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아가기 | 글을 쓰기 위해 앉아있는 용기
지난주 내내 작은 아이가 아팠다. 잘 놀고, 잘 뛰고, 잘 먹고 잘 웃는 아이가 아픈 건 정말 순식간이다. 무리해서 정신없이 놀긴 했다. 태권도가 끝나도 바깥으로 축구를 하러 나가기도 하고 점핑파크에서 놀고 또 놀이터행, 연이어서 열린 봄봄봄 성경학교 행사 참여, 우박이 와도 눈이 와도(날씨도 참 너무 변덕스러웠고 추웠던 봄날이었다) 그저 바깥으로 뛰어가는 아이와 함께 했다. 놀았다.
그게 탈이 났던 건지 크게 아파서 온몸으로 두드러기가 퍼지고 원인을 알 수 없어 더 불안했다. 이미 크고 작은 사고들로 응급실에 세네 번 간 경험은 있지만 또 이런 경우는 처음이기에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아픈데도 투병일기를 쓰는 분들이 있다. 대단하다는 생각과 단단한 멘털, 아 …, 나는 못쓰는 쪽이구나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내가 아프면 차라리 내 심경을 어디에 토로라도 할 수 있으니 그건 오히려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니 모든 게 멈춰진 느낌을 받았다.
나의 일상이, 내 세계가 파괴되고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초라함이, 아무것도 손쓸 수 없는 나약함이 싫었고, 아이를 위한다고 같이 마냥 놀았던 부분마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속상하면서도 싫었다. 나를 뾰족하게 자책하고 돌아보고 후회하고 탓할 사람이 없었다. 그냥 나 밖에는.
나는 평소에 걱정이나 고민을 크게 안 하는 편이다. 누군가 본다면 생각이 없어 보일 정도로 밝다, 마냥 해맑다. 실제로 뭔가를 선택할 때도 큰 고민 없이 어떤 검진 결과, 시험 결과를 기다릴 때도, 결과가 나오고 나서 생각하면 되지 뭐, 나 역시 나를 낙천주의자로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씩 부딪히는, 한 번씩 내 계획과 무관하게 찾아오는 아이들에 대한 일에는 나의 유리멘털이 바사삭 깨지고 만다. 아, 맞다, 나는 유리(멘털) 선생이었지.
영화 언브레이커블을 좋아하는데 특이하게도 마지막 아이들이 나를 '유리선생'이라고 불렀어,라는 사무엘 잭슨의 대사가 나는 너무 가슴 아팠다. 이건 영웅을 찾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반대로 유리처럼 온몸이 부서지는 남자가 다시 빌런이 돼서 세상 전체와 싸우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기에. 나는 몸은 자주 아픈 편이 아니라 그 부분에 공감할 순 없었지만 누구보다 정신력과 의지, 단단한 마음이 가차 없이 시련 앞에 그냥 파사삭 부서지는 인간이므로 나 스스로에게 '유리멘털 선생'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신랑마저 2주간 출장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이런 일이 생기니 나 혼자 발을 동동, 병원을 네 번 넘게 가고 검사를 받으면서도 차도가 없는 아이 생각에 밥 수저를 들다가도 걱정이 돼서 심장이 쿵쿵 쾅쾅, 수저를 내려놓고 엉엉 울었다.
나는 말하길 좋아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 속내 이야기를 언제든 자주 털어놓는 사람임에도 아이에 관한 일은 함부로, 먼저, 선뜻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무서웠다. 그냥 더 큰일이 날 것 같은 조마조마함과 걱정 어린 마음의 전달 같은 걸 받고 싶지 않은 기분이기도 했다. 아이가 오히려 나보다 씩씩했다. 활짝 웃으면서 잘 먹고 여전히 아프면서도 놀고 싶어 하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고 병원으로 나가는 그 잠깐에도 어떻게 어디서든 놀고 싶어 했다. 기가 막혔다. 엄마 마음은 이렇게 애가 타는데.
이제 5학년이 된 큰 아이도 다 큰 것 같지만 혼자서 따로 잠을 잘 수 없기에 수액을 맞고 다시 퇴원해서 집으로 와서 아이와 집으로 돌아와서도 눈물이 터졌다. 매일 투닥거리고 싸우는 형제지만 동생 몸으로 점점 올라오는 붉은 반점을 보더니 나만큼이나 마음이 여린 큰 아이도(내 새끼가 맞는구나!) 눈물을 터뜨렸다.
엄마, 선율이가 왜 이렇게 아픈 거예요?
아직 이렇게 작고 아무 죄도 지은게 없는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런 벌을 우리한테 주는 거예요.
선율이 몸이 왜 이렇게 변해요?
이제 이런 모습으로 평생을 사는 거예요?
동생이 불쌍하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형아를 보다가 잠에서 깬 선율이도, 나도 셋이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아, 엄마란 그래도 울기만 해서는 안되는구나, 여기서 뭔가를 말하고 내 마음이 폐허처럼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뭔가를 말해줘야 하는 사람이구나. 엄마란 자리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너무 힘든 것 같으면서도 난 이미 엄마인걸. 나도 모르게, 내가 무슨 말을 해야지, 생각하기도 전에 말이 튀어나왔다.
선재야, 엄마도 너무 걱정되고 무서워.
검사해도 뚜렷한 결과가 안 나와서 다른 병원,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게, 데리고 갈 때마다 엄마도 너무 무서운데 그게 하나님이 벌을 내리기 위해 이런 일을 우리한테 겪게 해 주는 건 아닌 거 같아.
병원에 가니까 선율이 보다 더 아픈 어른 아가들이 많이 있더라.
이미 오래전부터 아파서 이렇게 뛰고 걷는 게 얼마나 간절하고 소중한지, 밖으로 못 나오는 아이들도, 거기 엄마들이 오히려 엄마를 위로해 주고 괜찮을 거라고 손을 잡아줬어. 모든 상황들이 힘들어도 벌을 내려주는 것 같은 시간에도 하나님이 기도하라고, 더 소중한 걸 잃지 말라고 하시는 거 같아.
멀리 떨어져 있는 아빠도 울면서 기도해 주고 선율이가 밉다고 한 선재도 이렇게 울면서 선율일 걱정하고, 우리가 지금 혼자가 아니라 셋이서 울고 걱정하고 기도하는 게 이런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이런 시련이 찾아왔나 봐. 엄마는 덕분에 평범했던 하루하루, 당연히 있는 너희들이 이렇게 소중하다는 걸 또 깨달았어.
나도 모르게 나온 긴긴 대답.
아이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닌, 내 마음속 나에게 하는 말 같은 내 목소리가 낯설면서도 다른 사람 같으면서도 또 기도하게 하는 힘을 주고 있었다.
글을 쓰고 싶다거나, 강렬하게 미칠 듯이 책을 읽고 싶다거나, 그림을 보고 싶다거나,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심경은 하나도 안 들었지만
아픈 아이를 둔 엄마들이 병실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터벅터벅 걷고 있는 그 엄마들이 어깨를 좀 펴고 물도 마시고 날 위로해서 잡아준 그 손을 누군가가 더 많은 사람들이 잡아주길 간절히 원했던 것 같다.
그래, 나는 연약하고 부서질 것 같은 멘털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이었고 기도라도 할 수 있는 그 상황들에 감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동생 때문에 뚝뚝 눈물을 흘리고 아빠한테도 페이스톡으로 전화해서 눈물을 흘리며 아빠보고 빨리 오라고 한 목소리들이 나에게 감사했다. 시련과 아픔이 누군가에게 전달될까 봐 행여 더 큰 상황이 벌어질까 봐 막연했던 것들이 가라앉고 하루하루 아이와 함께 했던 소중함들이 눈에 들어왔다.
먹고 싶다는 걸 해주고, 좋아하는 보드게임을 한 번 같이 해주는 것도, 아이가 왜 아픈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 때문에 또 웃을 수 있었다. 아이들 덕분에 숨을 쉬고 멘털이 부서진 나날들 같은 시간도 내가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건 불안을 떨쳐내고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는 길이다
앞이 안 보여도
지금 내 마음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용기가 없다면
글조차 쓸 수 없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매 순간 용기를 갖고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글을 쓴 건 아니지만
나에게 솔직하게 내 손을 바라보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이 단순한 행위가
유리처럼 조각난 내 마음을 다시 쓸어주고 새로운 걸 채워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에겐 유리멘털 선생인 것도
몸이 아픈 것도
아이가 아픈 것도
시험에 떨어진 것도
실패한 것도
애인에게 차인 것도
원인 모를 불안함이 찾아온 것도
망신당해서 이불킥을 하고 싶은 것도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는 한강시인처럼 아픈 순간에도 아이에게, 혹은 나에게조차
괜찮다, 괜찮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무섭고 눈물이 나고 누군가, 괜찮냐고 한 마디만 해도 울음부터 터지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아직도 내 안에 꺼내줄 이야기가 있고
무섭다, 두렵다, 걱정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내 안의 불안 투성인 '기쁨이'가
살아있어 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안을 떨쳐내고 앉아있을 수 있는 용기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정말 감사하다.
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에게도 그 용기를 조금 덜어 나눠주고 싶을 만큼 감사하다.
울보고, 겁도 많고 좀 나약한 엄마면 어떠리, 아이랑 같이 울어주고 다시 또 웃고 또 일어날 힘이 날마다 생긴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좀 나아지고 나서야 몇몇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안부를 전했다. 기도해 준다는 말이 새삼 너무 고맙고 뭉클하게 다가왔다. 기도 덕분인지 아이는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엄마가 고단 할 텐데도 주말 근무를 빼고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와주셨다. 가방에 이고 지고 먹을걸 한 아름 싸서, 멀리서 엄마를 보는데도 눈물이 핑 돌았다. 선율이 괜찮냐고 하루도 안 빠지고 안부를 물어주고 전화를 해주었던 가족 같은 혜진쌤과 심선생님께도 감사하다. 멀리서 나 제대로 못 챙겨 먹고 요리하는데 힘들까 봐, 손쌤이 음식을 한 아름 우리 집으로 배달해 주었다. 먹을 복이 터진 건가, 울음 뒤엔 이제 기쁨이라더니, 용기를 내기로 마음만 먹었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따뜻하고 풍요로운 손길과 사랑이 이어졌다.
엄마는 비싼 소고기를 제일 먼저 구워서 아이들이 아닌, 나에게 제일 먼저 앉아서 먹으라고 손짓했다.
(프라이팬째로 ㅋㅋㅋ)
엄마는 원래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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