 동시에 또 기저귀까지 갈아야 하는 상황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손 · 발이 떨려온다. 실제로 언니가 고만고만한 아이들 네 명을 키울 때 우리 선재까지 맡겨놓고 놀러를 다닌 적도 있는데(영국에서) 언니는 네 명을 키우나, 다섯 명을 키우나 그 차이가 별로 없었다고 해. 형부에게도 맡기고 외출을 했는데 형부가 한 명을 돌보는 나보다 엄청 잘 봐준 기억도 나고.








언니 집엔 항상 커다란 이 층 침대가 있었어. 혼자 남자아이인 예찬이만 작은 다락방 같은 창고 같은 곳에 따로 아늑하게 방을 만들어주고 예나와 예아, 예니가 모두 2층 침대에서 함께 잤는데 그 2층 침대는 아래 1층을 한 칸 더 밀면 두 명이 잘 수 있을 정도로 사이즈가 엄청 큰 침대였어.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도 튼튼하고, 아래 1층에선 성인 세 명 정도가 거뜬히 잘 수 있는 빅 사이즈였지. 언니는 놀러 가면 항상 나에게 안방을 내주고 언니가 여자아이들과 함께 그 방에서 2층 침대에서 잠을 잤는데 예나는 혼자 2층으로 올라가고 예니와 예아가 늘 언니 양 옆에 꼭 붙어 있더라고. 이제 한 명씩 엄마를 차지하는 거지. 예나는 자폐이기 때문에 혼자만의 공간이 오히려 더 필요한 아이라 2층에서 혼자 자는 걸 더 선호했어. 자기만의 큰 공간으로 2층을 꾸미고 조명과 텐트까지 있었어. 좋아하는 인형도 잔뜩 가져다 놓고. 양 옆에 토끼같이 붙어 있는 아이들을 보는데 정말 귀엽더라고. 엄마 옆에서 동화책도 같이 읽고 서로 자기 쪽을 더 쳐다보라고도 하고, 같이 찬양을 하다가 잠든 아이들. 그것까지만 봤으면 좋았을 텐데.


항상 문가에서 자기 베개를 들고 동생들 방을 기웃기웃 구경하는 우리 예찬이가 서 있더라고. 이른 나이에 세 명의 동생이 와르르 생겨버려서 일찍 철이 든 착한 오빠.



늘 거절당할 걸 알아도 그날은 이모도 있고 이모에게 동생들이 좀 가서 잠을 자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아이가 용기를 내서 물었어.


엄마, 오늘은 엄마 옆에서 잘 수 있어요?



에구, 그냥 아이의 한 마디인데도 나는 눈물이 터져버리고 말았어. 그동안은 그런 말도 잘하지 않던 녀석인데 그날 밤은 시끌시끌한 작은 방 분위기가 뭔가 부럽고 거기에 함께 하고 싶었나 봐. 모든 걸 이미 양보하고 또 양보했지만 엄마의 한쪽 자리만은 차지하고 싶었던 건지도...


나처럼 공평하게 둘 다 똑같이 양팔 베개가 아닌 도망치고 싶어 하는 엄마도 있는데 우리 언니는 그래도 또 어린 여동생들이 안 떨어지는 현실이라 공평하게 사랑을 쏟으려고 힘쓰는 때였거든.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아무렇지 않게 불을 끄고 누웠지만 그날 나는 왜 이리 눈물이 흘렀는지 몰라. 돌아가는 뒷모습이 절로 어깨가 처진 것 같기도 하고. 동생들이 너무 많아서 잘 때도 일찍 독립하고 나름 자기 방도 얻었지만 어리광을 부릴 수 조차 없는 '아이'로 성장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짠했던 거지. 주일학교 선생님이 그랬거든. 예찬이가 울면서 기도하는데 그 기도 제목은 다름 아닌 '동생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세상에! 동생을 한 번 도 때리긴커녕 엄마 옆에서 요리며 청소며 다 돕는 아이가 그런 기도제목을 진지하게 내고 울기까지 했다니 에구, 짠해라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어. 엄마의 임신이, 임신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많은 동생들이 생기고 그만큼 돌봐야 할 손도 팔도 많아진 시점에서 예찬이 나름대로의 성장통을 아프게 겪었겠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어.


그날 밤 언니는 아이들을 다 재우고 양쪽 예니 예아가 잠들자마자 예찬이 방으로 조용히 가서 예찬이의 좁은 침대 한편에서 아이를 붙들고 울더라고. 기도를 하는 듯도 했고 우는 것 같기도 했고 쪼그리고 오히려 예찬이 옆에 함께 자고 잠든 마음을 쓰담쓰담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아이를 키운다는 건 참 힘들고 신경 써야 할 것도 상상 이상으로도 많고 그런데 그 아이가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일 때 선택의 순간들은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아.


선녀와 나무꾼에선 두 명의 아이들이었으니 양손으로 잡고 훨훨훨 날아갈 수 있었겠지. 자다가도 양쪽에서 번갈아 한 번씩 아이들 얼굴을 쓰담쓰담해 줄 수 있었겠지.


예찬이, 우리 예찬이는 나의 첫 조카인데 그래서인지 늘 마음이 더 애틋하고 짠하기도 하고 떠올리는 자체로도 기분 좋은 아이야. 한국에 온 3년 동안 나는 예찬이가 정말 예뻐서 우리 집 짐을 전부 다 싸가지고 가서 일원동 언니네 집 작은 아파트에서 함께 산 적도 있고. 아이가 밤 10시 넘어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하면 같이 놀이터에도 데리고 나가서 놀았어. 그건 나한테 힘든 게 아니었거든. 당시 사귄 남자친구를 만날 때도 예찬이를 데리고 나가서 갈비도 먹이고 공원에서 축구도 하고 그러고 놀아준 적도 있는데, 하하.

(예찬이 기억엔 하나도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일까, 이모를 좋아하고 이모라는 발음대신 "리루"라고 하면서도 나를 엄청 잘 따랐던 아이.


언니랑 크게 싸울 때도 갑자기 예찬이가 뛰어나와서

나경이 이모한테 소리 지르지 말라고! 나경이 이모야!


어린 아기가 자기 엄마도 아니고 이모 편을 들었으면 말 다 했지? 내가 얼마나 찡하고 감동받았다고 그때 우리 예찬이가 3살인가 4살 때였는데...


영국에 가서도 별거 아닌 일로 언니와 다투고 선재만 아기띠로 업고 그냥 무작정 집을 나섰는데 오이스터라고 버스카드는커녕, 핸드폰 하나도 들고 나오질 않았더라고. 전부 주택가로만 이어진 그 집에서 아무 집에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얻어 마시고 갈까 막 이런 생각을 했더랬지. 빙빙 동네만 몇 바퀴를 돌고 너무 어두워진 주변에 슬슬 아이도 크게 울고 무서워질 즘 나는 가출이 허무하게도 그냥 집에 돌아가야겠다 결심하고 돌아가려 하는데 우리 예찬이가 문가에서 혼자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고. 1층 거실 티브이 앞에서 주변을 살피면서, 언니는 정작 설거지와 빨래 때문에 내가 나간 것도 몰랐대. (이런 게 반전이야 ㅎㅎ) 엄청나게 쌓인 집안일에 내가 나가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예찬이가 마구 달려와서 지금 이모가 나갔다고 큰 일이라고, 없어졌다고.


그러면서 또 이야기했대..


엄마, 이모는 우리 집에 온 손님이야. 손님에게 소리 지르고 속상하게 하면 어떡해, 이모에게 잘 좀 대해줘.


7살인가 8살이었을 무렵인데 돌아와서 나를 기다리는 작은 등불 같은 아이 예찬이를 발견하곤 어린 마음에 또 하나 걱정거리를 남기거 같아서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감동스럽더라고. 뭉클했어.


아기였을 때도 초등학교 무렵에도 넌 언제나 내 편을 드는구나, 예찬아...


그래서였을까. 이모는 아무 이유 없이 잘 살 때도 신혼 무렵에도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코로나 시기에도 그냥 네 생각이 나서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은 적도 있었어. 우리 예찬이 목소리가 변하고 커나가는 그 성장과정을 낱낱이 더 이상 세심하게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게 속상했나 봐.


간절히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는지도 알았어. 당장 안 본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보이후드라는 영화에서 갑자기 주인공 메이슨이 훌쩍 커버리잖아. 영화에서도 드라마틱하게 진짜 귀염스런 얼굴에서 수염 난 청년의 모습의 변모하는데 (한 배우가 모든 성장 과정을 연기한 어마어마한 영화야) 나는 예찬이 네가 떠올라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더라고.




오, 너구나! 너로구나!




못 알아봤다가 훌쩍 큰 어른이 된 청소년이 된 아이를 발견하는 장면에선 내 마음이 감정 이입 된 건지 몇 번을 다시 봤는지 모르겠어. 쓰다 보니 영화가 다시 보고 싶네. 아마도 예찬이가 보고 싶어서겠지.


오늘밤엔 나도 공평한 엄마답게 양쪽에 두 아이를 꼭 끌 안아주고 그냥 천장을 보고 잠들까 봐. 두 명 아이를 안고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간 선녀도 있는데 나도 꿈나라로 떠나보지 뭐. 항상 내가 먼저 잠든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래서인지 또 팔과 갈비뼈가 콕콕콕 쑤셔오겠지.





시간은 영원한 거지, 순간이라는 건
늘 바로 지금을 말하는 거잖아.
순간을 잡으라고 하지만
난 거꾸로인 것 같아.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 거야.

-영화 〔보이후드〕중에서




이건 내가 보이후드에 대해 쓴 글이야. 예찬이에 대한 일화가 고스란히 담긴,

오늘도 이모는 엉뚱하게도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선녀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예찬이 생각까지 마음이 닿았네. 보고 싶은 우리 예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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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된 우리 예찬이 / 예나의 뒤를 조용히 따라 걸어주는 큰 오빠 (이번 여름 함께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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