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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자꾸만 보고 싶은 뒷모습, 발을 뗄 수 없는 뒷모습

by 앤나우
영화 엘리펀트


첫 앵글부터 어떤 소년의 뒷모습을 쫓아간다. 여느 날처럼 평범한 아침이 왔고 그래서 다른 날과 다름없이 학교에 왔고 친구들 사이를 정신없이 지나간다. 구스반산트 감독의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뒤에서 정신없이 따라가다 앳된 10대들의 얼굴이 나왔을 때 한 방 얻어맞는 기분이 든다. 다큐멘터리 같은 관찰자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에게 몰입되는 감정을 여러 번 느꼈다. 평범한 일상에서 앞모습을 차라리 몰랐다면 가슴이 덜 아팠을까. 비극적 사건에 인과관계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와 비극이 그냥 예고 없이, 이유 없이 펼쳐지는 '어느 날'을 눈이 시리게 보여준다. 영화는 뒷모습에서 시작하지만 앞모습을 넘어 처참한 내면을 낱낱이 보여주고 마무리된다.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중년 여성 한나 슈미츠는 노년에 감옥에서 자신의 무지에 대한 반성을 하며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을 위해 통에 돈을 모았다. 그녀의 죽음 이후 그 돈은 미하일을 통해 유대인 생존자에게 전해지는데 자기처럼 글자를 몰라 무지하고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대인들의 문맹 교육을 위해 써달라는 말도 덧붙인다. 놀랍게도 유대인 중에서는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한국인들도 문맹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들었다) 홀로 코스터의 생존자는 그 돈은 받지 않는다. 하지만 뒤돌아 한나가 모은 통을 만지작 거리더니, 낡았지만 예쁜 통은 자신이 가지겠다고 말한다. 가스실에서 자신의 가족들과 유대인들을 죽인 가해자의 돈은 확실하게 거절하지만 어린 시절 자기도 찻 잎을 넣거나 예쁜 통에 돈을 모아놓곤 했다며, 한나가 모았을 그 마음은 받아준다는 것일까.




영화 마틸다


《어른이 되면》노래에서 에릭이란 남자아이가 등장한다. 에릭은 어른이 되면, 비장한 표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서 앞에서 아이가 흘린 인형을 멋있게 주워주는 일이다. 진지한 표정과 달리, 어른이 됐을 때 하고 싶은 일이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 주변을 살피고 도와주고 실수로 누군가가 떨어뜨린 인형을 주워주는 일이라니! 에게, 할 수도 있지만 소중한 걸 주워주는 장면에서, 작은 에릭의 뒷모습이 어른보다 더 멋있고 크게 느껴졌다.




영화 첨밀밀


증지위(구양표 역) 등에 새겨진 미키마우스 문신.

안마소에서 일하는, 사랑하는 여자(장만옥| 이교역)를 웃게 한다면 이깟 문신쯤이야. 암흑가 보스라는 위치와 걸맞지 않게, 가오를 살리지도 못하는, 귀염뽀짝한 문신을 단순히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이유 만으로 등에 과감히 새겨 넣는 남자. 모든 걸 다 잃은 이유는 처음으로 다시, 피식이라도 웃는다.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아빠 NJ로부터 카메라를 선물 받은 8살 남자아이 양양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찍는다. 앞모습이 나오지 않는 진실의 절반만 나온 아이의 뒷모습 사진.





우리는 앞만 보고 있으니 뒤는 볼 수 없잖아요.
그러니 진실의 절반만 보는 거죠.




우리가 늘 마주하는 누군가의 앞모습 역시 사실은 진짜 모습이 아니구나, 웃어도 웃는 게 아닌, 울어도 그게 전부가 아닌,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안다는 건 뭘까.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기까지 전부 자물쇠를 채워놓은 듯 단단해 보이지만 의외로 열쇠 하나 열었을 뿐인데 단순하고 명료하기까지 한 인생이란, 사람이란!

특히 함께 살고 모든 걸 공유한 것 같지만 속을 열기까지 모르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된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자꾸만 오랫동안 쳐다봤던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안 보일 때까지 버스 앞에서 손을 흔들고, 멀리 점이 돼서 사라질 때까지 눈에 가득 넣었던 이유를 말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왜 그랬는지 느낄 수 있었다. 열 길 물속, 한 길 사람 속. 뒷모습을 열심히 따라가며 셔터를 눌러대는 꼬마 양양의 시선을 따뜻하게 쫓아가게 되는 영화.




만화책 크레이지 러브스토리 | 이빈




여주인공 혜정이가 처음으로 뒤를 돌아 성무를 바라보았을 때 자기를 향해 울고 있는 성무를 발견한다.

늘 자기가 사라질 때까지 자기를 한결같이 지켜보고 바라보고 기다려준 성무가 울면서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있는 걸 마주하는 엔딩이란! 여중생에게 이토록 로맨틱한 장면이 또 있을까? 두근두근 가슴 설레서가 아닌, 누군가 한결같이 내 뒷모습을 바라봐주는 사람을 놓쳐선 안 되겠다는 결심이 들게 한 엔딩씬은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영화(만화책) 속 뒷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앞모습도 볼 수 있다. 아니, 앞모습을 안다고 해서 그 모습이 전부 진실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글쓰기는 나의 뒷모습이라고 여겼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좇는 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에선 생글거리고 웃지만 포악하고 비루하고 잔인한 성질, 나태한 내 모습이 담겨있는 뒷모습. 그래도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니니까, 솔직하게 낱낱이 뜯어보면 그렇게 미운 구석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사랑스러운 앞모습만큼 다정한 뒷모습도 있는 게 그게 또 나인걸, 진실의 절반에서 언제나 더 나아가고 싶어 하는 나의 글쓰기. 영화 곳곳에서, 어린 시절 만화책에서, 잊지 못할 장면에서, 나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한 번 더 바라봐주고 찍어주고 간직해주고 싶은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들쭉날쭉, 감정이 요동치고 느리고, 때론 너무 빠를 때도 있지만 … 솔직하게, 지금처럼 한 길 사람 속으로 걸어가고 싶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싶다.


*제 뒷모습을 바라봐주시는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담아 쓴 글입니다.







엘리펀트 Elephant ·2004 ·미국 · 81분 / 구스 반 산트 감독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 2009년 · 미국, 독일 ·123분 / 스티븐 달드리 감독

마틸다 · 2022 · 영국, 미국 · 122분 / 매튜 워처스 감독

첨밀밀 · 1997 · 홍콩 · 118분 / 진가신 감독

*티엔미미 -첨밀밀은 '꿀처럼 달콤하다'는 뜻이다. 물론 대만 가수 '등려군'의 노래 제목이지만 영어 제목도 상당히 특이하기에 덧붙인다.

▷Comrades : Almost a Love Story (동지들 : 거의 러브 스토리에 가까운)

하나 그리고 둘 · 2000 · 대만, 일본 · 173분 / 에드워드 양 감독

크레이지 러브스토리 · 1996년 초판 인쇄 / 이빈작가 : 대원문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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