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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Sep 10. 2024

밥밥밥 밥 해주는 기쁨

신랑, 생일 축하해!!!


오늘 브런치 작가님 윤병옥님의 음식 이야기(여기)를 보다가, 

코로나로 자가 격리 중인 아들 내외에게 해준 뚝배기 불고기와 '대신 아파줄 수 없는 엄마 마음'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나도 재작년 신랑의 자가격리로 열심히 밥을 해준 때가 떠올랐다. 신혼 때를 제외하고 신랑에게 그렇게 열심히 요리해 준 건 처음이었다. 남편은 새벽에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부지런하고, 뭐든 일찍 자고 규칙적인 사람. 신혼 때는 출근 시간을 맞춰서라도 아침을 해주려고 애썼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턴 아침을 해준 적이 거의 손에 꼽는다. 아침잠이 많아 겨우 일어나는 나는 토스트와 시리얼, 간단한 과일로 아이들 아침을 챙기는 편인데 한식주의자인 신랑은 6시 기상에 이미 혼자서 아침을 먹고 설거지까지 완료하고 이른 출근을 한다. 7시쯤 출근을 하면서 나와 아이들을 한 명씩 차례로 깨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모닝콜은 7시 반으로 맞춰져 있다;;;성실맨의 5시 반 모닝콜과 다른 아침) 실로 오랜만에 부엌을 들락거리면서 삼시 세끼와 간식, 중간중간 차와 음료를 챙겼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내가 따로 간병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요리만 해서 안방으로 넣어주면 되기에, 힘들진 않았다. 재밌기까지 했다. 아이들 음식만 주로 해서 신랑에게 따로 국과 야채 반찬을 만드는 게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밖에서 파는 음식을 사 오거나 배달음식을 주면 되니까 스트레스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외식, 파는 음식을 싫어하는 집밥주의자 신랑이기에, 몸까지 아픈데 매일 사서 먹일 수도 없고 그때그때 즉석 반찬을 한 두 가지씩은 꼭 해야 했다.

일주일이란 휴가가 주어졌는데도 웃을 수도 쉴 수도 없는 상황. 신랑도 그렇게 온전히 일주일을 쉰 건 2022년이 아마도 처음이 아니었을까. 직장을 옮길 때도 실업 급여를 받으면서 좀 더 쉬고 여행도 다니자고 말해도 마음이 불편해서 안된다며 이삼일 쉬다가 다시 출근해야 안심되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사람이었다. 쉬는 습관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우연히 주어진 자가격리에 그저 마음이 불편할 뿐이었다.


그런 신랑이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기침 소리부터 심상치 않더니 멎지 않는 기침이 밤새 이어질 즘부턴 불안했고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으라고 하고 신랑도 마스크를 단단하게 착용했다.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코로나 테스트를 하러 갔다. 자가진단 키트로 이미 새벽에 '양성'이 뜨긴 했는데 줄도 희미하고 확실치 않았지만 코로나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하루 만에 목소리가 안 나올 만큼 목도 쉬고 몸 상태가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안방을 쓰라고 하고 소독도구와 청소도구를 챙겨주고 안방 화장실을 이용하며, 안방 공간에서만 지내라고 했다. 환기가 중요하니 앞베란다로 이어진 창문을 열어 한 번씩 환기하라고 일러주고, 아프니 뭔가 당기는 음식이나 음료, 필요한 걸 말해주면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나와 아이들이 챙겨주겠다고 했다.






똑똑, 식사 시간입니다






지금은 자가격리라는 말도 생소하지만 당시에는 그래도 코로나 = 무조건 자가격리 =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특히 4살도 되지 않은 막내와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들이 걸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철저하게 문 밖에 나오는 것도 금지하고 시간마다 음식을 해다 날랐다. 식판을 받을 때도 장갑으로 받고 철두철미!! 요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 뭐 지금 봐도 대단한 솜씨는 아닌데 (둘째가 삼겹살을 좋아해서 삼겹살 반찬이 유독 많네;;; ㅋㅋㅋ 삼겹살과 피자 조합 뭐지 >_< ㅋㅋㅋ) 그래도 시간마다 과일도 깎아주고 생각나는 간식도 있으면 꼭 챙겨줬다. 궁중떡볶이와 매운 떡볶이는 내가 먹고 싶어서 한 요리 같지만. 







잘 먹었습니다





매 끼니마다 이렇게 반짝반짝 그릇이 텅텅 비워져서 나왔다.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그러면서 한 마디씩 꼭 덧붙였다.






내가 요즘 입맛이 진짜 없어. 몸이 너무 안 좋아.
 코로나 이기려고 먹는 거야.
그것만 알아둬.




엉, 알았어. ㅋㅋㅋㅋ 누가 뭐래. ㅋㅋㅋㅋ

잘 먹었다는 인사를 안 해도 잘 먹었는지 잘 알겠어. 


주변에서 친해진 엄마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자가격리 하는 신랑에게 밥상 차리다가 병이 났네, 나중에는 설거지하는 것도 귀찮아서 퐁퐁이랑 수세미까지 세트로 넣어서 본인이 먹은 그릇, 설거지까지 마친 뒤에 빈 그릇으로 담아왔네 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웃음이 터져 버렸다. 나도 힘들면 신랑 방에 설거지 도구를 넣어주라는 말을 했을 땐

 

나는?

음 ……?


이미 깨끗하게 다 먹어서 늘 설거지 거리도 없는데, 아파서 집에(집도 아닌 방에) 갇혀있는 사람에게 굳이 그릇까지 좁은 화장실에서 닦게 해야 할까도 싶었다. 잘 먹는 신랑이 고맙고 오히려 자랑할 거리구나, 생각했다. 차를 자주 마시거나 뜨거운 물을 데워 먹어야 했기에 커피 포트는 방 안에 넣어줬지만 설거지쯤이야! 

솜씨 없는 요리도 입맛이 없는데도 늘 끝까지 다 먹어 주었으니. ㅎㅎㅎ

그래, 신랑 자랑 맞다, 맞아.



나는, 평소에 신랑에게 짜증 내고 버럭도 한 번씩 터뜨렸는데 (육아 스트레스를 어디에 말할 때도 없어서 그런 게 엄한데 불똥이 튄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신랑은 본인이 철없는 큰아들이 아니라 내가 철없는 큰 키우는 심경이라고 해서 말에도 발끈했다. 코로나라는 치명타가 찾아오긴 했지만 반대로 뭔가를 챙겨주고 증명할 기회가 생긴 같아서 조금 기쁘기도 했다. 

내가 딸이라면 용돈 좀 주고 한 달 여행을 다녀올 테니 애들을 보라고 할 땐 말이 없었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남긴 건 아이러니하게도 격리가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 치유가 아니었을까. 난 그때의 일주일 자가격리를 떠올리면 이 두 단어가 먼저 생각이 난다. 


어느 날부턴가 똑똑 문을 두드려도 신랑이 방에 없었다. 밖에 나가서 베란다에 앉아서 목련꽃을 하염없이 보거나 흐드러지게 핀 목련을 바라보면서 베란다 자리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마지막 잎새 찍냐? 


너무 답답해 미치겠다며, 제한된 공간, 안방에서 허구한 날 계속 내내 컴퓨터로 영화 드라마, 미드를 봐도 시간이 안 간다며,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고 했다.

아앗, 우리 신랑은 영원한 집돌이인 줄 알았건만. 앉아있긴커녕 집에만 들어오면 소파와, 바닥과 한 몸이 돼서 그냥 붙어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잠깐씩 문틈으로 열어본 신랑의 모습은 낯설었다. 앉아서 멍 때리고 하늘 보기, 활짝 핀 목련 보기, 심지어 창문을 열어 뚫고 들어오려는 꽃잎을 만져보기까지, 


오랜 시간 집안에 감금되어 있으면 사람은 누구나 자연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구나. 우리에게 치유의 기쁨을 주는 건 어쩌면 봄이 오는 소리, 생명이 탄생되는 기쁨, 자연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본 흐드러지게 핀 목련과 벚꽃이 유난히 예쁘긴 했다. 동네를 산책하게 되면 꼭 찍는 꽃 사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면, 마당이라도 산책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베란다에서 본 벚꽃, 흐드러지게 핀 그 하얀색 목련 송이는 무척 아름다웠고 목련이 이유 없이 툭 떨어진 어느 날은 생생한 꽃몽우리를 가져와서 식탁 위에 잠시 올려놓기도 했다. 나는 원래 꽃을 봐도 별 다른 감흥이 없는 사람이라 식탁 위에도 꽃을 두지 않는다.



매그놀리아, 영화 매그놀리아를 엄청 좋아하는데 왜 제목이 매그놀리아인 줄 알아?
-또 잘난 척 시작이시구먼.
들어봐 봐, 방 안에서 벚꽃이나 목련이나 계속 관찰하고 있었잖아. 궁금하지? 
-... 
목련꽃은 한 번에 확 피기도 하지만 떨어질 때도 모두 다 같이 죽는대. 피어 있는 모습보다 목련이 진 모습은 진짜 무슨 바나나 껍질 밟아놓은 것처럼 처참해, 지저분하고. 근데 그게 우리 사람들 모습이랑 닮아있다나 봐. 함께 살고 살아내고, 또 함께 죽는 거. 죽는 건 너무 갔나?



신랑은 그 뒤에도 그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지독한 고집;;; 나의 지적인 잘난 척을 조금도 수용하지 않는!) 차를 마시면서, 밥을 먹으면서도 목련과 벚꽃을 유심히 관찰하고 또 봤다. 

물론, 그럴 일은 없었지만 신랑이 베란다 쪽에서 거실로 나오면 안 되니까 그때마다 거실에 있는 베란다 문을 단단하게 잠가버렸다. 신랑보다는 어린 선율이가 아빠를 부르면서 들어가면 안 되니까, 안전 차원에서 한 행동이었는데

꽉 잠그면서 나오지 말라고 신호를 할 때마다 신랑이 말했다.





박나경, 너 아주 철두철미하고 무서운 여자구나.
안나가! 절대 안 나간다고!!










*내일 생일인 우리 신랑을 떠올리며 쓴 글

신랑, (원래는 상동오빠!!!) 생일 축하해! 내가 요리도 살림도 진짜 못하잖아. 그래도 불평불만 한 번 없이 맛있게 맛나게 먹어주고 함께 살림도 해줘서 고마워. 나에게 밥 해주는 기쁨을 알게 해 주고 우리 식구들과 함께 하는 기쁨, 같이 산책 한 번을 해도 웃음 주는 사람, 오빠가 참 좋아. 고맙고 든든햐!

그리고 영화 매그놀리아는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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