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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Oct 02. 2024

완벽주의와 완료주의

매일 쓰는 삶은 어떤 기분일까 

알레님과 함께 하는  [몹쓸 글쓰기] 20일의 글쓰기 여정을 마쳤다. 사실 지금도 쓰고 있기에 마쳐가고 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나는 이번 글쓰기를 통해 '완료 주의'란 말이 와닿았는데 많은 이야기 중에 알레님의 그 말이 왜 이렇게 마음에 남았을까 생각해 보니 우리가 돈을 받고 월급을 받을 때도 완벽한 상태로 윤기 나게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걸 떠올려보니 바로 끄덕끄덕, 납득이 됐다. 월급 사실주의 소설가 장강명 작가님도 떠올랐다.〔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월급 사실주의)〕물론 어떤 분야든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가르치면서 보람도 느끼고 누군가에게 내가 문제풀이를 설명해 준다는 게 즐겁기도 했다. 나만의 노하우, 읽기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걸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공부할 때도 많았다. 첨삭할게 한가득이어서 쌓아놓고 새벽 3,4시까지 일을 한 적도 있다. 아빠가 어지럽게 쌓여있는 아이들 교재들 속에서 엎드려서 잠든 나에게 한 마디 하시곤 했다.




아이고, 야야, 제발 좀 자라! 그냥 자!
사방팔방 불 켜놓고 뭐하노?
학교 다닐 때 지금처럼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를 갔을 텐데 …… 




책상이 아닌 침대에서 자라고 나를 몇 번이나 흔들어 깨웠다. 아마도 학원이 문 닫기 전 선생님들을 대부분 자르고 나랑 몇몇 선생님들만 남아있을 때 몇 달을 그렇게 수험생처럼 밤을 새워가며 일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그때도 무슨 불타는 책임감과 사명감에 일 했던 것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잘린 선생님 자리대신 채워진 '자리'값을 더 받고 늘어난 월급이기에 월급을 그만큼 더 받으니까 나도 그에 마땅하게 일을 더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400만 원도 안 되는 돈인데 매번 받던 월급의 배라고 생각하니 잠을 안 자더라도 내가 이고 지고 전부 일거리를 싸와서 집에서라도 남은 일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학원이라 마치는 시간이 원래 9시라 야근을 못하니까 TT) 잠도 엄청 많고 게으른 성격인데 이상하게 돈이 걸린 일엔 책임감이 생기더라. 돈을 그렇게 엄청나게 들인 대학교 수업엔 지각하는 게 큰일이 아니면서(감사하게도 대학교 등록금을 아빠 회사에서 전액 대준 덕분에 대학교 시절엔 등록금의 위력을 잘 몰랐다. 돈의 소중함을 잘 모른 채 칠판에 '휴강'만 쓰이면 그렇게 기뻐했던 나 자신;;;)  그래도 내가 받는 돈이 걸린 일엔 지각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다고 사람이 어떻게 지각을 안 해;; 지각도 몇 번 손에 꼽을 정도는 했다. 난 완벽주의자는 아니니까.


완료주의자, 월급 사실주의에 가까웠다. 돈을 받은 만큼 일을 완료한다, 맡은 일을 끝까지 한다. 월급을 받으니 받은 만큼 일한다. 


거기에 덩달아 느껴지는 보람, 뿌듯함, 사명감은 덤이었고 책임감은 있었지만 '완벽해야 돼!' 하는 강박주의는 없었던 것 같다. 


매달 월급을 받기 위해 매 순간을 완벽하게 사는 직장인이 있을까. 너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회사를 창립한 사장님도 일 중독으로 일할수는 있지만 매 순간 완벽할 순 없을 거다. 직원들이 완벽하게 일하길 누구보다 바랄 순 있어도.






나의 글쓰기가 완료주의 같은 마음이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엄마는 대체 왜 노트북을 붙들고 글을 쓰는 거야?


요즘 보드게임에 빠진 둘째 덕에 아이들과 자기 전에 팀별로(아빠팀/ 엄마팀) 보드게임을 하다가도 시간이 돼서 글 좀 쓰러 들어가야 한다는 나에게 선재가 물었다. 



나의 대답 : 그럼, 너는 대체 왜 맨날 게임을 해? (갑자기 날이 선 역 공격ㅋㅋ 같지만 그냥 시간에 쫓기다 보니 평소에 하고 싶은 아무 말이 그냥 튀어나온 것 같다) 같은 이유야. 
선재 : 게임을 하면 날마다 하나씩 깨고 게임 기술이 늘잖아. 더 잘하게 된다고.
엄마 글쓰기도 그런 거야? 



그런가, 더 잘 쓰게 되나, 매일 쓴다고 갑자기 글빨이 좋아지고 자연스러워지고 술술 써지나.

아니 아니, 그런 적은 없다. 그저 호기심에 던진 아이의 질문에 뭔가 부끄러웠다. 뭐가 더 늘어난 게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장강명 작가님은 노력이 아깝지 않은 일, 헌신할수록 더 좋아지는 직업이 소설가라고 말했지만 나는 일단 소설가가 아니고 작가로 글을 쓰는 게 아니기에 나의 헌신과 꾸준함에도 뭐라도 있었으면 했다. 


생각을 가다듬고, 잠든 선재에게 다시 대답해주려고 한다.



음음, (목을 가다듬고)

선재야,

매일 쓰니까 쓰다 보면 유일하게 엄마가 내 생각을 제일 많이 하게 되는 시간이 글쓰기 시간이야. 다른 때는 다른 걸 하느라 별로 나를 떠 올 릴 수가 없거든. 선재랑 선율이랑 있을 때는 너네 입장에서 공감해 주고 웃고 싶어. 책을 읽고 너희 숙제를 봐주고 학원에 데려갈 때, 기다릴 때, 넷플릭스를 볼 때는 거기에 몰입해하잖아. 살림은 그리고 사실 완벽해 보이지 않아도 엄마는 매일 밥을 하고 요리를 하고 치우는 삶이 정해져 있어서 재미는 없는데 살림살이는 살아가는 방식이지 그게 엄마 자체라고 여겨지진 않아.(아, 이래서 살림을 잘 못하나 또 깨닫는 대목 ㅎㅎ)


 그런데 글은, 그냥 내가 쓰는 것뿐인데 꼭 나 같더라고. 마음을 담을 수 있어서 그런가 봐.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그 책에서 뭘 느꼈는지 표현할 수 있는 건 내 마음이 들어간 건 읽은 후에 글을 쓰는 일이라고 느끼거든. 엄마가 그걸 못해서 병이 났던 것 같아. 우울하고 아팠어, 어떤 날은 미친 듯이 멍하기도 했고 막 달려 나가고 싶었는데 그랬는데도 속이 시원해지지가 않았고. 


그런데 엄마가 매일 쓰다 보니 쓰고 쓰면서 생각하고 내가 있어서 그 자체로 좋았어. 화가 나고 미칠 것 같은 마음도 왜 그랬는지 글을 쓰니까 그게 보이더라고. 왜 자꾸 눈물이 났는지도 몰랐던 순간들이 참 많은데, 글 속에선 쓰다 보니 해답을 찾지 않아도 그 자체로 위로가 됐어. 너도 독서록을 쓰다가 쓰기 싫다가도 어떤 날은 엄청나게 그림도 그리고 네 컷 만화까지 쭈우욱 길게 써지는 날이 있잖아, 졸리고 분명하기 싫어했는데도 엄마는 너의 그런 점이 멋있다고 느껴졌다. 연필은 쥐면 쥘수록 나한테도 힘을 주는 친구야. 참, 그리고 한 편을 마치는 거. 하나를 완성했다는 뿌듯함이 있어. 그게 게임 기술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뭐에 쓸모 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엄마한테는 온전한 또 내 글이 완성된 거라 뿌듯하고 좋아, 선재야. 


그러니까 완벽하진 않지만 글을 완성해 나가는, 한편씩 완료하는 엄마를 조금은 응원해 줘.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




 대학교 때 습작을 위해서 필사를 미친 듯이 하는 무리가 있었다. 조세희의 '난*쏘*공'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한 권을 죽도록 필사하면 문장이 점점 완벽해지고 오타도 없어지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나 역시 재밌게 빠져서 읽었던 책인데 필사할 수는 없었다. 가슴 아프고 눈물 나는 문장이 너무도 많았기에.

특히, 영희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꾹꾹 눌러쓰기 힘들 것 같았다. 도저히.


말은 쉽게 뱉어지고 흘러가기도 하지만 문장은 노트에 언제까지나 남아있다. 나는 언제나 그 사실이 불안하면서도 대단한 매력처럼 느껴졌다. 덤벙대고 성급한 내가 조금은 신중해지고 고민한 흔적이 남는 게 좋았다. 



전에 쓴 손글씨의 기록들이 신기하게도 나에게 답을 주는 순간, 그런 순간들을 이번에 종종 만나서 반가웠다.

그리고 갑자기 그리운 이너조이 








매일 쓰는 삶이라고 했지만, 20일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또 4일을 쉴 생각에 기뻐하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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